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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일(화) 저녁. 기사를 작성하다가 갑자기 컴퓨터가 다운되었다. 짜증이 났지만,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켜니까 작동이 되었다. 다시 작업을 시작. 그러나 10분쯤 지나니까 이번에는 모니터가 먹통이 되었다. 황당했다.

대어(大漁)를 눈앞에서 놓친 것처럼 허탈했다. 수리비도 수리비지만, 첫 번째 다운되었을 때 실수로 작업하던 글이 모두 날아갔기 때문. 며칠 동안 옛 기억을 더듬으며 얼개도 짜고, 주제도 정하고, 시작한 '전세가 기가 막혀' 응모 글이 포함되어 있어 더했다.

미련을 두지 말고 독서든 청소든 할 일을 찾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까 청소기가 손에 잡히지 않았다. 평소 마음이 편치 않다거나 아내와 다투었을 때는 집 안 청소로 마음을 풀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충격을 단단히 받은 모양이었다.

다음 날(5일) 아침, 서비스센터에 전화했더니 오후 5시쯤이나 가능하다고 했다. 하루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나 '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듯 묘안이 떠올랐다. 낮에는 취재도 하고, 한동안 소원했던 지인들도 만나고, 저녁에는 '구불길 걷기'(은파 수변 산책로)에 참여하면 오히려 소득이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하루 스케줄을 정하니까 입가에 미소가 지어질 정도로 여유가 생겼다. 낮 12시쯤 시내로 나가서 만난 사람만 4명. 바쁘게 움직였다. 서비스센터 직원이 전화를 해왔지만, 다음 날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끊었다. 어렵게 얻은 기회(구불길 걷기)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구불길 걷기'는 여유와 풍요를 느끼는 여행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군산시 나포면 십자들녘 도로(구불 1길 ‘비단강길’).
 코스모스 하늘거리는 군산시 나포면 십자들녘 도로(구불 1길 ‘비단강길’).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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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불길 걷기'는 구부러지고 숲이 우거진 길을 여유, 자유, 풍요를 느끼며 오랫동안 머무르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군산도보여행'으로 그동안 발길이 닿지 않았던 땅과 주변 정경을 보고 느낀 점들을 글과 사진으로 남기려고 몇 달 전부터 계획하고 있었다.

시청 담당자에게 알아보니 혼자는 무리일 것 같았다. 해서 출발 장소와 시간, 코스 등 정보를 얻기 위해 '구불길 카페'(http://cafe.daum.net/gubulgil)에 가입하고 첫 출발 날짜만 남겨놓은 상태였다. 가장 짧은 '탁류길'은 2시간 10분, 가장 긴 '새만금길'은 6시간 30분이나 소요되어 몸과 마음의 준비가 필요했다.
 
군산에는 '비단강길(18.7km)', '햇빛길(13.7km)', '큰들길(17.0km)', '구슬뫼길(18.8m)', '물빛길(18.0km)', '달밝음길(15.5km)', '탁류길(7.8km)', '새만금길(37.5km)' 등 여덟 개 구불길이 조성되어 있으며 '은파 수변도로(8.815km)'는 포함되지 않는다. 그러나 공기가 맑고 경관이 아름다워 친구, 연인, 가족들이 가장 많이 찾는 산책로이다.

아침에 받은 스트레스, 저녁에 걷기(8.815km)로 풀어

은파관광지 제1주차장에 모여 출발을 준비하는 ‘군산 구불길’ 카페 회원들
 은파관광지 제1주차장에 모여 출발을 준비하는 ‘군산 구불길’ 카페 회원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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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과 시래기 매운탕으로 저녁을 먹고 은파관광지 제1주차장 자판기 앞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7시 20분. 부지런한 카페 회원(길벗) 몇 명은 일찍 나와서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오후 7시 30분까지 모이니까 24명. 준비운동을 마치고 수변무대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출발했다.

주변에 숲이 우거진 은파저수지 산책로는 공기가 맑고 상쾌했다. 그동안 낮에만 다녀갔고, 밤에 왔어도 도로를 따라 드라이브만 했지, 오색불빛이 무지개처럼 아름답게 반사되는 수면을 바라보며 걷기는 처음이어서 조금은 흥분이 되기도 했다.

주차장을 출발, 절메산(寺山) 주변 산책로를 걷는 회원들. 휴대용 손전등을 가지고 나온 꼬마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주차장을 출발, 절메산(寺山) 주변 산책로를 걷는 회원들. 휴대용 손전등을 가지고 나온 꼬마가 눈길을 끌었습니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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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10분쯤 지났을까. 리더(들꽃)가 다가오더니 산책로(8.815km) 걷기는 두 시간 정도 소요된다며 바쁘시면 중간에서 빠져도 된다고 했다. 처음 참석이고 모두 초면이어서 쑥스러웠는데, 길벗님들이 친절해서 부담이 덜하고 발길도 가벼웠다.

길벗님들 발걸음은 유연하고 빨랐다. 부모를 따라온 꼬마들도 즐거워하며 걸었다. 출발 30분쯤 지나 '절메산(寺山)'에 도착하니까 이마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사진촬영을 하면서 따라가려니까 힘이 들었다. 그래도 몸과 마음은 가볍고 상쾌했다. 아침에 받은 스트레스가 발끝을 통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붉은 꽃송이를 연상케 했던 가로등 불빛들
 붉은 꽃송이를 연상케 했던 가로등 불빛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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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수면을 무지개 색으로 수놓은 건너편 상가 불빛.
 저수지 수면을 무지개 색으로 수놓은 건너편 상가 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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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시로 변하는 물빛다리(현수교)와 음악 분수의 환상적인 물빛 쇼, 도로의 가로등과 주변 아파트 단지에서 흘러나오는 불빛이 반사되어 꽃밭을 연상케 하는 저수지 수면을 카메라에 담을 수 없어 유감이었다. 삼각대도 없는 똑딱이 카메라였기 때문. 그래도 하나쯤은 걸리겠지 하는 마음으로 셔터를 열심히 눌러댔다.

출발해서 한 시간쯤 지난 오후 8시 30분 '사랑의 다리' 건너편에 자리한 인공폭포에 도착했다. 화장실도 다녀오고 잠시 땀을 식혔다. 전형적인 초가을 날씨여서 야경을 만끽할 수 있었다. 저수지 건너편에서 펼쳐지는 음악 분수와 물빛다리 조명은 눈을 더욱 즐겁게 해주었다.

무지개 색깔로 반사되는 수면을 보면서 혼잣말로 "이곳이 원래는 '미제지'였는데···."라고 하니까 옆에서 걷던 꼬마가 알아듣고 "미제지가 무슨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해서 "미제 저수지였다는 얘기지"라고 했더니 "저수지에도 '미제'가 있어요?"라며 재차 묻는데 나오는 건 웃음뿐, 할 말이 없었다.

1985년 8월 국민관광지로 지정된 은파저수지는 본래 농업용수로 사용했으며 한자로는 '미제지(米堤池)', 우리말로는 '쌀뭍방죽', '미제 저수지'로도 불렀다. 또한, 조선조 이전에 축조되었으며 고산자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 표시되어 있고, 많은 설화도 간직한 역사 깊은 관광지이다.

색색으로 변하면서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가로수
 색색으로 변하면서 눈을 즐겁게 해주었던 가로수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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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편 상가들 밀집지역 불빛이 수면에 반사되면서 다른 도시에 와 있는 착각을 일으키게 했다. 촬영장소 옆에서 붉은색, 자주색, 녹색, 파란색 등으로 변하면서 화려한 쇼를 연출하고 있는 나무를 놓칠 수 없어 숨을 죽이고 카메라 초점을 맞추었다.

인공폭포에서 10분쯤 쉬고 다시 출발했다.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물결이 아름답다고 해서 붙은 '은파(銀波)'. 이날은 상현달이 유난히 밝아 운치를 더해주었다. '아흔아홉 귀 방죽'으로 불릴 정도로 굽은 귀가 많아 움직이는 방향에 따라 아름다운 경관도 바뀌었다.

출발 1시간 35분 후 6.3km 지점에 도착했다. 시계는 오후 9시 5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거리표시 안내판을 보니까 발이 약간 무거워지는 것을 느꼈으나 도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흐르는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마음을 차분하게 하면서 발걸음에 힘을 실어주었다.

도착지를 향해 둑길을 걸어가는 회원들
 도착지를 향해 둑길을 걸어가는 회원들
ⓒ 조종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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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자생지와 인라인스케이트장, 오리보트장을 지나 야외무대 앞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9시 25분. 산책로 총 길이가 8.815km이니. 낮에 걸어 다닌 거리까지 합하면 족히 12km는 될 것 같았다. 해냈다는 생각에 기쁨과 함께 작은 성취감도 밀려왔다.

한가하게 앉아 있다가는 집으로 오는 마지막 시내버스를 놓칠 것 같았다. 해서 길벗님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종종걸음으로 버스 정류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구불길 걷기' 행사 첫날을 축하하는 테이프커팅을 마치고 오는 기분이었다.

은파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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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종안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은파관광지, #산책로, #군산구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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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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