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지난 7월 27일 발생한 집중 폭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 우면산 기슭이 무너져 예술의 전당 앞 도로부터 사당사거리 사이 남부순환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지난 7월 27일 발생한 집중 폭우로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 가운데, 28일 오전 서울 서초구 방배동 인근 우면산 기슭이 무너져 예술의 전당 앞 도로부터 사당사거리 사이 남부순환도로가 통제되고 있다.
ⓒ 유성호

관련사진보기


서울시가 하나마나한 조사를 했다. 우면산 산사태 원인이 '집중 호우, 높아진 지하수위, 토석과 유목'에 의한 것이란다. 그런데 이런 사실을 모르는 국민이 대체 어디 있나. 비가 오지 않았는데도 산사태가 났다거나, 산사태가 아니라 눈사태라고 주장하는 국민이 있다면 모를까 초등학교 교과서에나 실릴 법한 원리를 조사 보고서라고 내놓았다.

정말 서울시민이 기대했던 내용은 '우면산의 집중 강우를 왜 예측하지 못했나' '산사태 예방 대책과 관리는 적절했나' 등이었다. 또 '산사태의 직접적인 원인이었던 많은 공사는 어떻게 승인되고, 방치되었는가'도 관심사다.

그런데 지난 15일 발표된 서울시 조사단의 보고서에는 우면산이 산사태 취약지구로 지정되지 않았던 원인, 여러 종류의 막개발과 공군부대 토목공사 등이 관리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서는 나와있지 않다. 수해복구 공사장이 산사태를 키운 사실이나, 위험 지역에 주택단지가 들어선 문제 등도 다루지 않았다.

우면산 산사태 조사 결과 발표... 결국 하늘 탓?

특히, 8월 1일 중간보고서에서는 방배동 삼성 래미안아파트 방면 산사태의 원인을 공군부대 때문으로 주장했으나, 이번에는 연관 관계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산사태 다음날 현장을 방문했던 전문가와 기자단의 확인 내용이나 판단들은 고려하지 않았다. 국방부 관계자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군부대 아래에서 지하수가 지표면으로 치솟으며 땅이 무너졌다"는 등의 의견들도 검토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래 사진에서 살펴 볼 수 있듯이 군부대의 배수 관리 실패, 더 정확히 말하면 홍수 대책을 세우지 않은 점도 산사태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서울시의 조사결과 발표로 이번 산사태 문제는 누구에게도 책임을 물을 수가 없게 되었다.


산정상부 군부대 작업 공간. 200여 평에 고인 물이 배수 시설이 막히면서 둔덕을 넘거나, 지하로 흘러 나간 흔적이 보인다.
 산정상부 군부대 작업 공간. 200여 평에 고인 물이 배수 시설이 막히면서 둔덕을 넘거나, 지하로 흘러 나간 흔적이 보인다.
ⓒ 염형철

관련사진보기


붕괴 지점 바로 아래 있던 군부대 철망 수십미터가 유실될 정도로, 산사태는 군부대 인근부터 본격화됐다.
 붕괴 지점 바로 아래 있던 군부대 철망 수십미터가 유실될 정도로, 산사태는 군부대 인근부터 본격화됐다.
ⓒ 염형철

관련사진보기


또한 조사단장이 15일 기자회견장에서 확인한 바에 따르면, 이번 조사는 8월 24일 서울시 무상급식 주민투표 이전에 마무리 됐음에도 20일 넘게 발표를 미뤄왔다. 사태가 잊혀지고, 논란이 잠잠할 때까지 그리고 주민투표에 혹시라도 영향을 미칠까봐 늦게 발표한 게 아닌가 싶다. 16명이 사망하고 수백 가구가 피해를 봤지만 '꼼수'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서울시가 대책이라며 내세운 수백억 원 규모의 토목사업들이 효과가 있을지도 의문이다. 산사태 원인이 군부대의 대비 부족과 서초구청 등이 벌인 과도한 개발 사업들 때문이라면, 이런 시설들은 필요가 없다. 괜히 우면산을 흉측스럽게 하고, 세금만 축낼 뿐이다. 따라서 사태 원인조차 파악하지 않으면서, 대책을 쏟아 놓는 서울시의 태도는 앞뒤가 맞지 않는다. 마치 옷 입을 사람은 정하지도 않고, 옷을 만드는 것과 같이 황당한 일이다.   

서울시만 책임을 면했다

또 이들 사업을 수주하는 곳이 우면산 산사태를 야기했던 여러 공사들(사방공사, 하천복원공사 등)을 진행한 산림조합중앙회 등이라는 것도 문제다. 산림청 관할 기관에 공사를 몰아주겠다는 것이겠지만, 결국 불필요한 공사를 벌이면서 국고를 탕진할 우려가 있다.

그리고 서울시는 산사태 복구비로 116억 원을 이미 집행하고 있다고 밝혔는데, 이는 사태의 원인을 확인할 수 있는 현장과 알리바이의 훼손을 의미한다. 때문에 앞으로는 기껏해야 원인을 둘러싼 논쟁 정도만 가능하게 됐다. 서울시가 바라는 바가 결국 이루어진 것이다.

산사태 전문가인 이수곤 서울시립대 교수는 이번 사태가 난 후, 사고 원인 조사를 국제기구에 의뢰해야 한다고 여러 차례 주장했다. 서울시가 가까운 분들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사고 원인을 천재라 주장한다면, 적절한 대책을 마련하기도 어렵고, 주민이 피해배상을 받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이라고 했다.

안타깝게도 그의 의견은 한 치도 틀리지 않았고, 소송을 준비하던 피해 주민들은 황망한 상황에 놓였다. 서울시의 책임을 덮어줄 편파적인 분들로 조사단을 구성하고, 조사 방식과 절차 등을 음모적으로 추진했을 뿐만아니라, 구부리고 짜맞춘 조사결과로 사회를 우롱한 것이다.

서울시의 이번 조사와 결과 발표는 우리 사회의 치수 정책이 정치 공무원들에 의해 어디까지 오염되어 있으며, 그 결과로 사회가 져야할 불안, 불신, 예산 낭비 등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보여주었다. 공무원들은 책임을 피하고, 토목업자들은 큰 돈벌이를 만나게 됐지만, 덕분에 피해 주민들은 배상을 청구하기 어려워 졌고, 시민들은 막대한 세금만 물게 됐다.

하긴 2009년 호우 때는 63년 빈도라 했고(2개월 홍수량 기준), 2010년도 호우 때는 300년 빈도(세 시간 기준), 올해는 103년 빈도(1시간 빈도)라고 주장하던 서울시가 행정실패를 스스로 인정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태그:#우면산, #산사태, #서울시, #천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