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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는 자와 웃을 수밖에 없는 자. 기본권이 저당잡히면 이럴 수밖에 없다.
 웃는 자와 웃을 수밖에 없는 자. 기본권이 저당잡히면 이럴 수밖에 없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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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필자들에게 있어 '구타의 추억'은 '선임에게 조인트를 까였다', '삽자루로 맞았다', '눈 감고 맞는 게 제일 무섭더라' 등의 식으로 표현된다. 이렇게 '폭로' 내지는 '기이한 경험담'의 형태로 터져 나오고 있는 '병영 구타의 추억'들. 이들은 대개 신체에 가해지는 물리적 가혹행위의 영역에 속한다.

분명 병영 내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가 음지에서 가해지고 있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필자는 이 글에서 물리적인 영역 너머에서 행해지는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 한다.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기본권에 대한 유린이 바로 그것.

지난 19일, 국방부는 전 군에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를 하달했다. 수많은 언론이 그간 육군 내에서 통용돼왔던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평을 내리며 좀 더 근본적인 해결책을 주문하기도 했다.

병영생활 행동강령
 병영생활 행동강령
ⓒ 육군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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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육군의 '병영생활 행동강령'은 지난 2003년 선진 병영문화를 좇기 위해 태어났다. 아마 '병영생활 행동강령'은 육군 장병 점호시간 재생 음원 2위(단연 1위는 육군 복무신조)에 선정될 듯한 기세로 육군 장병들의 일상에 나름대로 안착했다. 당시 군인이었던 서아무개(30, 2003년 당시 병장)씨는 "짬밥 안 될 때 당했던 것들을 이제 좀 풀어보려 했는데 완전히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병영생활 행동강령'은 병장들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수준이었다"고 당시 심정을 밝혔다.

하지만 '병영생활 행동강령' 등장 이후 구타 및 가혹행위는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가 음지로, 반면 '나노 테크놀로지 급의 세심함'으로 일상생활의 기본적인 영역에 대한 각종 '통제'를 좀 더 강화시키는 양상으로 '진화'했다.

근무 짜던 인사서무계원의 무서움 "근무로 조져 줄게"

근무를 서고 있는 초병.
 근무를 서고 있는 초병.
ⓒ <육군> 309호(11.0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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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의 본부·군단·사단·연대급 상급부대는 따로 주둔지를 경계하는 보직을 지닌 장병들이 주둔지 경계 작전(근무)을 수행하지만 일반적인 야전부대는 중대 내에 속한 병사들이 직접 주둔지를 경계한다. 1년 365일 24시간 내내 돌아가야 하는 주둔지 경계 작전은 규범상 부대의 행정보급관이 편성하게 돼 있다. 행정보급관은 주둔지 경계 작전 명령서를 작성, 근무 투입 72시간 전에 명령서를 공지해야 한다.

하지만 부대 내의 일반 행정·보급 등의 업무를 총괄하는 행정보급관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라기 마련. 때문에 근무편성 지침을 따로 만들어 놓고 이를 적용해 부대 내 인사서무계원(혹은 작전계원 등 부대 사정마다 다르다)이 근무를 편성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어차피 행정보급관의 결재가 들어가니 편의상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 '편의' 속에서 치졸하고 치밀한 비(非)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가 행해지기도 한다. 여기에서 말 안 듣는 후임, 기분 나쁜 후임들은 그 나노(nano)급 세심함에 그대로 노출된다.

군 복무시절 인사서무계원이었던 필자는 '정말 죽고 싶었던 때'가 있었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군대에 들어왔다는 이유로 인사서무계원이 됐던 필자는 필자와 동갑내기인 사수를 만났다. 필자의 성격에 문제가 있어서 그랬는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사수와 필자와의 관계는 썩 유쾌하지 못했다. 전역을 앞둔 사수에게 인수인계를 받기 위해 낮 근무를 나가지 못했던 필자의 근무시간은 늘상 개인정비(오후 7시부터 8시 반) 때였다.

일반적으로 근무는 근무시간 대의 편성이 편성표 상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순환식 근무체계를 기본으로 한다. 하지만 필자의 사수는 "일도 더럽게 못하는 데다가 이등병인 너 따위가 행정업무 때문에 근무에서 빠지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명했다(당시 그는 분대장이었다. 분대장은 명령이 가능하다).

덕분에 남들이 씻거나 가족에게 전화할 수 있는 개인정비 시간에 필자는 외곽 근무지에서 보낼 수밖에 없었던 것. 약 2주 동안 개인정비를 못한 필자는 말 그대로 '죽고 싶었'다. 근무를 서고 돌아와도 행정업무에 대한 지도 편달을 아끼지 않으며 계속 일하라던 사수. 지도 편달은 야근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취침시간이 되어서야 홀로 화장실에서 씻을 수밖에 없었던 필자는 말 그대로 '길들여야 할 대상'이 된 셈이었다.

시간이 흐르고 필자가 인사서무계원으로서 임무를 수행할 때쯤, 한 분대장이 필자에게 넌지시 부탁을 하곤 했다. "야. 지현아. 요새 ○○○이 좀 설치는 것 같아. 근무로 좀 조져줄 수 있어?"라고.

부탁과 명령은 종이 한 장 차이다. 부탁의 말맛을 띈 이 말에 필자는 그대로 응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근무 편성으로 이어졌다. 이 '조지는' 근무편성은 다음과 같다.

행정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근무 편성. 저런 '조지는' 근무 편성을 사람을 길들이는데 쓰인다
 행정상으로는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는 근무 편성. 저런 '조지는' 근무 편성을 사람을 길들이는데 쓰인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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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근무를 며칠만 돌리면 그 병사는 안색이 바뀐다. 어느 정도 '길들여지면' 하루 정도는 보이지 않는 비번으로 그를 쉬게 해주면 되는 식이다(선임의 부탁으로 이를 행할 수밖에 없었던 필자의 사과를 받아주길 바란다).

집합 때 선임병의 한마디... "내 밑으로 개인정비 하지 마!"

병영 내에서의 집합은 표면적으로 '교육훈련 및 일과 등 중요한 공지사항의 전파'의 의미를 갖고 있지만 병사들 사이의 집합은 '화해와 성토의 시간으로 포장된 연대책임의 시간'으로 인식된다. 현행 '병영생활 행동강령'은 '분대장을 제외한 병 상호 간 지시 및 간섭을 금지 한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표면적 의미의 집합 시간의 전후, 그 막간을 이용해 지시 및 간섭을 행하는 경우도 많다. 소위 시간차 공격이라고나 할까.

"야. 너희 마음의 편지(소원수리) 쓸 때 공용 목욕탕 샤워기를 쓰고 싶다고 했다면서? 아주 그냥 맞먹어라? 샤워기 쓰면 군 생활 끝나나? 미친 거 아니야? 요새 (군기가) 빠져가지고 병장들하고 맞먹을라 그러지?"
"…"
"잘못했으면 대답을 해야 할 거 아냐?"
"…"
"그래, 그럼 뭘 잘못했는지 어디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봐. 개인정비 안 하면 되지 뭘. 씻지 말고 싸지도 마. 알겠어?"

유치하기 짝이 없는 풍경. 이 어이없는 광경이 병영 내의 현실이다. 계급마다 할 수 있는 행위에 대한 통제가 존재하고, 이 선을 누군가가 넘었을 때 돌아오는 것은 연대책임이다. 군 장병들이 일과를 마치고 유일하게 씻고 쉴 수 있는 시간에 기본적인 권리를 통제당한 채 가만히 앉아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위와 같은 상황에서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저렇게 병장이 화를 내고 나가면 집합해 있던 무리 중의 최고참이 '내리 갈굼'을 터트려 준다.

개인정비 22분 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달려가서 씻는 것 뿐.
 개인정비 22분 전.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달려가서 씻는 것 뿐.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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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기억으로 위와 같은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개인정비 종료 약 30~40분 전에 병장들이 생활관에 들어와서 "야! 개인정비 해!"라고 통제를 풀어주는 경우가 다반사였다(이 사이에 병장들은 PX, 노래방 등을 쏘다니며 개인정비에 열을 올린다).

그나마 개인정비 통제 정도는 다행스러운 일이다. 필자와 함께 군 생활을 했던 김아무개(25)씨는 "이등병 때는 분과 선임이 취침 시간에 너무 괴롭혀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며 "잠들만 하면 볼을 꼬집고, 목을 깨무는 등의 행위를 해 자살 충동이 일기도 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군 생활 중 작은 잘못 역시 넘어가지 않는 병영 내 나노 테크놀로지급 세심함은 기본권의 제한이라는 그릇된 형태로 드러난다. 이러한 기본권의 제한은 군화발로 밟지만 않았지 폭력성은 그대로, 아니 그 이상일 수 있다.

마음의 편지에 올라온 한 줄의 문장... '저희도 다리 벌리고 앉고 싶습니다'

비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의 전공이 '기본권 유린'이라면 부전공은 다름 아닌 '생활 습관의 통제'라고 할 수 있다. 소위 내무 생활이 빡센 곳이라고 한다는 곳들은 되레 '생활 습관의 통제'가 강화돼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집합 시 침상에 앉는 자세의 통제가 대표적이다. 이등병들은 경직된 자세로 앉아야 하지만, 병장들은 얼마든지 편하게 앉을 수 있다. 뿐만 아니다. 자는 자세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이등병이 다리를 꼬아 놓고 잔다든지, 팔을 괴고 자는 행위 등은 상상하기 힘들었다. 통제를 어기면 어떻게 될까. 별거 없다. 개인정비 시간 때 '집합'으로 이어진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등병부터 병장의 앉는 자세. 발끝과 무릎은 딱 붙이고, 허리는 곧게 펴야 한다. 병장은 말 그대로 자유형이다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이등병부터 병장의 앉는 자세. 발끝과 무릎은 딱 붙이고, 허리는 곧게 펴야 한다. 병장은 말 그대로 자유형이다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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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병장 계급장을 달고 있을 때, 한 용기 있는 이등병이 '마음의 편지'에 한 줄을 적어 부대가 발칵 뒤집힌 적이 있었다. 그 이등병은 대단한 폭로를 한 것이 아니었다. 단 한 줄. '저희도 다리 벌리고 앉고 싶습니다'였다. 이후 중대장은 부대 내의 앉는 자세에 대한 자체 조사를 벌였고 이 통제는 더 이상 발효되지 않았다. 하지만 수년 간 쌓여온 악습이 하루아침에 바뀌지는 않는다. 당시 이등병들은 눈치를 봐 가며 다리를 벌렸다 오므렸다를 반복했다.

앵무새 같은 답변만 늘어놓을 게 아니라 '인식의 전환'이 시급

지난 19일 국방부는 전 군에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를 하달했다. 하지만 육군의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지난 19일 국방부는 전 군에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를 하달했다. 하지만 육군의 '병영생활 행동강령'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 YT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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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영 내의 사건 사고가 터질 때 마다 국방부의 대답은 언제나 그랬듯이 '군 장병 인권 강화, 선진 병영 문화 확립'이었다. 국방부의 앵무새 같은 대답이 있고 나면 예하 부대는 대개 부대정밀진단 같은 프로그램을 가동시켜 병영 내 악습을 철폐하려는 시도를 해왔다. 현재 직업군인인 차아무개(29)씨는 "해병대 사건 이후에 우리 부대에서도 부대정밀진단 같은 것을 했다"며 "그래도 요새는 병사들이 진솔하게 부대정밀진단에 임해 사건 사고가 많이 줄어든 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병영 내 사고의 원인 중의 하나로 비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가 끊임없이 지적되고 있어 그 실효성에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예비역 2년차인 박진성(25, 가명)씨는 "병영 내 악습은 군 간부들부터 솔선수범해야 없어질 것"이라며 "장교들은 좀 덜하지만 부사관 내부의 악습은 병사들의 그것과 크게 다를 바 없다"고 지적했다.

그뿐 아니다. 병사들, 특히 상병·병장 같은 선임병의 의식 역시 바뀌어야 한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남성호(25, 가명)씨는 "'가혹행위를 하는 것은 군기 확립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는 생각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이라며 "그러한 인식이나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비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의 근절 역시 선진 병영 문화의 핵심 과제다.
 비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의 근절 역시 선진 병영 문화의 핵심 과제다.
ⓒ 김지현 / i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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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인식의 전환'의 일환으로 육군 산하 각 사단에는 장병인권보호센터 따위의 부처를 두고 있다. 하지만 소수의 간부·병사로 구성된 이런 부처가 수천 명에 달하는 한 개 사단의 장병 인권 보호에 앞장 설 수 없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필자는 훈련소 시절 때만 장병인권보호센터가 제작한 동영상을 봤을 뿐, 자대배치 이후부터 전역까지 이들의 활동을 직접적으로 본 적이 없다. 물론 국군방송에서 각종 정신교육을 통해 인권보호에 대해 접할 수 있으나 원론적인 이야기에서 그칠 뿐 병사들의 인식을 전환 시킬 만큼의 효과는 없었다.

비 물리적 구타 및 가혹행위는 군기 확립이라는 이름으로 병사들의 생활 곳곳에 나노 테크놀로지 급으로 파고드는데, 정작 한다는 인권보호 활동은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대중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이야기다.

혹자들은 '군인이 무슨 인권을 운운하느냐. 신성한 국방의 의무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버텨야 한다'며 어쩔 수 없는 일로 치부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그들이 말하는 '신성한' 의무를 수행하는 사람 역시 '신성하기 때문에 당연히 기본권 등 인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보여진다.

국방부가 전 군에 '병영생활 행동강령 지시'를 하달하며 구타 및 가혹행위에 법적 구속력을 행사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변형되고 있는 구타 및 가혹행위에 대한 전 군 장병들의 인식의 전환이 아닐까. 법적 구속력 적용의 여부는 그 다음 문제로 보여진다.

덧붙이는 글 | '병영 구타의 추억' 공모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육군을 기준으로 작성됐음을 밝힙니다. 하여, 해·공군의 실정과는 올곧이 들어맞지 않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태그:#병영구타, #가혹행위, #인권, #기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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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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