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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으로 고통받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 적어도 돈이 없어서 치료를 못 받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지금 시급한 과제는 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크게 높이고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일이지, 부자들에게만 혜택을 주는 영리병원 설립이 아닙니다."

-17일 <한겨레> "건강보험 무너뜨릴 영리병원 설립안돼"

 

'내가 아는 정형근이 그 정형근인가'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지난 16일 퇴임한 정형근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이 변신이 사람들 주목을 받고 있다. 정형근 하면 '공안검사'라는 단어가 먼저 나올 정도로 1983년부터 95년까지 국가안전기획부(현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국장 재직할 때 동안 고문을 직접 지시하는 등 강압 수사를 해 민주 인사들에게는 공포와 두려움, 분노의 대상이었다. 

 

이런 이유로 2000년 16대 총선 때 총선시민연대는 그를 낙선 대상자로 지목했다. 하지만 정 전 이사장은 '고문'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그는 1996년 제15대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부산 북·강서갑 지역구에 신한국당 공천으로 출마해 당선되어 3선 의원을 지내면서 의정활동도 보수색채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런 그가 지난 2008년 9월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에 취임 한 후부터는 영리병원 설립반대와 건강보험 보장 확대 등 공공의료 강화를 끊임없이 제기해 영리병원을 추진하는 이명박 정부와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줘 많은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공안검사' 정형근='공공의료전도사' 정형근은 어울리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퇴임을 얼마 남겨두지 않고는 중앙 일간지에 기고를 통해 건강보험 건전성과 영리병원보다는 공공의료가 더 중요하다 강조했다.  

 

지난 14일 <서울신문>에 기고한 '총액계약제, 언제까지 장기과제여야 하나' 제목 글에서 "건강보험 재정문제는 너무나 시급하다. 지금부터 총액계약제의 도입을 위해 매진해도 늦었다. 의료인들의 반대와 제반여건 미비를 탓하며 미루다가는 건강보험재정 안정을 위한 가장 효율적인 카드조차 무용지물이 될 수 있다"며 '총액계약제'를 "사회주의 의료제도"라며 강하게 반대하는 의료계 반대에 머뭇거리는 정부를 정면으로 비판했다. 

 

"질병으로 고통받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다."

 

총액계약제란 현행 후불지급 방식과는 달리 급여 비용을 지출하는 보험자(건강보험공단)과 진료 서비스 제공자(의료기관) 사이에 미리 진료보수총액을 정하는 계약을 체결, 총액의 범위 내에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불보상제도를 말한다. 총액계약제가 도입되면 건보료 지출액을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어 건강보험 건정성도 유지하고, 환자들 의료비도 지출을 줄일 수 있다. 한 마디로 정부와 환자 모두 좋은 제도이다.  

 

그런데 정형근 전 이사장은 총액계약제를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주의라면 알러지 반응을 보여왔던 정형근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하지만 정 전 이사장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데는 좌우가 따로 없습니다"고 단호하게 말한 것이다. 질병에 좌우가 없다는 그의 말에 작은 의구심이 들지만 많은 사람들은 100번, 1000번이라도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 이사장은 또 15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영리병원보다 공공병원 확대가 먼저다'는 글에서 "우리나라의 의료보장체계는 너무나 불안하다"며 "특히, 공공의료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고 지적했다. 공공의료 기반이 취약한 우리나라 의료체계에 영리병원이 도입되면 더 열악한 의료환경에 처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표방한 것이다.

 

그는 이어 "의료선진국의 공공병원 비중을 보면 캐나다, 덴마크는 100% 수준이고, 노르웨이, 영국, 스웨덴 등도 90%가 넘는다. 민간보험 중심인 미국마저도 30% 수준인데 우리나라는 10%로 OECD 국가 중 최하위다"며 영리병원이 대세인 미국보다 오히려 공공비중이 더 열악하다며 영리병원 도입 반대를 거듭 강조했다.

 

"영리병원 우호 임채민 우려된다"

 

그는 특히 임채민 내정자에 대해 우려를 제기했다. "임채민 복지부 장관 내정자가 영리병원에 매우 우호적이라는 점도 걱정"이라며 "민간병원이 90% 이상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영리병원마저 도입된다면 우리나라 건강보장체계는 어떻게 될까? 영리병원 운영자들은 주주들의 더 많은 배당금을 위해 돈 되는 진료를 우선시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말했다.  

 

영리병원 전도사를 내정한 이명박 대통령을 에둘러 비판하면서 영리병원이 결국 주주들을 위한 돈 잔치가 될 것이라는 비판이다. 결국 서민들만 제대로 된 진료는 받지 못하는 의료양극화만 불러 올 것이라는 말이다.

 

특히 그는 "생명과 직결되는 중요한 진료라도 위험부담이 크거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응급실, 중환자실, 분만진료 등은 피하고, 소위 돈이 되는 성형수술, 비만치료 등 비급여는 크게 늘려 나갈 것"이라며 "누가 필자에게 '국민건강보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우리나라에 우수한 의료진과 최고의 시설을 갖춘 공공병원이 50% 이상은 되어야 한다'고 확신을 가지고 대답할 것"이라는 말에는 공공의료 전도사를 넘어 수호자같다.

 

그가 얼마나 공공의료에 확고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분명히 한 것이다. 그의 결론은 이렇다.

 

공공병원 확대는 난마처럼 얽힌 우리 보건의료문제를 풀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에게는 영리병원보다 공공병원이 먼저다.

 

정형근 전 이사장은 아직도 '공안검사'딱지를 완전히 떼지 못했다. 대공분실에서 그가 한 일이 아직도 진행형이기 때문이다. 사죄할 일들이 많이 남아있다. 입으로는 고문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양심은 진실을 말하지 않았을 것이고, 고통 당한 이들이 아직 호흡하고 있다. 언젠가는 반드시 사죄해야 한다.

 

하지만 공공의료를 위한 정형근의 변신은 진심임을 믿고 싶다. 그러므로 거의 변신은 무죄라고 할 수 있다.

 


태그:#정형근, #영리병원, #공공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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