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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2일 국회 본청 앞에서 있었던 대학생 75명의 기습시위는 사실상 경찰 연행을 각오하고 벌인 시위였다. 국회는 집회와 시위가 허용되지 않는 공간이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의 면담을 요구하던 학생들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며 본청 진입을 시도한 순간 연행은 이미 결정된 것이다.

 

한 여학생이 경찰에 끌려가지 않기 위해 친구들과 팔짱을 끼고 스크럼을 짠 상태에서 "괜찮냐"는 기자의 말에 절규하듯 소리쳤다.

 

"연행돼도 상관없습니다. 우리가 그냥 가면, 친구들이 학교를 그만두게 되고, 빚을 지게 되고, 또 다른 친구들이 죽게 될 텐데... 학생 대표자인 저희가 어떻게 그냥 갈 수 있겠습니까. 더 이상 대학생을 죽이지 마라! 반값등록금 실현하라!"

 

두 달 만에 180도 달라진 한나라당

 

'반값등록금'을 대하는 한나라당의 태도는 두 달 만에 돌변했다. 여론이 거셀 때는 잔뜩 웅크리고 대책을 내놓는 듯하다, 어느 정도 잠잠해지니 언제 그랬냐는 것처럼 조용하다.

 

지난 6월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시작한 촛불집회가 전 시민적 참여로 번지자 한나라당은 1조 2000억 원을 투입해 매년 10%씩 2014년까지 등록금 30%를 인하한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학생들이 원하는 '반값등록금 즉시 시행' 수준은 아니지만 어떻게든 대책을 마련하려 전전긍긍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모든 것은 홍준표 대표가 취임한 이후 달라졌다. 그가 국가예산을 투입한 등록금 인하에 반대 의사를 표명함으로써 황우여 원내대표 체제에서 나왔던 대책은 사실상 뒤집어졌다.

 

대학생 75명이 국회 본청 앞에서 기습시위를 할 때도 달라진 한나라당의 태도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대학생들은 이 자리에서 "반값등록금 실현"과 함께 홍 대표와 면담을 요구했지만 결국 아무 성과 없이 전원 경찰에 연행됐다.

 

홍 대표는커녕 한나라당 관계자 단 한 사람도 학생들의 시위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민주당 의원 몇 명이 나와 "한나라당 쪽에 여러분을 만나라고 요청했다"며 학생들을 달랬지만 나오는 사람은 없었다. 황우여 원내대표가 박자은 한국대학생연합 의장 등 학생대표자들을 직접 찾아가 만났던 불과 두 달 전과 판이하다.

 

대학생들의 국회 시위는 이렇게 식어버린 '반값등록금 판'에 다시 불을 붙이기 위한 일종의 선도적인 투쟁이었다. 지난 5월 27일 서울 도심 집회에서 대학생 70여 명이 연행된 이후 6월 반값등록금 촛불집회에 불이 붙었던 것을 떠올려 보면 알 수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대학생들이 쉬이 물러나지 않을 것임을 정부와 여당에 보여준 자리였다. 8월 임시국회에서 대학등록금 관련 논의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자신들의 의사표현을 확실히 한 것이다.

 

 

'8.15 등록금 해방의 날'... "한나라당 다시 심판 받을 것"

 

문제는 여론이다. 지난 6월처럼 '반값등록금'이 전 국민적 공감대를 일으키며 다시 타오를 수 있을 것인가, 지난번처럼 김제동, 김여진과 같은 '날라리 선배부대'들이 지원군이 돼 줄 것인가. 다시 한 번 그때를 재연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요소가 아직 많이 남았다.

 

오는 15일 오후 4시 광복절을 맞아 개최되는 '등록금 해방의 날' 집회는 그 가능성을 엿볼 첫 번째 자리가 될 전망이다. 야5당과 시민사회단체, 대학생단체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날 집회는 매년 진보진영이 개최하는 8.15 대회와 맞물려 상당한 규모로 치러질 전망이다.

 

김동규 전국등록금네트워크 조직팀장은 "한나라당은 다시 심판 받을 것"이라며 "반값등록금 약속을 뒤집고 기만적 대책을 내놓은 것도 문제지만 그것마저도 지키지 않겠다는 걸 시민들은 모두 기억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여론이 잠시 잠잠해졌다고 슬그머니 내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완전한 착각"이라며 "8월 말 임시국회를 압박하는 투쟁과 2학기 개강에 맞춰 전국 대학생들이 학생총회를 준비하는 등 저항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국회에서 대학생들이 연행된 그날 오후, 서울 청계광장에서는 촛불집회가 다시 시작됐다. 200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이 모인 이 자리에 얼마나 더 많은 촛불이 모이게 될지 관심이 모아진다. 아무 변함이 없는 고액의 2학기 등록금 고지서가 속속 가정에 도착하고, 방학이 끝나간다는 점에 한나라당은 긴장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태그:#반값등록금, #김여진, #김제동, #홍준표, #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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