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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 되지빠귀는 다른 되지빠귀들이 지렁이를 잡아먹느라 정신이 없을 때도 긴장을 늦추지 않았어요. 이따금 높은 나무 위로 올라가 두리번거렸어요. 들짐승이 다가오거나 사나운 매가 날고 있는지 살폈어요. 숲에서는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르니까요. / 한참 동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어요. 대장 되지빠귀는 그때서야 지렁이 한 마리를 삼키고는 깊은 생각에 잠겼어요." - '둠벙마을에 온 되지빠귀' 몇 토막

 

'되지빠귀'? 거 참! 이름 한번 재미있다. 이 새는 어떤 새일까? 되지빠귀는 크기가 23cm쯤 되는 흔하지 않은 여름철새다. 수컷은 회색빛, 암컷은 갈빛을 띠고 있으나 어린 새와 암컷 가슴에는 점무늬가 있는 것이 특징이다. 지렁이를 좋아하고 버찌 같은 열매도 먹는 되지빠귀가 자주 가는 곳은 둠벙이다. 둠벙은 물이 고인 웅덩이로 숲에 사는 새들이 물을 마시고 목욕을 하는 새들 우물이자 사우나탕이다.

 

새가 좋아 날마다 숲이나 물가를 헤집고 다니는 '새 박사'가 아닌 '새 벗'이 있다. 그가 새와 함께 살며 새 속내를 환히 밝히는 생태동화를 쓰고 있는 동화작가 권오준이다. 새를 너무 좋아하는 그에게 '새 박사'라 부를 수도 있지만 '새 박사'는 그에 앞서 윤무부 교수가 있으니, 그에게 맞는 닉네임은 '새 벗'이 훨씬 더 좋지 않겠는가.

 

새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모습을 카메라와 영상에 담는 권오준. 그가 '우리 새 생태동화'라는 덧글이 붙은 동화책을 냈다.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보리)이 그 책이다. 이 책에는 되지빠귀를 꼭짓점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다른 새들 이야기와 사진, 그림, 영상이 새 날갯짓처럼 퍼덕이고 있다. 그 첫 번째 주인공이 분당 영장산에 찾아온 여름철새 되지빠귀다.

 

권오준은 "되지빠귀라는 새는 새끼들 똥을 받아먹는다"고 말한다. 다른 새들 대부분은 천적들이 냄새를 맡고 둥지를 찾아올 수 있기 때문에 새끼들 똥을 부리로 찍어 멀리 갖다 버리지만 이 새는 특이하게도 새끼들 똥이나 알 껍질을 먹어 치운다는 것이다. 그는 "새끼 새들이 눈 똥에는 흡수되지 않은 영양분이 꽤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귀띔했다.

 

하루도 새를 보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

 

"아저씨는 예전부터 새들끼리 어떤 말을 주고받는지 궁금했어. 그래서 되지빠귀를 관찰하면서 울음소리에 귀를 기울였어. 되지빠귀 부부끼리, 부모와 새끼들 사이에 주고받는 말을 조금이나마 알아듣게 된 건 무엇보다 기쁜 일이야. 그렇게 알아낸 새 울음소리들을 이 이야기 속에 담았어." -'머리말' 몇 토막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은 책상에 앉아 머리로만 쓴 그런 동화가 아니다. 동화작가 권오준이 지난 2009년부터 2011년까지 3년에 걸쳐 분당 영장산에서 되지빠귀를 직접 눈으로 보고 살피며 온 몸과 마음으로 쓴 생태통화다. 그래서일까. 이 동화책을 읽으면 그냥 동화가 아니라 마치 영장산 생태사전에 포옥 빠진 듯한 착각이 인다.

 

보리출판사가 기획한 '우리 새 생태동화' 첫째 권으로 나온 이 책은 모두 11꼭지에 부록 4꼭지가 숲에서 살아가는 새들에게 새소리 닮은 휘파람을 불고 있다. '자그마한 웅덩이', '둠벙마을에 온 되지빠귀', '빠지, 빠야, 빠우, 빠미', '비 오는 날', '둠벙 옆을 지나간 것은', '어치가 나타났다', '특별한 먹이', '좁은 둥지를 떠나자', '빠미가 사라졌어', '다시 남쪽나라로' 등이 그것.

 

권오준은 "하루라도 새를 보지 않으면 견딜 수가 없다"고 말한다. 그는 "새와 가까이 지내다보면 재미있는 일들이 너무나 많다"라며 "어미가 알을 품고, 알에서 나온 새끼들에게 열심히 먹이를 주고, 새끼들이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 애쓰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뭉클하다. 새들이 새끼를 사랑하는 마음은 어쩌면 사람보다 더한 것 같다"고 귀띔했다.

 

그는 "새들이 살아가는 숲에서는 슬픈 일도 많이 생긴다. 이따금 천적에게 공격을 당해 죽은 새, 한곳에 수북이 쌓인 깃털을 볼 때가 그러하다"라며 "천적은 둥지에 들어와 알을 훔치고 새끼를 물어가기도 한다. 하지만 작은 동물이 큰 동물에게 잡아먹히는 동물세계에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런 사실을 아이들이 제대로 알아야 자연 생태계를 제대로 알 수 있지 않겠느냐"고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되지빠귀 부부가 새끼들에게 먹이 줄 때 내는 소리는 '꾹'  

 

"'삐비르 삐르비지' / 먹이를 구하러 간 아빠 되지빠귀가 신호를 보냈어요. 엄마 되지빠귀는 먹이를 받으러 둥지밖으로 날아갔어요. / 엄마 되지빠귀는 아빠 되지빠귀에게 받은 지렁이와 애벌레를 잔뜩 물고 와 '퉁!'하고 둥지 턱에 내렸어요. 새끼들은 머리를 흔들어 대며 먼저 먹겠다고 난리였어요. '찌지지지 찌지지지'" -'비 오는 날' 몇 토막

 

권오준은 되지빠귀가 내는 소리에 무슨 뜻이 담겨 있는지 잘 안다. 그가 워낙 새를 좋아하는 '새 벗'이기도 하지만 그 가운데 유독 영장산을 찾아든 되지빠귀란 새에 포옥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새 소리를 듣고 그 새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까닭에 권오준 생태동화가 더욱 소중하지 않겠는가.

 

그는 자신 있게 말한다. 아빠 되지빠귀가 먹이를 잡아 놓고 엄마 되지빠귀를 부르는 소리는 사람처럼 '여보!'가 아니라 '삐비르 삐르비지'다. 되지빠귀 부부가 새끼들에게 먹이를 줄 때 내는 소리는 '꾹'이다. 되지빠귀들이 기분 좋을 때 우는 소리는 '찌르찌르찌르 쪼쪼쪼쪼쪼 찌'다. 되지빠귀 새끼들이 배 고플 때 내는 소리는 '찌지지지 찌지지지'다.

 

권오준은 지난 6월 28일 저녁 때 마포구에 있는 한 음식점에서 "사방이 탁 트인 곳에 사는 물새와 달리 산새는 숲 속에 나무들이 우거져 있어서 관찰하기 쉽지 않다"고 되짚는다. 그는 "새를 찍는 일부 사진가들은 좋은 장면을 얻기 위해 나뭇가지를 일부러 자르고 치우기도 한다"라며 "그렇게 사진을 찍고 떠나면 새 둥지는 천적에게 노출되어 새들에게는 아주 치명적"이라고 우려스런 목소리를 냈다.

 

즉, 권오준 스스로는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나뭇가지를 자르거나 치우지 않고 새와 함께 지내며 관찰하는 방법을 선택한다는 것이다. 그는 "새들이 놀라지 않게 풀숲에 위장막을 치고, 최대한 새들이 생활하는 영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 촬영하고 관찰했다"라며 "위장막 속에서 꼼짝 않고, 무더위와 벌레들과 싸우며 긴 시간을 새와 함께 지냈다"고 추억처럼 되뇌었다.

 

이 동화책 부록에는 '우리 새 관찰하러 갈까', '새를 더 알고 싶어요', '나온 새 알아보기', '이제 영상을 보아요' 등이 둥지를 틀고 있다. 작가가 새 관찰에 뛰어들게 된 까닭과 아이들이 할 수 있는 새 관찰법, '엄마, 아빠 되지빠귀는 왜 새끼들이 눈 똥을 받아먹나요?', '숲 속 새들에게는 또 어떤 천적이 있나요?'를 비롯해 이 동화에 나온 새 15종에 따른 설명과 DVD가 새알처럼 예쁘게 담겨 있다.

 

아이들에게 우리 자연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만드는 생태동화

 

"쉽게 새를 만나고 관찰하는 방법도 있어. 먼저 땅콩을 잘게 부숴 가지고 가까운 공원에 가. 그리고 키 작은 나무들이 우거진 곳을 찾아봐. 햇볕이 잘 드는 곳에 땅콩을 뿌려놓은 다음, 조금 멀찍이 떨어져서 몸을 숨기고 기다려 봐. 아마 곤줄박이나 박새 같은 새들이 날아올 거야. 새들이 먹이를 어떻게 먹는지, 새 걸음걸이는 어떤지, 새는 언제 하늘로 날아가는지 눈여겨보면 이미 새 관찰을 시작한 거야." -부록 '우리 새 관찰하러 갈까?' 몇 토막

 

권오준이 쓴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우리나라에서 사는 나그네새인 되지빠귀를 통해 숲에서 동식물이 어떻게 더불어 살아가는가를 아이들에게 사근사근 속삭이며 자연을 내 몸처럼 사랑하게 만드는 생태동화이다. 특히 영장산에서 직접 찍은 되지빠귀 영상(13분)을 어린이 다큐멘터리로 편집해 DVD에 담고 있어 이 책 한 권이면 되지빠귀와 우리 생태계를 한 눈에 살필 수 있다.  

 

새 전문가 박진영 박사(국립환경과학원 연구관, 한국조류학회 이사)는 "그동안 상상하며 기다리던 생태 동화를 만났다"고 말한다. 그는 "작은 새 되지빠귀를 통해 숲 속에서 동식물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는지 자연스레 알게 된다"라며 "되지빠귀 부부가 새끼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과 네 마리 새끼들이 자라나는 과정을 담은 이 멋진 동화는 우리 아이들이 자연을 더 많이 이해하고 사랑할 수 있게 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라고 평했다.

 

MBC 아나운서 강재형은 "권오준 작가는 뚝심 있는 사람"이라고 못 박는다. 그는 "빠지, 빠야, 빠우, 빠미와 함께 숲 속에서 노닐다 보면 우리 아이들도 마음의 눈과 귀가 활짝 열릴 것"이라며 "꾸준한 관찰을 바탕으로 쓴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은 자연을 잃어버린 우리를 숲으로 이끌어 주는 귀한 책"이라고 되짚었다.

 

동화작가 권오준은 날마다 숲이나 물가에서 새 사진과 영상 다큐멘터리를 찍고 바라본 것을 디딤돌로 삼아 생태동화를 쓰고 있다. <프레시안>에 '권오준의 탐조 이야기'를 연재하고 있으며, 성남 <아름방송>에서 새 생태뉴스를 내보내고 있다. 그는 '영상으로 보는 새 이야기' 강연을 다니며 아이들에게 직접 바라본 새 이야기를 들려주고, 새들이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재미에 흠뻑 빠져 산다.

 

그린이 백남호는 경기도 가평에서 나고 자랐으며 어릴 때부터 자연과 둘도 없는 친구로 지냈다. 지금은 생태 그림을 그리며 자연과 우정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린 책으로는 <달팽이 과학동화-킁킁 무슨 냄새지> <야, 미역 좀 봐!><소금이 온다><파브르 곤충 이야기>가 있다.


둠벙마을 되지빠귀 아이들 (책 + DVD 1장)

권오준 지음, 백남호 그림, 보리(2011)


태그:#권오준, #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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