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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가 일으킨 경제위기, 99%가 문제해결에 나서다

월가 시위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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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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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월가에서는 십 여 년 전 '금융혁명'이 유행한 이후 오랜만에 '혁명'이라는 용어가 등장하고 있다. 예의 금융혁명이 아니라 금융혁명으로 창조해낸 월가의 금융시스템을 바꾸자는 혁명이 월가의 시위대들 입에서 나오고 있는 것이다.

세계의 관심도 주식 시세 전광판과 서구의 지도자들을 떠나 월가 거리의 시위대들에게로 옮겨가고 있다. 9월 17일 수 십 명에서 시작된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 Street)' 운동이 시간이 가면서 수 백 명, 수 천 명, 그리고 10월 6일에는 수 만 명 단위로 불어나자, 좀처럼 정치적 발언을 하지 않던 벤 버냉키 미국 연준(Fed)의장도 의회 청문회에서 이를 언급하기에 이른다.

"(미국) 시민은 지금 어려운 미국 경제와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들 때문에 매우 불행해 하고 있다."
"시위대는 금융부문에서 발생한 문제점들 때문에 나라가 이 지경이 됐다고 비난하고 있다."

월가의 시위가 단 3주 만에 미국사회의 중심 의제로 떠올랐고 전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년 만에 재발된 세계경제위기로 주가가 폭락하고 남유럽 국가들의 부도가 발끝까지 닥쳐오고, 은행들이 다시 부실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럽과 미국의 지도자들이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범한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문제해결에 직접 나선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을 때에는, 신자유주의 30년 동안 은폐되어왔던 사회 경제적 구조의 한계가 비로소 세상에 드러나는 것처럼 보였다. 통제되지 않은 금융시스템의 위험성, 단기 수익추구 방식의 주주자본주의 기업경영의 문제점, 노동시장 유연화와 고용 불안정성, 그리고 이 모든 문제의 결과로 심화되어온 양극화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가 세상에 자신의 폐부를 드러낸 그 시점에서, 역설적이게도 지극히 신자유주의적인 극우 정치세력 '티 파티(Tea Party)'운동이 태동한다. 서구 정치 지도자들이 경제위기 수습을 위해 스스로 시장에 대한 믿음을 버리고 정부와 중앙은행을 동원하여 광범위한 시장개입과 경기부양에 나서자 여기에 대한 반발로 탄생한 것이다.

1773년 영국이 과세한 홍차를 거부하며 보스턴 항구에서 수입되려던 홍차를 모두 바다에 던져 버린 보스턴 차 사건에서 이름 따 온데서 알 수 있듯이, 이것은 세금증세를 반대하고 정부의 긴축을 주장하며 오바마의 의료개혁을 반대하는 등 신자유주의 전형적인 작은 정부 이데올로기에 기반한 극우 정치운동이다. 2009년 이후 급격히 미국 정치세력으로 등장하기 시작한 티 파티 운동은 2조 4천억 달러 재정적자 긴축안(결국 이번 2차 경제위기의 도화선이 된)을 밀어붙이면서 자신들의 의지를 관철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티파티 운동의 지지를 받은 감세와 긴축 정책은 허약한 미국 경제를 또 다시 경제위기로 내모는 도화선이 되었고, 일자리를 잃은 젊은이들과 월가에 분노하는 시민들을 행동에 나서도록 했던 것이다.

매우 명료한 요구, '전쟁을 끝내고 부자에게 과세하라'

월가로 모인 시민들의 저항운동이 빠르게 확산되자 '섬뜩한 느낌'을 받은 주류 매체들은 "명확한 구호도 없이 중구난방이고 뚜렷한 지도부도 없다"면서 일회적인 이벤트에 불과하다는 식으로 폄하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9월 17일 첫 시위가 야심찬 계획과는 다르게 소규모로 시작했을 때만 해도 그렇게 보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 우선 http://occupywallst.org/ 라는 사이트 대문에 명시된 이들의 소개 글을 그대로 인용해보자.

"Occupy Wall Street is leaderless resistance movement with people of many colors, genders and political persuasions. The one thing we all have in common is that We Are The 99% that will no longer tolerate the greed and corruption of the 1%. We are using the revolutionary Arab Spring tactic to achieve our ends and encourage the use of nonviolence to maximize the safety of all participants."

왜 이 운동을 하게 되었는지, 함께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지, 어떤 식으로 할 것인지가 모두 간결하고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다. 1%에 불과한 월가의 탐욕과 부패에 참을 수 없어 인종과 성별 정견에 관계없이 99%의 시민들이 '아랍의 봄' 시위와 같은 방법으로 운동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시위자들은 자신들이 무엇에 분노하고 누구를 상대하고 하고 있는지를 분명하면서도 적절하게 인식하고 있다. "은행들은 구제 금융을 받았지만 우리는 쫓겨났다(Banks got bailout, We got sold out)", "최상위 1%, 금융 자본가들만이 막대한 이득과 이권을 누리는, 월스트리트 방식을 사람들이 지금까진 아무 생각 없이 해오던 대로 받아들였는데, 더 이상 이를 용납하지 않고, 거부하고 싶다"고 하는 이들의 인터뷰 내용들을 보라. 금융위기 발발 후 3년이 지났으나 여전히 그 기득권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고, 위기의 재발에도 일정한 책임이 있는 월가의 금융자본이 자신들의 분노의 대상임을 확인하고 있다.

2011년 시점에서도 세계 굴지의 투자은행 스위스 UBS에서는 불법적인 파생상품 임의 거래로 23억 달러가 날아가 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있는 중이다. 최대 규모의 은행이 된 뱅크오브 아메리카(BOA)가 직원 3만 명 감원 계획을 시행하고 있는 와중에서도 금융가의 고액 연봉과 스톡옵션은 줄어들지 않고 있으며, 두 번째 경제위기가 닥치자 유럽의 덱시아 은행을 시작으로 다시금 구제 금융과 자본 확충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2008년 금융 위기에서 보았던 낯익은 모습이 지금도 그대로 연출되고 있는 것이다. 3년이 지나도 유독성 파생상품 거래나 은행들의 관행에는 제대로 규제가 이뤄지지 않았고, 지금 재연되고 있는 경제위기의 중심에 여전히 월가와 국제 금융자본이 있다고 할 것이다. 이 사실에 분노하지 않는 것이 이상하다. 이들이 여전히 백악관과 의회를 움직이며 자신들에게 가해오는 규제의 압력을 무력화시키고 있다. 시위대가 장소를 월가로 선택한 것은 제대로 문제의 실체를 알고 있는 것이다.

또한 시위대들은 월가를 행진하면서 "우리는 99%, 전쟁종식, 부자과세(We are the 99%, End the War, Tax the Rich)"를 함께 합창하고 있다. 그들의 대표적인 공통 구호다. 얼마나 더 명확하고 선명해야 하는가. 여기에는 현재 사회경제 시스템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혁명'적 열망 또한 내재되어 있다. 전문가들조차 '현재의 시스템 역량'으로 지금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을까 하는 회의를 품을 정도로 위기는 심각해지고 있고 기존의 모든 패러다임들은 붕괴되고 있는 상황에서 아직 새로운 패러다임은 나오지 못했고 기존의 진보세력이나 식자들도 새로운 미래를 말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명확한 구호가 없다고 폄하하는 것은 다수 주류 언론과 정치권이 그들의 명확한 요구를 수렴할 생각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여전히 금융자본의 이해에 얽혀 있는 미국정치와 주류 언론은 증세 요구조차 '계급전쟁(Class Warfare)'이라고 놀라면서 티 파티 운동과 유사한 주장을 하고 있을 뿐인 것이다. 시위대의 요구가 제대로 미국 정치에서 수렴되려면 티 파티운동 등과 어쩌면 실제적인 계급전쟁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어쨌든 시위대들은 스스로 요구사항을 수렴해내면서 경제구조 자체를 바꾸고 경제정의를 찾아나가는 긴 여정의 시작점에 위치해 있다.

사실 정치지도자, 학자나 전문가들이 내놓는 청사진이나 모델이 대안이 된 경험은 별로 많지 않다. 그들이 내놓은 복잡한 이론이나 통계숫자들로 사회가 개혁되는 것도 아니며 양극화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미국과 유럽 지도자들도 위기 수습해법을 찾지 못해 응급처방에 연연할 정도로 기존 시스템의 근간이 흔들리는 시점이다. 현존 시스템을 바꾸고자 바라는 사람들 자신들이 당사자가 되어 직접 행동에 나서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다.

직접 민주주의적 시위 방법이 어설프기만 한가

월가의 시위를 최초로 기획한 곳은 대안 광고를 표방하며 캐나다 활동가들이 운영하는 온라인 잡지 "애드버스터(Adbusters)"의 7월 13일 성명서였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운동의 구호가 바로 그 성명서의 제목이었다. 그들은 아랍의 봄을 촉발시킨 이집트의 타흐리 광장(Tahrir Square)에 영감을 얻어 월 스트리트의 주코티 공원(Zuccotti Park, 시위대들은 이를 자유의 광장-Liberty Plaza이라고 부른다)에서 시위를 시작했다. 서방세계가 아랍 다음은 중국이라면서 중국의 민주화시위를 기대했건만 막상 시위는 월가로 옮겨간 것이다.

또한 실업과 빈부격차에 분노해서 일어난 스페인 캠핑(acampadas)시위에서 영감을 얻어 광장에서 텐트를 치고 장기 농성을 병행하고 있는 중이다. 20%가 넘게 치솟은 엄청난 실업에도 불구하고 스페인 정부가 긴축정책에 들어가자, 지난 5월 스페인의 청년들과 시민들이 소셜 네트워크를 통해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 중심의 '태양의 문' 광장에 모였고 한 달 동안 텐트를 치고 항의시위를 했던 경험에 착안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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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가의 시위, 스페인의 캠핑시위, 이집트의 시위는 모두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젊은 청년들을 중심으로 소셜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시위를 조직했고 때문에 기성의 조직이나 지도부형태를 전혀 갖추지 않았다는 것이다. 시위현장의 중심세력은 모든 이의 웹 사이트 접속 이름으로도 사용되는 익명(anonymous)의 다수이고 기성의 노동조합 등 조직된 단체들은 보조 참여자였다.

사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거의 대부분의 세계적인 저항 운동이 이와 유사하다. 일찍이 2008년 한국의 촛불시위가 그랬고 등록금 폭등에 저항한 영국 대학생들의 시위가 그러했으며 중동과 스페인, 그리고 월가의 지금의 시위가 마찬가지다. 뚜렷한 지도부도 없이 뒤섞인 군중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근거다. 그런데 지금의 시위 움직임을 가볍게 보는 모든 매체들이나 과거 조직운동에 익숙한 일부 진보적 인사들이 놓치고 있는 것들이 있다. 

조직이나 단체들이 저항운동을 이끌 수 있는 이념적, 정치적 능력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라는 점이다. 안철수 현상이 일거에 기존 정치권을 무력하게 만들었던 한국의 현실만 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현재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한 시민들은 과거 세대들의 경험 속에 익숙한 수직 계열화된 조직질서와 사회운동체계로 수렴될 수 없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된다.

"참여, 공유, 개방"이라는 웹 2.0 스타일에 가까운 현재의 젊은 세대들이, 초보적으로나마 그들의 스타일에 맞게 조직 체계의 대용으로 소셜 네트워크를 이용하고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통해 저항운동을 '조직'하고 있는 것이다. 특정하게 공식화시킬 수는 없으나 훨씬 더 '직접 민주주의'에 가까운 방식으로.

이는 분명 직접 민주주의를 향한 사회운동 방법의 또 다른 혁신이 될 조짐이 충분히 있으며 진정으로 평가해야 할 대목이 여기에 있다. 거시적으로 사회운동 방법과 양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일정한 질서와 체계, 집중력이 있어야 저항운동이 사회를 진정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과거의 방식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가 행동과 경험을 쌓으면서 자기 진화를 감행할 것이다. 기성세대가 조급해야 할 필요가 없다.

99%의 중심에는 '무력했던' 청년들이 있었다

'우리는 99%'라는 월가시위운동의 자기 정체성은 신자유주의라는 시스템이 내재적으로 키워온 최대의 파국인 '양극화'를 반영한 가장 명확한 규정이다. 그리고 평균 실업률의 두 배 이상을 기록하며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언제까지나 무기력하기만 할 것 같았던, 때문에 기성세대들에게 따돌림 당했던 청년 세대들이 그 중심에 있었다. 이런 점에서 월가의 시위가 세계의 미래라고 한다면 과장된 것일까.

미국 기업 전체 이윤의 1/3을 넘게 차지하면서 월가가 고수익의 황금기를 구가하던 2008년 이전 시기까지만 해도, 미국의 유망한 청년들이 선망하던 꿈의 직장은 바로 월가의 투자은행에 취직하는 것이었다. 한국의 청년들에게 삼성이 취직하고 싶은 1순위 직장인 것과 다르지 않다. 월가 투자은행에 입사하기 위해 기꺼이 고액의 등록금을 지불하면서 치열한 경쟁에 몸을 던졌던 것이 미국의 청년들이었고, 유럽과 한국의 청년들이었다. 아랍의 청년들도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학비로 수십만 달러나 빚을 졌는데, 졸업 후 취업이 안 돼 답답하다", "학생들이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나왔는데 일자리를 찾을 수 없다면 뭔가 잘못된 것"이라는 불만이 월가의 직장이 아니라 시위 현장에 나온 청년들의 목소리다. 젊은이들은 대학을 다닐 당시엔 비싼 등록금을 지불했고, 졸업 후엔 일자리가 없어 융자받은 부채에 허덕인다. 또한 직장을 찾기는커녕 인턴십도 찾기 어려워지고 있다. 부채와 실업에 겹 눌린 청년들이 비로소 좌절이 아니라 돌파구를 찾기 위해 스스로 움직이게 된 것이 지금 보고 있는 월가 시위다.

월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들은 지금 월가를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 저항과 극복의 상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자신들의 특성과 스타일에 따라 과거 방식이 아니라 온라인 네트워크로 움직이면서 99%의 저항운동에 앞장서게 된 것이다. 또한 증세와 긴축 반대를 요구하며 나이 든 보수 세력이 집결해 있는 티파티 운동과도 선명하게 대조를 이루면서 저항운동의 새로운 활력을 만들고 있다. 미국이 미래가 티파티 운동이 아니라 월가를 점령하라는 젊은 세대의 움직임에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걸게 된 것은 매우 다행스럽고 희망적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새사연 홈페이지에 게시글 된 칼럼입니다.



태그:#경제위기, #월가시위, #99%, #미국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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