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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있었던 교사·공무원 정치활동 혐의 관련 1차 재판에서 검찰은 호언장담과는 달리 단 한 명의 당원도 증명하지 못해 국민 앞에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했다. 그러나 검찰은 반성과 사죄는커녕 대상자를 1900명으로 확대하여 수사를 진행했고 서울 244명, 충북 68명을 필두로 이들 전원을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검찰은 "헌법 이념인 '교육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확보를 위해 기소"가 원칙임을 밝히며 수차례 교사와 공무원은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것이 헌법에 규정된 의무라고 강조하고 있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한 이 주장은 '정치적 중립성의 허구'라는 치명적인 허점을 가지고 있다. 이를 방송과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과 한번 비교해 보자.

 

'방송·언론의 정치적 중립' 요구하면서 기자는 정당가입 가능

 

방송과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 특히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부정하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특히 KBS, MBC와 같은 공영방송의 경우에는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훨씬 더 많이 요구된다고 보인다. 그러나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된다는 엄연한 진실에도 불구하고 언론사 기자나 편집인, 더 나아가 경영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정당법 조항 또는 정치후원금을 금지하는 정치자금법 조항은 없다.

 

다만 공직선거법 제8조(언론기관의 공정보도의무), 제96조(허위논평 ·보도의 금지), 방송법 제6조(방송의 공정성과 공익성) 등에서 선거나 정당 등 정치 관련 보도를 할 때 중립성과 공정성을 지켜야 한다는 조항만 두고 있을 뿐이다.

 

왜 방송이나 신문 등 언론에게 정치적 중립성을 요구하면서 기자나 편집자, PD 등의 정당 가입과 정치자금 후원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을까? 그러나 이는 모순이 아니다.

 

실제로 1993년 이전 정당법과 정당법 시행령에는 정치적 중립성 보장을 위하여 기자나 PD, 편집장, 방송·신문사 경영인 등 언론인들의 정당 가입이나 후원회 가입 등 정치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 참고) 1993년 이전 정당법의 언론인 정당 가입 금지 조항

정당법 제17조 (당원의 자격) 국회의원선거권이 있는 자는 공무원 기타 그 신분을 이유로 정당가입 기타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다른 법령의 규정에 불구하고 누구든지 정당의 당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공무원·교원 및 언론인은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조항에 따라 KBS, MBC 등 방송사뿐 아니라 <조선일보><동아일보><중앙일보> 등 모든 신문사의 기자, PD, 편집자, 제작자, 사장 등은 정당 가입이나 활동이 금지되어 있었다. 그러나 1993년 현 한나라당의 전신인 집권 민자당(한나라당의 전신)과 청와대는 "언론인의 정당 가입 제한은 국민기본권인 참정권의 제한이며, 정당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언론인의 정당가입 문호는 개방돼야 한다는 논리"를 펴며 개정안을 내놓았다.

 

당시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하면 언론 논지에 당파성이 생기고, 결국 언론과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될 것이라는 이유로 이를 반대하며 시기 상조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여당은 이를 밀어붙였다. 당시 이를 보도한 <동아일보>(1993년 10월 9일) 기사에서 밝힌 청와대와 민자당 관계자들의 주장은 이러했다.

 

"문제의 언론인 정당 가입 불허 조항은 과거 군사 독재시절 언론인의 야성(野性)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조항으로 문민시대에는 맞지 않을 뿐만 아니라 불필요한 참정권 제한이다."

 

"사실 그동안 우리나라 정당의 당원들은 주로 할 일 없는 '실업자' 중심으로 채워져 결과적으로 정치 자체의 질을 저하시켜온 측면이 있었다. 정당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도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

 

"정당 가입 허용이 언론 논지에 미치는 영향과 관련, 언론인의 정당가입 허용과 언론논지는 별개의 것으로 논지의 당파성 여부는 언론사 스스로가 해결해야 할 문제이다."

 

이들의 주장은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과 기자 개인이 정당에 가입하는 것은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이며, 언론사의 정치적 당파성은 언론사 각자가 해결해야 할 일이지 국가가 언론인들이 개인적으로 하는 정치활동까지 법으로 금지하는 것은 국민의 헌법적 기본권인 참정권 침해라는 것이다. 구구절절 정당한 주장으로 보인다. 우스운 것은 정당의 질을 높이기 위해서 지식인에 속하는 언론인들이 정당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앞서 나온 주장에서 '언론'을 '교육'으로 말만 바꾸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과 교사의 정치활동의 관계에도 완벽히 성립되는 논리다.

 

최근 4대강 보도나 광우병 소고기 수입 등의 문제에서 종종 언론 보도들의 정치적 중립성 시비가 발생하기도 했지만 이는 해당 기자나 언론사가 정당에 가입하거나 정치 후원금을 내느냐 하는 문제와는 전혀 상관없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언론인의 정당 가입과 정치 후원이 허용되었지만 이것 때문에 방송과 언론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되었다는 자료는 없다.

 

일부 언론사에서 법률과는 상관없이 내부 윤리강령으로 정당 가입을 제한하기도 하지만 어디까지나 그 언론사 내부의 일이며, 이를 이유로 형사 처벌같은 것은 꿈도 못 꾸고, 이를 확인할 방법도 없고, 하려고 하지도 않는다.

 

언론-교육의 똑같은 '정치적 중립 요구'... 정당 가입은 왜 차별?

 

교사·공무원의 정당 가입 허용이 논의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1993년 YS 문민정부에서 언론인의 정당 가입이 허용된 후 1998년 DJ 국민의 정부에서는 교사와 공무원의 정당 가입 허용이 추진되었다. 당시 언론 보도 등을 종합해 보면, 여당인 새정치국민회의와 자민련(소위 DJP 연합 정권)은 교사와 공무원의 개인적 정당 가입을 허용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교육과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훼손 우려에 대해서 "공무수행 장소가 정치 활동의 장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근무시간과 근무 장소에서는 개인적, 집단적 정치활동 모두를 금지시키고, 공무 외에 하도록" 하는 제한을 마련했다. 또한, 군인과 경찰, 소방직 등 특수공무원에 대해서는 정당 가입을 제한하도록 했다. DJ정부는 1998년과 1999년 계속 이런 방향을 추진하였으나 야당의 반대 등으로 결국 법 개정을 이루지 못했다.

 

그리고는 10년의 세월이 훨씬 더 지났다. 언론사 기자나 PD들은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지만 교사나 공무원의 정치적 권리는 한 걸음도 나가지 못하고 있다. 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이 법적 의무 사항이지만 방송사 기자나 PD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는 법률 조항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공적인 지위에서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요구된다 하더라도 이를 이유로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을 금지할 필요는 없다는 논리가 성립한다.

 

언론사 개별적으로 정당 가입이나 정치활동을 제약하는 것은 그 언론사의 개별적 문제이지 법률로 금지할 일이 아니다. 교사 역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일방적으로 정당 또는 정치인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것은 안 되지만 종교 활동처럼 학교 밖에서, 개인적으로 정당을 지지하는 것을 금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20년 전 그들의 전신인 민자당이 "언론보도의 중립성과 개인의 정당 가입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정당의 질을 높이고, 국민의 참정권을 보장하기 위해서 언론인의 정당 가입을 허용해야 한다"고 한 주장을 현재의 한나라당은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활동과 관련하여 곰곰이 되새겨 볼 일이다.

 

교사와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강하게 비판하는 한나라당에 교장을 비롯한 수십 명의 교원들로부터 수십, 수백만 원의 정치후원금을 받은 의원들이 있고, 책임당원만 할 수 있고, 당원 가입서와 당비를 내야만 할 수 있는 국회의원 공천 신청을 한 교장, 교육장, 교사를 가진 정당이 한나라당이란 점은 참으로 아이러니 하지 않을 수 없다.


태그:#교사 공무원, #정당가입, #한나라당,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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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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