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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고요." 멋쩍음, 실수를 표현할 때 쓰는 '부끄럽다'는 말. 사실 그리 자주 쓰는 표현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주진우 기자가 '나꼼수'에서 이 말을 연발하며 한 순간에 '핫'한 관용어가 됐죠. 그래서 정말 '부끄러웠던 기억'들에 대한 얘기를 모아봤습니다. 3차례에 걸쳐 나를 부끄럽게 만든 것들에 대한 기사를 게재합니다. [편집자말]
뭐 그리 힘들어 보이지 않았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내가 본 소설가 모친 '윤 여사'는 항상 등 뒤에 쿠션을 대고 책상 앞에 앉아서 투드덕 투드덕 자판을 치고 있었으니까. 그냥 뭐 앉아서 몇 시간 글 쓰고, 밥 먹고, 설거지 하고…. 그렇게 얼마간의 세월이 지나면 책이라는 녀석이 뚝딱 나왔다. 그러면 윤 여사는 인터뷰하랴, 약주 한잔 하랴, 사람들을 만나고 다녔다. 그래서 내 눈엔 한가하고 즐거운 직업처럼 보였던 게 사실이다.

다만 소설가를 모친으로 둔 외동딸로서는 무미건조하고 동시에 긴장되는 일상을 보내야 했다. 친구들을 집에 데리고 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며, 모친이 글을 쓸 때면 난 집안에서조차 자유로이 돌아다닐 수 없었다. 수년 동안 혼나고 나서야 깨달은 방법은 '얼음땡' 놀이하듯 모친이 타자기 자판을 두드릴 때 맞춰서 '우다다' 집에서 돌아다니고, 자판소리가 잠시 멈출 때면 얼음같이 굳어서 서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예민하고 신경질적인 모친의 모습을 보면서 어느날 나는 다짐했다. '그래 나는 곧 죽어도 작가만은 되지 않으리라!' 그 후 사람들이 혹시라도 "너도 커서 엄마처럼 작가가 될 거니?"라고 물으면, 기다렸다는 듯이 당돌하게 "아니오! 전 작가만큼은 되지 않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이 대답은, 작가라는 직업은 내가 마음 먹으면 될 수 있지만 내 의지에 따라 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

소설, '그까이꺼' 언제든 쓸 수 있는 거지!

대학에 가고 이제 뭔가 나도 해보고 싶은 일을 구상해야겠다 싶을 20대 초반. 나의 인생은 앞에서 끌어주는 사람 없이 뒤에서 미는 경제적, 사회적 스트레스밖에 없었다. 1970년대 후반생들은 공감할 만한 그것. IMF가 가져다준 우리네 20대의 부재, 집안의 몰락, 꿈의 상실 그리고 현실의 압박 때문에 나는 그 세월을 미간에 주름을 가득 지닌 채 생업전선에서 분노만을 갖고 질주했다.

힘이 들 때면 '돈 조금만 모아놓고 나중에 할 거 없으면 다 때려치우고 작가나 되어야지'라는 생각도 했다. 학원강사 8년차. 나이는 서른을 훌쩍 넘었고, 달리고 달려도 서광은 비추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8년, 아니 80년도 마찬가지일 거라는 생각에 허탈감에 빠졌다.

혹자는 시집을 가면 편해질 거라고 했지만, 이미 성질은 더러워질 대로 더러워져서 안정적이고 곱디 고운 결혼생활은 꿈꿀 수도 없었다. 연애가 잘 안 된 큰 이유는, 아마 강사를 너무 오래한 탓에 생긴 '이래라 저래라' 지시하는 말투인 듯싶다. 상대방도 부담스러웠는지, 연애사는 없고 투덕투덕 쌈박질이나 논쟁을 했던 기억밖에 없다.

아무튼 그렇게 결혼은 꿈도 못 꾸고 뭔지 모를 불안감에 빠져있던 어느날, 마침 가지고 있던 밑천 몽땅 챙겨서 영국으로 도망갔다. 과거 짧게나마 유학을 했으니, 그곳에서 내 미래에 대한 꿈을 다시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나는 왜 이리 고생만 할까. 이런 저런 생각 끝에… '그래, 이 모든 고뇌들을 글에 담아보는 거다'라고 결심했다.

대박날 줄 알았던 영어책
 대박날 줄 알았던 영어책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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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 경제적 안정을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은 잘 알고 있기에 나름대로 치밀한 계획을 세웠다. 그 계획은 대략 이러했다.

'일단 영어강사로 조금(?) 잘 나갔었고, 그간의 세월을 정리하는 의미에서 영어책을 한 권 낸다. 그러면 어느 정도 먹고 살 돈은 생기겠지. 그러면 마음의 여유가 생길 거야.'

계획을 따라 우연히 만난 출판사 사장님에게 "영어시장에서 대박날 것"이라고 큰소리 뻥뻥 쳐서 투자를 많이 해 영어 관련 책을 한 권 냈다. 하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고 출판사와는 어색한 사이가 되었다.

그래도 좌절하지 않았다. 왜? 난 소설을 쓸 거니까! 그게 원래 목적이니까! 소설을 쓴다는 것 이전에 어떤 형태로든 항상 해보고 싶었던 작업이 있었다. 내가 끊임없이 아파하고 고민하는 것들. 사랑, 이별, 성취, 실패, 외로움, 소외감….

이런 것을 나 혼자 끌어안고 아파했던 건가? 나는 물어볼 사람들이 필요했다. '뭔가 잘 나갔던, 역사에 획을 그은 사람들은 조금 달랐을 거야'라는 생각을 했다. '어떤 해답을 내게 줄 수 있을지도 몰라'하는 생각에 역사에 큰 획을 그은 여성 14명을 추려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것을 어떤 방법으로든 정리하고자 했는데, 소설 형식으로 표현하는 게 적절하고 쉬울 것 같았다.

이런 생각의 본질은 모친 '윤 여사'가 소설의 소재를 찾는 방법에서 착안한 것이다. 그녀는 항상 숨겨진 진실을 찾아내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오월 광주항쟁, 위안부 문제가 그랬고, 미군 문제를 다룬 <고삐>를 쓰고 나서는 아예 '반미작가'라는 수식어도 붙었다. 그렇게 그녀의 소설에는 역사가 큰 줄기로 자리 잡고 있다.

그러다가 최근에는 큰 사고를 쳤는데, 다름아닌 5000년도 더 된 수메르 문명에서 한국인, 동이족의 근원을 찾는 것이었다. 그녀가 10여 년간 수메르에 매진하는 것을 보면서 '이런 종류의 소설이라면 나는 조금 더 수월하게 할 수 있을 거야. 나는 영어도 되니까 말이야'라는 오만한(?) 생각도 했다.

어쨌든 나는 14명의 여자들이 생전에 남긴 말들을 모았다. 기가 막혔다. '아! 세상에서 처음일 거야. 이들이 한 말들을 이렇게 악착 같이 모으다니!'라고 스스로에게 감동하면서 소설을 죽죽 썼다.

온갖 유세를 떨면서 다 쓰고나서 읽어 보니, 이건 뭐 생동감도 없을 뿐더러 그냥 말들의 나열에 불과했다. 그래서 해결 방법을 찾은 게, 현대의 여성을 소설 속에 심고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서 마치 이들과 살아서 이야기하듯이 꾸며보자는 것이었다.

일은 점점 커졌고 그때 비로소 '뼈아픈 창작의 고통'이 뭔지 알게 되었다.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스토리라인이 치밀하게 구성되고, 재미도 있으면서 기본기가 탄탄해야 하는데, 나는 불나방같이 그냥 펜 들고 쓰기만 한 것이다. 그래서 결국 탈진했다.

칼을 갈았지만... 죄송합니다, '윤 여사'

내 첫소설 <시간 속 연인들>
 내 첫소설 <시간 속 연인들>
ⓒ 윤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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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포기하기에는 큰소리 쳐놓은 것도 부담되고, 비웃을 사람들이 -특히 '너는 글쓰기를 하려면 한참 멀었다'고 말하는 모친 윤 여사- 떠올라서 다시 일어나 글을 애써 마감했다.

자료조사한 1년을 제외하고 그렇게 쓰고 다듬기를 여섯달. 이쯤되면 괜찮다고 생각해서 나름대로 출판사 몇 곳을 선정해 원고를 보냈다. '너무 여러 곳에서 연락이 오면 어떻게 하지?'라는 단꿈과 함께. 하지만, 세상에나! 차라리 연락이나 하지 말지, 그 모든 출판사에서 "안 되겠다"고 딱 잘라서 이메일을 보내왔다.

은행의 잔고는 밑천을 드러냈고 몸도 탈진했다. 이후에 뭘 할지는 고민도 안 했다. 이제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나. 왜 세상은 나한테만 이리도 가혹한 걸까. 그렇게 우울하게 있는 동안 이런 저런 청구서는 꼬박꼬박 쌓여갔고, 사는 일은 더 막막해졌다.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라는 심정으로 물불 안 가리고 50군데쯤 원고를 다시 투고했다. 그중 딱 한 곳에서 연락이 왔는데, 나조차도 생소한 E-book 으로 먼저 출간하고 추이를 보자고 했다. 그렇게 해서 <시간속 연인들>이란 책이 나름 책의 형태(비록 E-book이지만)를 갖추어서 12월 초 출간됐다.

아직 반응은 모른다. 그리고 욕심과 과한 생각은 이미 내려놓았다. 뭔가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도 버렸다. 다만 무언가를 시작해서 마무리를 지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또다른 것을 잡아서 쓰고 만들어 가기로 마음먹었다.

나는 고작 3년 쓰고 이렇게 힘든데, 옆방에서 투드덕 투드덕 자판을 치고 있는 윤 여사는 40년이 넘게 이런 지옥같은 일을 쉬지 않고 하고 있다니. 그것을 나는 직접해보지도 않고 쉬운 일이라고 생각했다니.

그래, 어쩌면 항상 보아왔던 모습이었기에 그 안에 숨어있던 고독과 불안감을 체감하지 못 했던 것 같다. 지금은 잠시 쉬고 또다른 것을 구상하면서도 헥헥거리는데, 윤 여사의 방에서 새어나오는 타자 소리에 옆으로 돌아 누우면서 속으로 고함을 친다.

"알았어! 알았다고! 아직 멀었다는 거! 나는 이제 시작이라는 거! 조금만 쉬었다가 반성하고 다시 하겠다고!"


태그:#윤솔지, #윤여사, #고삐, #수메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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