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카방고 델타에 떠 있는 연잎들이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 몫 한다.
▲ 오카방고 델타 오카방고 델타에 떠 있는 연잎들이 몽환적인 분위기에 한 몫 한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오카방고 델타를 가기 위한 진입로인 작은 도시 마운(Maun)에서 육로로 남아프리카 공화국을 가기 위해선, 보츠와나의 수도 가보로네(Gaborone)를 가야 한다. 그 곳에 남아공을 잇는 버스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선 중간에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하고, 10시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

표를 사놓고 버스 근처를 어슬렁거리다 보니, 배낭을 짐칸에 넣기 위해 다시 한 번 꾸리고 있던 40대 가량의 금발의 외국인이 보인다. 말을 걸고 싶었지만 가방 정리에 열중하고 있는 듯보여, 버스 주변을 돌다 그냥 버스에 올랐다. 모두가 착석하고 보니, 내 뒷좌석에 여행자인 듯 보이는 외국인 할아버지 한 명, 또 그 뒤에 아까 짐 꾸리던 외국인 남자 한 명. '설마 다들 가보로네를 가나?'하는 희미한 기대와 저 사람들은 아는 숙소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잠깐 스쳤다.

오카방고 델타 강줄기의 이동수단인 모꼬로는 폭이 아주 좁은 배.
▲ 모꼬로를 탄 여행자 오카방고 델타 강줄기의 이동수단인 모꼬로는 폭이 아주 좁은 배.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보츠와나에 대한 개인 여행의 정보가 미약한 이유는 분명히 있다. 뚜벅거리며 여행하는 데 다른 아프리카 나라들보다 특별히 편리한 교통 인프라도 아닐 뿐더러, 공산품은 그렇다 쳐도, 숙박의 선택의 폭이 좁고 비쌌다. 수도인 가보로네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리란 예상에, 우왕좌왕하는 시간을 포함해 숙소를 알아보고, 남아공을 가는 교통편도 알아보려면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어야 한단 생각에 마음이 무거웠다.

수도인 가보로네를 비롯해 다른 곳으로 갈 사람들은 여기서 내리라는 기사의 말에 서둘러 여러 명이 짐을 챙기느라 버스 안이 부산스럽다. 갈아타야 할 중간 기착지에 도착한 것이다. 그나마 내 뒷좌석에 앉아 친근하게 말을 걸던 외국인 할아버지는 같은 목적지는 아닌 듯, 내리는 내게 '잘 가'라는 인사를 건네고 버스에서 내리진 않는다. 그리고는 아프리카 나라 특유의, 무체계의 체계가 드러난다.

보츠와나를 찾은 단체 여행객들.
▲ 단체여행객들 보츠와나를 찾은 단체 여행객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가보로네를 가는 버스인지도 몰랐는데, 옆에 앉아 잡담을 나누던 아주머니가 '저 버스가 가보로네를 간다!'며 어서 가라고 내 등을 떠미신다. 남들이 우르르 달려가기에, 눈치껏 재빨리 배낭을 메고 나도 달렸다.

체계에 익숙해져 있는 나는 이런 무체계 앞에선 눈치껏 남들을 따라 하는 걸로 중간은 가고 있다. 운전기사에게 잘 보이게 알짱대며, 정차하려는 버스 주위를 맴돌자니 '이게 참 뭐 하는 짓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저렇게 달리는 덴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본능이 앞선다. 차 문이 열리고, 몇 사람 타지도 않았는데 버스 차장이 벌써 입구를 막아서며 얘기한다.

"자, 그만! 그만! 다음 차 기다려요. "

역시 본능이 옳았다. '이래서 사람들이 뛰었구나… 1시간은 기다린 것 같은데 또 다음 걸 언제 탄담? 이 차로 가도, 도착하면 저녁일 텐데......'

사람들이 버스가 보이자마자 뛰었던 데는 이유가 있던 것! 등을 떠밀어줬던 아주머니가 무색하게 실패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순간 버스 안을 확인하던 차장이 이 쪽을 보며 한 마디 던진다.

"아가씨는 혼자야?"
"네, 저 혼잔데요? 혹시, 한 자리만 더 없나요?"
"딱, 한자리야~ 타!"

내 입이 탄성을 내뱉기도 전, 다리는 벌써 잽싸게 버스에 올랐다. 외국인에 대한 특혜 의혹의 눈빛을 담아 웅성거리는 것이 짐작되지만, 솔직히 내 입장으론 다행스럽단 생각이 먼저 든다. 어서 늦기 전에 도착해서 숙소를 알아봐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걱정이 되던 차였기 때문이다.

어느 곳이든, 땅거미가 지기 전에 도착해서 여장을 푸는 것이 내 나름의 원칙인데 오늘은 좀 걱정이 된다. 차장은 한 무리 일행에게 "어차피 한 자리뿐이니 당신들은 다음 차를 타라"라는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리고 버스는 출발했다. 화장실에서, 레스토랑에서 뒤늦게 나온 사람들이 버스 문을 두들겨 보지만 이미 떠나고 있는 버스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마운 시내에서 마주친 나이제리아 전통의상.
▲ 마운 시내 마운 시내에서 마주친 나이제리아 전통의상.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가보로네에 도착한 것은 완전히 깜깜해지고 나서였다. 그렇게 도착한 시간이 밤 9시. 알고 있는 정보도 없는 상태에선 현지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 하나 둘, 사람들이 내리고 거의 사람들이 다 내릴 무렵, 운전석 뒤로 자리를 옮긴 나는, 운전기사에게 말을 걸었다.

"아저씨, 혹시 여기 저렴한 숙소 아는 데 없어요?"
"숙소? 이 근처엔 저기 보이는 저 호텔이고, 근데 저마저도 이 시간엔 터미널 근처라 방이 없을 텐데…"
"아, 저런 비싼 호텔 말고요, 좀 더 저렴한 곳이요. 그리고 왠만하면, 남아공 가는 버스가 있는 터미널이랑 가까웠으면 좋겠어요."
"음… 남아공으로 넘어가려고 그러는구만? 가만있자......"

잠깐 고민하던 친절한 기사 아저씬 비싼 호텔은 생각지도 않았음이 분명한 외국인 여행자가 안타까웠는지, 기꺼이 버스로 데려다 주겠다고 결심한 듯하다. 덕분에 내 뒤에 상황을 지켜보던 마운부터 함께 타고 온 노란 머리의 외국인 남자는 편하게 묻어가게 되었다.

버스는 한 20분을 달려 한적한 어느 곳에 들어섰다. 안에서 버스가 들어오게 문을 활짝 열어주니, 기사 아저씨는 방이 있는지 먼저 묻는다. 있다는 말에 우릴 내려주며 한 마디 한다.

오카방고 델타의 강줄기의 이동 수단인 모꼬로.
▲ 모꼬로 오카방고 델타의 강줄기의 이동 수단인 모꼬로.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내일 몇 시쯤에 나가슈? 나 다섯 시에 출근하는데, 미니버스를 가지고 가거든. 일하러 나가는 길에 시간, 맞으면 데리러 오던가~"
"앗! 정말요? 괜찮으시겠어요? 괜히 부담드리고 싶지 않은데...... 네, 그럼 내일 다섯 시에 뵐까요?"

어딘지도 모르는 이 곳에서 위치 파악을 하고, 배낭을 갖고 대중교통을 이용할 걸 생각하니, 난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좀 염치없더라도 기사님의 호의를 단번에 받아들이는 뻔뻔함을 택했다. 옆에 있던, 일행이 된 그 남자는 자기는 그렇게 일찍 나가지 않아도 된다며 오늘 감사했다며 인사를 한다.

기사 아저씨가 떠나고 난 후, 우리는 숙소의 리셉션으로 들어갔다. 남자는 스웨덴 사람이었고 여행중이었다. 우리는 배낭여행 중이라는 공통점으로 인해 방을 나눠 쓰고 비싼 숙바비를 나누자고 쉽게 의견 일치를 보았다.

"저희, 트윈 베드룸으로 주시겠어요? "

방이 있다고 했던 직원의 말을 이미 들었으므로 우리는 룸 타입을 얘기했다. 직원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열쇠를 하나 집어서 건넨다.

총천연색 곤충을 마주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이 곳.
▲ 아프리카의 곤충 총천연색 곤충을 마주치는 것이 어렵지 않은 이 곳.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열쇠에 붙어있는 나무 판에 쓰여진 2번 방. 그리고 우린 2번 방에 도착해 방 문을 열었다. 그리고......

어라? 방 안엔 커다란 침대가 하나. 그리고 딸려 있는 문을 여니 욕실. 우리는 서로 의아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그리고 동시에 리셉션으로 갔다.

"저기요, 우리 트윈 베드 룸 달라고 했는데요? 저 방엔 침대가 하나밖에 없는데요!"

직원은 우릴 보더니 능숙하지 않은 듯한 영어로 얘기한다.

"침대는 하나 밖에 없어요. 그 방뿐이에요. "

오 마이 갓! 트윈 베드 룸으로 달라고 할 때 고개를 까딱한 것은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직원의 리액션이었다. 밤은 이미 너무 깊었고, 방은 하나. 버스도 떠났다. 현실을 바로 파악한 우리 중, 남자가 얘기한다.

"어쩔 수 없으니 침대를 나눠 쓰죠. "

어느 나라의 도시건, 인터넷이 불가능 한 곳을 찾기란 어려운 현재.
▲ 인터넷 혹은 WIFI 어느 나라의 도시건, 인터넷이 불가능 한 곳을 찾기란 어려운 현재.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그렇게 생판 모르는 남자와 침대를 나눠 쓰게 된 그날 밤. 사실, 난 한 잠도 못 잘 줄 알았다. 여행하며 일명 '베드쉐어(bed share)'를 해 봤다는 이 사람과는 달리 나에겐 생소한 '침대 나눠쓰기'.

침대는 충분히 넓었지만, 모르는 사람과 한 침대를 쓴다는 불편함과 혹시나 내가 코를 골아 잠을 깨우지는 않을까 하는 우려, 저 남자 잠버릇이 고약해서 내 공간으로 넘어오면 어쩌지 하는 경계심으로 인해 말이다.

그러나 내가 나가야 하는 시간 새벽 다섯 시까지 날 힘들게 했던 것은, 서로 다른 기후에서 살아야 했던 차이였다. 북쪽에 살아 이 기후가 너무 더운 건지, 남자는 덥지도 않은 그 온도에 계속 '덥다'며 에어컨을 튼 남자 덕분에 난 기상시간까지 이불을 감은 상태에서도 너무 '서늘하다'고 느끼며 쪽잠을 자야 했다.

너무나 청아한 꽃은 아직까지는 그대로인 아프리카의 자연을 나타내는 듯 하다.
▲ 오카방고 델타의 강에 핀 연꽃 너무나 청아한 꽃은 아직까지는 그대로인 아프리카의 자연을 나타내는 듯 하다.
ⓒ 박설화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지난 2009년 8월부터 2010년 1월까지의 총 6개월의 여정을 바탕으로 기고합니다. 외래어의 경우, 소리나는 대로 발음 표기하였습니다.



태그:#보츠와나, #마운에서 가보로네 가기, #오카방고 델타의 개인여행자들, #아프리카 종단, #세계여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아프리카를 담은 사진에세이 [same same but Different]의 저자 박설화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