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도나우강을 건너 불가리아에 입국하기가 쉽지 않구먼

 

 

루마니아에서의 이틀은 꿈과 같이 지나갔다. 이제 두 번째 나라 불가리아로 떠나야 한다. 불가리아는 루마니아의 남쪽 도나우강 건너에 있다. 그러므로 부쿠레슈티에서 남쪽으로 나 있는 5번 고속도로를 타고 국경 도시 지우르지우까지 가야 한다. 부쿠레슈티에서 지우르지우까지는 73㎞로 그렇게 멀지 않고, 완전히 평지여서 1시간이면 갈 수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묵은 호텔이 부쿠레슈티 북쪽에 있어 시내로 들어가는데 20분, 시내를 빠져 나가는데 30분 정도는 걸리므로 모두 1시간 5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될 것 같다.

 

부쿠레슈티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가는 길은 끝도 없는 평원이다. 들판에는 옥수수가 빽빽하게 자라고, 노란 해바라기 꽃이 화사하게 피어 있다. 또 땅바닥에는 참외와 수박 등 덩굴식물들이 자라고 있다. 길가로는 과일을 파는 농부들의 좌판이 많이 보인다. 수박, 참외, 복숭아, 포도가 먹음직스럽다. 우리는 잠시 버스를 세우고, 과일을 좀 산다. 아침에 식당에서 먹은 천도복숭아가 어찌나 맛있던지 나는 이곳에서도 천도복숭아를 산다. 2유로에 한 보따리다. 여러 사람이 나눠먹을 수 있는 양이다.

 

 

도나우강에 도착하기 전 우리는 휴게소에서 또 다시 잠시 쉰다. 국경을 통과하는 시간이 길어질 것에 대비도 하고, 남은 루마니아 돈을 다 쓰기 위해서다. 이제 지폐는 다 쓰고 동전만 몇 푼 남았다. 국경으로 가는 길은 지우르지우 북쪽에서 남동쪽 방향으로 빠진다. 국경에 가까워지자 차량 행렬이 길어지고 그 때문에 도로도 타원형으로 길게 만들었다. 출국 수속을 받고 도나우강 쪽으로 더 가까이 가자 강을 따라 긴 차량행렬이 보인다. 이들 차량이 모두 도나우강을 건너 불가리아로 들어갈 모양이다.

 

도나우강을 경계로 이쪽이 루마니아의 지우르지우고, 저쪽이 불가리아의 루세다. 이 두 도시를 연결하는 다리의 이름은 루마니아어로 프리에테니에이고, 불가리아어로 두르쓰바타이다. 이 다리는 철제 트러스 2차선 다리로, 건너는데 채 10분이 걸리지 않는다. 중간에 한 차선을 다시 포장하고 있어 평상시보다는 시간이 조금 더 걸렸을 것 같다. 다리를 건너며 보니 도나우강이 대단히 크고 넓음을 알겠다. 수량도 대단하고 강 주변에 녹지도 많다.

 

 

도나우강은 독일의 슈바르츠발트에서 발원해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헝가리,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루마니아, 불가리아를 거쳐 흑해로 빠져나간다. 강 이름도 독일과 오스트리아에서는 도나우, 슬로바키아에선 두나이, 헝가리에서는 두나, 크로아티아와 세르비아, 불가리아에선 두나브, 루마니아에선 두나레아라고 부른다. 길이가 2850㎞나 되어, 유럽에서 가장 긴 강이다.

 

강을 건너니 불가리아 검문소가 나타나고, 그곳에서 입국수속을 해야 한다. 여기서는 모든 사람의 여권을 회수한 다음 개개 여권을 체크하고 입국도장을 찍도록 되어 있다. 차량으로 국경을 통과하는 일이 비행기로 국경을 통과하는 일보다 더 어려운 것 같다. 운전기사와 인솔자가 대신 일을 처리해서 그나마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다. 또 한국의 위상이 높아져서 이곳 사람들도 그렇게 까다롭게 굴지 않는다고 한다. 다행히 25분 정도에 수속을 끝낼 수 있었다. 이제야 불가리아 땅에 들어선 것이다.

 

아르바나시 민속마을에서의 점심

 

 

불가리아로 들어서니 금방 달라진 것이 보인다. 이곳에서는 키릴문자를 써서 도로 표지판이나 간판을 읽기가 어려워진다. 옛날 러시아를 여행할 때 키릴문자를 조금 익혔던 기억이 나는데 그간 다 잊어버렸다. 또 차를 타고 조금 달리니 구릉지와 산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루마니아를 끝으로 이제 평지와는 이별이다. 우리가 앞으로 가게 될 나라들은 모두 산악 국가이다. 그래서 가까운 거리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리게 될 것 같다.

 

우리가 탄 차는 루세에서 남쪽으로 106㎞ 떨어진 벨리코 투르노보로 간다. 벨리코 투르노보는 12세기에서 14세기까지 제2차 불가리아 왕국의 수도였다. 그렇지만 우리는 먼저 벨리코 투르노보 근교에 있는 아르바나시로 갈 예정이다. 아르바나시는 벨리코 투르노보 북서쪽 4㎞ 지점에 있는 민속마을이다. 오스만 터키시대에 특혜를 받던 마을이어서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도 먹고, 불가리아 전통마을의 모습도 살펴볼 예정이다.

 

 

우리는 1시간 40분쯤 걸려 아르바나시 마을에 도착한다. 차를 내리자 현지 가이드인 이무근(33)씨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한다. 이틀 동안 우리를 안내하기 위해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로부터 이곳까지 왔다고 한다. 동안에 표정이 밝아선지 더 어리게 보인다. 경상도 사투리를 쓰는 대구 사나이로 아직 결혼은 안했다고 한다. 그는 우리를 식당 멕사하로 안내한다. 그곳에는 불가리아 전통음식이 마련되어 있다. 이 식당 역시 건물과 정원에 꽃을 잘 가꿔 놓았다. 건물에는 제라늄 화분이 걸려있고, 정원에는 장미꽃이 한창이다.

 

식당 안으로 들어가니 금방 음식이 나온다. 처음에 나온 것은 빵과 샐러드다. 빵은 겉보기에 우리 것과 비슷하지만, 달지 않고 더 단단하다. 샐러드는 상추, 오이, 토마토에 치즈를 실처럼 가늘게 만들어 얹고는 그 위에 쑥갓 비슷한 것을 조금 뿌렸다. 그리고는 검은색 올리브를 하나 얹어 색깔을 맞췄다. 아주 정갈해 보인다. 이번 여행 동안 음식 문제는 전혀 없었다. 주음식과 샐러드 그리고 빵이 비교적 입맛에 맞았고, 후식도 비교적 맛있었다.

 

 

곧 이어 주음식이 나오는데 작은 도기에 닭고기와 소스를 넣고 끓여낸 것이다. 터키식으로 말하면 항아리 케밥 종류다. 맛을 보니 우리 입맛에 맞는다. 패키지 여행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호텔과 식당 걱정할 필요 없고, 음식도 대개 검증된 것이나온다는 점이다. 일부 사람들은 닭고기가 싫다고 해서 돼지고기로 메뉴를 바꾼 것 같다. 나는 음식을 남김없이 다 먹고 오후 1시 45분부터 아르바나시 민속마을 관광에 나선다.

    

예수탄생교회의 프레스코화

 

 

아르바나시는 400m 정도의 산록에 자리 잡은 민속마을로 200ha의 농경지와 600ha의 초지로 이루어져 있다. 연 강수량은 670mm 정도로 많지는 않지만, 토양은 비옥하고 마을 주변의 숲은 잘 발달되어 있는 편이다. 마을 중심부에 150채 정도의 집이 있고, 주민은 500명 정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집의 지붕에는 붉은색 계열의 기와가 얹혀 있고, 비가 적어 지붕의 경사는 완만한 편이다. 집의 벽과 담장은 돌을 쌓아 만들었으며, 이들 사이로 난 길은 좁고 구불구불하다.

 

이 마을에는 일반주택, 교회, 수도원이 분포하고 있다. 주택 중에는 콘스탄트살리에프의 집과 하질리에프의 집이 유명하다. 교회는 모두 5개가 있는데, 그 중 가장 오래된 예수탄생교회와 대천사교회가 유명하다. 수도원은 성모승천 수도원과 성 니콜라스 수도원 두 개가 있다. 이중 우리는 먼저 예수탄생교회로 향한다. 골목길을 지나면서 보니 역시 퀼트를 짜는 사람, 그것을 파는 사람, 이콘을 그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간간히 관광객들도 보인다. 길바닥에는 담장과 마찬가지로 돌이 깔렸다.

 

 

예수탄생교회로 들어서니 단층으로 길게 지어진 교회가 나타난다. 창문이 모두 닫혀있는 게 아주 폐쇄적으로 보인다. 1500년대 말에 지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안에 그려진 프레스코화가 가치 있다고 한다. 1597년에 처음 그려지기 시작했고, 1681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그려졌다. 이 그림 속에 그려진 인물만 5000명 정도라고 한다. 이 그림들은 훼손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사전 예약을 통해서만 공개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그림들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교회 입구 위에 절반 정도 퇴색한 이콘화라도 볼 수 있는 게 다행이었다. 예수가 가운데 있고, 좌우에 마리아와 세례 요한이 예수를 향하고 있다. 교회 내부 이콘화 자료사진을 보니, 원색적이고 사실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현대적이기까지 하다. 주제에 있어서도 신구약에 나오는 모든 이야기를 망라하고 있다. 심지어는 지옥에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모습까지 그려져 있다. 또 삶의 수레바퀴를 그린 재미있는 그림도 있고, 후대에 개최한 공의회 모습을 그린 그림도 있다. 프레스코화는 1821년까지 계속 그려졌다.

 

 

교회를 떠나면서 보니 무덤에 쓰이던 묘지석이 보인다. 가운데 글자가 있고 그 바깥으로 조각이 보인다. 조각이 대단히 정교하고 아름답다. 상단부 위쪽에는 문장이 보이고, 아래쪽에는 꽃과 과일이 보인다. 그리고 글자 아래 하단부에도 다른 모양의 꽃과 과일이 있다. 이 묘지석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쓰여 있다.

 

"이곳에 이승의 짐을 벗은 전사 알렉시아데스가 잠들어 있다. 그는 집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브의 죄로 이곳 무덤에 오게 되었다. […] 전지전능한 신이시여, 우리 조국에 영광과 행복 그리고 힘을 주시고, 저 역시 축복 속에 살 수 있기를 간청하나이다."      

 

콘스탄트살리에프 하우스 이야기

 

 

예수탄생교회를 나와 찾아간 곳은 콘스탄트살리에프 하우스다. 집으로 들어가니 17세기에 만들어진 우물이 보인다. 우물 가장자리를 나무판으로 둘렀고, 우물 위에는 빗물이 들어가는 것을 막기 위해 지붕을 해 얹었다. 나무판 옆에는 마차바퀴를 붙여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다. 이 우물은 터키 지배시대 만들어서인지 동양적인 냄새가 난다.

 

이들 마당을 지나 건물로 다가가니, 내부로 들어가는 문이 닫혀 있다. 사전 예약자에 한해서만 내부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우리 관광에서 느끼는 아쉬움이 바로 이거다. 제대로 된 관광이 되려면 사전 예약을 해서 내부를 볼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정말 아쉽다. 이제는 차창 관광이니, 외부 조망이니 하는 말은 좀 사라졌으면 좋겠다.

 

 

우리는 별 수 없이 건물 한쪽에 마련되어있는 기념품 가게로 간다. 그나마 기념품 가게를 통해서라도 가옥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다행이다. 입구 벽면을 아치로 만들고, 그 위를 접시형태의 타일 도자기로 장식했다. 문 옆에는 양쪽으로 작은 공간을 만들어, 손잡이 달린 화병형 도자기와 은은한 무늬의 대접을 배치했다. 대단한 감각이다. 나는 안으로 들어가 아르바나시 마을에 관한 책, 불가리아 역사에 관한 책, 벨리코 투르노보에 관한 책을 산다. 그리고 인형, 목조각, 퀼트 제품을 구경한다.

 

 

이 집을 나오면서 아쉬움에 나는 정원을 유심히 살펴본다. 꽃이 잘 가꾸어져 있고, 옛날에 사용하던 생활용품도 보인다. 또 거리로 나와서도 담장과 거리의 구불구불한 모양새에 주목한다. 이 마을은 1500년대에서 1800년대까지 터키 지배시대의 불가리아 전통마을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었다. 즉 불가리아 전통문화뿐 아니라, 당시의 건축과 조경 등에서 두드러진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프레스코화가 보여주는 창조적인 예술성을 더한다면, 아르바나시 마을이 불가리아의 옛 수도 벨리코 투르노보와 함께 조만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될 수 있을 것 같다. 그 날을 기대해 본다.


태그:#도나우강, #아르바나시 민속마을, #예수탄생교회, #프레스코화, #콘스탄트살리에프 하우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