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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언제갔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영주의 부석사에 다녀왔다. '무량수전 배흘림 기둥에 서서'란 책도 떠오르고... 그 배흘림 기둥의 후덕한 느낌은 그대로여서 절로 두 팔로 기둥을 포옹하였다. 하지만 여기 저기 불사를 너무 많이 하고 있고 공사 먼지가 날려서 부석사의 법당 현판도 잘 보이지 않고 법당입구도 도떼기시장을 방불케했다. 하지만 부처님은 언제나 그렇듯이 유려한 자태와 유연한 미소로 어서오라고 반기는 듯하였다.

 

부석사 올라가는 입구에는 마침 알맞게 홍조를 띠고 있는 사과들이 있어, 오랜만에 부석사를 찾는 내 가슴에 가을정취를 한껏 심어주었다. 아직 단풍이 들지 않은 봉황산 초입에서 가을맛을 깊이 느끼게 하는 것이 바로 다양한 사과였다. 어릴 적 먹었지만 요즘은 보기 어려운 홍옥도 있었는데 사고 싶었지만 사과봉지를 들고 부석사를 오르내릴 자신은 없어서 그냥 '사과야 안녕!'하고 인사만 나누었다.

 

새벽에 집을 떠나 두시간 이상 운전을 하고 온천에서 목욕재계를 한 뒤 백 년 이상의 노송들을 마주하고 붓을 잡기를 서너 시간... 그리고 같이 공부한 서우들과 늦은 점심을 한 후 오른 부석사길이라 몸이 가뿐하지 않았다. 연휴라서 사람이 너무 많아 부석사 전경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지만 법당을 지나 위로 조금 올라가니 한적한 숲과 저 멀리 바라보이는 첩첩이 산자락들이 눈길을 가라앉혀 주었다.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신 조사당 앞에는 한 폭의 그림같은 나무가 있었는데 의상대사가 지팡이를 꼽았는데 그 곳에서 잎이 자라고 꽃이 피어난다는 전설도 있다. 법당에서 조사당으로 올라가기 전에 무량수전 마당에서 내 눈을 끄는 석등이 있었다. 석등 자체가 마치 연꽃위에 피어나는 불꽃같은 팔각주의 아름다움이 돋보였지만 그보다 내 눈을 이끈 것은 석등의 사면에 새겨진 보살입상들이었다.

 

마침 사진기를 가지고 있는 친구에게 그 입상중에 얼굴표정이 잘 보이는 하나를 찍게 하였다. 그 입상의 표정을 보는 순간 내게는 석등 자체의 아름다움은 저 멀리 사라지고 오직 그 보살의 표정만이 눈에 들어왔다. 보살의 표정은 얼굴의 한쪽은 미소를 짓는 눈매이고, 한 쪽은 비련의 눈매였다. 자비로움은 인자한 것이 아닌 기쁨과 슬픔을 함께 포용한다는 것을 잘 나타내는 표정이었다.

 

어떤 때는 기쁘지만 어떤 때는 슬픔이 교차하는 일상에서 언제나 웃을 수만은 없다는 것이 바로 인생인 것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주는 것이 마음에 깊이 닿았다. 슬픔을 가슴 깊이 간직하는 누군가에게 그저 웃으라고만 하면 공감을 주지 못한다. 마찬가지로 늘 웃기만 하는 사람에게 슬픈 사람을 이해하라고 하면 그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다.

 

유독 그 석상의 표정이 오랜 여운을 가슴에 남기어 이렇게 글을 쓰는 것은, 나의 기쁨과 슬픔 뿐 아니라 나와 함께 살아가는 벗들의 희로애락도 같이 가슴에 끌어안고, 두 손을 합장하는 마음으로  균형잡힌 외줄타기 하는 그런 삶이고 싶은 게 소망이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태그:#부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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