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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문득 학교 주위를 돌아보며 나는 자연이 주는 위대하고 아름다운 에너지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향기롭고 풍성하게 하는지에 대해 생각해 본다. 모든 것이 너무나 정교한 자연은 우리의 가치와 우리의 감정으로 예단 할 일이 아니다. 이 우주에서 공간과 시간의 흐름을 인지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인 인간에게도 자연은 언제나 그 범위를 넘어 인간을 압도한다. 관찰이 가능한 모든 곳에서 또 그것이 불가능한 모든 곳에서 우리의 의지나 개입과 무관하게 자연은 지속된다.

현관에서 우리를 반기는 꽃
▲ 붉은 색 제라늄 현관에서 우리를 반기는 꽃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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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현관에 여름 내내 피어있던 붉은 제라늄과 흰 제라늄이 이제는 조금씩 가을 햇빛에 선명도를 잃어가고 있다. 무엇이든 때가 있는 법, 시간의 질서 앞에 모든 것은 절대 평등함을 본다.

질서, 그리고 빛나는 아름다움

여물게 익어가는 벼 이삭
▲ 벼이삭 여물게 익어가는 벼 이삭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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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이고 익어가는 벼이삭
▲ 벼 이삭 하늘을 이고 익어가는 벼이삭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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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코스모스
▲ 코스모스 가을 햇살을 가득 받고 있는 코스모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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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들판에 노랗게 익어가는 벼 이삭들은 단단해지기 위해 온 힘을 쓰는 듯 잔뜩 몸을 수그리고 있다. 푸른 하늘을 이고 있는 저 벼이삭이 이 가을 우리에게는 그저 위대함으로 보인다. 아는 듯 모르는 듯 슬그머니 꽃을 피운 코스모스는 바람에 살랑대고 여름 내내 받은 햇살 덕에 조금은 퇴색한 소나무 편백나무 잎들은 겨우내 추위와 맞서기 위해 한껏 태양빛을 받아들이는 한편 곧은 줄기들은 그 당당함으로 우리를 든든하게 한다.

둑방길에 피어 나는 억새
▲ 억새 둑방길에 피어 나는 억새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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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 둑길을 따라 무성했던 잡초들은 부지런한 농부들에 의해 베어지고 겨우 살아남은 억새는 번식을 위해 씨앗을 가득 품은 꽃을 피워냈다. 

철 지난 참외꽃
▲ 참외꽃 철 지난 참외꽃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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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난 누런 호박
▲ 호박 상처난 누런 호박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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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확이 끝난 밭 어귀에 늦게 피어난 노란 참외 꽃이 왠지 서글퍼 보이는 이유가 제시절을 만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들을 떠올렸기 때문이라면 너무 확대 해석한 것인가? 그 옆으로 아무렇게나 뒹굴고 있는 호박은 상처 입은 채로 누렇게 늙어 가고 있다.

아주심기 끝난 딸기 비닐 하우스
▲ 딸기비닐 하우스 아주심기 끝난 딸기 비닐 하우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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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쪽에는 학교 주위 마을 사람들의 겨울과 봄 소득의 주요한 작물인 딸기 모종이 비닐하우스에 아주심기를 한 후 이제 조용히 겨울을 기다리고 있다. 본래 제철인 5월 6월의 딸기는 이미 오래 전에 사라진 채 하우스 딸기에 우리의 입맛은 적응되어 버렸지만 농민들의 소득을 생각해보면 제철의 입맛쯤은 포기해야 되는지도 모를 일이다.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대나무
▲ 대나무 파란 하늘과 조화를 이룬 대나무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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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뒤편으로는 대나무 밭이 있어 오늘처럼 시원한 가을바람이 부는 날에는 댓잎 서걱대는 소리에 마음을 뺏긴다. 지난 봄 하루가 다르게 뽑아 올리던 어린 죽순들은 이제 완전히 딱딱해진 어른 대나무가 되어 무성한 잎으로 파란 하늘과 잘 어울리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고들빼기 꽃
▲ 고들빼기 길가에 아무렇게나 핀 고들빼기 꽃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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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난 고들빼기 노란 꽃이 바람에 한들거리고 있고 내년 여름을 위한 마늘농사가 벌써 시작된 밭에는 구멍이 뚫린 비닐을 덮어쓴 마늘 조각들이 새 싹을 틔우려 애쓸 것이다.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대비를 이룬 단풍잎
▲ 단풍잎과 하늘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멋지게 대비를 이룬 단풍잎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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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학교로 돌아오는 후문 쪽에는 단풍나무들이 이제 막 붉은 기운을 땅으로부터 뽑아 올리고 있다. 파란 하늘과 대조를 이룬 단풍은 그것만으로도 우리에게 빛나는 영감을 제공한다.

창밖을 보는 침묵의 수업

위대한 침묵의 수업과 아름다운 질서
▲ 교실 밖으로 보이는 들판 위대한 침묵의 수업과 아름다운 질서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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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은 이렇듯 단 한순간도 쉬지 않고 계속되고 있으며 그 어떤 인간의 언어로도 그 완벽함을 표현할 수 없다. 농촌학교의 가을은 교실에서만 가르치는 힘 빠진 지식과는 너무 다른 위대한 자연의 질서 그 자체이므로 나는 아이들에게 문을 열고 밖을 보라고 한다.

한 시간 동안 내가 쉼 없이 떠들어대는 교과서의 지식은 저 들판 곳곳에서 일어나는 우주와 자연의 위대한 침묵에 비할 수 있겠는가! 처음 창 밖을 보라고 이야기하면 아이들은 조금 소란스럽다. 그러다가 밖을 보는 시간이 조금 흐르면 예상과는 달리 아이들은 조용해진다.

요즘 고등학교 학생들이 예전과는 달리 너무 빨리 세상에 물들었다고 해도 아직은 어리고 고운 심성이 우리 어른들보다는 많이 남아 있으므로 저 자연과 질서의 아름다움 앞에 숙연해지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리라 생각된다.


태그:#가을, #곤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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