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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에서 돌아오는 날이다. 짐을 다 빼고 숙소에서 나오려고 하는데 남편이 조용히 전화통화를 해야 한다며 먼저 나가 있으라고 한다. 아이들은 축구공을 가지고 노는데 차에 앉아있는 나는 지루하다.

남편 핸드폰으로 몇 번이고 전화를 했지만 통화 중. 오전 11시다. 남편이 들어간 지 한 시간. 전화통화로 온가족 발을 한 시간이나 묶다니. 은근 화가 난다. 차 막힌다며 빨리 출발하자고 아침부터 가족들 재촉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는 뭐 하자는 거지? 다시 전화를 했다. 남편이 전화를 받는다.

"안 나와?"
"응, 나갈게."

남편의 목소리에 힘이 없다. 좀 기다리니 남편이 숙소에서 나온다.

"아이고, 전화로 하니까 잘 안 되네. 영업은 직접 얼굴을 보면서 해야 하는데. 이번 달 목표 넘기긴 어렵겠다. 며칠 쉬었더니 영~ 감이 떨어진다."

남편이 피식 웃는다. 정말 웃긴다. 겨우 3일 쉬었는데 무슨 영업감이 떨어지나? 일이 잘 안 풀린 핑계로 별걸 다 갖다댄다. 남편이 안 나왔을 땐 화가 났는데 일이 잘 안 풀린다며 기운 빠져 하는 얼굴을 보니 안쓰럽다. 사실 난 남편이 영업 목표치에 저리 신경을 쓰며 사는지도 몰랐다.

쉬고 싶다는 남편 고집에 휴가도 일찍 왔는데

해마다 직장에서 받는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지
 해마다 직장에서 받는 남편의 건강검진 결과지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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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여름 휴가는 다른 해보다 훨씬 빨리 왔다. 이것도 다 남편 때문이다. 첫째 방학식은 15일이고 둘째 방학식은 21일이다. 휴가 전, 남편은 일이 힘들다면서 빨리 휴가를 가고 싶어했다.

"요즘 힘들어서 하루래도 빨리 휴가 가고 싶은데. 그냥 둘째는 학교에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7월 17일부터 휴가 가면 안 될까?"
"장마 때문에 비가 계속 오는데? 날씨가 좋아야 물놀이를 하지. 좀 천천히 가자. 7월 마지막 주에 가면 안 돼?"
"월말은 바빠서 안 돼."
"그럼 8월 첫 주는?"
"그때는 신청자가 많아서 안 돼."
"그럼 8월 둘째 주는?"
"너무 늦어서 안 돼."

뭐야! 가족 휴가를 자기 좋을 대로 잡으려고 하고? 남편의 말에 슬슬 짜증이 났다.

"어제 야근하는데 심장이 두근거렸어. 병원에 가봐야 하는데 시간이 없어서 못 갔네."

남편이 또 심장 이야기를 꺼낸다. 정말 이상이 있으면 어쩌지. 겁이 덜컥 났다.

"알았어. 알았어. 당신 원하는 대로 빨리 가."

연초에 회사 조직개편이 있고 남편은 원래 하던 영업 일에 기획 일까지 하게 되어 일이 늘었다. 당연히 출근도 빨라지고 야근도 더 많아졌다. 그 상태로 상반기를 달려왔으니 힘든 것도 당연하다. 그런 남편이 심장이 안 좋은 거 같다는 말을 하니 나는 꼬리를 내렸다. 결국 둘째 아이 학교에 4일간 체험학습신청서를 내고 우리 가족은 이른 휴가를 왔다.

전화로 아이패드로, 휴가지에서도 일하는 남편

남편 휴가 필수품 아이패드와 핸드폰
 남편 휴가 필수품 아이패드와 핸드폰
ⓒ 강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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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가 와서도 남편은 매일 한두 시간씩 전화를 붙잡고 통화를 했다. 거래처에서 전화가 오면 휴가 안 온 것처럼 전화통화를 한다. 처리할 일이 생기면 또 회사에 전화를 한다. 그뿐 아니라 아이패드를 보면서 이것저것 확인한다. 일로 전화통화 할 때 남편의 말투는 깍듯하다. 긴장감이 느껴진다. 남편이 통화할 때는 옆에 있는 아이들과 나도 조용히 해야 한다.

남편의 긴장이 우리에게도 전해진다. 많은 일 때문에 힘들다며 이른 휴가를 왔으면서도 남편은 휴가 내내 편하게 쉬지는 못한다. 일을 내려놓지 못한다. 차라리 휴대폰이 터지지 않는 오지로 휴가를 갔다면 편했겠지. 1년에 딱 일주일 여름휴가에도 마음의 긴장을 풀지 못한다.

매일 오전 7시에 집을 나서 오후 10시가 넘어야 퇴근하는 남편. 그런 남편이 혹시라도 9시 이전에 들어오면 아이들은 아빠 일찍 들어왔다고 좋아한다. 쉬는 날도 거래처 경조사나 접대가 있으면 나가야 하는 남편. 정말 긴 시간 노동을 한다.

물론 우리 남편만 그러는 것은 아니다.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또한 긴 시간 노동이라도 좋으니 일자리가 있는 사람을 부러워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다. 실업자들이 보기에는 나의 걱정은 당연히 배부른 투정일 것이다. 그런 생각이 들면 겸손하게 우리 고민을 숨기고 남편의 처지에 감사해야 할 거 같은 생각이 든다.

그래 요즘 정규직이 어디냐? 남편이 회사에서 나오면 정규직 일자리 구하기도 힘들 게 뻔하다. 그렇다고 퇴직금이라도 넉넉하니 받을 수 있다면 여차하면 회사 때려치우겠다는 생각을 하겠지. 하지만 마지막 보루인 퇴직금도 이미 중간정산해서 받을 게 몇 푼 안 남았다. 몇 년 전 회사가 어려울 때 퇴직금을 중간정산해서 회사에 도로 들어갔다.

퇴직금이 얼마인지 난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했다. 덕분에 남편은 20년 가까이 한 직장에 다니고 있지만 받아야 할 퇴직금이 얼마 되지도 안는다. 그러니 퇴직 후 개인사업 하는 것은 꿈도 못 꾼다. 우리 처지가 이러니 감지덕지하고 더 힘든 사람들을 생각하며 참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런 생각이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나누고 돈도 나누고, 그런 방법은 없나

언젠가 남편이 쉬는 날 새벽같이 나갔다가 오후에 들어왔다.

"아이고 힘들다. 나야 지금 들어왔지만 오늘 만난 거래처 사람들(대기업 간부)는 약속이 또 한 건 더 있데. 그 양반은 도대체 집에 언제 들어가는지 모르겠어."
"진짜 피곤하겠다."
"완전 가정생활이 없는 거지. 전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도 이혼했다고 하고 부부 사이도 안 좋은 사람들 많다고 해. 그뿐이냐 술 많이 먹지 스트레스 많이 받지. 하나 같이 건강도 안 좋다네."

그 사람들 분명 남들보다 출세도 했고 돈도 많이 벌지만 가정생활이나 개인생활은 없다. 남들이 보기에는 멀쩡해 보이지만 가정과 건강은 엉망인 경우가 많다고 했다.

남편이 없는 아내가 안정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아빠가 사라진 집은 아이들이 자라는데 좋은 환경이 아니다. 아내들도 행복할 수 없을 것이며 남편 역시 회사 일에 집중할 수 없을 것이다. 기업의 입장에서도 이런 간부에게 일을 맡기는 것은 손해이다. 이런 간부들은 겉은 멀쩡해 보여도 시끄러운 개인사 신경 쓰느라 좋은 성과를 내지 못하니까 말이다.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 대기업 간부에게 집중된 일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면 어떨까? 그러면 그 대기업 간부는 가정도 지키고 건강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일이 없는 사람들은 일이 생겨서 좋을 텐데. 가정을 버리면서 돈을 많이 벌면 또 뭐하나? 그렇게 출세해 건강을 잃으면 또 무얼 하나?

우리나라 월급쟁이면 간부이건 아니건 누구나 긴 시간 노동으로 일에 치어서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또 한쪽 사람들은 일이 없어 정리해고되거나 취업이 안 되서 죽어나간다. 일도 나누고 임금도 나누면 더 행복해질 텐데 어리석은 우리는 돈도 일도 나누지 못하는 사회에 살고 있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남편은 여전히 야근 중이다.


태그:#휴가, #노동 시간,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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