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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김양자(48)씨가 화재로 불탄 선박을 대신해 새로 구입한 새 어선이 만대항으로 입항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새 어선을 기다리며 지난 1일 김양자(48)씨가 화재로 불탄 선박을 대신해 새로 구입한 새 어선이 만대항으로 입항하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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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충남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 김양자(48)씨가 굳은 얼굴로 선착장에서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서 있다. 곧이어 먼 바다서 엔진소리를 내며 곱게 페인트칠 한 배 한 척이 모습을 드러냈다.

배가 닻을 내리고 선착장에 정박하자 근처에서 뜨거운 햇살을 피해 옹기종기 모여 있던 주민들이 곱게 차려입은 배를 구경하고자 모여들었다. 덕담이 오고갈 수도 있는 상황인데 모여든 주민들은 죄다 입을 굳게 다문 채 선뜻 말을 꺼내지 않는다.

온 가족이 고기 잡는 배로 생계를 꾸려온 김씨네는 선박화재로 하루아침에 밥벌이 수단이 재로 변했다. 허망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억누를 수 없는 분노가 차 올랐다.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몸을 추스르기 위해 발버둥쳤다.

김씨는 다시 어선을 구입하기 위해 슬하에 자식들이 모아둔 예금에 손을 됐다. 모자라는 돈은 사채로 끌어다 충당했다. 화재 발생 후 어업활동을 중단했으나 고용한 선원을 잠시라도 그만두게 할 수는 없었다. 요새는 뱃일 하려는 이들이 없기 때문이다. 두 달 사이 김씨는 빚만 5000만 원 늘었다. 일 년도 안 돼 6.67톤 규모의 배를 또 다시 구입하게 될지 김씨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화마에 불탄 어부의 가슴이 좀처럼 아물어들지 않고 있다. 사고발생 60여 일이 지났지만 피해주민들에게 남은 것은 늘어난 빚뿐이다.

시골어촌 마을에 어둠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지난 7월 5일. 이날 새벽 1시경 충남 태안군 이원면 내리 만대항 선착장에 정박해 있던 어선에서 불이나 9척이 불에 타는 사고가 발생했다.

화재발생 3시간 만에야 비로소 진화된 이날 화재의 재산피해는 경찰 추산 3억6000여만 원. 7척은 불에 타 제 모습을 잃었고 나머지 2척은 그나마 형체를 알아 볼 수 있을 정도였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조사 결과 원인을 정확히 알 수 없는 화재가 한 척의 선박에서 발생해 불이 옮겨붙은 것으로 파악됐다.

지난 7월 5일 충남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 선착장에 정박중이던 어선 9척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불에 탄 모습.
▲ 화재로 불타 선박들 지난 7월 5일 충남 태안군 이원면 만대항 선착장에 정박중이던 어선 9척이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불에 탄 모습.
ⓒ 태안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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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까지 배를 구입하지 못한 조일현(46)씨의 마음은 더욱 더 타들어간다. 조씨는 5년 전 정부에서 융자를 받아 어선을 구입했다. 추가로 필요한 비용은 수협에서 융자받은 영어자금으로 대처했다. 이렇게 구입한 어선은 그의 전 재산이고, 전부였다.

허나 어렵사리 구입한 배는 화마에 불타 순식간에 재로 변해 하늘로 날아갔다. 그의 배는 이제 서류상에만 존재하는 어선이다. 빚을 내서라도 어선을 구입하고 싶지만 상황이 녹록치 않다. 문제는 돈이다.

조씨는 새로 어선을 구입하기 위해서는 1억3000만 원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그런데 돈이 없다. 배를 구입하기 위해 정부에서 융자받은 2000만 원도 지난해 겨우 200만 원 갚았다. 서류상 존재하는 배이지만 어업허가권과 선박증 등을 팔면 3000~4000만 원 정도는 족히 받을 수 있단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다. 정부 융자금과 수협의 영어자금을 되갚으면 조씨 몫으로는 한 푼도 남지 않는다. 도리어 빚을 내서 빚을 갚아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

생계를 꾸려나가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어선을 새로 구입해 빚을 갚아나가는 것인데, 앞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눈앞이 막막하기만 하다. 사고 초반만 하더라도 정부와 충남도, 태안군 등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허나 시간이 갈수록 화재사건은 관심에서 멀어지고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져갔다.

껍데기뿐인 선박을 건진 김봉선(59)씨의 상황도 마찬가지. 불행 중 다행인 격으로 김씨 소유의 어선은 불에 죄다 재로 변하진 않았다. 수리만 끝내면 언제든지 다시 푸른빛 바다를 항해할 수 있다.

하지만 김씨의 어선은 검게 그을린 모습 그대로 만대항 선착장의 한켠에 우두커니 서 있다. 김씨가 감당하기엔 수리비용이 너무 많다. 선박 제조업체에 알아보니 4000~5000만 원정도 선이란다.

고기잡이 배들이 입항할 때면 만대항 근처는 쳐다보지도 않을 정도로 냉가슴을 앓고 있지만 하소연할 곳도 없다. 다 타버리고 재만 남은 다른 선박에 비하면 그나마 사정이 낫기 때문이다. 김씨 가족은 진화작업에 필요한 물을 채우기 위해 불타는 선박들을 뒤로 하고 화재현장을 이탈한 소방차가 못내 원망스럽다.

이러한 이유로 이호석(50)씨는 소방당국이 책임을 지고 피해어민들에게 피해보상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씨는 만대항 주변에 분말 소화기가 설치만 되어 있었어도 만대항 선박화재가 대형화재로 번지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설명한다.

더욱이 기름이 실린 어선에 물을 이용해 진화작업을 한 탓에 불길이 쉽사리 잡히지 않아 강풍주의보로 선착장에 입항해 다닥다닥 붙어 있던 배들로 옮겨졌다는 것. 고로 이씨는 정부를 상대로 피해보상청구를 진행해 나가야 한다고 읊조렸다.

결과적으로 이번 화재의 책임은 법정에서 가려질 예정이다. 태안해경은 이번 사건을 대전지방검찰청 서산지청으로 지난달 송치했다.

갑작스레 찾아와 어민들의 삶을 송두리째 앗아간 화마. 사고발생 60여 일이 지났지만 여전히 피해주민들의 신음은 이어지고 있다.

화재영상 <태안군청 제공>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yttifiJ10tc$
http://tvpot.daum.net/clip/ClipViewByVid.do?vid=HezOmkn6FEw$


태그:#충남 태안, #선박화재, #태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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