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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진스님은 자유인이다. 송광사-해인사-봉암사 등 선방에서 40안거를 나며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때도,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있을 때도, 그는 늘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다.
 명진스님은 자유인이다. 송광사-해인사-봉암사 등 선방에서 40안거를 나며 '나는 누구인가'를 물을 때도, 시대의 아픔에 공감하며 치열한 역사의 현장에서 있을 때도, 그는 늘 바람처럼 구름처럼 자유로웠다.
ⓒ 단지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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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당에는 하나님이 안 계신가? '두두물물(頭頭物物)이 다 부처'라는 말이 있다. 성당에도 교회에도 부처님은 있다. 진리라는 측면에서 본다면 어느 종교도 서로 만날 수 있고 하나가 될 수 있다. 편견을 버리고 서로의 종교를 존중할 때 비로소 국가의 화합과 상생이 일어난다. 이것이 곧 종교가 지녀야할 기본적 도리인 것이다."

철모르는 철부지 소년에서 한평생 삶과 죽음에 대한 끊임없는 물음으로 성찰의 계기와 생사고락의 업을 끊으려 했던 전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 같은 도반(함께 도를 닦는 벗)인 세상 사람들에게 마음에서 힘을 빼면 진정한 참자유가 올 것이니 모든 집착을 버리고 오직 이웃과 따뜻한 사랑을 나누라고 강조했던 스님의 짧은 한마디가 요즘 더욱 가슴을 울린다.

옛말에 '응마주색난석(鷹馬酒色蘭石)'이란 금언이 있다. 10대 응석받이, 20대 말 타기, 30대 술놀음, 40대 섹스, 50대 난초 기르기, 60대 석수장이 등 인간의 보편적인 삶의 주기를 일컫는 말이다. 즉, 청년기에는 매사냥과 말 타기(스포츠)를 즐기고, 중년기에는 여자와 술(사교)을 가까이 하다가, 장년기가 넘어서면 자연을 곁에 두고 지켜보면서 천지의 고요함을 깨닫게 된다는 뜻이다.

인간이라면 이런 사이클을 결코 벗어날 수 없는 법! 그리고 이 안에서 느끼는 백팔번뇌의 고통과 희로애락, 그리고 한(恨) 많은 인생의 우여곡절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지우지하지만, 명진 스님은 이에 대한 해법으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화두를 들고 (죽비로 내려치듯)헛된 망상과 욕심을 놓아버리라고 일갈한다. '나를 찾는 공부가 진정 참된 공부'라 강조하면서.

'나는 누구인가?' 그 지극한 물음 속에 진리가 있다

<스님은 사춘기> 겉그림
 <스님은 사춘기> 겉그림
ⓒ 이솔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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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때 처음 다가왔던 그 순수한 물음으로 돌아가는 것, 나를 향한 물음으로 끝없이 몰입해 들어가는 것, 그것이 바로 도를 향해 가는 것이다. 나는 사춘기 때 다가왔던 그 순수한 물음을 잃고 싶지 않다. 나는 영원한 사춘기로 살고 싶다."

생텍쥐페리는 마지막 비행을 끝으로 속절없는 세상과의 여행을 마치면서 '나를 순수하게 해주는 곳으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명진 스님 또한 봉은사 신도들과의 마지막 작별을 준비 하면서 '나는 솔직하고 순수하고 싶었다'며 해맑은 소년의 마음으로 희양산 봉암사로 회향했다.

순수! 그것은 스님에게 있어 사춘기 때 겪었던 아픔과 격정을 다시 맞닥뜨리게 해주었던 하나의 열정이었으며, 죽음 이외에는 출구가 없었던 20대의 혼돈을 정화로 승화시킨 또 하나의 업보였다. 스님을 둘러싼 모든 아픔과 고통 또한 겸허히 받아들이면서 나가 아닌 너로, 아니 우리의 아픔과 열병으로써 기꺼이 보듬어 안으려했던 본질적 존재의식이 이내 출가자의 평생도반으로 함께 해주었던 것이다.

환갑 전에 철나기 힘들다


내가 철들어 간다는 것이/ 제 한 몸의 평안을 위해/ 세상에 적당히 길드는 거라면/ 내 결코 철들지 않겠다


적어도 사회운동에 조금이나마 마음을 주었던 사람이라면 위의 노래가사를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명진 스님 또한 평생을 운동권 스님, 좌파 스님이라고 명명되면서 온갖 수모를 다 겪어야했던 이유가 영원히 철들고 싶지 않은 그의 순수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뭣 모르던 사춘기 때야 그렇다 해도 출가 후의 삶 속에서 보여준 명진 스님의 유쾌한 투사적 기질은 이 시대 최고의 법부인 성철스님마저도 학을 뗄 정도였으니 철없는 그 경지가 오죽했으랴. 하지만 스님은 정말 막돼먹은 행동과 방탄승 같은 언어도단으로 온갖 욕설을 다 얻어먹으면서도 끝내 놓지 못했던 한 가지 화두는 곧 '평등사상'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참된 도를 찾기 위해 스승을 찾아 헤매던 명진 스님은 보잘 것 없는 노파에게서 생사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배울 수 있었고, 죄를 짓고 감옥에 온 수인들을 통해 거짓 없는 순수한 마음을 배울 수 있었다. 즉, 스님이 얻고자 했던 물음에 대한 해답이 일상 속에 다 들어있었음을 깨닫게 된 것이다. 참된 도(道)는 일상에 있었다는 깨달음이다.

"60년 전의 나, 지금의 나. 같은 건가? 다른 건가? 누구인가? 이러다간 관 뚜껑 닫아도 철나긴 힘들 것 같다. 하긴 철들길 바라지도 않지만...그러지 않아도 번뇌 많은 세상에 번뇌 한 자락 더 보탠다. 허허, 웃을 일이다."(신묘년 정월 보름 희양산 봉암사에서, 명진 씀)
 "60년 전의 나, 지금의 나. 같은 건가? 다른 건가? 누구인가? 이러다간 관 뚜껑 닫아도 철나긴 힘들 것 같다. 하긴 철들길 바라지도 않지만...그러지 않아도 번뇌 많은 세상에 번뇌 한 자락 더 보탠다. 허허, 웃을 일이다."(신묘년 정월 보름 희양산 봉암사에서, 명진 씀)
ⓒ 단지불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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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름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참선이다

뭐든 한 가지에 몰입하면 끝내 완벽하게 이루고야마는 천성의 기질 탓에 명진 스님은 수영도, 보드(스키)도 사부대중 못지않게 타고 싶었다. 결국 밤낮을 가리지 않는 각고의 노력 끝에 그 성과를 이뤄냈지만 그 안에서 스님은 또 다른 깨달음을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내려놓음'이었다.

자연의 이치가 곧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며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이듯 우리네 모든 행위도 있는 그대로의 이치를 받아들여야 순조롭게 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즉 인위적인 힘을 모두 빼고, 온 몸을 그 대상에 맡기면 자연스레 두려움은 사라지고 이내 일심동체가 되어 간다는 법이다. 세상 살아가는 이치도 이와 똑같으리라.

출가한 지 사십 년, 출가자의 본분은 오로지 수행이라며 처음 봉은사 주지로 부임했을 때 천일 천배기도를 하며 신도들의 마음을 시나브로 얻게 되었던 명진 스님은 '모름으로 들어가는 것'이 곧 참선이라고 강조한다. 허공같이 텅 비어진 마음, 모든 앎이 끊어지고 오직 알 수 없는 그것만이 간단없이 이어지는 완벽한 비어짐의 자리가 곧 부처님의 자리라고 소박하게 전한다.

에필로그를 통해 종교 간 소통과 화합, 종교평화를 내내 강조했던 명진 스님은 종교에 대한 도그마에 빠지지 않기 위해 배려와 존중의 가치를 서로서로 내주어야 할 때라며 책을 마무리했다.

예수와 석가 십자가 지고 골고다 언덕 오르고
달마와 베드로 소림굴에서 선정에 드네
불교네 기독교네 너네 나네 진달래 철쭉일세
산은 높아 구름에 닿고 물은 흘러 바다에 들도다

덧붙이는 글 | <스님은 사춘기>(명진 씀, 이솔 펴냄, 2011년, 13000원)



스님은 사춘기 - 명진 스님의 수행이야기

명진 스님 지음, 이솔(2011)


태그:#명진스님, #스님은 사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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