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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27일 새벽 안국동 선거캠프에서 선대위원장단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당선자가 27일 새벽 안국동 선거캠프에서 선대위원장단과 함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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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의 날갯짓이 '블랙 스완(가능성은 낮지만 일단 발생하면 엄청난 파급력을 가져오는 사건)'을 불렀다. 지난 8월 24일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실시될 때만 해도 오늘과 같은 결과를 예상하진 못했다. 당초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무모한 정치적 도박에 대한 비판은 있었지만, 이런 토네이도급 태풍이 몰아칠 줄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나비의 날갯짓이었던 무상급식 투표율은 25.7%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은 뜻하지 않게 여론조사 전문가들에게 돈을 주고도 얻을 수 없는 데이터를 무상급식 투표 비용인 182억을 들여서 제공하였다. 그것은 서울시 유권자 중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의 비율이다.

이 투표율에서 무상급식에 찬성표를 던졌을 미세한 2~3% 정도를 제외한 22~23% 정도가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이고 이것에 근거해 투표율이 45% 미만이면 나경원 후보의 우세, 그 이상이면 박원순 후보의 우세가 점쳐졌던 것이다.

이번 서울시장 재보궐선거의 최종 투표율은 48.6%였고, 나경원 후보는 46.21%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단순 계산을 하자면 투표율 48.6%의 46.21%를 계산하면, 22.46%가 나온다. 이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서 확인되었던 한나라당 고정 지지층의 비율과 정확하게 일치한다. 지역적으로 조사해 보면 약간의 편차가 나오니 수치를 보정하고 세세한 분석을 할 필요가 있겠지만, 선거 때 파악할 수 있는 대략의 흐름 정도로 생각하기엔 믿을 만한 수치다.

한나라당 수도권 의원들 위기감 불러온 재보선

그렇다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선거였다는 반론이 나오지만,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애초에 무상급식 주민투표율 25.7%는 그리 만만한 수치가 아니었다. 주민투표의 룰이 투표를 제기한 측에 불리하게 되어 있었기 때문에, 어느 일방이 제기해 실시된 주민투표 중 33.3%를 넘긴 사례는 전국적으로 한 건도 없었다.

'선거 보이콧'만으로 이길 수 있는 룰 아래서 치러진 투표는 이겨도 완승이라고 이야기하기에는 찜찜한 구석이 있었다. 과연 민주당 후보가 이 정도의 고정 지지표를 투표장에 끌어낼 수 있을 것인지가 문제였다.

그러나 무산된 무상급식 주민투표가 오세훈의 사퇴를 불러오더니 박원순을 선거의 링으로 끌어들였고, 안철수를 링 안으로 반쯤 걸치게 만들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후보들이었고, 이렇게 나타난 블랙 스완들은 지난 4년간 공고히 유지되어 왔던 박근혜 대세론을 무너뜨리고 선거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 버렸다.

지난 선거에서, 서울시장급 이상 선거에서 제3후보들이 성공한 사례는 전무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것도 엄청난 7.2%p라는 격차로 이겼다. 그것도 지난 10년간 한나라당이 점령해 온 서울시장을 말이다.

한나라당이 이번에 확인한 가장 큰 취약성은 표의 확장성 문제다. 홍준표 대표는 이번 10·26 재보선을 두고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볼 수 없다"고 했다. 강원과 영남, 충청에서 실시된 기초 자치단체장 선거에서 싹쓸이 승리를 거두었다는 사실에 근거해서다.

그러나 정치를 오래 한 홍 대표가 지방에서의 승리가 내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전혀 위안 삼을 결과가 아니라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대표로서 정치적 수사로서 지지자들을 위로하는 발언일 뿐 한나라당 내부에서도 이번에 확인된 지지층의 고립화 현상에 대해 심각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내년 생존을 걱정해야 할 위기에 봉착했다.

가장 큰 피해자 박근혜, DJ 실패 사례 밟을까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오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본부 사무실을 방문해 시민과 만나며 나눈 이야기를 적은 수첩을 나 후보에게 건네주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하루 앞둔 지난 25일 오전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운동본부 사무실을 방문해 시민과 만나며 나눈 이야기를 적은 수첩을 나 후보에게 건네주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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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권 주자 중에서 박근혜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는 판단도 여기에 근거한다. 고정표에 기댄 대세론이 얼마나 위험천만한 일이라는 것을 서울시장 선거 결과가 여실히 보여주었다. 젊은층이 적은 지방에서, 그리고 친노 대표 주자 문재인이 있는 부산에서 박근혜의 영향력이 여전함을 보여줬지만, 그것이 대선 승리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한다. 오히려 과거 호남표에 얽매여서 번번이 대권 도전에 실패했던 DJ의 실패 사례를 밟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또한 지역주의가 퇴조 현상을 보이고는 있으나 지방에서는 여전히 강고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부산 동구청장 선거 결과가 그것이다. 민주당 이해성 후보는 참여정부 경력을 바탕으로 열심히 뛰었고, 친노의 좌장 문재인도 열심히 도왔으나, 36% 지지율에 그쳤다.

민주당 일부는 가능성을 확인한 선거였다고 말하지만 이 정도 지지율은 과거 선거에서도 수차례 기록한 바 있다. 단 한 명만 뽑는 선거구제에서 의미 있는 선전은 '선전'에 불과할 뿐, 결과적으로 패배로 기록된다. 문재인은 잠재적 대권 주자로서의 가능성은 여전히 보여줬지만 확실한 믿음감을 심어주지는 못했다.

최대의 수혜자는 박원순이 아니라 안철수다. 안철수는 박근혜보다 한 수 앞서는 정치 감각을 보여줬다. '박근혜의 수첩' 대 '안철수의 편지' 대결 구도에서 안철수가 KO승을 거뒀다. 과거 '대전은요?' 한마디에 판세를 뒤집은 선거의 여왕을 이긴 것이다. 이번 선거 결과를 '블랙 스완'이라고 하는 것이 이 때문이다. 역대로 제3후보가 이긴 적도 없고, 제3후보를 지지하고서 이런 존재감을 보인 정치인은 더더욱 없었다.

조순이 당선되었던 초대 민선 서울시장 선거를 돌아보자. 당시 박찬종 후보가 제3후보로 부상했다. 여론조사 결과 부동의 1위 후보였다. 당시 야당이었던 민주당은 조순 후보를 영입, 제3후보 바람에 맞섰다. '참신함'을 내세우는 제3후보에 참신한 민주당 후보를 내세운 것이다. 당시 조순의 당선은 김대중의 후광이었다. 민주당은 김대중의 고정표에 조순의 참신함이 더해져 지방 선거 압승을 거뒀다.

그러나 이번엔 비슷한 듯 달랐다. 주도권이 시민사회로 넘어갔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당이 고정표 후원을 해줬지만 존재감이 안철수보다 못하다. 김대중처럼 유세 지원도 아니고, 지지 의사 표명 하나를 바랐고 그것이 그대로 지지율로 연결됐다. 제3세력의 영향력을 유감없이 보여준 것이다. 영향력 정도가 아니라 기성 정당의 주도권을 빼앗아 올 것 같은 기세다. 제3세력의 '오버'를 걱정해서인지 조국 서울대 교수는 "제3세력 만들어 반한나라 전선 흩뜨려선 안 된다"는 메시지를 전했다.

MB정부에 대한 실망이 보편적 복지 열망 키웠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야권단일후보가 승리한 가운데 26일 자정 무렵 서울광장에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박원순 야권단일후보가 승리한 가운데 26일 자정 무렵 서울광장에 수천명의 지지자들이 모여 승리를 축하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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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경과와 대선 주자들의 이해득실은 이쯤에서 끝내고 선거 밑바닥에 흐르는 민심을 점검해 보자. 어쩌면 한나라당이 많이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선거로 나타난 단기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근본적인 흐름이다. 여론이야 조변석개할 수도 있는 것이고 한 쪽으로 쏠린 투표 흐름은 또 일거에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근본적인 토양에 불리함이 존재한다면 그것에 오히려 심각성을 깨닫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 법이다. 반대로 야당은 그 토양을 훨씬 더 이용해야 함은 더 말할 나위 없다.

많은 분석가들이 이번 선거에서 세대와 계층 대결이 나타났음에 이의가 없다. 집값이 비교적 높은 강남3구와 용산구가 나경원 지지였고, 이외의 지역이 모두 박원순을 지지했다. 여기에 20~40대가 압도적으로 박원순에게 몰표를 주었다.

엷어진 지역주의 사이로 새로운 균열 구도가 나타났다. 이런 대결구도가 지속된다면 한나라당에는 희망이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떤 계층 구조에서도 상류층이 다수를 점하는 경우는 없다. 상층을 지지기반으로 집권한 정당도 중산층의 지지를 업고 정권을 유지하지 이렇게 극단적인 상층 지지만으로 정권이 유지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경제가 한나라당의 집권을 가져왔고, 다시 경제가 지금의 위기를 불러왔다. 한마디로 빚 없이 집값 높은 곳에서 자가로 사는 사람은 여전히 한나라당을 지지하지만, 이자 걱정 하는 하우스푸어, 높은 등록금에 취업 걱정하는 대학생, 내일 잘릴지 모른다는 걱정을 하는 40대 직장인 그 누구도 한나라당을 지지하지 않은 것이다. 경제는 좋아졌다고 하나 내 주머니 사정은 좋아지지 않은 사람들이 모두 돌아서 버린 것이다. 2007년 같은 이유로 노무현에게 등을 돌리고 이명박을 지지한 중도층들이 대거 이동을 한 것이다.

부자로 만들어 줄 것 같았던 강북의 뉴타운이 애물단지가 되고, '747 경제성장'으로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란 드높은 희망 뒤 찾아온 절망이 분노로 바뀌어 사람들을 투표장으로 향하게 만들었다.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라고 했지만, 정확히 말하자면 '바보야, 문제는 내 주머니 사정이야'로  문제의 초점이 더 적확해진 것이다. 참여정부에 대한 경제적 실망이 신자유주의를 불러왔다면 이명박 정부에 대한 경제적 실망이 보편적 복지에 대한 열망을 불러일으키는 형국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파문이나 나경원 의원의 1억 원 피부숍은 타는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확실하게 드러나버린 한나라당의 고질병 '무센스'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와 지지방문 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 8층 선거사무실에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 야권단일후보와 지지방문 온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24일 오후 서울 안국동 안국빌딩 8층 선거사무실에 활짝 웃으며 손을 맞잡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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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2007년에 티가 나지 않았던 한나라당의 무감각이 이번에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잘 될 때는 사람의 단점이 가려지다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안 보이던 단점도 더 도드라진다. 나경원의 자화자찬 트위터 사태나 선관위의 SNS 선거 운동 규제 같은 것은 2007년 대선에서는 드러나지 않았던 한나라당의 '무센스'라는 고질병이었는데, 이번 서울시장 재보궐선거를 통해서 다시 모습을 나타냈다.

스마트폰과 SNS로 재기발랄한 선거 독려를 할 때 불법 선거 운동 어쩌고 하면서 겁이나 주려고 했던 선관위의 태도는 그 의도의 순수성 여부를 떠나서 젊은이들의 마음을 정부여당으로부터 멀어지게 했을 것이다.

한나라당은 인터넷 때문에 패했던 2002년 대선 때보다 더 큰 숙제를 안게 되었다. 왜냐하면 블로그나 홈피 등을 꾸미는 것은 오프라인의 물량공세로도 어느 정도 가능했던 일이지만, SNS는 네트워크라 물량 공세가 불가능한 속성을 가지고 있다. 네트워크는 말 그대로 연결망이다. 연결망은 자본과 정당의 조직력으로 점령이 가능한 공간이 아니다. 민주당이 단일후보 경선에서 박원순에게 패한 것도 이런 요인이 작용해서다.

서울시장 선거 결과로 야권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명제를 새삼 실감했을 것이고, 여당에게는 표의 확장성을 어떻게 이룰 것인가 하는 숙제를 안겨주었다. 선거는 집토끼를 최대한 지키면서 산토끼를 얼마나 잡아오느냐의 싸움이다. 평일에 실시되는 재보궐 선거는 집토끼를 최대한 선거장에 끌어오기만 해도 성공하는 구도였는데, 이번에는 난데없는 산토끼들이 대거 투표장을 찾으면서 선거의 구도를 바꿔 버렸다. 그리고 산토끼들의 손에는 스마트폰과 그것을 이용한 SNS가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경제적으로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펼치고 있다.

이들을 철저히 장악한 것은 안철수다. 지금까지 안철수의 인생 스토리가 그랬듯이 정치에서도 성공가도를 달릴지는 전혀 알 수 없다. 대한민국에서 제3후보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된 적이 없기 때문이다. 문국현도, 정몽준도, 박찬종도, 정주영도 실패했다. 그러나 나타날 것 같지 않던 블랙 스완이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타났다. 지금까지 그래왔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혁신을 하지 않는 인물과 정당의 위기는 이런 안일한 생각에서 시작된다.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나비의 날갯짓이 정말로 거대한 폭풍이 되어 갈지 아니면 찻잔 속의 미풍이 될 것인지 지켜볼 일이다.


태그:#10.26 보선, #서울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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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교에서 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저서로는 <고등어 사전(메디치미디어)>, <나의 권리를 말한다(뜨인돌)>, <세상을 보는 경제(인포더북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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