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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작동 국립 서울 현충원의 모습
 서울 동작동 국립 서울 현충원의 모습
ⓒ 윤성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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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묘지는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희생·공헌한 분들을 안장하고 그 충의와 위훈의 정신을 기리며 선양하는 곳'이다. 이 정도는 대부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정도'가 국립묘지의 전부는 아니다.

그럼 문제를 하나 내겠다. 당신은 우리나라에 국립묘지가 몇 곳이나 있고, 또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있나? 아마 지금쯤 서울과 대전에 있는 현충원을 생각하며 손가락 두 개를 펼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둘'은 정답이 아니다.

전국 8곳 국립묘지에 32만여 명 안장

우리나라엔 총 8곳의 국립묘지가 있다. 앞서 당신이 생각한 2곳의 현충원도 국립묘지에 속한다. 서울 현충원은 공비토벌작전의 전사자를 모시는 데서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서울 장충사에 안치하였다가 그 수가 점점 늘어나자 1955년 서울 동작동에 육·해·공 3군종합묘지인 국군묘지(현 서울 현충원)를 설립했다.

이어 6.25 전쟁 등을 겪으며 국립묘지 안장자가 계속 증가하자 서울 현충원의 안장능력도 한계에 이르렀다. 이에 1982년 대전 유성구에 대전국립묘지(현 대전 현충원)가 설립되었다.

그렇다면 나머지 6곳은? 바로 국립 호국원과 국립 민주묘지이다.

호국원은 전북 임실과 경북 영천 그리고 경기도 이천에 있다. 호국원 역시 현충원 두 곳의 안장능력이 한계를 보여 설립되었다. 호국원은 주로 무공수훈자나 참전군인, 종군 기자 등이 안장돼 있다. 설립 초기에는 재향군인회에서 운영했으나 2006년 1월 국립묘지로 승격되어 국가보훈처가 관리하고 있다. 그러나 호국원의 존재 자체를 아는 이는 거의 없다.

민주묘지에는 경남 마산의 3·15, 전남 광주의 5·18 그리고 서울 수유에 있는 4·19 민주묘지가 있다. 민주묘지에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노력한 인사들이 잠들어있다.

그렇다면 이 8곳의 국립묘지에 안장된 '호국영령'이 몇 명쯤 될까? 동작동에 있는 서울 현충원에 안장된 호국영령만 해도 16만1661명이다. 서울 현충원의 '만원사례'로 만들어진 대전 현충원의 안장자도 8월 22일 현재 9만8039명으로 1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두 현충원만 합쳐도 25만9700명이다.

이렇게 두 현충원이 점점 만장이 되어가는 관계로 2006년 호국원이 국립묘지로 승격됐다. 그 호국원에는 영천 3만338명, 이천 1만8337명, 임실 1만3154명 등 총 6만1829명이 안장돼 있다. 여기에다 세 곳의 민주묘지에는 민주주의를 위해 산화해간 978명이 잠들어 있다.

이렇게 8월 22일 현재 현충원, 호국원, 민주묘지 총 8곳의 국립묘지에 무려 32만2507명이 안장돼 있다.

이 8곳의 국립묘지들은 이름에 걸맞게 나라에서 관리한다. 서울 현충원은 국방부가, 나머지 일곱 개 국립묘지들은 국가보훈처가 관리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라의 극진한 대우를 받는 국립묘지에는 과연 어떤 사람이 안장되어 있을까?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묘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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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가'의 안익태, '주체사상'의 황장엽도 현충원에 안장

안장되기 가장 까다로운 곳은 현충원이다. 현충원은 대통령, 국회의장, 대법원장 등 국가 고위관료 출신이 안장된다. 이승만, 박정희, 김대중 전 대통령은 서울 현충원에, 최규하 전 대통령은 대전 현충원에 안장돼 있다.

애국지사와 국가유공자도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 서울 현충원 국가유공자 묘역에는 한글의 대중화에 힘쓴 주시경 박사와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이 안장돼 있다. 지난 1997년 한국으로 망명한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도 대전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그런데 '주체사상'의 창시자로 알려진 황장엽 전 비서는 어떻게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을까? 황 전 비서는 국가보훈처가 지정한 '국가나 사회에 현저하게 공헌한 사람으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요건을 갖춘 사람'이라는 규정을 충족했기 때문에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었다.

이 외에도 현충원에는 20년 이상 재직한 군인과 현장에서 순직한 소방공무원, 국가·사회공헌자 등이 안장될 수 있다. 지난 2006년 카타르 도하 아시안게임에 출전해 불의의 사고를 당한 김형칠 승마선수도 국가·사회공헌자로 인정받아 현재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안장돼 있다.

<친일인명사전> 등재된 4389명 중 최소 76명 현충원에 안장

그런데 국립묘지에는 정말 '국가를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은 사람들'만이 안장돼 있을까? 물론 국립묘지에는 국가와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친일파'로 지목받은 인사들이다.

우리는 서울과 대전, 두 곳 현충원에 집중했다. '친일'의 기준은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을 참고했다.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된 4389명의 친일인사를 현충원의 안장자 찾기로 검색해 사망날짜와 행적을 비교한 결과, 최소 76명이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더 흥미로운 사실은 76명의 친일파 장군 중 60명이 이승만 정권에도 참여했다는 점이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진압한 김백일과 이승만 전 대통령의 각별한 신임을 받았던 김창룡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60명의 '일제+이승만 정권'에 가담한 친일인사 중 박정희 정권에도 참여한 사람은 몇이나 될까? 무려 31명이다. 구한말에 태어나 사망하지 않고 군과 공직생활을 해온 사람들은 이후 정권에서도 잘 나갔던 셈이다.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후 바르게살기운동중앙협의회(바살협) 회장을 역임한 신학진과 유정회 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지낸 신상철이 이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일제+이승만 정권+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까지 가담해 '4관왕'을 달성한 친일인사는 몇 명이나 될까? 구한말부터 전두환 정권이 막을 내린 1988년 까지 100년에 가까운 시간을 관통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7명의 친일인사가 일제와 정권의 편에 서서 안락한 삶을 영위하고 사후에도 나라의 관리를 받고 있었다. 연세대학교 초대 총장을 지낸 백낙준과 최장수 대법원장 기록을 가진 민복기가 이에 해당한다.

백낙준은 1950년 연세대학교의 전신인 연희대학교가 설립되자 초대 총장에 취임했고 이어 문교부 장관으로 재임하기도 했다. 그는 '친일인사'의 신분으로 1970년 국민훈장 무궁화장을 받았으며 1985년 사망하자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었다.

대전 현충원 국가사회유공자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민복기는 대법원장 재직 당시 인혁당 사건의 상고를 기각하고 사형을 확정하기도 했다. 이어 그는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했다.

영천 호국원의 모습
 영천 호국원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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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충원 안장된 친일인사, 이장해야 할 것"

놀랍게도 현충원에는 '친일+이승만 정권+박정희 정권+전두환 정권'에 그치지 않고 제6공화국인 노태우 정권까지 가담한 인사도 안장되어 있었다. '5관왕'을 달성한 인사는 총 3명 이었다.

현재 서울 현충원 장군 묘역에 안장되어 있는 정일권은 박정희의 지시를 받아 외무부 장관을 지냈으며 1972년 10월 유신헌법이 통과될 때 민주공화당 의장을 맡았다. 또 1980년 신군부의 집권 이후 제5공화국의 국정자문위원을 지냈다. 그는 멈추지 않고 제6공화국에서는 한국자유총연맹 초대 총재를 역임했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된 고재필 역시 5관왕의 영예를 안았다. 육군 준장 출신인 그는 유신정우회 소속으로 제10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전두환 정권의 국정자문위원을 역임했다. 그는 이에 그치지 않고 노태우정권의 대한민국헌정회 부회장을 지냈다.

또 서울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김정렬은 일본군 항공 대위 출신으로 4.19혁명 당시 국방부 장관을 역임했다. 그는 1967년 제7대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임기 초기인 1988년까지 제19대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국립묘지, 국가나 사회를 위해 공헌한 사람들이 잠드는 곳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실제로 안장되어 있는 사람들을 따져보니 모든 안장자가 국가나 사회를 위해 공헌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이것이 2011년 '대한민국 국립묘지'의 현실이다.

친일인명사전편찬위원회 위원장인 윤경로 전 한성대 총장은 "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는 사람은 나라의 독립을 위해 힘쓰고 애국활동을 해 온 사람"이라며 "과거 일제강점기에 친일행적이 있는 사람은 현충원에 안장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윤 전 총장은 "쉽지 않지만 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는 친일인사를 제대로 정리해 이장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며 "한 번 안장되었으면 끝이라는 의식이 계속된다면 현충원의 명예는 실추될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덧붙이는 글 | 윤성원·이주영·김민석 기자는 오마이뉴스 14기 대학생 인턴기자입니다.



태그:#현충원, #친일인명사전, #친일파, #국립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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