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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자체 울력으로 수해를 복구해 나가는 수평리 마을. 마을 사람들이 비가 갠틈을 타서 막힌 수로를 뚫고 있다(8월 11)
 마을 자체 울력으로 수해를 복구해 나가는 수평리 마을. 마을 사람들이 비가 갠틈을 타서 막힌 수로를 뚫고 있다(8월 11)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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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이지 해도 너무 한 것 같다. 연일 쏟아지는 폭우를 감당하기에 마을 사람들이 너무 지쳐 있다. 그런데 10일 저녁부터 하늘이 열리고 비가 개일 듯했다. 아침 6시(11일), 이장님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마을 주민 여러분 안녕히 주무셨습니까? 마을 주민여러분에게 알려드립니다. 오늘 아침에는 폭우로 막힌 수로를 뚫고자합니다. 마을주민 여러분께서는 한분도 빠짐없이 윗 개울 다리 앞으로 모여 주시기 바랍니다. 특히 오늘 아침에는 무거운 돌을 치워야 하므로 젊은 분들이 한분도 빠짐없이 나와 주시기 바랍니다. 다시 한 번 알려드리겠습니다 …."

이곳 지리산 자락 구례군 간전면 수평리 마을은 지난 7일부터 내린 폭우로 상류에서 떠내려 온 바위와 토사가 떠밀려와 마을로 지나가는 수로가 막혀 있다. 수로가 막혀 있어 물이 제대로 흐르지 않고 있다. 비가 갠 틈을 타서 자체 울력을 하여 막힌 수로를 뚫자는 이장님의 방송이었다.

폭우로 떠내려온 바위와 토사가 마을로 통하는 수로를 막고 있다.
 폭우로 떠내려온 바위와 토사가 마을로 통하는 수로를 막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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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집은 마을회관 바로 옆에 있어서 마이크 소리가 엄청 크게 들린다. 처음에 이사를 와서는 항상 아침 6시면 공지사항을 알려주는 이장님의 방송 소리에 깜짝 놀라 잠을 깼지만, 지금은 이장님이 안내방송을 하기 전에 먼저 일어난다. 도시에서 살 때에는 저녁 형 인간이었지만, 이곳 섬진강으로 이사를 온 후에는 어느새 나도 아침 형 인간으로 바이오리듬이 변해 있다.

방송을 듣고 개울로 나가니 벌써 마을 어르신들이 삽과 곡괭이, 빗자루를 들고 나와 있었다. 언제나 그렇지만 마을청소나, 울력에 가장 먼저 나오는 분들은 80을 넘은 어르신들이다. 어르신들은 모두 새벽형 사람들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마을 일에 솔선수범하여 앞장을 서신다.

그러나 나이든 어르신들이 무거운 바위를 치우기에는 무리다. 조금 있으니 40~50대 젊은이들이 어슬렁어슬렁 걸어 나왔다. 우리 마을에서는 60대 이하는 젊은 사람으로 친다. 나도 아직 60대이니 당연히 젊은 사람 축에 낀다. 60대 이하의 사람들은 할 일도 많고 직장에 다니는 사람도 있어 주로 저녁 형이라 아무래도 아침에 늦게 일어나기 마련이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하여 수해를 복구하고 있다.
 마을 사람 모두가 합심하여 수해를 복구하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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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사람들은 모두 합심하여 울력을 했다. 한 사람의 힘으로는 도저히 들 수없는 바위를 지렛대를 이용하고, 여러 사람이 힘을 합치니 바위가 움직였다. 들썩인 바위 밑에다 돌을 개고 여러 차례 지렛대와 합심을 하여 돌을 하나하나 치워 냈다. 힘을 쓰다가 넘어지는 사람도 있고, 바짓가랑이와 소매가 완전히 젖었다. 이마에 구슬땀이 흘러내린다. 큰 바위를 먼저 들어내고 다음에 잔 바위를 들어내니 나머지 토사는 물살에 의해 자연적으로 쓸려 내려갔다.

그 사이 할머님들과 할아버님들은 삽과 호미, 그리고 낫과 빗자루를 이용하여 도로에 깔린 토사를 치우고 풀을 베어냈다. 모두가 합심을 하여 자체 울력으로 수해를 복구하는 모습이 대견하게 보인다. 수로가 완전히 뚫려 통수가 시원스럽게 내려가자 마을사람들이 환호를 질렀다. 콸콸 내려가는 물을 보자 십년 묵은 체증이 다 내려가는 것 같다.

폭우로 개울 바닥이 패이고 깨져 있다.
 폭우로 개울 바닥이 패이고 깨져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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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시간 반 넘게 모두가 열심히 울력을 하고나니 이장님이 음료수와 막걸리, 빵을 간식으로 가져왔다. 마을 사람들은 선 로 땀을 닦아내며 음료수와 간식을 먹었다. 자신들의 힘으로 수해를 복구하니 표정이 밝다. 이런 울력을 통해서 마을 사람들은 더욱 친근해지고 협동심을 기르게 된다. 어려울수록 서로 합심하여 난관을 헤쳐나가는 마을 사람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아침이었다.

이번에 쏟아진 집중폭우는 개울 바닥을 상당히 파고들어갔다. 곳곳에 웅덩이가 깊이 파이고, 상류에서 떠밀려온 바위가 제방의 석축 밑을 치는 바람에 바닥이 패고 깨져 제방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낙숫물이 구멍을 뚫는다고 하더니 정말 물의 힘은 대단한 것 같다. 보수를 해주지 않으면 석축이 무너질 염려가 있다. 이장님은 마을 자체적으로 복구를 할 수 있는 것은 자체 울력을 통해서 해결하고, 자체울력으로 할 수 없는 큰 피해는 군청에 재해 피해를 접수하여 보수를 해줄 것을 요청했다.

튼튼하게 쌓은 축대도 폭우로 인한 물의 힘으로 균열이 생기고 있다.
 튼튼하게 쌓은 축대도 폭우로 인한 물의 힘으로 균열이 생기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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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력을 마치고 집에 들어와 아침 식사를 하고 잡시 쉬는데, 다시 하늘이 컴컴해진다. 시커먼 먹구름이 일진광풍을 몰고 왔다. 재빨리 창문과 현관문을 닫았다. 번쩍하고 번개가 하늘을 가르더니 곧 우르르 쾅쾅하며 천둥이 천지를 진동을 시킨다. 천둥의 진동이 하늘에 떠있는 먹구름을 마구 흔들어 놓았는지 금세 구슬 같은 굵은 빗방울이 후드득 후드득 떨어진다. 

"정말 해도 너무 하네요!"
"글쎄 말이요. 제발 그만 좀 내렸으면 좋겠는데."

대책없이 쏟아져 내리는 게릴라 폭우(8월 11일)
 대책없이 쏟아져 내리는 게릴라 폭우(8월 11일)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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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는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져 내리는 낙숫물을 바라보며 한숨을 짓는다. 요즈음 내리는 게릴라성 집중폭우는 마치 폭탄을 가득 싣고 건물로 돌진하는 게릴라들의 공격과 흡사하다. 한 번 쏟아졌다하면 계곡물이 금방 불어날 정도로 물 폭탄 세례를 쏟아부어 대니 말이다. 옛날에는 날이 가뭄이 들면 비를 내려 달라고 기우제를 지냈는데, 요즘 같으면 비가 제발 좀 그쳐달라고 제사를 지내야 하지 않을까? 정말 해도 너무 한다!


태그:#수해복구, #집중폭우, #구례 간전 수평리, #섬진강, #지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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