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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래 전부터 잘 알고 있고 제가 존경하는 분 중 한 분으로 꼽고 있는 분에게 만나자는 연락이 왔습니다. 저는 그 분 부탁이라면 이유없이 들어주는 편입니다. 참 좋은 사람이거든요.

 

몇 해 전엔 미포조선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키 위해 100여 미터 높이 굴뚝에 올라가 크리스마스도 새해도 거기서 맞이 한 일도 있습니다. 이분은 주로 자신의 삶보단 피해보는 다른 사람을 위해 더 열심히 뛰어다니는 분입니다.

 

"변 기자 이 문제 좀 <오마이뉴스>에 올려주면 안 되나?"

 

지금은 진보신당 울산시당 노동위원장직을 맡아보고 있는 그분이 쪽수가 많은 뭔가를 내밀었습니다. 그러면서 말을 이었습니다.

 

"이건 변 기자에게만 주는 자료야. 물론 앞서 기자회견도 하고 방송에도 나왔어. 그땐 이것처럼 자세한 자료는 안 주고 종합된 자료만 주었어. <오마이뉴스>는 대한민국 특산품이랄 정도로 인터넷 언론으론 알아주는 곳이잖아. 이런 내용이 그런 언론에 공개되었으면 좋겠다는 게 내 생각이야. 메일로도 또 다른 자료 보내 줄 터이니 기사로 한 번 작성해 봐. 이거 그냥 보관하기엔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내가 2개월간 밤잠 못 자가며 만든 자료거든."

 

저는 작년인가 미포조선 김석진 노동선배가 요청한 기사글 작성할 때 애먹은 적이 있어서 누군가 요청한 내용에 대해선 덜컥 겁부터 납니다. 어찌 써야 할지 감을 잡을 수 없기 때문이지요. 난감하지만 어쩌겠나요. 잘 아는 노동선배고 제가 참 존경하는 이영도 형님이 해달라는데 쉬운 일 아니겠지만 한 번 해 봐야죠.

 

그분이 준 자료를 보니 첫 장에 취재요청서가 있었습니다.

 

"진보신당울산시당 동구당원협의회는 동구지역 조선 3사(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세광중공업) 사내하청노동자에게 제공되는 임금 등 주요 노동조건 실태를 파악하기 위한 조사활동을 지난 5월부터 6월까지 2개월 간 진행"하였다는 글과 함께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다음 장은 기자회견문이었습니다. '동구 조선 3사 사내하청노동자 주요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 발표'라 되어 있었고 '태일, 박일수 열사의 외침이다.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문 만도 4쪽에 이르며 별첨자료도 28쪽이나 되었습니다. 그분이 얼마나 이번 일로 애를 썼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그분은 저에게 말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비정규직 노동자나 사내하청 노동자에 대해 정확하게 실태조사한 게 하나도 없었어. 그래서 이번 기회에 실태조사를 정확하게 파악 한 번 해보고 싶었지. 대기업 원청업체의 불법행위가 만연한게 눈에 보이는데도 정확한 근거 자료제시가 미흡해서 대응을 제대로 못한 게 사실이잖아. 이번 설문활동 하면서 참 애로가 많았어. 하청 노동자 만나기도 어렵고 아는 사람에게 소개해 달라해도 안해줬어. 또 만났다 해도 자기 신분에 대한 위협을 생각해서 설문작성을 안하려 하는 경우도 많았어. 업체에서 탄압하는 것에 대한 걱정 때문에 대부분 설문조사를 꺼려 하더군. 마침 우리당 구의원이 있어 같이 민방위 교육장 방문해 설문을 받았지. 처음엔 구청 공무원이 강하게 거부해 못했어. 구의원이 의원활동차 필요하다고 말해서 받을 수 있었지. 그렇게 500여 명 받게 된 거야."

 

기자회견문을 보니 이번 실태조사 설문지는 모두 9가지 영역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 첫 번째는 기초사항으로 원하청 회사와 고용형태, 근무시간에 대한 내용이었고, ▲두 번째는 근로계약 체결방식과 형태에 대해 근로계약체결시 제시되는 임금, 노동조건, 근로계약 체결 형태와 근로계약서 교부 여부에 대해 ▲ 세 번째는 임금과 노동시간으로 임금형태와 수준, 노동시간과 노동일수, 휴게시간 침해 여부, 노동시간 및 임금산정 방법에 대한 이해도, 가산수당과 휴업수당.퇴직금 지급에서 법정기준 준수 여부에 대해 ▲ 네 번째는 휴일과 휴가에 대해 ▲ 다섯 번째는 안전화, 피복지급과 사회보험에 대해 ▲ 여섯 번째는 산업재해 및 산업안전보건에 대해 ▲ 일곱 번째는 노동조합과 노사협의회에 대해 ▲ 여덟 번째는 정규직 노조에 대한 평가, 노조미가입 이유, 노조필요성에 대한 평가에 대해 ▲ 아홉 번째는 투표참여와 지지정당에 대한 내용으로 설문지가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기자회견문엔 이번 실태조사에 대해 요약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이번 실태조사 결과 다음과 같이 주요한 특징이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이번 실태조사에 나타난 주요한 특징은?

① 상당수의 노동자들이 입사를 위한 면접 시 근로조건에 관한 상세한 이야기를 듣지도 못하고 있고, 구두로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며, 대부분은 근로계약서를 교부받지 못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하청업체가 노사가 상호 성실히 준수해야 할 기초 규범을 정한 '취업규칙'을 노동자들이 쉬이 볼 수 있는 곳에 게시되지 않는다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② 근로시간 및 임금 산정은 노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일 수 밖에 없음에도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임금 및 근로시간 산정 방식에 대하여 무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업체들이 임금/근로시간을 산정함에 있어 법정 기준을 준수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③ 주휴일(주로 일요일)과 노동절(5/1)은 법정 유급휴일임에도 이를 적용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이 무척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④ 과거와 달리 4대 사회보험 가입율이 매우 높아졌으며, 많은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했지만 대부분 공상 또는 자비로 처리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 되었고, 이를 미루어 짐작하면 조선소 사내하청업체들은 산재사고를 대부분 은폐한다고 봐야 할 것이다.

 

⑤ 사내하청노동자 대부분은 정규직노조를 '매우 이기적인 조직'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 자신들의 권익 실현을 위해서는 노조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만 블랙리스트 운용 등 회사 측의 탄압 정책이 두려워 그것의 실현을 위해 행동할 수는 없다고 답했다. 조선3사 사내하청업체 대부분은 노사 간 갈등 및 고충처리 등의 기능을 갖는 노사협의회조차도 제대로 운영되고 있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⑥ 자기 직업에 대한 불만족도는 만족도에 비해 4배나 높고, 임금은 낮은 반면 일은 힘들고, 게다가 장래성도 없다고 느껴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더 나은 직장을 찾아 떠나고 싶어 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⑦ 회사의 출근방침과 연장근로 및 회식 참여 강요로 공직선거투표에 참여할 수 없었다는 답변 또한 제법 높게 나타났다.

 

이번에 설문조사에 응한 비정규직 노동자는 모두 471명이었습니다.
 
그 중 현대중공업이 385명으로 81.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현대미포조선이 47명으로 10%대, 세광중공업이 10명으로 2.1%로 되어 있었습니다.
 
연령대는 25세 이하가 4명으로 0.8%, 26~30세 76명으 로 16.1%, 31~35세가 354명으로 75.2%대로 가장 많은 인원 분포수를 나타내고 있었습니다. 36~40세가 18명으로 3.8%였고, 41세 이상이 19명으로 4%대로 나타 났습니다.
 
혼인여부도 질문 했는데 미혼자 230명으로 48.8%였고, 기혼자 중에 배우자가 있는 경우가 222명으로 47.1%로 가장 높게 나타났고, 기혼이지만 배우자가 없는 경우가 9명으로 1.9%로 나타났습니다.
 
학력에 대해서도 질문했습니다. 중졸이 4명으로 0.8%였고, 고졸이 196명으로 41.6%로 나타났으며, 대학 중퇴자가 47명으로 10%였습니다. 제가 보고 좀 놀란 것은 대졸 이상자였습니다. 고졸자보다 더 많은 210명으로 44.6%대 였습니다. 고학력자의 현장 노동화 현상이 뚜렸하게 나타나고 있는 대목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취업 할 때 업체로부터 임금과 노동조건에 대해 자세히 설명 들었는지 질문한 결과표입니다. 461명이 응답에 참여했고 그 중 표와 같이 상세히 들었다는 노동자가 36.9%로 나타났고 임금에 대해서만 들은 경우가 32.3%였습니다.
 

휴업기간 임금 지급 방식에 대해 질문한 결과 359명이 응답했고, 그 중 무급 처리된다는 응답자가 74.4%로 가장 많았습니다.
 

 

휴가 사용 여부에 대해 조사한 결과 응답한 노동자는 426명이 응답했고,그 중 50%가 휴가를 사용할 수 있다고 응답했으며,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는 분위기라고 답한 노동자가 33.3%, 사용할 수 없다고 한 경우가 16.7%로 나타났습니다. 왜 사용 할 수 없는지에 대해 질문한 결과 불이익이 있기 때문에 사용을 꺼린다는 노동자가 39.9%로 나타났고 업체 분위기 때문이라고 답한 경우가 41.5%였습니다.
 
이영도님이 2개월 정도 밤잠 못자가며 진행한 설문조사입니다. 여러 지 어려움이 있었음에도 울산 중공업 3사의 사내 하청 노동자에 대한 정확한 실태조사를 벌여온 것입니다. 이영도님은 이 조사결과를 토대로 여러 가지 일을 추진할 것이라고 합니다. 8월경엔 국회에서 토론회도 진행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저도 현대중공업에 몇 개 월 다녀본 적이 있습니다. 원청 노조는 하청 노동자에 대한 복지향상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고 있는 거 같습니다. 지난 10년간 다닌 현대자동차 하청노동자보다 더 힘든 일 하지만 노동조건이나 임금, 후생복지 수준은 더 취약하게 여겨집니다. 이영도님의 작은 노력들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노동착취 구조 속에서 허덕이는 비정규직이나 하청노동자에 대해 기업이나 정부에서 양심의 가책을 조금은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원청에 비해 더 힘든 일 하면서도 더 적은 임금과 복지혜택을 누리며 살고 있을 비정규직과 하청노동자에 대해 처우개선이나 복지향상이 이루어 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더 나아가 불법파견으로 위장도급으로 노동자를 마구 사용하고 있는 상황이 개선 되기를 바랍니다. 결국은 비정규직 없는 공장이나 사내 하도급 없는 공장이 그 해답이 될 것입니다.

태그:#진보신당, #노동위원장, #이영도, #비정규직, #사내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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