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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에 눈이 내렸다. TV에서는 갑작스러운 눈 탓에 차들이 여기저기서 부딪히고 눈길에서 헛바퀴를 돌리는 모습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 장면을 지켜보던 13살 강혁이가 갑자기 나를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쟤가 왜 저러나 하고 있는데 아이 왈. "엄마, 엄마는 눈 오면 운전하지 말고 걸어 다녀. 전에 나랑 개울로 떨어질 뻔 했잖아. 나는 엄마 없으면 안 돼!"

 

응, 아니 언제? 아 맞다. 그러니까 아이가 다섯 살 무렵이었나 보다. 평소 지병을 앓고 계시던 시아버님이 뜬금없이 "고기가 먹고 싶다"며 전화를 하셨다.

 

그날따라 진눈깨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차를 운전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운전에 영 자신이 없던 때인데다 아버님댁에 가려면 약간 경사진 길을 지나야 해서 불안했지만 고기가 드시고 싶다는 아버님의 청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 진눈깨비인데 별일 있겠나 싶기도 했고.

 

하여 굳이 엄마와 함께 가겠다는 다섯살박이 강혁이를 데리고 드시고 싶다는 고기를 사서 아버님댁으로 향했다. 그런데 고작 차로 20여 분이 채 안 걸리는 아버님댁에 가까워질수록 눈 내리는 폼이 심상치 않았다.

 

눈이 수북이 쌓인 내리막길... '어, 어, 어 차가 개울로'

 

도착했을 무렵에는 도로에 눈이 수북이 쌓여 있었다. 서둘러 고기를 건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뿔사! 경사진 길이 문제였다. 갈 때는 오르막이라 무리가 없었는데 올 때는 내리막이라 차가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도로 옆 개울을 향해 스스르 빨려 들어가는 게 아닌가.

 

그래도 주워들은 풍월은 있어서 엔진브레이크를 당기니 다행히 차가 멈췄다. 앞바퀴가 아슬아슬하게 개울 제방에 걸린 채로. 차를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개울로 빠질 것 같고, 서둘러 나오느라 핸드폰도 챙겨오지 못했고, 아버님댁으로 내리는 눈을 맞으며 다섯살 아이와 함께 가기에는 조금 먼 거리이고 난감했다.

 

다행히 곁을 지나던 동네 어르신이 이리저리 핸들을 돌리며 안전하게 차를 도로 위로 옮겨 주셔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 때가 벌써 8년 전 일인데 아이는 아직까지 그 일을 잊지 않고 눈 오는 날 행여 엄마가 다칠까 걱정이 됐나 보다.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아이들을 키우다보면 아이의 말 한마디에 가슴이 뭉클해지고 감동이 밀려올 때가 있다. 눈오는 날 행여 엄마가 차를 운전하다가 혹여 무슨 일이라고 생길까 걱정하는 우리 아이. 하늘만큼 땅만큼 우주만큼 사랑한다는 말보다 엄마 없으면 안 된다는 한마디가 더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는가 보다. 13살이나 됐지만 아이는 지금도 잠을 자려면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곁에 없으면 잠이 안온다나 어쩐다나.

 

160cm 정도 되는 키를 가진 녀석이 "엄마" 하며 슬금슬금 다가올 때는 징글맞기도 하지만 그래도 엄마 품이 좋다며 살갑게 파고드는 녀석이 고맙다. 언젠가는 곁을 떠나 혼자 날개짓하며 세상을 향해 날아가겠지만 그때까지는 품을 내주고 싶다.

 

그리고 아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해줬다, 이렇게.

 

"걱정마라 아들아! 눈오는 날은 무조건 차 세워놓고 아들을 위해서 걸어 다닐테니! 엄마 없으면 안 된다는 그 마음만 변치 말아다오~~~"


태그:#강혁, #눈, #교통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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