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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구잡이로 따가보니 양배추밭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 뿌리를 드러낸 양배추 마구잡이로 따가보니 양배추밭이 쑥대밭으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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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건비도 안 나오는데 수확할 마음이 생기겄시유? 오죽 답답하면 요즘은 밭에도 안 나와유."

27일 오후 충남 태안군 태안읍 평천리의 한 양배추밭. 마치 야생동물의 습격을 받은 듯 양배추밭 일부가 쑥대밭으로 변했고, 절반 이상은 멀쩡한 밭으로 남아 있었다. 장마 피해도 아니다.

입구에서 가까운 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고, 밭 안쪽에는 아직도 멀쩡한 양배추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 현수막을 보고 양배추를 따가는 주민들 입구에서 가까운 곳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다녀간 듯 쑥대밭으로 변해 있었고, 밭 안쪽에는 아직도 멀쩡한 양배추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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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이런데도 밭 주인은 온데간데 없고 차량 몇 대만이 배추밭 주변에 주차되어 있다. 차량을 끌고 온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밭에 들어가 양배추를 따고 무질서하게 다듬고는 쉴새없이 자신의 차량에 옮겨 싣는다.

기자가 다가가자 마치 나쁜 짓을 하다가 발각된 사람들처럼 몇 마디 건네더니 꽁지에 불이라도 붙은 뭐 마냥 이내 밭 사이로 난 소로를 따라 황급히 차를 몬다. 이 사람들은 "밭 입구에 가 보면 '양배추 따가세요'라고 씌여 있어서 이곳을 지나다가 잠깐 들려봤는데 따가도 된다고 해서 몇 개만 따고 가려던 참이었다"고 전했다.

태안읍 평천리 한 양배추 농가의 밭 입구에 양배추를 가져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 농민은 최근 양배추가격 하락과 장마로 인한 피해로 수확을 포기한 채 양배추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무료로 양배추를 따가라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참을 밭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주인은 만나볼 수 없었다.
▲ 양배추 따가세요 태안읍 평천리 한 양배추 농가의 밭 입구에 양배추를 가져가라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이 농민은 최근 양배추가격 하락과 장마로 인한 피해로 수확을 포기한 채 양배추를 필요로 하는 주민들에게 무료로 양배추를 따가라고 현수막을 내걸었다. 한참을 밭에서 기다렸지만 결국 주인은 만나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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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말을 듣고 차를 돌려 밭 입구를 확인해 보니 "앵배추 따가세요"라는 큼지막한 현수막 하나가 내걸려 있다.

무슨 사연인지 알아보기 위해 밭주인을 수소문해봤지만 결국 주인은 만나지 못했다. 다만 양배추밭 인근에서 땅콩농사를 지어 양배추밭 주인과 친분이 있다는 이웃주민을 만나 자세한 사정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 주민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이웃에서 농사를 지으면 같이 막걸리를 나눠 먹을 정도로 자주 만났었는데 밭이 이렇게(수확포기) 된 뒤로 나도 만나기 어려워졌다"고 말을 꺼냈다.

양배추 가격 하락에 장마로 상품가치 떨어져 수확포기 사태 속출

태안읍 평천리의 양배추밭. 밭 안쪽에는 이처럼 멀쩡한 양배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 수확하지 못한 1천여평의 양배추밭 태안읍 평천리의 양배추밭. 밭 안쪽에는 이처럼 멀쩡한 양배추들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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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민의 말에 따르면 지난해 겨울부터 봄, 여름내 일꾼을 사서 1000여 평의 밭에 양배추 모종을 심고 비료를 주고 수차례에 걸쳐 농약도 뿌리면서 애지중지 길렀다. 하지만 최근 양배추값이 폭락하면서 수확을 하면 오히려 인건비와 운반비도 건지지 못할 사정이 되자 극약처방을 내리게 된 것이라고 전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최근 장마가 길어지면서 상품 가치가 있었던 양배추들도 썩어 버리는 바람에 상품 가치가 떨어져 결국 수확을 포기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 주민은 "양배추를 팔려면 본인이 직접 따고 사람을 써서 차에 실어서 시장에서 팔아야 되는데 그럴 형편이 안되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용단을 내린 것 같다"며 "또 장마가 길어지면서 상품가치도 떨어져 갈아엎기는 더 마음이 아프고 해서 공짜로라도 양배추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먹을 수 있게 한 것 같다"고 마음 아파했다.

이 주민은 또 "상황이 이 정도로 심각하다면 군에서라도 조금은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이 있을 텐데 아쉽게 생각한다"며 아쉬움을 전한 뒤, "아무리 공짜로 준다고 해도 그렇지 사람들이 양심이 있어야지. 나도 농사짓는 농민이지만 아무리 공짜라도 종자값이라도 조금 주고 가면 좋을 텐데... 그저 공짜라면"이라며 "땀흘려 농사짓는 농민의 심정을 이해하려나"라고 말한 뒤 긴 한숨을 내쉬었다.

양배추를 따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 바로 다듬어서 먹을 수 있는 양배추 알맹이만 차량에 싣고 다듬은 껍데기는 밭둑에 버려두었다.
▲ 널려있는 양배추 껍데기 양배추를 따간 사람들이 남긴 흔적. 바로 다듬어서 먹을 수 있는 양배추 알맹이만 차량에 싣고 다듬은 껍데기는 밭둑에 버려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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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6일 기준으로 충남 태안군에서 판매되고 있는 양배추 가격은 최상품 3개 기준으로 6500원의 경매가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장마 영향으로 양배추 가격이 소폭 상승하고 있다. 하지만 장마의 영향으로 태안읍 동문리와 평천리 양배추 농가가 수확을 포기했던 지난주에는 한 통당 400원에 산지 가격으로 판매된 것으로 태안군은 전했다.

태안군 관계자는 "양배추 수확을 포기한 경우는 이번 말고도 지난주에 태안읍 동문리 재배농가 등에서도 이미 접수된 사례가 또 있다"며 "이는 지난주까지 양배추 가격 폭락이 계속되고 장마의 영향으로 상품가치가 떨어지자 농민들이 어려운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한편, 최근 가격이 소폭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 양배추는 한 통의 중량이 3.3kg 이상이 되어야 상품으로서의 가치를 인정받으며, 27일 기준으로 상품(上品) 한망 3통 기준 경매가가 6500원에 거래된 것으로 태안군의 한 유통업자는 전했다.

덧붙이는 글 | 태안신문에도 송고할 예정입니다.



태그:#양배추, #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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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의 지역신문인 태안신문 기자입니다. 소외된 이웃들을 위한 밝은 빛이 되고자 펜을 들었습니다. 행동하는 양심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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