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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시간.'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심재돈 부장검사)에서 지난 10월 7일 이국철 SLS그룹 회장의 신사동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시간이다. 수십 평에 불과한 사무실을 '18시간 동안' 압수수색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다. 게다가 검찰은 이후 이 회장과 그의 주변을 대상으로 두 차례 더 압수수색을 벌였다.

 

그런데 이 회장은 이미 지난 2009년과 지난 4월에도 검찰과 경찰로부터 압수수색을 받았다. 2009년에는 창원지검 특수부가 SLS그룹 계열사 10여 군데와 이 회장 자택 등을, 지난 4월에는 해양경찰이 이 회장의 누나 집을 압수수색한 것이다.

 

이런 '전력'이 있는데도 검찰이 최근 세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벌이자 이 회장은 "내 입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반발하고 있다. 검찰이 이렇게 과도한 압수수색을 벌인 이유와 관련해 현 정권과 검찰의 비리내용이 담겨 있는 '비망록'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폭로 2주 지나서야 압수수색... 신재민만 구속시켜 '꼬리자르기'?

 

이국철 회장이 지난 9월 중순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 등 현 정부 실세 스폰서 의혹을 폭로한 뒤 검찰은 10월 7일과 28일, 11월 1일 등 총 세 차례에 걸쳐 압수수색을 벌였다. 압수수색은 이 회장과 가족, 친인척, 계열사 임원, 지인 등을 대상으로 광범위하게 이루어졌다.

 

첫번째 압수수색이 실시된 때는 지난 10월 7일. 이날 검찰의 압수수색은 '동시다발적'이었다. 이 회장의 신사동 사무실과 금호동 자택뿐만 아니라 모친과 형(경남 창원), 매형(부산), 사촌형, 친구, 계열사 사장 등의 집과 사무실도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검찰은 '동시다발적 압수수색'의 이유를 압수수색영장에서 이렇게 밝혔다.

 

"특히 이국철은 스스로 이름을 밝힐 수 없는 '모처'에 본건 관련자료를 보관하고 있다고 진술하면서 의혹의 제기와 관련 상당부분의 자료를 제출하지 않고 있어 이국철과 관련된 주변인들에 대한 압수수색이 불가피함."

 

이 회장이 'MB 정부 실세 스폰서 의혹'을 폭로한 지 2주가 지나서야 압수수색이 실시된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어 보인다. 현 정부 실세인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과 곽영준 미래기획위원장, 임재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이 회장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것에 따른 압수수색이었다는 얘기다.

 

앞서 박 전 차관 등 3명은 압수수색이 실시되기 10일 전인 지난 9월 27일 명예훼손 혐의(총 3억 원의 손해배상)로 이 회장을 고소했고, 검찰은 1주일 뒤인 10월 4일 고소인들을 상대로 서면·대리인 조사를 벌인 바 있다.

 

검찰도 압수수색 영장에 이 회장의 '죄명'을 '명예훼손'으로 적시했다. 그런데 검찰이 영장에 적시한 이 회장의 범죄사실에는 박영준 전 차관 등에게 금품과 향응 등을 제공했다고 주장해 명예를 훼손했다는 것뿐만 아니라 신재민 전 차관에게 10억여 원의 금품을 제공했다는 것도 포함돼 있다. 

 

게다가 검찰이 영장에 적시한 '압수할 물건' 목록을 보면 검찰의 압수수색 목적이 '명예훼손'(박영준 차관 등 3명)보다는 '10억여원 금품 수수' 의혹(신재민 전 차관)에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압수할 물건'이라는 항목에서 이렇게 기재해 놓았다.

 

"피의자 이국철이 피내사자 신재민 등에게 제공한 금원의 출처 관련 자료, 신재민에게 청탁한 자료, 신용카드 사용내역, 상품권 구입 내역 등 (후략)."

 

이 회장도 당시 압수수색 중 <오마이뉴스>와 한 전화통화에서 "검찰이 신재민 전 차관을 구속시켜야 하는데 나에게 협조하라고 압박하려는 것이 압수수색의 첫 번째 이유"라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 만난 그는 "신 전 차관과 어머니집은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과도한 압수수색에 불만을 터뜨렸다. 

 

이는 검찰이 압수수색을 통해 금품제공의 대가성을 입증한 뒤 신 전 차관만 구속함으로써 '이국철 폭로사건'을 조기에 무마하려 했다는 분석을 가능케 한다. '몸통'을 보호하기 위해 '꼬리 자르기'를 시도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흥미롭게도 검찰은 이날 압수수색에서 10쪽 분량의 '신재민 관련 비망록'을 확보하는 데 성공했다.

 

비망록에 검찰 고위층 비리 담겨... "비망록 다 공개하면 정권이 간다"

 

하지만 이후에도 검찰의 압수수색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 10월 20일 이 회장과 신 전 차관의 구속영장이 모두 기각된 것이 추가 압수수색의 표면적인 이유이다. 검찰발 언론기사들도 "검찰이 신 전 차관의 '10억여 원 금품 수수' 대가성을 입증하기 위해 추가물증 확보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 회장은 "제 비망록을 확보하기 위한 조치"라고 주장했다.

 

지난 10월 28일에는 이 회장의 금호동 자택과 장모 아파트, 사업가 김아무개씨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했다. 신 전 차관의 자택과 그가 고문으로 재직하던 법무법인 태평양도 이날 압수수색 대상에 포함됐다. 이어 지난 11월 1일에는 SLS그룹 계열사인 SLS중공업(경남 창원)과 SP해양(부산)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이 이루어졌다.

 

주목해야 할 압수수색 대상은 사업가 김씨다. 법무부와 검찰에 인맥이 넓은 것으로 알려진 김씨는 '검찰 고위층 로비자금'으로 2억 원을 이 회장으로부터 받았다고 지목된 인물이다. 하지만 검찰과 김씨는 "2억 원은 사업자금이었다"고 반박하고 있다. 이 회장은 "김씨가 입을 열면 검찰은 엄청 머리 아플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이 김씨의 자택과 사무실을 압수수색한 데는 이 회장의 '반격'에 따른 '응전'의 성격을 지닌다. 

 

이 회장은 첫 압수수색이 벌어진 10월 7일부터 두번째 압수수색이 벌어진 10월 28일 전까지 ▲ 검사장급 인사 4명 구명로비 연루와 2억 원 전달 의혹 ▲ 정권 비리 담긴 5권의 비망록 등을 폭로하며 반격에 나섰다. 이러한 '폭탄급 폭로'로 검찰의 위기감이 높아졌다.  

 

이 회장은 "비망록에는 검찰과 경제계, 정치인들의 비리가 들어 있다"며 "군사정권에서도 없었을 온갖 형태의 일들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다 돈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특히 <오마이뉴스>가 취재한 바에 따르면, 비망록에는 인사와 금품수수, 접대 등 검찰 고위층과 관련된 비리가 적지 않게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장은 "정치권은 힘이 없고, 모든 권력은 청와대와 검찰에서 나온다"라며 "비망록을 다 공개하면 정권이 간다(무너진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검찰로서는 '비망록 확보'가 시급한 과제일 수밖에 없다. 검찰의 이러한 다급함은 지난 10월 28일 압수수색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이 회장은 "검찰이 압수수색하면서 아내 속옷까지 하나하나 들추면서 '비망록을 주면 이런 고생을 안해도 되지 않느냐'고 비망록 제출을 요구했다"며 "검찰은 오로지 비망록 확보에만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검찰은 지난 2009년 창원지검 특수부 수사에 이어 최근 네 차례의 압수수색을 통해 SLS그룹과 관련된 자료를 상당히 축척했다. 하지만 이 회장이 일관되게 진실규명을 요구해온 'SLS그룹 해체사건'은 손도 안대고 있다. 검찰이 수사에 나서지 않으면 신아조선(SLS조선의 전신) 시절 이루어진 1700억 원의 분식회계, SLS조선 워크아웃과 그에 따른 2조5000억 원대의 손실 등은 그대로 묻힐 수밖에 없다.   

 

최근 <오마이뉴스>와 10여 시간 인터뷰를 한 이 회장은 "지인을 통해 검찰 고위층 인사에게 '왜 우리 사건을 수사하지 않느냐?'고 물어봤더니 'SLS그룹 사건을 수사하는 것이 정권에 아주 큰 부담이 된다, 그래서 수사하기 어렵다'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주장했다.


태그:#이국철, #검찰,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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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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