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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름다운 곳을 파괴해 군사기지 짓다니..."

 

제주 강정마을에 건설되는 해군기지에 대해 우려를 품은 독일인 루츠 드레스체르(한국명 도여수) 목사가 23일 오전에 해군기지 현장을 찾아 평화운동을 하는 이들과 마음을 나눴다. 그는 87년에서 95년까지는 독일서남지구선교회 소속 선교사로 한국에 파견되어 근무하면서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독일로 귀국한 이후, 독일 서남지구선교회 국장을 맡아 해외 인권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

 

70~80년대에 독일서남지구선교회는 세계교회단체협의회(WCC)와 연계해 취약한 한국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신장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그는 "한국 사람보다도 한국을 더 사랑한다"고 했다. 오랜 한국생활 경험 때문인지 그는 한국말을 유창하게 했다.

 

"70~80년대 한국의 민주주의는 대단히 어려운 상황에 있었습니다. 언론도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그때 우리 단체(독일서남지구선교회)는 한국의 현실을 담은 자료들을 수집해서 일본의 언론을 통해 세계에 알려지도록 노력했습니다. 또, 국제엠네스티에 한국의 인권상황을 알려서 양심수 구명에 나서도록 요구하기도 했고,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 활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도여수 목사가 강정마을을 찾게 된 건 강정마을에서 공사가 진행되는 상황에서 주민들의 인권이 억압당하고 있고, 환경이 파괴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 공사로 인해 남북한 사이에 긴장이 더욱 고조될 것이라는 우려가 국제평화활동가 사이에 공유되고 있기 때문이다.

 

도여수 목사는 현장을 방문해서 해군기지 공사로 발생하는 문제를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평화운동을 펼치는 이들과도 직접 대화해서 그들의 의지와 뜻을 확인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강동균 마을회장, 문정현 신부, 송영섭 목사, 홍기룡 범대위 집행위원장, 한국기독교 교회협의회 이훈삼 국장 등이 급하게 강정마을 해안에 모였다. 멀리서 오신 손님 덕에 예정에 없던 간담회가 열렸다.  

 

도여수 목사는 80년대 한국에서 선교사 생활을 하면서 제주 4.3사건에 대해 들었다고 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4.3이 금기사항이라 사건의 내막을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제주 4.3사건이 일어날 당시에 제주 사람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다는 사실은 알았다고 했다. 그래서 제주의 평화를 위해서도 많은 기도를 했다고 했다.

 

"2006년 제주가 평화의 섬으로 지정되는 것을 보면서 참 잘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해군기지와 평화의 섬은 잘 맞는 일이 아닙니다. 해군기지 건설에 들어가는 엄청난 돈을 평화사업에 써야 합니다. 강정마을은 생태적으로 특별한 아름다움이 있는 곳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봐도 이렇게 아름다운 곳인데 이곳을 파괴해서 군사기지를 짓는 것은 안 될 일입니다."

 

"독일에선 심각하게 논쟁하되 결정되면 악수하고 헤어져"

 

 

 

강동균 마을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도여수 목사는 2007년 이후로 4년간 투쟁을 이끌어 왔는데, 그 힘의 원천이 어디에서 나오는 거냐고 물었다. 강동균 회장은 이에 대해 "살기 위해서"라고 답했다.

 

"강정마을에 해군기지가 들어오면 정말 못 살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제주사람들이 강정이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라 하여 특별히 '일강정'이라고 불렀습니다. 조상들이 빌려준 소중한 삶의 터전을 잘 지키고, 후손들에게 남겨줄 의무가 있다고 봅니다. 그런데 정부가 국책사업이란 미명하에 해군기지를 지으면서 주민들을 치유 불가능한 갈등상황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도여수 목사는 강정마을 주민들 사이에 찬성과 반대 의견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후 주민 간 갈등이 불거질 수 밖에 없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사는 곳에도 지하철 공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주민들 사이에 갈등이 있고, 서로 (뜻이 맞는 사람끼리) 모여 데모도 합니다. 그런데 한국과 다른 점은 대형 프로젝트를 추진할 때 주민들을 참여시켜서 협상하고 서로 심각하게 토론을 거친 후에라야 사업을 진행한다는 겁니다. 의견을 달리하는 주민들끼리라도 처음에는 심각하게 논쟁하더라고 일단 사업이 결정되면 서로 악수하고 헤어지기 때문에 더 이상 갈등이 남지 않습니다. 강정마을에서 찬성 측과 반대 측 주민 사이에 갈등이 매우 크다고 들었는데, 이는 정부가 사업을 추진하면서 주민들과 진지하게 협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배석한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국 이훈삼 국장이 "주민들 많이 지쳐있지 않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강동균 마을회장은 "투쟁을 시작한 지 약 1500일이 넘었다. 솔직히 많이 힘들다"고 답했다.

 

"해군기지 공사 반대와 관련하여 현재 공권력의 수많은 압력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주민 40여 명이 이미 1인당 50만 원에서 500만 원까지 벌금을 부과 받았고 앞으로도 계류 중에 있는 주민이 100여 명에 이릅니다. 신용인 변호사(제주대 교수)와 민변에서 법률지원을 해주고 있어서 힘이 되기는 하지만, 주민들은 촌사람들이라 경찰에서 출두하라고 요구하면 겁부터 나는 게 사실입니다."

 

강정마을회를 위해 법률 지원을 하고 있는 신용인 변호사는 법정투쟁에서 승소하지 못하고, 공권력으로부터 주민들을 보호하지 못해 최성희·송강호·고권일씨 등이 구속된 점을 거론하며 "매우 죄송하고 마음이 아프다," "정부가 공권력으로 사업을 밀어붙이려고 하는 태도를 보면 우려가 된다"고 말했다.

 

"최근 조현오 경찰청장이 제주를 방문해 강제 진압을 시사하는 발언과 제스처를 보였습니다. 비슷한 시기 <조선일보>는 특집기사를 실어 강정해안에 '종북좌파'가 집결했다고 보도했고요, 국방장관은 해군기지가 다수가 찬성하는 사업인 것처럼 발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현직 제주지사는 공히 이 해군기지를 찬성하는 입장이고요, 제주출신 국회의원 3명의 입장도 매우 모호합니다. 전 이런 데서 정부가 제주도민들의 의중과 현지 상황을 잘못 읽고 있다고 봅니다."

 

송용섭 목사는 이 사업이 "양심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국가 권력은 백성들이 준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그것을 집행할 때는 매우 낮고 겸손한 자세로 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여기서는 국가가 폭력을 사용해서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권력의 진짜 주인인 백성의 입장에서는 그 오만불손함을 참을 수가 없는 겁니다."

 

이훈삼 국장이 "아무리 생각해도 정부가 주민들이 이렇게 반대하는데 해군기지 공사를 밀어붙이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자, 문정현 신부는 "미국의 활동가들은 이 사안을 미국의 미사일방어체계의 일환으로 본다"고 했다.

 

"지금의 한국과 미국의 관계로 볼 때 한반도 주변에 전쟁이 나면 미국이 사용활 수 있다는 것은 명백한 사실이에요. 한국정부가 아무리 우리 기지라고 우겨봤자 결국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어요."

 

도여수 목사는 독일에 귀국한 후에도 세계 여러나라의 활동가들과 연대해 강정마을을 돕겠다고 약속하며 간담회를 마무리했다.

 

도여수 목사는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다가 구속된 평화단체 '개척자들' 소속 송강호씨와 독일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라고 한다. 간담회를 마친 도 목사는 구속된 세 명의 활동가들을 면회하러 급히 길을 나섰다.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도여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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