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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군기지 문제로 지난 4년 동안 주민 간 갈등은 겪으면서 정부와 줄기차게 싸워온 서귀포시 강정마을에 심상치 않은 바람이 불고 있다.

 

만 4년 4개월. 강정마을이 해군기지 예정지로 발표되면서 주민들이 줄기차게 싸워온 기간이다.

 

물론 마을 주민들만 싸운 건 아니다. 제주지역 시민사회단체 및 진보정당들이 몇 해 동안 주민들과 함께 했다. 그럼에도 이들만으로는 힘을 가진 자본과 정부를 대항해서 싸우기가 너무나 힘이 부쳤다.

 

 

부족한 힘 때문에 많은 이들이 좌절했고, 그래서 포기하는 주민들도 나왔다. 해군과 정부는 가혹하게 주민들을 압박했다. 툭하면 경찰이 출동하고, 공사를 반대하는 주민들을 연행했고, 민형사상 책임을 묻겠다며 소송으로 겁을 주려했다.

 

그 와중에 주민들을 대신해서 싸우던 영화평론가 양윤모씨, 평화운동가 최성희씨, 개척자들 소속 송강호씨, 강정마을 주민대책위원회 고권일 위원장 등이 구속되는 수모를 겪었다.

 

그리고 조현호 경찰청장이 공권력 투입을 암시하는 발언을 하면서, 주민들을 위협했다. 주민들이 사면초가에 내몰리자 5일에는 자칭 '안보단체'들이 강정마을에서 집회를 하겠다며 달려들었다. 평화롭던 마을이 이들의 군홧발에 짓밟혀 만신창이가 될 지도 모르는 위기에 내몰렸다.

 

하지만 주민들은 단호하면서도 현명했다. 이들이 마을을 밟는 일을 절대로 막겠다고 했다. 주민들 수 백 명이 이른 아침에 북과 꽹과리를 들고 마을 입구인 강정천 앞에 모였다. 그리고 전경 대원들을 사이에 두고 안보단체와 마주섰다.

 

그리고 문정현 신부, 프랑스인 벵자멩 모네씨, 평화운동가들과 함께 주민들은 평화의 난장을 펼쳤다. 강정마을 민속보존위원회 회원들의 북과 꽹과리 소리에 맞춘 수많은 퍼포먼스들이 즉석에서 이뤄졌다. 전경들이 만든 완충지대 너머에서는 "종북 쓰레기들"이라는 비난이 발사 되었지만 주민들의 꽹과리 소리에 모두 흡수되었다. 증오는 평화의 용광로에 녹아버렸다. 국내외 많은 언론사들이 이 장면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리고 6일에는 야5당과 제주해군기지 건설 저지를 위한 전국대책회의가 힘을 합쳐 강정마을 축구경기장에서 해군기지 백지화촉구 제주강정 평화대회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재야 원로인 백기완 선생, 한국진보연대 오종렬 상임고문, 민주노동당 이정희 대표와 권영길 의원, 민주당 정동영 최고위원과 김재윤 도당위원장, 창조한국당 공성경 대표, 진보신당 윤난실 부대표, 국민참여당 권태홍 최고위원 등 야5당 인사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도내외에서 많은 시민들이 '평화버스'를 타고 행사에 참여해 주민들을 격려했다.

 

이날 행사에서 퍼포먼스를 선보인 '생명평화바람'이라는 대학생 그룹은 자신들을 소개하면서 "각종 투쟁 사업에 연대하기 위해 2011년 봄에 창단된 모임"으로 "강정에 오기 전에 명동철거민들과 함께 있다가 왔고, 제주에서 3일을 보낸 후 다시 유성기업과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을 거쳐 경주 핵 방폐장을 방문할 예정"이라고 했다. 외부에서는 전국에서 일어나는 각종 시민 연대 사업에 강정마을이 주요한 대상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야5당을 대표해서 무대에 오른 정치인들은 야5당 국회진상조사단의 조사결과를 보고하면서, 강정마을 해군기지가 2008년 국회가 내건 민국복합형관광미항의 부대조건에도 크게 미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마을의 평화와 환경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기 때문에 해군기지는 전면 백지화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그리고 야5당이 연대해 내년에 정권교체를 이룰 수 있도록 힘을 모으자며 연대의지를 과시하기도 했다.

 

 

주민들 속을 가장 후련하게 풀어준 이는 문정현 신부였다. 두 달 가까이 강정마을에 머물면서 문정현 신부는 주민들 사이에서 스타가 되었다.

 

"민국복합형 관광미항이라고? 에라 엿이나 먹어라, 이 날강도 같은 놈들아. 우리가 북한 노동당을 추종하는 종북세력이라고? 에라 미친놈들, 그렇게 거짓말로 사기나 치니 힘이 안 생기는 거여. 강정마을에 있는 꽃 하나라도, 돌멩이 하나라도 건드리기만 하면 벌떼같이 일어나 물어뜯어 버릴 거여."         

 

문정현 신부의 입에서 특유의 투박하면서도 재치 있는 입담이 쏟아지자, 주민들은 환호와 갈채를 보냈다.

   

 

행사가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던 강동균 마을회장은 "그동안 우리 마을 주민들과 범대위만 싸웠는데, 이젠 야5당이 힘을 더해줘서 너무 기쁘다. 주민들이 더 큰 힘을 내서 잘 싸울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다른 한 쪽에서 손에 평화강정이라고 적힌 깃발을 들고 행사를 지켜보던 주민 고아무개씨는 "그동안 너무 오래 싸워도 해군기지를 몰아내지 못했기 때문에 실망해서 흩어진 주민들이 있는데, 야5당과 전국 시민들이 와서 힘을 보태주니 흩어진 주민들을 다시 모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 홍아무개씨는 "야당 의원들과 많은 시민들이 이제라도 와주니 너무 반갑다"고 했다. 필자가 "그럼 더 자주 와달라고 부탁하면 어떻겠냐"고 물었더니, "서울에서 제주까지 오기가 쉬운 일이냐"며 "이런 행사를 마련하려고 애들 많이 썼을 것"이라고 했다. 오랜만에 그의 살인미소가 빛을 발했다. 

 

 

6일에 태풍 '무이파'가 제주 서쪽 해안을 통과하면서 강정해안에는 파도가 높이 일고 바람이 강하게 불었다. 그리고 강정마을 축구 경기장에는 또 다른 태풍이 머물렀다. 불의하고 부정한 모든 것을 다 날려버릴 것 같은 평화의 태풍, 주민들은 그 태풍의 직접 영향권 안에서 감격에 취해 있었다.


태그:#강정마을, #해군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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