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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의 전당 소수서원

조선의 유교 문화는 주세붕이 세운 백운동서원(경북 영주, 나중에 소수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에 의해 정착되었다. 서원이라는 사설 교육기관이 설립됨으로서, 유학은 치국의 원리와 출세의 수단 또는 지식인의 소양에서 조선의 민중들을 지배할 수 있는 생활 이데올로기로 발전할 수 있었다. 그 서원의 시작점이 되는 곳이 바로 백운동서원이다.

명종의 어필로 내려 준 소수서원이라는 편액을 걸어 놓아 지금은 소수서원이 된 이 서원에는 가을이 한창이었다. 통일신라시대의 고찰이자 단종 복위의 본거지로 지목받은 숙수사를 뭉개버리고 지은 이 서원의 이름은 중국의 백록동서원의 이름을 차용해 지었다. 그것에서 보듯이 그 시절 우리의 지식인들에게 중국은 흠모와 공경의 대상이었다. 마치 지금의 지식인들 혹은 정치인들이 가지고 있는 미국에 대한 애정과 다를 바 없었다.

그 구체적 증거가 서원입구에 세워진 경염정이다. 경염정이란 이름은 주돈이(송나라의 유학자)의 호인 염계에서 비롯된 것으로서, 그의 사상은 이곳을 사액서원으로 만든 이황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주돈이를 흠모하던 그 시절 우리의 유학자들은 정자 곳곳에 그에 대한 시를 써놓았다. 우리에게 있어 대국에 대한 흠모는 유전인지도 모를 일이다.

가을이 깊어가는 소수서원
▲ 소수서원 앞의 은행나무 가을이 깊어가는 소수서원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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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호 염계에서 비롯된 현판. 사대의 냄새가 스며 있다.
▲ 경염정 현판 북송의 유학자 주돈이의 호 염계에서 비롯된 현판. 사대의 냄새가 스며 있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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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 옆 작은 계곡에는 경(敬)자를 새긴 바위가 있다. 이는 이 서원을 세운 주세붕이 단종복위를 위해 죽은 사육신을 기리기 위해 바위에 경(敬)자를 새기고 붉은 칠을 해서 그 원혼을 달랬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왕조 시대의 '왕'을 위협하는 그 모든 것은 사(邪)요 악(惡)이다. 따라서 '왕'이 되지 못하는 그 무엇도 정(正)이 될 수는 없었다. 이는 지금에 상황에서도 대부분 유효하다. 왕조시대처럼 피비린내 나는 살육은 없다 해도 그보다 더한 일들이 우리의 시야 밖에서 가끔은 우리의 눈앞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단종 복위와 관계 있는 바위
▲ '경'자 바위 단종 복위와 관계 있는 바위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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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영주시 풍기군에서 소수서원 옆에 선비촌을 만들었다. 세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입장료를 받는 것으로 보아 '선비' 정신과는 거리가 먼 상업적 목적의 시설로 보였다. 하여 사진을 찍지 않았다. 대신 그 주위의 가을을 마음껏 보고 느꼈다.

가을이 깊어가는 소수서원 뒤편의 단풍나무들
▲ 서원 뒤편의 단풍나무들 가을이 깊어가는 소수서원 뒤편의 단풍나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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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을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비가 단풍나무 끝에 맺혀 있다.
▲ 잎 끝에 달린 빗방울 가을을 더욱 깊어지게 만드는 비가 단풍나무 끝에 맺혀 있다.
ⓒ 김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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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최순우의 책 <무량수전 배흘림기둥에 서서>를 읽어 본 이후 부석사에 참 자주 갔다. 처음 갔을 때 이후로 모든 것이 참 많이 변했다. 입구에 있는 인공연못과 포장된 진입로는 못마땅했지만 어쩌랴 자본의 논리인 것을!

나무 전체에 불을 켠 듯한 은행나무
▲ 태백산 부석사 일주문 나무 전체에 불을 켠 듯한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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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한 것은 일주문을 거쳐 오르는 길목에 불을 켠 듯 보이는 환한 은행나무들이었다. 이미 떨어진 잎들과 아직 달려 있는 잎들이 이제 가을이 제법 깊었음을 말해준다. 진입로 주변에 가까이로부터 먼 곳까지 사과나무가 붉은 사과를 매달고 있었다. 천왕문을 지나서 위쪽 전각은 공사 중이어서 평소 다니지 않는 길로 올라 무량수전을 보니 감회가 좀 다르기는 했다.

여전히 무량수전은 고졸한 멋을 풍기고 있었다. 아미타여래가 계시는 무량수전과 극락세계를 나타내는 안양문에서 아래로 굽어보는 풍경은 이 땅의 산지 사찰 중 최고의 풍경 중 하나로 생각된다. 특히 가을철에 느끼는 풍경은 그 색의 조화가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답다.

저 완벽한 비례와 조화로움
▲ 무량수전의 공포 저 완벽한 비례와 조화로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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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루를 거쳐 밑으로 보는 풍경
▲ 무량수전에서 밑으로 보는 풍경 안양루를 거쳐 밑으로 보는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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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수전에서 응진전과 조사당 오르는 길목에 서 있는 삼층석탑은 단아하고 멋스럽다. 기단이 더 넓어 정상적이지 않는 비례에서 오는 느낌이 오히려 안정적이어서 보는 사람에게 편안함을 준다. 응진전과 조사당 위로 오르는 길은 깊은 가을이다. 이 깊은 가을 이 산길을 오르는 것이 한 없이 행복하다.

조사당 앞마당에 단풍나무는 거의 불타는 듯하다. 자연이 아니면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색의 조화 앞에 아름다움을 넘어 나의 삶이 겸허해지기조차 한다.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면 빛을 통해 보는 사물이 진면목은 아니므로 현혹되지 말아야 하겠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경계를 내려놓고 싶다.

응진전 조사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층석탑에서 본 풍경
▲ 삼층석탑 응진전 조사당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삼층석탑에서 본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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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당 앞 마당에 있는 단풍나무
▲ 단풍 조사당 앞 마당에 있는 단풍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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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한반도에서 제일 높은 산이 백두산인데 백두산 이름에 붙는 '백'은 '밝음' 그리고 '으뜸'을 뜻한다. 그렇게 보면 소백은 백두의 막내 동생쯤 되지 싶다. 수백, 태백의 이름들이 있으니 말이다. 소백산을 오르기 위해 고속도로가 나기 전 죽령휴게소로 갔다. 구름이 앞을 가려 사물의 분간이 어려웠지만 여기가 명산이라서인지 아니면 때가 가을철이어서 그런지 아침 일찍부터 사람들이 많다. 애국가 후렴구의 '화려강산'이라는 말이 빈말이 아니다. 정말 산은 화려했고 그 화려함이 구름과 어울려 신비롭고 장엄했다.

소백산 깊은 숲, 구름에 잠겨 있다.
▲ 구름에 잠긴 숲 소백산 깊은 숲, 구름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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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부의 에너지가 외부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 '기(氣)'라고 가정해 본다면 소백산의 氣는 사람들에게 위압감보다는 편안함을, 뻣셈보다는 부드러움을 주는 산임에 분명하다. 1200m 위에서 갑자기 구름이 거짓말처럼 걷히더니 산 아래 광경을 보여주었다. 정말 순식간에 보이는 풍경에 산을 오르던 모든 사람들이 탄성을 질렀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깊은 구름으로 감싸는 조화를 부리는 것을 보면서 자연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사소한 존재인가를 느끼게 된다.

소백산이 잠시 구름을 걷어버리고 보여준 풍경
▲ 소백산에서 굽어 본 풍경 소백산이 잠시 구름을 걷어버리고 보여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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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가을을 느끼고 즐기지만 산 위에 있는 모든 식물들은 이미 내년 봄을 맞이할 채비를 갖추고 있었다. 이 완벽하고 위대한 자연의 질서 앞에 우리는 단지 순간을 살고 갈 뿐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더 절감한다.


태그:#소수서원, #부석사, #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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