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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축한 큰조카 집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 나무울타리처럼 쳐놓은 안쪽이 수목장 자리.
 신축한 큰조카 집 테라스에서 바라본 전경. 나무울타리처럼 쳐놓은 안쪽이 수목장 자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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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연휴(13일~15일) 때는 2박3일 일정으로 충남 보령시 청라면에 있는 큰조카(57살: 큰 누님 큰아들) 집에 다녀왔다. 큰조카가 어머니(큰 누님) 유골을 앞마당 화단에 수목장(樹木葬)으로 모신다고 해서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천주교 신사였던 큰 누님은 치매를 앓다가 2010년 5월 30일 돌아가셨고, 시신을 장례식장에서 성당으로 옮겨 종부성사 미사를 드리고, 부산 영락공원에서 화장(火葬)하여 유골함에 담아 큰조카가 보관해왔다. 

유골함을 집으로 모신 것에 대해 큰조카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2년 전부터 아내는 물론 동생들과도 상의했었다"면서 "유골이지만, 집에 모시면서 아침저녁으로 뵈니까 생전에 자주 찾아뵙지 못했던 불효가 조금은 감해지는 것 같아 위로가 되었다"고 말했다.  

큰조카는 "내년 봄 부활 대축일에는 할아버지·할머니를 비롯한 집안 어른들은 물론 중학교 3학년(1965년) 여름방학 때 충남 홍성군 광천읍 옹암리 저수지로 놀러 갔다가 익사해서 객지에 묻힌 형님도 유골을 찾아 앞마당에 수목장으로 모시겠다"며 협조를 구했다.

"어머니 유골이 집에 있으니까 든든했어요"

주방에서 손님에게 접대할 음식을 만들고 있는 조카며느리.
 주방에서 손님에게 접대할 음식을 만들고 있는 조카며느리.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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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카며느리(53살)는 무슨 생각으로 시어머니 유골을 1년 3개월 동안 집에 모셨고, 새로 신축한 집 앞마당 화단에 시어른들을 모시기로 남편과 마음을 함께했는지 궁금했다. 하여 주방에서 음식을 만드는 조카며느리 얘기를 들어보았다.

"시어머니 유골함을 아파트 거실 문갑에 올려놓고 무섭지 않았는지?"
"저도 자식을 둘이나 키우고 있잖아요. 자식이 잘되는 걸 바라지, 잘못되는 걸 바라는 부모가 어디에 있겠어요? 가까이 계시면서 잘 돌봐주시겠지 하는 믿음만 있었지, 다른 생각은 없었어요. 어머니이니까요."

"시어머니와 다투고, 사이가 나빴을 때도 있었던 것으로 아는데?"
"저도 사람인데 왜 생각이 나지 않겠어요. 치매로 고생하시는 것도 모르고 신경질 내면서 말대답했던 게 생각나서 후회되기도 하고, 죄송스러울 때도 종종 있었어요. 그래도 옆에 계시니까 든든하고 위안이 됐어요. 밖에 나갔다, 오면 유골함을 향해 '어머니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마음으로 인사를 했거든요···." (눈물 보임)

조카며느리는 "동현이 아빠(큰조카)가 출장 갔다가 집에 오면 '어머니는 아들이 잘 다녀와서 좋으시겠다'는 말도 하는 등 무언의 대화를 자주 했다"면서 "동현 아빠의 애틋한 어머니 사랑을 피부로 느꼈어요"라며 얼굴이 밝게 변했다.   

형제와 친척만 모여 치른 큰누님 수목장 예식 

수목장 예식은 15일 아침 큰조카 형제들과 친척만 참석한 가운데 약식으로 치러졌다. 그래도 손가락을 꼽아보니 형제와 사촌들 합해서 30명이 넘었다. 아내와 딸과 함께 갔는데, 조카들이 일 년에 두 번씩 모이는 '사촌모임'도 이날에 맞춰 잡은 모양이었다.

 예식에 앞서 분향하는 큰조카.
 예식에 앞서 분향하는 큰조카.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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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와 친척들이 모여 고별예식 드리는 모습.
 형제와 친척들이 모여 고별예식 드리는 모습.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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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장 예식은 음식이나 과일을 올리지 않고 치러졌는데, 고인의 명복을 비는 진지한 분위기 속에 유골함 앞에 향을 피우고 '고별식'에 이어 '묘지 예식', '하관', '연도' 순으로 한 시간 가까이 진행되었다.

예식을 집도한 큰조카는 시작에 앞서 "고별식은 어머니가 땅에 묻히기 전에 마지막 나누는 인사"라며 "어머니가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만나 영원한 삶을 누리게 될 때까지 헤어짐에 대한 잠정적인 인사이니 곡(哭)은 하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고별식은 마리아(큰 누님)를 전능하신 하느님 아버지께 맡기오니 나약한 인간으로 저지른 죄를 주님의 자비로 용서하시고, 하느님 나라에서 성인들과 함께 끝없는 기쁨과 안식을 누리게 해달라는 내용의 기도와 찬송, 참석자들의 재배(再拜) 순으로 이어졌다.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관 하는 큰조카 부부
 친척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관 하는 큰조카 부부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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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예식은 큰 누님 직계 자손들만 참석했다. 유골함을 들고 앞마당 화단으로 이동해서 흙에서 왔던 육신을 다시 흙으로 돌아가도록 땅에 묻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날 다시 부활시켜 달라는 내용의 묘지 축성기도로 시작되었다.

축성기도를 마치고 유골함에서 꺼낸 분골 쌈지를 땅에 묻고 자녀들이 차례로 성수를 뿌린 뒤 흙을 덮고, 수목장에 사용하는 나무 대신 유골함을 묻었다. 큰조카는 "훗날 나무 심을 위치를 정확히 표시하려고 유골함도 함께 묻었다"며 "3년 계획으로 주변에 백장미를 심겠다"고 말했다.   

하관을 마친 조카들은 "형제와 친척과 은인들의 영혼을 위하여 주님께 간구하오니 그들에게 수고의 갚음을 주시고, 마리아(어머니)의 영원한 안식과 빛을 비추어 달라"는 내용의 '주님의 기도'로 예식을 모두 마쳤다.   

예식을 마친 큰조카는 "어머니가 병원에서 2년 넘게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아내와 형제들이 동의를 해주어 유골을 집에 모실 수 있었고, 가까운 친척 어른들도 마음을 함께 해주어 집안에 수목장으로 모실 수 있었다"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자신의 종교인 불교식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셋째 누님.
 자신의 종교인 불교식으로 고인을 추모하는 셋째 누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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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목장(樹木葬)이란?
수목장은 화장 유골을 지방자치단체나 개인 소유의 숲이나 나무 주변에 묻고 명패를 나뭇가지에 달아 고인을 추모하는 자연친화적인 방법을 말한다.

유럽 스위스에서는 고인의 성명 생몰연도 등이 기록된 소형칩을 나무에 부착하고 유골함 없이 화장 유골만 땅에 묻는다. 독일은 생분해되는 유골함에 화장 유골을 담아 나무 주변 땅 밑에 묻고 나무에 명패를 매단다고 한다. ('부산 영락공원' 안내판 참고)
수목장 예식을 지켜보며 형제 사이에도 상대방 처지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있어야 정이 돈독해지고 끈끈한 우애가 지속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셋째와 넷째 누님은 독실한 불교 신자이고 형님과 동생은 무종교, 그러나 이견 한마디 없이 절차를 따르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기 때문.

조카들과 헤어져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형님 내외는 입이 마르도록 큰조카 부부를 칭찬했다. 특히 형수는 '동병상련'의 정을 느껴서인지 조카며느리가 대단하다는 말을 연거푸 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 큰 누님의 영생복락을 마음으로 빌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수목장, #유골함, #조카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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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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