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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희망버스. 끈질기게 외면하고 있는 한진 중공업 조남호 회장과 정치권 때문에 또 다시 희망버스를 만들었다. 나는 이번에 순천에서 출발했다. 그곳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부산으로 가는 들풀한의원 원장 윤성원 선생을 월간 <작은책> '사진으로 보는 사람이야기'에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큰 버스 한 대. 작은 버스 한 대가 꽉 찼다.

차 안에서 같이 탄 사람들하고 인사도 나누고 00한의사를 취재하면서 갔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차를 세워 놓고 그늘이 있는 아스팔트에 둘러 앉아 도시락을 먹었다. 다른 쪽을 보니 거기도 사람들 한 무리가 모여 점심 도시락을 먹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뭘까? 하고 둘러보는데 앗! ○○○ 선생이 눈에 띄었다. 광주 무슨 고등학교에서 한문을 가르치는 선생님이다. 소리와 장구를 아주 잘하시고 입담이 걸쭉하고 재미가 있는 분이다. "○ 선생님!"  하고 부르니 "오메, 이게 누구시오? 안 선생님!" 하면서 밥을 먹다 말고 벌떡 일어나 반갑게 알은 체 했다. "우린, 광주에서 희망버스를 타고 가는 길이죠."

지난번에 두 대였는데 이번엔 세 대가 간다고 했다. 이번 집회에서 사회를 보는 이가 갑자기 다른 약속 때문에 가지 못하고 대신 사회를 보러 간다고 했다.

○○○ 선생과 헤어지고 다시 버스를 탔다. 5시 무렵에 부산역 광장을 도착했다. 지난번처럼 경찰차가 부산역 광장을 에워싸지는 않았다. 어? 이번엔 경찰이 없네? 웬일이야.

공연이 시작되었다. 누군가 노래를 하는데 많이 듣던 목소리이다. 아 '사이'다! 1998년 무렵, 우리 <작은책>에서 일하던 박필성인데 싸이가 아니고 사이라는 예명으로 음반까지 낸 가수다. 얼마 전 괴산으로 귀농한 뒤 무슨 행사가 있으면 가끔 이렇게 와서 노래를 한다. 인도인들이 쓰는 것 같은 네모난 모자를 쓴 데다 수염까지 길러 꼭 동남아 사람처럼 생겼다. 우클레레를 연주하는데 박민희 선생이 마주이야기에 나온 아이들 이야기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엄마 말 잘 들으려면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해야 되는데/ 공부하라면 공부해야 되고, 밥 먹으라면 밥 먹어야 되고/ 하지 말라면 안 해야 되는데/ 그럼 엄마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이 노래 가사를 엄마 대신 이명박 이름으로 바꿔 부른다.

"명박이 하라는 대로 하면 명박이는 오래 살아도 나는 오래 못 살아."

입을 삐딱하게 벌리고, 괴성을 지르면서 노래를 하는데 사람들이 모두 와르르 뒤집어진다. 노래가 끝났다. 무대에서 내려온 사이를 만나 반갑게 인사를 하는데 "한 번 더! 한 번 더!" 하고 관중들이 청한다. 사이가 다시 무대를 올라 두 곡을 더 부른다.

조금 있으니 ○○○ 선생이 나와 사회를 본다. 소리를 하는 특유의 쉰 목소리로 유창하게 사회를 본다. 우선 구호가, 만날 다른 집회에서 하는 구호하고 다르다.

"구호 한번 외칩시다. '이명박을 점지하신 삼신 할매 규탄한다!'"
"업무 태만 직무 유기 염라대왕 반성하라!"

와아! 관중들이 웃음과 함께 구호를 따라 외친다. ○○○ 선생은 맨 앞줄에 늘어선 유명 인사들 이름을 어떻게 다 외우는지 열댓 분을 메모 한 장 들지 않고 소개를 한다.

"16일 동안 단식을 하고 계시는 심상정 전 의원님 오셨습니다."

심상정 의원이 천천히 일어나 인사를 하니까 "네, 단식을 오래 하셔서 일어나시는 게 늦네요, 잉." 그 다음 노회찬 전 의원을 소개하니까 노회찬 의원이 벌떡 일어난다. "아, 오늘 뭐 드셨습니까?" 하고 단식한 이한테 농담을 던진다. 모처럼 유쾌한 집회를 본다. 모두들 김진숙을 응원하려고, 비정규직 철폐를 요구하려고 이 부산에 왔지만 이런 집회에서까지 우울해 할 필요가 없다는 듯 즐거운 공연을 한다. ○○○ 선생이 우스갯소리를 하나 더 한다. 전라도 사투리라 그 억양을 글로 흉내를 내지 못하는 게 아쉬울 정도다.

"이명박 대통령이 얼굴을 수술하려고 성형외과를 갔어요. 의사 허는 말이 '아, 당신은 여기서 못 고쳐요. 비뇨기과를 가셔야 됩니다.' 항께 이명박이 다시 물어보지 않았것어요? '왜요?' 허니까 의사가 허는 말, '얼굴이 X같이 생겨서 그러요.'"

와르르르! 광장에 운집해 있던 사람들이 다 뒤집어졌다. 사회자가 이어 말한다.

"여러분! 우리가 이렇게 즐겁게 노는 것 같지만 '성동격서'라고, 수많은 노동자들이 서너 군데로 흩어져 한진 중공업 쪽으로 가고 있습니다. 이렇게 노는 것도 작전입니다!"
"와아아아!"

11시 무렵, 공연이 끝나고 사회자가 전철을 타고 남포동 10번 출구로 가자고 했다. 갑자기 그 많은 사람이 전철역으로 몰렸다. 한산한 지하철 안이 꽉 들어찬다. 남포동 롯데 앞으로 나갔다. 바로 영도다리 앞이었다. 전철역에서 나오니 전경들이 길을 다 막고 있다. 전경들 너머를 보니까 길 한가운데 웬 사람들이 길을 점거하고 있다.

이른바 '어버이연합' 할아버지들이 일본인들처럼 하얀 띠에 '희망버스 반대'가 적힌 뭐 그런 띠를 두르고 아주 비장한(?) 듯 길 한가운데 앉아 있다. 에고 불쌍한 노인네들. 역사도 모르고 현실도 모르는 순박한(?) 이들. 제 딴에는 나라를 구한답시고 저러고 앉아 있겠지? 그나저나 경찰은 그 몇 사람을 못 막아서 저렇게 길 한가운데 점거하도록 놔둔단 말인가? 우리 희망버스 사람들이 저렇게 앉아 있다면 당장 몰아냈겠지? 꼭 어린애들 보호하듯이 저렇게 둘러쌓아 모시고 있다.

전경들 사이를 빠져나와 영도다리를 건넜다. 지난번 물대포를 맞았던 그 자리를 왔다. 천 명쯤 되는 시민들이 길에서 앉아 있거나 서 있다. 그 앞에는 지난번처럼 차벽이 세워져 있다. 얼마쯤 되니까 전경들이 몰려나온다. 전경들은 계속 시민을 밀어냈다.

지난번처럼 시민들이 저항하지 않았다. 경찰이 물대포를 쏠 핑계를 주지 않았다. 저항하지 않고 천천히 뒤로 물렀다. 가끔 경찰한테 "위압감 조성하지 맛!" 하고 말로 항의를 하는 사람이 있었지만 몸으로 저항하지는 않았다. 봉래시장까지 밀려 나왔다. 어쩔 수 없이 다시 남포동으로 걸어왔다. 남포동 사거리 롯데 앞에서는 아직도 집회를 하고 있다.

새벽 1시 무렵, 모여 있던 사람들 집회가 끝났다. 한진중공업 동문 쪽에 사람들이 모여 있단다. 다시 영도다리를 건너 한진중공업 쪽으로 간다. 나는 ○○씨와 택시를 탔다. 지난 일요일에 다친 발목 때문에 더 걸을 수가 없다. 산 쪽으로 올라가니 골목마다 전경들이 검문을 한다. 일단 배낭이 있는 사람은 '외부 세력'이란다. 동네주민인지 확인한다고 주민등록증도 검사한다. 마치 계엄령이 내린 듯하다. 한 대 한 대 검문하느라고 차가 꽉 막혀 있다. 택시 기사가 우리 들으라는 듯 궁시렁거리기 시작한다.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이렇게 집회를 하면, 길이 막혀 우리처럼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잖아요."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선의의 피해자? 무지한 사람이다. 집회를 하면 그 까닭이 뭔가가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집회하면 안 된다는 말인가? 자기가 한 번 해고당해 봐라. 심정이 어떤가. 그럴 때 회사에 항의하면 다른 이가 "누가 잘했든 잘못했든 항의하면 안 되지" 하면 뭐라고 할라나? 누군 집회 하고 싶어서 하나? 솔직히 자기 돈 들여 여기 내려오고 싶어서 오는 사람이 있냐?

여기 한 번 내려오려면 돈 10만 원 금방 깨진다. 우리도 어쩔 수 없이 내려온단 말이다. 그리고 뭐 선의의 피해자? 그래 한두 번 길이 막히는 게 그렇게 피해를 보냐? 이 화상아. 해고자들은 앞으로 살아갈 길이 막막한데 한두 번 길 막히는 것 가지고 선의의 피해자가 생기면 안 된다고? 속으로 부글부글 끓어 한마디 해 주고 싶었지만 꾹꾹 눌러 참았다. 이렇게 무식한 인민하고 싸워 봤자지.

집회에 참가해 시내버스를 타고 가던 한 사람은 노인네들이 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참 가관도 아니었단다. 집회를 하는 사람들 보고 어떤 할아버지가 "이 사람들 다 빨갱이인기라" 하니까 옆에 있던 할머니 "다 서울에서 내려온 빨갱이라카데요" 하더란다.

완전무장한 전경들이 차 한 대마다 들여다보면서 검문을 한다. 갑자기 옆에 같이 타고 가던  ○○씨가 나한테 바짝 붙는다. 에로틱한 분위기를 연출해야 검문을 안 당한다는 거다. 아, 이 뻘쭘하면서도 경찰에 걸려 내리게 될까 봐 두근거리는 상황. 어라, 경찰이 들여다보더니 통과를 시킨다. 휴! 무사 통과. 이제 갈 수 있는 건가? 헉! 그 뒤에도 전경들이 쫙 깔려 있다.

우여곡절 끝에 골목골목을 돌아돌아 드디어 청학동 성당이 있는 수변 공원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걸어가니 입구에 어떤 이들이 "수고하셨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예, 서울에서 왔습니다." "아이구,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아, 부산에도 이런 사람이 있구나.

오른쪽으로 돌아가니 와우!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아니, 이 사람들이 어떻게 여길 들어왔지? 나중에 들어 보니 최종 집결지가 여기라는 걸 아는 사람들은 낮에 들어왔단다. 나중에 들어온 사람들은 검문이 심해 어떤 이는 부산 사람이 모는 자가용을 얻어 타기도 하고 어떤 이는 검문을 할 때 술 취한 부산 사람처럼 행동했다고 한다.

"아, 집에 쫌 가자. 이게 뭐꼬? 날도 더운데 잔뜩 껴 입고 이기 머하는 기고?"

이렇게 여기 모인 사람들 모두 들어온 사연이 다 다를 거라고 했다. 아무리 경찰이 집회를 방해해도 집회는 이루어진다.

집회 참가자들이 등불을 날렸다. 김진숙이 살아서 내려오라는 염원이 담긴 등불이다. 비정규직 해고를 철폐하라는 요구가 담긴 등불이다. 등불이 하늘로 날아가다가 전깃줄에 걸린다. 사회자가 그만 하자고 소리쳤다. 불이 날까 봐 걱정스러워진 것이다. 괜히 꼬투리를 잡히면 안 되겠다는 판단이겠지. 등불은 곧바로 꺼졌다.

무대에서는 춤추고 노래를 한다. 무대가 안 보이는 곳에서는 서로 아는 이들끼리 술을 먹고 졸린 사람들은 자고 있다. 잔치 분위기다. 집회 문화가 바뀌고 있다. 자본과 싸우는 방식이 변하고 있다. 저들이 아무리 탄압을 하고 방해를 해도 즐기면서 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치면 안 된다. 우리도 술을 사 오려고 슈퍼를 갔다. 슈퍼 물건이 동이 났다. 막걸리고 맥주고 과자고 하나도 없다. 좀 떨어진 축협 마트에 가서 술과 과자를 샀다. 누군가가 한보따리 물건을 안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아니, 우리가 얼마나 부산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냐? 한 사람당 10만 원이면 만 명이면 얼마야? 10억인가?"

아침 동이 튼다. 잠을 한숨도 못 자 머리가 깨질 듯 아프다. 오늘 아는 이의 결혼식이 있어서 희망버스를 타지 못하고 열차를 타고 서울 올라가야 한다. 택시를 잡아 타고 나왔다. 한진중공업 정문 쪽에는 아직 통행금지다. 뒤 골목길로 가는데 길 한쪽은 경찰 버스로 완전히 막아 놨다. 그 옆으로는 양쪽에 경찰 버스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다. 전국에 있는 경찰차가 다 내려온 듯하다. 택시 기사가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운전대에 몸을 기댄다. 아마 오늘 아침에 일하러 나왔나 보다.

"이기 뭐고? 와 이리 경찰차가 많노? 이기 뭐고? 이놈아들 대체 이기 뭐고? 와 정말 많네."

늘어선 경찰 차 끝이 보일 때까지 "이기 뭐고? 이기 뭐고?"를 되풀이한다. 글쎄 말이다. 도대체 이게 뭔 짓인지 모르겠다. 정부, 아니 자본은 뭐가 이렇게 두려운 건지 대체 모르겠다.


태그:#작은책 , #안건모, #생활글, #거꾸로 가는 시내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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