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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 : 강유진·문해인·손형안·윤성원·이주영 인턴기자

21일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목요일 오후, <오마이뉴스> 14기 인턴기자들은 서울역을 찾았다. 오는 8월 1일부터 코레일이 서울역사 내 노숙자들을 모두 퇴거시키기로 결정해 논란인 요즘, 직접 노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기 위해서다.

평소에 지나칠 때에는 인식하지 못했는데, 눈을 크게 뜨고 둘러보니 서울역 광장에 노숙자들이 정말 많았다. 대부분 그늘에 박스종이를 깔고 누워 있거나 삼삼오오 모여 막걸리나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8월 1일 서울역사 내 퇴거... 노숙자들은 알고 있나

'구 서울역사 원형복원 및 문화공간화 사업'으로 서울역 노숙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들마저도 공사가 끝나는 오는 8월 1일이면 서울역에서 퇴출당한다.
 '구 서울역사 원형복원 및 문화공간화 사업'으로 서울역 노숙자들의 수가 급격히 줄었다. 그들마저도 공사가 끝나는 오는 8월 1일이면 서울역에서 퇴출당한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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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노숙자들이 8월 1일부터 서울역에서 지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지부터 물었다. 노숙자들 대부분은 노숙자들 사이에 돌아다니는 이야기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구체적으로 통보받은 바는 없다고 했다.

계단에 큰 배낭을 옆에 두고 혼자 앉아 있던 노숙자 A씨는 "오늘 아침 (다른 노숙자들에게서)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추방할 거라는 이야기만 들었다"고 말했다. 노숙자 강진석씨도 "그런 말은 노숙자 사이에서도 들리지만 자세한 사항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코레일 측은 지난 20일, 7월 말까지 자진해서 나가도록 계도하겠다고 발표했지만 현장의 분위기는 달랐다. 서울역이 '집'인 노숙자들에게 '서울역 퇴출'은 곧 살던 집을 떠나라는 소리인데, 퇴출 10여 일을 앞두고도 변변한 통보 한 번 없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퇴출 사실을 알리는 종이라도 붙지 않았냐?'는 물음에 A씨는 "종이에 써 붙여 놓으면 정신 말짱한 사람들이 술 한 잔 안한 날이면 읽어보겠죠, 뭐"라고 답했다.

이에 대해 유지만 코레일 언론홍보처 차장은 22일 기자와 한 통화에서 "노숙자들이 서울역을 이용하는 고객들에게 구걸과 폭언, 협박을 일삼아 그동안 고객 민원이 많았다"며 "서울역을 이용하는 고객이 하루에만 30만 명이고 그중 국내외 여행객이 10만 명이다, 이 사람들이 서울역 노숙자들 보면 서울 이미지가 어떻겠냐, 이런 고민 끝에 이번에 서울역장이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유 차장은 "지난 11일부터 서울역 안에서 자는 노숙자들에게 '퇴거'에 대해 개별통보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노숙자들은 '서울역 퇴출'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10년 전쯤 서울역에서 10여 년간 노숙을 했지만 지금은 '성도 이름도 모르는' 한 목사의 도움을 얻어 근처에 쪽방을 얻어 지내고 있다는 노숙자 B씨를 만났다.

그는 "8월 1일부터 여기서 싸움하고 술 먹고 자고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그러면 잡아간다고는 들었다"면서 "역사에서 무조건 노숙자들을 몰아내는 것이 대책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 역(서울역)만 이러는 게 아니라 다른 역에서도 사람들이 있잖아. 이게 한두 명이 아니라 수천 명인데 이 노숙자를 어떻게 다 정부에서 관리하겠어. 몰아내면 여기저기로 떠다니면서 그 시간 동안 집에 안가고 시간 넘어가면 다시 돌아와서 술 먹고 그러는 거지."

노숙자들의 이런 반응에 대해 유지만 차장은 "노숙자 대책에 대해 서울시 자활지원센터 등과 계속 협의해왔다"며 "현재 알코올중독 치료 프로그램과 지역쉼터, 상담 센터를 연계하는 프로그램 등을 준비하고 있다, 무방비상태로 노숙자들을 내모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변했다.

"쉼터? 들어갈 것 같았으면 진작에 들어갔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을 청하는 한 노숙자를 코레일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깨우고 있다.
 서울역 광장에서 잠을 청하는 한 노숙자를 코레일 직원들이 번갈아가며 깨우고 있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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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언급했듯, 서울시가 서울역에서 쫓겨난 노숙자들을 인근 쉼터로 유도해 재활하도록 지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쉼터를 바라보는 노숙자들의 시선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다니던 회사의 부도로 노숙을 한 지 1년이 됐다는, 그나마 다른 노숙자들에 비해 비교적 깨끗한 옷차림으로 노숙자들 무리에서 떨어진 곳에서 혼자 쉬고 있던 노숙자 C씨는 "쉼터가 편하다고는 들었지만 갈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쉼터가 '편한데' 왜 들어갈 생각이 없다고 하는지 의아해하던 차에, 지나가던 노숙자 D씨가 대화에 끼어 대답을 이었다.

"(쉼터에서) 가족도 아닌 사람들하고 어떻게 같이 사냐. 서울 사람, 부산 사람, 오만 사람 다 있는데. (인턴기자들을 가리키며) 당신들도 남의 집에서 못 자잖아. 잠은 자기 집에서 자야지. 우리도 똑같아."

어제부터 먹은 것이라고는 손에 들고 있는 냉커피 한 잔이 전부라던 D씨는 "복지국가라면서 없는 사람들한테 주는 건 화장실에 있는 휴지밖에 없다"고 중얼거리며 자리를 떴다.

노숙자 A씨도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 몸이 많이 불편한 이들도 있고 움직여서 일을 할 수 있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이 분리가 안 되고 같이 섞여서 활동하면서 이해관계가 맞을런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숙자들은 적당한 공간만 주어지면 별 불만 없이 생활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들도 낯선 공간과 사람들에 대한 어색함과 두려움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서울역 인근 노숙자들은 8월 이후의 행보를 함께 결정할 계획인 것 같았다.

앞서 만난 노숙자 강씨는 "노숙자들은 개별로 움직이기도 하지만 단체로 움직이기도 한다"며 "8월 이후 서울역에서 나가는 것도 노숙자 내 그룹에서 이야기가 나올 테니 물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쉼터에서 노숙자들을 거절할 것"

잠은 본인 집에서 자지만, 자는 시간을 빼곤 서울역 근처에서 하루를 보낸다는 김아무개(49)씨는 "그 사람들(노숙자들)은 쉼터에 가라고 해도 안 간다"며 "답답하다"고 말했다.

"쉼터엔 통금시간이 있어. 오후 6시까지 들어가야 해. 그때 못 들어가면 쉼터에 전화해 놓고 다음날 오전 9시까지 들어가는 거야. 그게 노숙이랑 다를 게 뭐있어. 그리고 남자 노숙인들은 쉼터를 싫어해. 남자들은 술을 좋아하는데 쉼터에서는 술을 못 마시게 하니까. 남자들 입장에선 자유가 없는 거지."

서울역 근처에 위치해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 있는 기독교긴급구호센터 사랑의 등대의 강 부목사도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자들에게 하루 2번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기독교긴급구호센터 사랑의 등대.
 서울역 근처에서 노숙자들에게 하루 2번 무료급식을 제공하는 기독교긴급구호센터 사랑의 등대.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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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터에 보내도 사람들은 쉼터에 잘 안 들어갑니다. 아무래도 쉼터에 들어가면 자기 지금까지 살아 왔던 삶의 방식과 다르니까. 술도 못 마시게 하고. 구속받기 싫어서 집에서 나온 분들인데 여기 말고 다른 데 가서 생활했으면 했지 쉼터에는 안 들어갈 거예요. 들어갈 것 같았으면 벌써 들어갔지. 여기 교회에서 같이 생활하자고 해도 안 옵니다. 오더라도 한 두 달 생활하다가 나가고. 노숙하는 사람들은 밖에서 지내는 생활에 젖어 있는 거지요."

사랑의 등대의 다른 직원 E씨는 "쉼터 쪽에서 안 받아주지. 술 먹고 깽판 부리는데 같이 지낼 수가 없지않나"라며 "오히려 쉼터 쪽에서 노숙자들을 거절할 것"이라는 의견을 냈다.

반면 노숙자들을 쉼터로 이전시키는 것을 찬성하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역 광장에 있던 여성 노숙자 F씨는 옆에 앉아 있던 다른 노숙자가 쉼터 이전 계획을 모르자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교회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교회에 들어가고 쉼터에 들어가고 싶은 사람들은 쉼터에 들어가고. 젊은 사람들 여기 있지 말고 일 다니라고 나라에서 시키는 거 아니야. 여기(서울역)에서는 주민등록하고 본적 같이 자기가 사는 곳이 명확하면 그냥 냅두고 주거지가 명확하지 않으면 쫓아낸대. 왔다갔다하는 사람들 싸우고 욕하니까. 밤이면 싸우고 그런단 말이야. 8월에 몰아내면 다 어디 들어가겠지, 파출소 옆에 센터 있잖아. 거기서 설문조사 적어갔으니까 어딘가 들어가겠지."

실제로 인턴기자들이 서울역을 떠날 무렵인 늦은 저녁 노숙자 쉼터에서 나온 것처럼 보이는 직원들이 서류를 들고 노숙자들과 얘기하며 쉼터로 옮길 것을 설득하는 듯했다. 하지만 대부분 노숙자들은 시큰둥한 눈치였다.

서울역에서 쫓겨나도 영등포역으로 옮겨 똑같은 생활 반복

서울역 근처에서도 이처럼 도로 한복판의 잔디밭 위에서 노숙자들이 쉬고 있었다.
 서울역 근처에서도 이처럼 도로 한복판의 잔디밭 위에서 노숙자들이 쉬고 있었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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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숙자 대부분이 쉼터 이전에 부정적인 이상, 8월부터 서울역에서 노숙자들을 퇴출할 경우 인근 공원 등이나 영등포역 같은 다른 역사로 노숙자들이 몰릴 가능성이 높다. 이와 관련 노숙자들의 걱정은 없는지 궁금해졌다.

기독교긴급구호센터 희망의 등대 직원 E씨는 "역사에서 내보낸다고 해도 주변에 공원도 많고 하니까 지금은 큰 문제가 없다"면서도 "하지만 추운 겨울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주위를 둘러보니 서울역 주변에는 잔디밭 위에서 쉬고 있는 노숙자들도 많았다. 하지만 차가 쌩쌩 지나다니는 도로 한복판의 잔디밭은 매연과 소음뿐 아니라 지나다니는 차들에 노숙자들이 치일 수 있어 위험해 보였다.

가까운 영등포역으로 옮기는 건 어떻게 생각할까 물었다. 이와 관련해 노숙자들은 다양한 의견을 보였다. 영등포역에서도 노숙생활을 했던 A씨는 부정적이지 않았다.

"그리로 갈까도 생각 중이다. 영등포 계시는 분들도 여기 오시고 여기 있던 분들도 내려가시고 해서 서로 다 안다. 나도 2년의 노숙생활을 영등포에서부터 시작했다. 가끔 술 한 잔 씩 드시고 옥신각신하기도 하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 대화 나누고 그렇다."

반면 다른 노숙인들은 "영등포는 구타가 심하다고 들었다"면서 걱정스런 눈치였다. 지역 텃새 때문에 다른 곳으로 거처를 옮기는 것도 그들에게는 고민거리인 듯했다.

노숙자들의 하루 끼니 책임지는 무료급식소에 정부지원 없어

서울역 공사로 임시로 세워진 철벽 위의 낙서가 눈에 띤다.
▲ "노가다 십 년에 남는 건 간경화와 골병 뿐" 서울역 공사로 임시로 세워진 철벽 위의 낙서가 눈에 띤다.
ⓒ 문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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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노숙자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성 노숙자 F씨는 의외로 소박한 답변을 내놓았다.

"여기는 제일 중요한 거는 옷하고 신발하고, 밥 같은 것들. 먹을 데가 없으니까. 일주일마다 한 번씩 밥을 주는데 (그거로는 부족하지)..."

기독교긴급구호센터 희망의 등대는 정부의 지원금 없이 후원금만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강 부목사에 따르면 가장 질이 낮은 야채를 대량으로 구입해 식사를 꾸려도 매일 오는 500여 명의 노숙자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기에는 후원금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강씨의 말처럼 "너무 맛이 없지만" 그래도 노숙자들에게는 하루를 버티게 해 주는 힘인데, 정부에서는 왜 나 몰라라 하는지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다.

한편 서울역 노숙자들 중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반노숙자들,' 즉 생활보호대상자로 지정돼 국가에서 보조를 받으면서 근처 쪽방에서 지내지만 주로 서울역에서 하루를 보내는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있었다.

"수급자들에게도 자유는 없어. 집에서 놀고 먹고 자면 정부에서 돈을 주지만 리어카 끌고 이러면 (돈을 벌면) 수급에서 짤려. 정부에서 돈을 주는데 왜 일을 하느냐 그러기 때문에 수급자는 어디 노가다도 못 다니고 리어카도 못 끌고 그래. 뭐 없는 사람이 수급자 되면 좋지. 그런데 조금 골치가 아파. 어지간하면 수급 안 받고 벌어 먹는 게 좋아."(B씨)

직접 노숙자들을 만나 보니 단순히 이들을 서울역에서 쉼터로 이전시킨다는 계획은 짧은 생각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많은 노숙자들이 배를 채우는 것보다도 담배와 술에 중독돼 스스로를 자제하지 못하는 위태로운 모습을 보였다. 그나마 뙤약볕을 피해 서울역 그늘에 누워 잠을 청하는 노숙자들은 지나다니는 미관상 안 좋다는 이유로 쉴 새 없이 깨워서 내보내는 코레일 직원들의 성화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있었다.

코레일 쪽은 8월 1일부터 코레일 직원과 철도사법 경찰관을 동원해 노숙자들을 강제로 몰아낼 예정이라고 밝혔다. 승객들에게 일부 노숙자들이 행패를 부리고 구걸을 해 승객들의 항의가 자주 들어오고 주변 상인들도 피해를 호소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보는 눈이 많은 서울역에서 이들을 몰아낸다고 해도 이들의 위태로운 생활은 다른 곳에서 되풀이될 것 같다. '요즘 같이 더운 날 어떻게 생활하냐'는 물음에 노숙자 강씨는 이렇게 대꾸했다.

"그래도 갈 곳은 (서울)역이야."

덧붙이는 글 | 문해인, 강유진, 이주영, 손형안, 윤성원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서울역 노숙자 강제 퇴거, #문화역 서울284, #서울역 리모델링, #문화체육관광부, #오마이뉴스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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