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스님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은 스님
ⓒ 이안수

관련사진보기


3일 아침 오랜만에 처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였습니다. 처는 비교적 길게 몸살을 앓고 있는 제게 종합건강검진을 받으라고 어르고 있었습니다.

그때 마침 야초스님께서 불쑥 들어오셨습니다. 이분은 길을 도량 삼는 어느 것에도 걸림이 없는 유쾌한 스님입니다.

절대 병원 같은 곳은 가지 않겠다는 저와 그 의사를 번복시키기 위해 저를 어르고 다잡는 모습을 보신 스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부부는 위선자로 살아야 해요. 두 사람이 있을 때는 남편을 위협하더라도 남이 있을 때는 금실만 보여주어야지요. 저처럼 입이 가벼운 사람들이 남들에게 '그 집은 부인이 아주 남편을 애 다루듯이 하더라'고 소문을 내고 다니면 어쩝니까. 사실 남의 집 개도 주인이 애지중지하면 남들이 함부로 못 해요. 그런데 주인이 먼저 개를 개 다루듯이 하면 지나가는 사람조차도 그 개에게 한 번씩 발길질하고 갑니다. 사람은 더하겠지요. 혹 내외 간에는 다투는 일이 있어도 남이 볼 때는 받들어야 남들도 그 남편을 더 귀하게 예우하지요."

스님의 말씀에 처가 답답한 듯 스님에게 다시 고자질을 했습니다.

"도대체 말을 듣질 않아요. 몸은 혹사하고 한 번 검진 받아보라고 통 사정을 해도 그 말을 듣지 않으니 이보다 더 바보가 어디 있어요? 그런 사정을 아는 형부가 그제 그러시더라고요. '이서방보다 더 어리석은 사람이 없다'고."

스님이 다시 답했습니다.

"속가에서 '남편은 큰아들 같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자는 어려서도, 커서도 문젯거리인 아들 같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남편을 '큰아들 같이' 대하기 때문에 문제인거에요. 정말 '큰아들로' 대하면 많은 문제가 사라집니다."

슬쩍 우리 자리에 끼인 첫 딸 나리가 말했습니다.

"맞아요. 예전에 선배님이 그랬어요. '남편은 집에서 3첩 반상을 먹여도 나가서는 왕의 수라상처럼 12첩 반상으로 모신 것처럼 예우하라' 했어요."

스님과 딸을 저의 원군으로 맞은 제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자 스님의 표적이 저를 향했습니다.

"일을 잘 해야 해요. 일을 잘한다는 것은 끼니를 걸러 일하거나 밤새워 일을 많이 혹은 오랫동안 하는 것이 아니에요. 일에 서툰 사람일수록 무리를 해요. 지게를 져서 물건을 나르는 것도 일에 서툰 사람이 두 번 나르기 싫어서 무리하게 한 번에 나르려고 하지요. 그리고 먼저 지쳐 눕습니다. 일을 잘하는 사람은 무리하지 않게 두 번에 날라요. 결코 무리하게 일하는 것이 일을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제가 몸살을 앓고 있는 현재의 상항에 대해 처와 저를 위로했습니다.

"저도 지난해 크게 앓았었는데, 아파보니 알겠더라고요. 누구나 전혀 아픈 곳이 없는 것 보다 간혹 적당히 아픈 것이 오히려 건강한 것을…. 아파보니 더 겸손해지고 조심하게 되더이다."

마침 무청에 된장을 넣어 끊인, 스님이 좋아할 만한 국이 있으니 밥 한그릇 아침으로 말아 드시라고 말했지만 손을 저었습니다.

"저 같으면 아침 공양을 이미 하셨더라도 이미 한참이 지났으니 먹어두겠습니다. 길을 떠도는 사람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확신이 없잖아요."

저는 강권하는 말을 덧붙였지만 사실 스님은 매사에 과하게 쌓아두는 일은 없으니 충분히 이해할만 했습니다.

다시 돌아가시는 때에 주차장으로 함께 나오니 타고 오신 차가 예전의 오래된 한국의 경승용차가 아니었습니다. 궁금증이 동해서 물었습니다.

- 이 고급한 외제 승용차는 스님께서 웬일입니까?
"저와 막연한 한 처사님이 계시는데 그 분이 중국에서 몇 개월 지낼 일이 있어서 한국을 떠나면서 그때까지 편한 차를 타라고 제게 주었어요. 제 자동차보험도 추가시켜서…."

- 스님이 쿠페를 타고 다시면 주행하는 옆 차 운전자의 시선이 곱지 않을 텐데요?
"몇 해 전에는 차의 성능이 궁금해서 아는 이의 큰 벤츠승용차를 한 시간 몰아본 적이 있어요. 말씀대로 차를 세울 때마다 주변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어요. '중이 무슨 돈이 저리 많나!' 하는 표정들이었지요. 남의 사정이란 당사자가 아니고서는 모르는 거예요. 잠시 벤츠를 운전한 제가 그른 것이 아니라 제게 돈 많은 보살 등이라도 쳤나보다고 생각한 그 사람이 그른 거지요."

스님의 차 속 운전석 옆자리에는 아마 누구집 담벼락 아래의 쓰레기더미에서 수거를 기다리던 지난 추석의 추석선물백같은 얇은 천 가방에 스님이 소유한 모든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목탁, 요령(鐃鈴), 옷 한 벌….

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함께 포스팅됩니다.



태그:#야초, #스님, #남자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