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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를 돌아 꼬불길이 이어진다.
▲ 밤티재 꼬불길 산허리를 돌아 꼬불길이 이어진다.
ⓒ 윤병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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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멀리 산허리쯤에서 뽀얗게 먼지가 흩날린다. 뽀얀 먼지 사이로 버스가 나타난다. 그 순간 학교에 가기 위해 애타게 버스를 기다리던 까까머리 아이들은 장난을 멈춘다. 밤새 장에 내다 팔 '장꺼리'를 만들어 머리에 이고 온 동네 아지매들은 다시 서둘러 짐을 머리에 인다. 읍내 장에 할 일 없이(?) 볼일 보러 나가는 동네 할아버지들도 모두모두 버스가 나타날 신작로 길 쪽을 학수고대하며 바라본다. 차가 오지 않으면 등교도, 장 보는 일도 포기해야 하는 절박한 상황이 다가 오고 있었는데 천만다행이다.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 단풍 든 밤티재 가을이면 단풍이 아름답게 물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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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게 차가 오지 않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다. 드디어 '아기다리고기다리던' 버스가 산모퉁이를 돌아 들판 사이로 난 신작로를 따라 경남 사천시 곤양면 검정리 우리 동네 앞으로 달려온다.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아슬아슬 잘도 내달린다. 도시 사람들이 실컷 타다 싫증 날 즈음 시골 마을로 귀양 보낸 듯한 고물 버스다. 앞에도 문이 있고, 뒤에도 문이 있다. 차장이 '오라이' 소리를 크게 외쳐야 문들 닫고 달려가던 그 옛날 시골 버스, 30년도 넘은 이야기다.

사천시 곤양면 맥사리에서 밤티재 가는 길
▲ 곤양면 맥사리 사천시 곤양면 맥사리에서 밤티재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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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땐 차가 다닐 수 있는 길은 대부분 신작로였다. 그 외엔 우마차나 사람이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마을길이나 오솔길이 전부였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길은 변화에 변화를 거듭해 온 것이다. 처음엔 신작로 길 하나만 있다가 새마을 운동과 더불어 콘크리트 도로가 등장했다.

순천에서 부산을 연결하는 남해 고속도로가 뚫리기 시작하면서 길은 사방팔방으로 뻗어 나가기 시작했다. 지금은 옛 길이 어디에서 어디로 나 있었는지? 그 길이 왜 중요했었는지 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길은 단지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서만 변화무쌍하게 뚫려 나간다.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꼬불길
▲ 아름다운 꼬불길 차 한대가 겨우 지날 수 있는 꼬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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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남해군 노량에서 하동 진교를 거쳐 사천 곤양으로 달려오는 버스는 밤티재를 넘어 곤양 주차장에 도착한다. 곤양에서 다시 사천까지 정해진 시간에 당도하려면 손님도, 기사도, 버스도 무척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 그 구불구불 S자 도로를 어떻게 그리 빨리 달릴 수 있었는지 지금 생각해 보면 신기할 따름이다. 저 버스는 어디서 출발해서 어디를 거쳐 우리 동네 앞을 지나가는 걸까? 늘 궁금했었다. 궁금함을 해소하기 위해 30여 년 전 버스가 다녔던 그 길을 찾아가 보았다.

송원마을에서부터 밤티재 고개가 시작된다.
▲ 송원마을 입구 송원마을에서부터 밤티재 고개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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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옛날, 시골 버스가 다니던 길을 따라 하동 진교에서 사천 곤양으로 넘어 가본다. 진교면 송원리가 밤티재 고개를 넘는 첫 출발지다. 밤나무가 많이 심어 있어 밤티재로 불렸던 곳이다. 남해 고속도로 진교 I.C에서 나와 첫 번째 신호등에서 곧바로 좌회전하면 송원리가 나온다. 오른쪽으로 제법 큰 저수지가 나타나는데, 대형 붕어가 많이 낚여 낚시인들이 많이 찾는 송원저수지다.

버드나무 군락과 수초 군락이 보인다.
▲ 송원 저수지 버드나무 군락과 수초 군락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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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한켠으로 수초와 버드나무 군락이 넓게 펼쳐져 있어 한눈에 보아도 물고기가 많아 보인다. 송원저수지를 지나면 사천을 표시한 이정표가 나타난다. 여기서부터는 차 한 대 정도가 겨우 갈 수 있을 정도의 꼬부랑길이 고개넘어 곤양까지 이어진다.

사천과 삼천포항까지의 거리가 안내되어 있다.
▲ 1002번 지방도 표지판 사천과 삼천포항까지의 거리가 안내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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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엔 밤나무가 많은 숲이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밤나무보다는 소나무 숲이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다. 예전 진교와 곤양 간 거의 유일한 통로 구실을 했던 이 길은 밤티재라는 꽤나 높은 재를 넘어갔는데, 그 길이 심하게 꼬불꼬불한데다 한쪽은 낭떠러지여서 간혹 큰 사고가 나기도 했다. 지금은 낭떠러지 곳곳에 냉장고, TV같은 쓰레기가 하도 많이 버려져 있어 길을 지나는 사람들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사람들 발길이 거의 닿지 않는 곳이라 쓰레기에 양심까지 담아 버리는 사람들이 늘어난 모양이다.

다양한 나무가 한데 어우러져 있어 봄엔 파릇파릇 돋아나는 연초록 잎사귀들이 지나는 길손을 반겨준다. 여름이면 울창한 숲이 길 옆으로 펼쳐지면서 시원함을 자아낸다. 옛날엔 '에고 패도 모를 정도로 한적한 산 길 이었다'고 한다. 큰 소리로 두들겨 패도 사람들이 눈치챌 수 없을 정도로 한적했단 얘기다.

1002번 지방도를 나타내는 표지판
▲ 사천과 이곡마을의 갈림길 1002번 지방도를 나타내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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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진교에서 곤양 방향으로 난 밤티재 고개를 넘으면 1002번 지방도를 나타내는 도로 표지판이 나타난다. 제법 오래된 표지판이다. 고개를 사이에 두고 하동 진교와 사천 곤양이 마주하고 있다.

타박타박 걷기에 안성맞춤인 길이다. 산새 소리 정겹고, 길 가에 핀 야생화도 지나는 사람들을 향해 활짝 웃는다. 고개를 내려오면 구 남해 고속도로와 만날 수 있다. 옛길은 곤양면 맥사리를 지나 곤양 주차장으로 이어진다.

길이 곤양면에 다다랐음을 나타내 주는 표지판
▲ 곤양면 길이 곤양면에 다다랐음을 나타내 주는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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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추억에 잠기며 걷는 밤티재 꼬부랑길. 꼬부랑 할머니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듯 길은 구비구비 이어진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언제 걸어도 아름다운 길이다.

'꼬부랑 할머니가 꼬부랑 고갯길을 꼬부랑 꼬부랑 넘어가고 있네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꼬부랑 고개는 열두고개 고개를 고개를'

덧붙이는 글 | 뉴스사천(news4000.com)에도 실렸습니다.



태그:#꼬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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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으로 들로 다니며 사진도 찍고 생물 관찰도 하고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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