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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많은 사람들은 한국과 중국 왕실의 가장 큰 차이를 '절대권력의 여부'라고 말한다. 때로는 환관이나 처족에 휘둘리기도 했지만 중국 최고 지도자들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다. 반면 우리나라 역대 왕조의 왕 중앤 주변 세력으로부터 자유로운 이들은 별로 없었다. 굳이 있었다고 한다면, 공과에 상관없이 왕의 호칭조차 받지 못하고 폭군으로 낙인찍힌 광해군이나 연산군 같은 이들이 있다.

이런 역사적 전통은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에 당선돼도 언론권력·사법권력·경제권력은 물론이고 자신이 몸 담았던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여기에다 이런 '경쟁권력'들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혼맥(婚脈)이나 돈으로 끈끈히 연결돼 있어 나름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각 독립된 권력은 상대방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특색도 있다. 만약 권력자가 이들에게 대항할 기미를 보이기라도 하면 이들은 독이 잔뜩 오른 벌떼들처럼 뭉쳐서 권력자를 사지로 몰아넣는다.

그렇다면 중국은 어떨까. 우리나라에 비하면 중국의 권력자들이 갖는 권력은 막강하다. 때문에 오늘날에도 정권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두고 논란이 벌어지곤 한다. 하지만 마지막에는 '자신들의 치부를 덮어준다'는 조건으로 이 자리를 넘겨줬고, '새로운 황제'들은 10여 년을 군림하다가 다시 같은 과정을 거쳐서 후계자 자리를 넘겨준다.

10여 년 사이 세계 양대 헤게모니로 성장한 중국에 '새로운 황제'가 들어선다. '공산주의 체제와 황제라는 말이 가당키나 하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의 등장을 두고 미국 언론인 해리슨 솔즈베리가 쓴 이 표현(새로운 황제)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리고 그 시점이 2012년이라는 점에서도 큰 관심을 끈다.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미국, 러시아 등 환태평양 주요 국가들의 지도자가 교체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나라들 중에서도 우리나라는 새로운 황제에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우선 시진핑 시대의 한·중관계는 중요한 변곡점들이 있을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이같은 전망의 가장 큰 이유는 시진핑 시대에 미국과 중국 간 세계 경제정치 헤게모니 쟁탈전이 한 판 벌어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특히 기축통화에 대한 갈등은 10년 안에 벌어질 가장 중요한 논란거리가 될 것이다.

이런 시점에 중국의 지도자로 시진핑이 떠오른다는 점은 우리나라에게 상당히 불안한 요소다. 시진핑은 중국 혁명초기 세력인 시중쉰의 아들로 가장 확실한 태자당 출신 중 하나다. 그들은 한국전쟁 등으로 인해 우리나라에 대한 강한 인상을 갖고 있다. 이 점이 우리나라에 상당히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시진핑은 지난 2010년 10월 25일 있었던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 60주년 기념식에서 "위대한 항미원조는 침략에 대항한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발언했다. 그의 역사관을 확인시켜주는 대목이다.

또 앞으로의 경제교류는 서로에게 필요한 부분이 많아서 공생이 가능했던 지난 시대의 그것과는 다르게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점차 비슷해지는 인건비 등은 우리나라와 중국 사이의 경쟁 구도를 만들게하는 주된 요인이다. 사실 중국으로서는 대체할 수 있는 나라가 많기 때문에 언제나 우리나라에 '노(No)'를 외칠 수 있다. 하지만 경제활동의 절반 가까이 중화권에 의지한 우리나라는 '중국과의 관계'가 국운을 좌우하는 상황으로 바뀌고 있다.

<시진핑>을 읽어야 향후 한·중 관계가 보인다

소사 마사루의 <시진핑> 표지
 소사 마사루의 <시진핑> 표지
ⓒ 한국경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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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문에 시진핑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시진핑이 중국 중앙 정치무대에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그에 대한 분석이 쉽지 않은 이유다. 그나마 2009년에 출간한 홍콩언론인 우밍의 <시진핑 평전>(지식의 숲)과 최근 일본 언론인 소사 마사루의 <시진핑>(부제: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이 나와서 다행이다.

소사 마사루의 <시진핑>은 일본 언론인 특유의 집중력이 돋보이는 책이다. 탄도 요시노리 등 일본 언론인들 가운데는 중국 전문가가 적지 않다. 대개 일본의 중국 전문가들은 일본의 한국 전문가들보다 훨씬 외연이 넓고 분석의 폭이 깊다. 이 책에는 시진핑의 개인사부터 앞으로 전개될 총리 후보자 리커창과의 관계 등이 광범위하게 기록돼 있다.

<시진핑>을 읽으면서 든 가장 주요한 생각은 '시진핑 시대 한중관계가 어떻게 형성될 것인가'였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후진타오 시대와는 확연히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우선 국제 정치 역학 관계가 바뀔 것이다. 기축통화 논쟁이 강화되면서 미국은 자국의 역량강화가 시급한 상황이기 때문에 한국이나 일본을 돌볼 여유가 별로 없을 것이다. 또 중국 입장에서는 지난 20여 년 간 경제초석을 세우는데 우리나라의 역할이 중요했지만 이제는 한국이 없어도 별 문제가 없는 시대를 맞게 된다. 한국으로서는 중국이 '필수 요소'지만 중국 입장에서 우리나라는 '수많은 선택 중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사실 후진타오만 하더라도 자신을 호위하는 상하이방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진핑은 뒤를 비호하는 상하이방 원로들이 상대적으로 연로해 자신의 힘을 강하게 행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강이상설'이 끊임없이 제기되는 장쩌민의 입김이 상대적으로 약하다는 점에서 시진핑은 절대 권력을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후진타오의 중앙 군사위원회 주석 승계 시점이나 상대적으로 숫자가 적은 상하이방(혹은 태자당) 인재풀의 문제가 있지만 여전히 상무위원의 과반수를 차지할 자신이 있기에 그를 방해할 수 있는 세력은 그다지 많지 않아 보인다. 특히 총리에 리커창이 아닌 보시라이 등 태자당 출신의 인물이 진입한다면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할 것으로 전망된다.

따라서 그가 한국을 보는 관점은 향후 우리나라의 국제관계는 물론, 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줄 수 있다. 후진타오 주석만 해도 이세기 전 장관을 비롯해 국내에 비교적 친분이 있는 인맥관계가 있었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시진핑과 연결되는 '핫라인'은 거의 없다. 김하중, 류우익 등 주중대사를 지낸 인물들이 그나마 시진핑과 일면식이 있겠지만, 정서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할 만한 스타일은 아니다. 또 시진핑이 저지앙성(浙江省) 서기를 하던 시절, 전라남도와 교류하면서 박준영 전 지사와 상당수 기업인들이 그를 만났지만 이 역시 깊은 의미를 두기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한중 관계기 복잡한 국면에 진입할 경우 갈등을 풀어줄 '핫라인'이 없다는 점은 상당히 불안한 측면이 있다. 더욱이 시진핑은 앞서 말했듯이 한국전쟁에 관해 우리나라와는 완전히 다른 정서를 갖고 있다. 그런 그와 우리나라 지도자들이 부딪혔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갈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시진핑>(소마 마사루 씀 이용빈 역 | 한국경제신문사 | 2011.10 | 1만5000원)
이 글은 주간무역에 연재하는 '신차이나소프트'로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시진핑 - 시골촌뜨기에서 권력의 정점에 서다

소마 마사루 지음, 이용빈 옮김, 김태호 감수, 한국경제신문(2011)


태그:#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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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케이아이테크놀로지 상무. 저서 <삶이 고달프면 헤세를 만나라>, <신중년이 온다>, <노마드 라이프>, <달콤한 중국> 등 17권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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