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촘촘하고 섬세하게 허공에 집을 짓고...
▲ 거미 촘촘하고 섬세하게 허공에 집을 짓고...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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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은 아니더라도 종종 아침에나 혹은 저녁에 가까운 산책로를 걷다보면 작은 풀잎 하나, 나무 하나, 아무렇지도 않고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늘상 바라보는 자연이 주는 지혜를 깨달을 때가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남편 출근 배웅을 하고 돌아오는 길에 산책로를 잠시 걸었다. 오늘은 바람도 선선해서 걷기에도 좋다. 숲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초록의 싱그러움이 묻어났다. 투수콘크리트 바닥재가 깔린 산책로 양쪽 가에는 얼마 전만 해도 산딸기가 붉어 향기로웠다. 이른 봄부터 매화꽃, 동백꽃, 연상홍, 아카시아꽃, 찔레꽃, 장미꽃 엉겅퀴꽃...시나브로 피고지고 피고지면서 꽃시계, 자연시계로 계절과 시간을 읽었던 날들이었다.

이제 산책로 주변에는 그 향기롭던 꽃들 지고, 쑥부쟁이가 얼마쯤 남아있고 자귀꽃도 다 떨어져 흔적만 남았다. 대신에 주변에는 호박꽃이 지천으로 넝쿨 뻗어나간 곳마다 노랗게 불 밝히고 석류꽃 진자리엔 제법 그럴듯한 석류열매가 영글어가고 방울토마토도 모양새를 갖췄다. 햇발은 날로 두터워져 숲은 온통 초록이 날로 짙어 가고, 이따금 불어오는 바람에 풀냄새 짙게 배여난다.

문득 산책로를 걷던 내 발걸음이 머문다. 허공에 제법 큰 거미집에 걸려있다. 베틀에서 베를 짠 듯 정교하고 섬세하게 짜여진 거미집 한 가운데 커다란 거미가 붙어 있다. 가끔 작은 거미들이 풀잎 사이에 있는 것을 봤지만 이렇게 큰 거미는 흔하지 않아 낯설었다. 눈에 띄게 제법 큰 거미다.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허공 위에 지은 집...
▲ 거미줄... 햇살에 반짝이는 은빛 허공 위에 지은 집...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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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저렇게 만들 수 있을까 신기하게 생각되는 정교하게 짜여 진 거미집 가장자리에는 거미줄에 꼼짝없이 걸려든 주검들이 널브러져 있다. 포위된 곤충들은 거미줄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고, 엄지손톱만한 크기의 검은 거미는 거미줄 한 가운데 가만히 엎드려 있더니 긴 다리로 어슬렁어슬렁 움직이더니 죽은 포로들을 향해 긴 다리를 뻗었다. 여유 있게 어슬렁거리며 다가간 거미는 죽은 곤충 옆으로 다가가 긴 다리를 뻗었다. 여러 번 죽은 포로의 몸통을 이리저리 굴렸다.

죽은 곤충은 하얀 막 같은 것으로 덮였다. 거미가 먹잇감을 굴리면서 점액을 바른 것이었다. 먹잇감은 하얀 점액에 싸여 미라처럼 되었고 거미는 야금야금 그것을 먹어치웠다. 다 먹어치운 거미는 다시 멀찍이 떨어져 있는 또 다른 먹잇감이 있는 곳으로 다가갔다. 꼼짝 없이 올가미에 걸린 곤충을 금방 먹어치운 다음 다시 거미줄 한 가운데로 여유 있게 가서는 가만히 엎드렸다. 거미는 가만히 엎드려 있어도 멋모르고 걸려드는 곤충들을 즐기고 있었다. 날아가던 눈먼 하루살이도, 파리도, 모기도 크고 작은 곤충들이 걸려들었다.

거미줄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에 조금 흔들렸다. 햇빛에 반사되어 은빛으로 빛나는 거미줄 가장자리에는 잡혀 죽은 곤충들의 주검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고 '강철보다도 더 강하다'는 거미줄은 섬세하고도 아름답게(?) 짜여서 반공중에서 빛났다.

허공위에 지은 집...
▲ 거미 허공위에 지은 집...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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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공중에 지은 거미집.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베틀에서 날실과 씨실로 정교하게 짜낸 베처럼 섬세하게 짜여 진 집. 허공 위에 흔들리면서도 무너지지 않는 저 집의 시작은 어디서부터일까. 거미집과 연결된 희고 야윈 줄을 따라 내 눈이 움직였다. 길게 뻗은 거미줄 따라 가던 내 눈이 바로 내 발밑 앞 연초록 풀잎에서 멈추었다. 거기서부터 긴 지렛대처럼 길게 허공을 향해 이어져 거미집에 닿아 있었고, 한가운데 촘촘히 집을 짓고 있었던 것이었다. 또 시계의 3시와 9시 방향쯤, 두 나무 사이에 거미줄이 길게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만이 아니었다. 잎이 무성한 나무 여기저기엔 거미가 온통 친친 감아 놓은 거미줄들이 널려 있었다.

내 눈은 다시 허공에 지워진 집, 아침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이는 거미집을 올려다보았다. 붕붕 날아가던 곤충 하나가 거미줄에 딱 걸렸다. 벌과 비슷하게 생겼지만 벌은 아니었다. 등치는 벌보다 더 크고 곤충의 배에는 노란색. 거미줄에 걸려든 곤충은 빠져 나가기 위해 사력을 다해 몸을 뒤틀었다. 등치가 제법 커서일까. 한참동안 붕붕거리며 몸을 비틀던 곤충은 거미줄 탈출에 성공 다시 날아갔고, 곤충이 빠져나가기 위해 몸을 비틀었던 자리엔 노란 색으로 물들고 거미줄은 헝클어졌다.

한 번 걸려들면 꼼짝없이 죽음. 그렇게 걸려든 곤충들의 시체가 허공중에 걸린 거미줄의 올가미에 걸려 거미의 진수성찬이 될 준비가 될 뻔했다. 또 한 마리의 눈먼 곤충이 거미줄에 걸려들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치면 칠수록 더 친친 감겨드는 건지 한참을 힘을 빼고 있었다. 벗어나려고 발버둥 칠수록 힘만 빠지고 몸은 더 깊은 늪으로 빨려들어 갔다. 꽤 오랫동안 몸부림치다 지쳐 조용했다.

가끔 비온 날 뒤에나 이른 아침에 숲길 걸을 때, 영롱한 아침이슬을 머금고 있는 거미줄을 볼 때가 있다. 정교하게 짜여 진 은빛 섬세한 거미줄 사이에 대롱대롱 매달린 은구슬, 자연이 만들어낸 신비에 전율하곤 했다. 허공에 지은 집. 햇살이 비치면 은빛으로 은은하게 반짝이는 집. 이슬이 내린 이른 아침에나 비온 뒷면 크고 작은 은구슬들, 그 은빛 보석을 찬란하게 매달고 그 무엇보다도 영롱하게 빛나는 집. 허공위에 매달린 그 집.

거기에 거미가 산다. 거미는 부지런히 거미줄을 친다. 거미는 허공중에 오늘도 거미줄을 치고 또 친다. 허공중에 지은 집에 곤충들이 여기저기서 날아와 제 스스로 몸을 던져 걸려들고 거미의 밥이 된다. 날아가는 곤충들은 그곳이 제 무덤이 될 줄은, 생의 마지막 순간이 될 올가미가 될 줄은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황홀한 듯 은빛 올가미에 날아든다. 한 번 걸려든 올가미는 죽음뿐. 그것들의 생의 끝자락이다. 한 번 걸려들면 빠져나갈 수 없는 완벽한 올가미. 눈먼 곤충들은 거미의 만찬에 제물로 바쳐진다.

거미줄
 거미줄
ⓒ 이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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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길 한 바퀴 돌아 다시 거미가 있는 자리에 섰다. 여전히 거미줄은 반공중에 은빛으로 반짝거렸고 죽은 곤충들이 거미줄 사이에 널브러져 있었다. 거미줄의 주인 커다란 거미는 가진 자의 포만감으로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생각이 많았다.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어디 곤충뿐이랴. 우리 인간 역시 한치 앞을 예상하지 못하는 연약한 존재들인 것을. 바로 눈앞에 1분, 10분 후의 일도 짐작하지 못하고 산다. 하물며 내일이랴.

가끔 신문이나 tv뉴스에서 잘 나가던 사람이 한 순간에 삶 전체가 와르르 와해되고 마는 경우를 본다. 삶의 한가운데서 내딛는 걸음 걸음이 때로는 지뢰밭 같다. 우리 자신이 또한 시한폭탄 같다. 많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하고 손을 뻗쳐온다. 내가 덫에 걸리고 또 내가 덫이 된다. 먹음직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것들, 독묻은 사과 같은 것들이 우리를 유혹한다. 내 자신도 모르게 덫에 걸리는가 하면 또 내가 다른 사람의 덫이 되기도 한다.

이 작은 것들, 소소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은 거미줄이, 늘 보는 자연이 나를 가르친다. 오늘도 내게 말을 걸어온다.


태그:#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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