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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철 회장이 지난해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낸 탄원서의 일부.
 이국철 회장이 지난해 6월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낸 탄원서의 일부.
ⓒ 구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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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국철 SLS그룹 회장이 지난해 6월 산업은행이 워크아웃된 SLS조선을 이용해 SLS그룹의 주력기업인 SLS중공업을 파산시키는 데 앞장섰다는 내용이 담긴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확인됐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SLS조선과 산업은행의 SLS중공업 죽이기에 대한 탄원서'를 보면, 이 회장은 산업은행이 SLS조선의 워크아웃 과정에 적극 개입해 SLS조선의 경영권을 장악했고, 이를 이용해 SLS중공업에 지급해야 할 154억여 원의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아 SLS중공업을 파산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주장했다.

탄원서 제출에는 이국철 회장과 그룹 계열사인 SLS중공업, SP산업, SP로지텍, 디자인리미트 등이 참여했다. 탄원서는 지난해 7월 국민권익위와 공정거래위를 거쳐 부산지방공정거래사무소로 넘어갔지만 '무혐의' 처리됐다.  이와 관련 부산지방공종거래사무소와 산업은행측은 'SLS조선 죽이기 의혹'을 일축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제출했는데 금융위원회나 검찰청이 아닌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는 국민권익위, 공정거래위 등으로 통보해 진실외면하기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신아조선 '1700억원 분식회계' 발견한 이후 산업은행과 갈등 시작

SLS중공업은 국내 철도차량 제작분야를 현대로템(구 한국철도차량)과 양분해온 기업이다. 이 회장은 지난 1994년 법정관리중이던 해태중공업(철도차량 부품제조회사)을 인수해 SLS중공업을 일구었다. 1999년부터 직접 철도차량을 제작해 납품해 왔던 SLS중공업은 무궁화호 객차를 직접 설계하고 국산화한 공로를 인정받아 김대중 정부 시절인 지난 2002년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이후 SLS중공업은 지난 2005년 12월 신아조선을 인수해 조선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신아조선은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이 현재의 대우해양조선을 사들인 후 사원조합으로 넘긴 회사였다. 당시 현대금속(21.88%)과 유수언 전 신아조선 대표(20.09%), 그린화재해상보험(8.75%), 신아조선 우리사주조합(8.14%), 옥포공영(5.31%), 서경산업(5.20%) 등이 신아조선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

SLS중공업은 유수언 전 대표와 현대금속, 그린화재해상보험, 서경산업 등이 보유한 주식 64.3%를 약 370억 원에 인수한 데 이어 우리사주조합과 임직원들이 보유하고 있던 주식까지 인수했다. 이런 과정을 거쳐 이 회장이 대주주로 있던 SLS중공업은 SLS조선 전체 주식 중 90.23%를 보유하게 됐다(2009년 11월 현재).

흥미로운 사실은 산업은행이 구 신아조선의 주거래은행일 뿐만 아니라 15%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이국철 회장은 청와대에 낸 탄원서에서 "산업은행은 선수금 환급 보증(R/G보증) 6억 달러를 100% 지급하였고 1000억 원을 대출하고 일부 출자전환으로 지분 15%를 취득하는 등 구 신아조선을 적극 지원하였다"고 말했다.

그런데 탄원서에 따르면, SLS중공업이 신아조선을 인수한 후 산업은행의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는 신아조선이 유수언 대표 시절에 1700억 원의 분식회계를 한 사실을 이 회장이 발견하면서부터 본격화됐다.

이 회장은 "이에 SLS조선은 투명경영을 위해 이를 전부 SLS조선의 회계에 반영하였는데 산업은행은 SLS조선에 대한 신규대출을 중단하고 기존대출을 회수했고 내국신용장(L/C) 및 선수금 환급보증(R/G보증)마저 중단하기에 이르렀다"며 "이러한 산업은행의 횡포에 견디지 못한 SLS조선은 주거래은행을 하나은행으로 바꾸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은 "이러한 산업은행의 지원 중단에 SLS조선은 경영위기에 빠지게 되었는데 유수언(전 대표)과 산업은행 일부 인사는 SLS조선을 유수언에게 재매각할 것을 강요하였으나 SLS중공업은 이를 거절했다"고 주장했다.

결국 이 회장은 SLS그룹 일부 계열사와 서울 신사동 사옥, 청운동 자택 등을 매각해 마련한 1700억 원을 SLS조선 정상화에 투입했다. 그리고 2008년 초 산업은행 간부 출신의 김아무개씨를 계열사 부사장으로 영입했다. 산업은행과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국민권익위는 청와대로부터 받은 이국철 회장의 탄원서를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로 넘겼다.
 국민권익위는 청와대로부터 받은 이국철 회장의 탄원서를 지난해 7월 공정거래위로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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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출신이 워크아웃 주도하고, SLS조선은 154억여원 미지급

하지만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9월부터 시작된 검찰수사로 인해 또다시 산업은행과 갈등을 겪게 됐다. 검찰조사 이후 SLS조선이 워크아웃되는 과정에서 나타난 '갈등'이었다.   

창원지검 특수부는 이 회장이 SLS조선에서 400억 원을 배당한 뒤 이를 횡령해 열린우리당에 제공했다고 보았다. 하지만 창원지검은 같은 해 12월 "이 회장 및 회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한 사실은 없다"고 공식 발표했다. 검찰이 애초 노렸던 '비자금 조성과 정관계 로비 혐의'는 포착하지 못한 것이다.

이 회장은 "회장과 임직원들이 매일 새벽까지 진행되는 검찰조사를 받는 동안 SLS조선에는 경영공백이 발생했고, 세계적 불황과 조선산업의 침체로 인하여 SLS조선은 극심한 경영난에 빠져들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회장은 "이때 산업은행 출신으로 SLS그룹의 부사장이었던 김아무개씨가 회사 내에서 산업은행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며 "(김씨는) 도리어 회사를 압박하여 워크아웃을 신청하게 하고, (저에게) 경영권포기각서, 주식포기각서를 요구하기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이 회장은 "결국 (저는) 회사는 일단 살리고 봐야겠다는 생각에서 2009년 12월 17일 경영권포기각서와 주식포기각서를 산업은행에 제출했다"며 "SLS조선에 대해서는 2009년 12월 24일 워크아웃 개시 결정이 내려졌고 (저는)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고 말했다.

SLS조선의 워크아웃 과정에서 '50 대 1'의 감자가 진행돼 대주주가 SLS중공업에서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 바뀌었다. 이 회장은 산업은행, 수출보험공사 등 채권단에서 장악한 SLS조선이 SLS중공업에 지급해야 할 하도급대금 357억여 원 중 154억여 원을 지급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었던 SLS조선은 SLS중공업과 체결한 하도급 계약을 해지하고, "계약해지로 인해 SLS중공업으로부터 받아야 할 계약 선급금이 311억여 원이 존재한다"며 하도급대금 지급을 보류했다.

이 회장은 탄원서에서 "하도급 계약이 적법하게 해지되지 않았고, 적법하게 해지되었더라도 SLS중공업의 선급금 반환의무는 2010년 5월 31일에 발생했으며, 하도급 기본계약서상 SLS조선은 SLS중공업의 동의없이 다른 채권으로 하도급 대금을 상계할 수 없다"며 '공정거래법 위반'을 주장했다.

이 회장은 "SLS조선은 부당한 이유를 들어 무려 5개월이 넘도록 SLS중공업에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며 "심지어 SLS조선은 지급약속문서를 보내고, 지급합의서를 작성하여 약속하였음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어떤 회사가, 그것도 중소기업이 5개월이나 매출액이 없는데 회사를 정상적으로 유지할 수 있겠는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공정거래위 "미지급 하도급 대금 없었다... 민원인의 억지주장"

하지만 이 회장과 계열사의 '탄원'은 결국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지난해 6월 탄원서를 접수한 청와대 민정수석실은 이를 국민권익위로 이첩했다. 이에 국민권익위는 "민원서류를 검토한 결과 공정거래위의 소관사항으로 판단"됐다며 탄원서를 공정거래위로 넘겼다. 그리고 탄원서가 최종 도착한 곳은 부산지방공정거래사무소였다. 하지만 수개월간의 조사 끝에 '무혐의' 처리됐다.

부산지방공정거래사무소의 한 간부는 26일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당시 이 회장이 제기한 민원은 '그룹 해체'와 관련된 것이 아니라 SLS조선이 SLS중공업에 하도급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는 것"이라며 "조사 결과 지급되지 않은 하도급 대금이 없어서 무혐의 처리했다"고 말했다.

그는 "SLS중공업의 일감은 대부분 SLS조선으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전제한 뒤, "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SLS조선의 경영권을 행사하면서 하도급 선지급금이 과도하게 지급된 게 확인됐다"며 "선지급금이 더 많았기 때문에 하도급 대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문제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하도급 계약이 유지되는 한 하도급 대금이 지급되어야 하는 게 맞긴 하지만 SLS중공업은 선지급금이 더 많아서 지급할 하도급대금이 없는 경우"라며 "민원인이 억지주장을 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SLS조선 워크아웃 과정을 잘 알고 있는 산업은행 전직 간부는 "회사의 자금 유동성이 아주 안좋아서 워크아웃을 신청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국철 회장의 지시를 받아 워크아웃을 결정했다"고 '산업은행의 SLS조선 죽이기 의혹'을 일축했다.

다만 그는 "법정관리는 오너의 경영권까지 빼앗아 기업을 살리는 것이지만 워크아웃은 기업과 오너를 다 살리는 것인데 이것이 악용된 측면이 있다"며 "SLS조선의 경우 오너의 경영권까지 빼앗아가는 것으로 변질됐는데 이는 구조조정 법률의 원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런데 청와대 민정수석실 관계자가 지난 2009년 2월 통영에 내려가 이 회장 뒷조사를 벌였고, 7개월 뒤 창원지검 특수부가 이 회장과 계열사들을 상대로 수개월간 검찰수사를 진행한 점 등을 헤아리면 SLS그룹 탄원서의 운명은 이미 정해졌던 것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특히 SLS조선이 워크아웃 개시 결정(2009년 12월 24일)이 나기 직전 정부로부터 '6억불 수출탑'을 수상했다는 점을 헤아린다면 SLS조선의 운명이 실제보다 '사나웠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태그:#이국철, #SLS중공업, #SLS조선, #공정거래위, #청와대 민정수석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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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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