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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여래불! 약사여래불!"

 

끝이 없을 것처럼, 기도하는 어머니의 입에서는 약사여래불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이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이 시점이라, 간절함은 더욱 다급해 진다. 아이가 시험장에서 초초하지 않기를, 어려운 문제에도 당황하지 않기를,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시험을 칠 수 있게 되기를.

 

어머니는 오직 한가지 생각으로 약사여래불을 암송한다. 이 세상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어머니의 마음으로 간절히, 간절히.

 

관암사 입구 길

 

지난 18일 관암사 갓바위를 찾았다. 갓바위 오르는 길! 그 길을 선택한 것은 순전히 아내 때문이었다. 결론은 아내가 원하는 갓바위로 정했지만, 오랜만에 시간이 되어 가까운 산을 찾기로 하고는 인터넷을 이리 저리 검색했더니 대구 근교에 갈만한 산들이 의외로 많았다.

 

아침 햇살은 강렬했다. 아직 가을을 담지 못한 가로수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차창 안으로 눈부심이 가득 들어왔다.

 

어느 곳이든 산의 정상으로 이르는 길은 여러 갈래가 있기 마련이다. 갓바위도 마찬가지이다. 이번에 선택한 길은 대구시 팔공산 갓바위시설지구에서 출발하여 관암사를 경유하여 관봉까지 약 2km에 걸쳐 만들어져 있었다.

 

갓바위 가는 길 초입은 단아하고 깨끗했다. 갓바위가 예서 2km나 되는데 스님들이 이 길을 다 쓰셨나 보다.

 

중국의 문학가 루쉰은 "본래 땅 위에 길이 없었다. 걸어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그곳이 곧 길이 되는 것이다"라고 했던가. 울퉁 불퉁 작은 바윗돌들이 사람들의 길잡이가 된다. 그 사이에 제 나름으로 생을 영위하는 고사리가 돌길의 삭막함을 희석시켜준다.

 

이 길의 기원은 언제부터 일까? 팔공산은 고려태조 왕건과 후백제 견훤의 격전지 이기도 하다. 이곳에고 수많은 군마들이 지나 갔을 수도 있지 않을까? 저 바위 틈에 몸을 숨긴 병사들이 있었을 수도 있겠지.

 

아직은 여름의 끝자락이 묻어있어서 일까 얼마 오르지 않았는데도 이마에 땀방울이 하나 둘 맺히기 시작한다. 묵묵히 바윗돌을 딛고 한 걸음 한 걸음 오르다 보면 어느새 저만치 지나온 길을 볼 수 있다.

 

길은 다양한 모습으로 비춰진다. 사람의 마음에 따라 길이 갖는 의미도 다르다. 수능을 치뤄야 하는 수험생의 부모 마음은 애틋하다. 간절함은 초인적인 힘을 부여하기도 한다. 평소 40분 걸리던 이 길을 20분 만에 올랐다는 어느 수험생 어머니의 이야기도 이 길에 묻혀 있다. 그 때 이 길의 의미는 무엇일까? 갓바위 부처님과 그 어머니의 소원이 닿는 통로?

 

순전히 가을을 찾아 나선 등산객이라면 길은 보물찾기를 하는 곳이 될 것이다. 이따금씩 발견되는 가을의 조각들을 하나씩 하나씩 이어가는 끈? 그렇게 길은 말없이 수많은 마음을 담고 있으며, 그들의 눈과 마음에도 다양한 모습으로 담기는 것이다.

 

하늘을 가린 단풍

 

뻐근해 오는 다리 근육도 쉴겸 하늘을 올려다 본다. 높디 높은 가을 하늘을 형형 색색 단풍잎이 가리고 있다. 가을이 오고 있긴 한가보다.

 

가을을 만끽하고픈 마음에 오르던 산행이라 단풍에 물들지 않은 산천은 아쉬움을 남겼는데, 그나마 몇그루의 나무는 가을색이 완연해 보는 이로 하여금 반가움을 선사한다.
 

또 다른 가을의 만남

 

수능을 앞둔 아이도 없는 우리 부부에겐 급할 것이 없어 다리가 아프면 쉬면 되고, 배고프면 준비해간 간식을 먹으면 되었다. 마침 산 능선을 넘으니 절하나가 눈에 들어 왔다. 때마침 출출하여 가지고온 찐 계란과 과일들을 먹었다. 이런 맛이 꿀맛이라 하렸다.

 

작은 연못 곁에 피어난 들국화가 하얀 미소를 짓고 있다. 배가 부른가?

 

 

지친 등산객에겐 반가운 것이 이정표이다. 목표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가늠하는 가장 정확한 지표이기 때문이다. 알고 모른다는 것이 무섭다. 알고 모름과 상관 없이, 가야할 곳까지의 거리는 같음에도 인간들의 조바심은 다르다.

 

한참을 더 갔더니 나무 뿌리가 사람의 발길에 힘들게 버티다가 껍질이 벗겨지다 못해 속살까지 발갛게 드러냈다. 길 가 한켠으로는 바람에 밀려 떼구르르 구르는 나뭇잎에서 가을의 한 자락을 발견할 수 있다.   

 

갓바위(관봉석조여래좌상)에서 소원을 비는 사람들

 

쉬엄 쉬엄 오른 길이 어느듯 정상인 관봉에 올랐다. 관봉에는 머리에 갓모양의 돌을 얹은 돌 부처가 인자한 모습으로 앉아 있다. 이 갓바위 부처는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 원광법사(圓光法師)의 수제자인 의현대사(義玄大師)가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를 위하여 선덕여왕 7년(638년)에 이 여래 좌상을 조성하였다고 전해진다.

 

갓바위 부처는 본래 이름이 관봉석조여래좌상이다.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왕생극락을 빌었듯 지금의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 바위 투성이인 산을 오르고 또 오르는 것이다.

 

갓바위에는 기도하는 곳이 만원이라 발디딜 틈도 없다. 조금 늦게 집을 나선 어머니는 자리가 비기를 기다리며, 두손 모아 합장을 하고 있다. 말없는 산이나, 말없는 갓바위나, 그렇게 가을이 영그듯이 분명 있을 결실을 애타게 기다린다.

 

그 두 뜻이 시공을 초월하여 맞닿아 있는 것이다.

 

관봉에서 산라락을 타고 시선을 떨어트리면 서서히 가을빛에 물드는 산 등성이를 볼 수 있다. 이렇게 바라만 보아도 좋은 것을!


태그:#갓바위, #관봉석조여래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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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것을 사랑합니다. 그 영롱함을 사랑합니다. 잡초 위에 맺힌 작은 물방울이 아침이면 얼마나 아름다운 빛의 향연을 벌이는 지 아십니까? 이 잡초는 하루 종일 고단함을 까만 맘에 뉘여 버리고 찬연히 빛나는 나만의 영광인 작은 물방울의 빛의 향연의축복을 받고 다시 귀한 하루에 감사하며, 눈을 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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