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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의 실제 모델인 인화학교 졸업생들이 새로 문을 연, '카페 홀더' 개업식에 다녀왔다. '카페 홀더'는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경제적 자립을 위하여 설립된 사회적 기업이다. 광주도시철도공사 1층 로비 한 켠에 아담하게 단장한 '카페 홀더'는 전문 바리스타와 사회 복지사의 지도 아래 졸업생들 스스로 운영하면서 장차 청각장애인들의 자립을 꾀할 목표로 만들어졌다.

 

도가니 열풍이 우리 사회를 발칵 뒤집어 놓았던 그때부터 일부에서 우려했던 것은 열기가 사그라진 뒤의 무관심이었다. 사람들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사태의 완전한 해결은 흐지부지 된 채 피해 아동들의 상처만 더욱 깊어지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었다. 이제 어느 정도 열기가 잠잠해진 요즘 그때의 기우가 점점 현실화 되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인화학교의 진실은 점점 사람들의 기억에서 멀어지는 듯 보였고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 채 다시금 모든 것이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닌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실제로 며칠 전 인화학교 전 이사장과 이사 한 명에 대한 영장이 기각되는 일이 있었다. 도가니 열풍이 한참이던 지난 가을 즈음이었다면 그런 판결이 가능했을까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과 석 달이 지났을 뿐이다. 그런데 슬그머니 그들을 향한 사전구속영장은 기각되었다. 이번에 영장이 기각된 인물들은 성폭행 당시 피해 아동에게 지급해야 할 합의금을 뻔뻔하게도 법인에서 지원하는가 하면 일부 법인 돈을 전용한 혐의를 적용되었다. 경찰이 사건에 대한 포괄적 혐의를 물어 신청한 사전 구속영장은 '이미 횡령한 돈은 변제했고 증거인멸과 도주우려가 없다'는 이유로 기각되었던 것이다.

 

소설로 영화로 모든 언론을 통해, 온 국민에게 도가니 열풍의 공분을 자아냈던 사건의 현재 진행상황이 그런 지경이다.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없다'는 가해자들의 범죄행위는 이제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인멸'되고 '도주'되는 단계만 남겨놓았다.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자립 도와줄 '카페 홀더'

 

그러던 차에 '카페 홀더' 개업 소식이 들려왔다. 사람들의 관심이 사그라지는 시점에 카페 홀더의 개업은 특별한 의미가 있었다. 카페 운영을 통해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일터가 조성되고 수익금은 그들의 자립생활을 지원하게 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아울러 당시의 고통과 진실이 영원히 묻히지 않게 하기 위한 물리적 공간으로서 카페 홀더는 시민생활의 한복판에 자리 잡게 될 것이다.

 

'인화학교대책위원회'와 '홀더운영위원회' 등, 사건 이후 지금까지 꾸준히 그들의 생활을 도왔던 사람들이 인화학교 학생들의 장래를 진지하게 고민한 끝에 착안한 것이 카페 사업이었다. 광주도시철도공사가 1층에 자리를 내주고 작가 공지영씨와 창작과 비평사가 자금을 대폭 후원하면서 사업 준비는 척척 진행되었다. 각계각층에서도 다양한 방법으로 도움을 주고 카페는 순조롭게 개업식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

 

카페가 개업하기까지 수 년 동안을 학생들 곁에서 외롭게 싸워 온 인화학교성폭력대책위원회 위원장인 김용목 목사의 노력이 없었으면 불가능 했을 것이다. 인화학교 학생들의 아픔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그런 아이들의 미래를 가장 많이 염려한 그의 노력이 있었기에 오늘의 카페 홀더가 있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자립의지였다. 그래서 간판에도 '홀로 삶을 세우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 카페 홀더'라는 문구가 적혀 있다.

 

드디어 12월 21일 오후 2시 '카페 홀더'의 오픈식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지역 정치인들을 비롯하여 작가 공지영씨와 영화사 대표, 그리고 그동안 도가니 사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던 이들이 함께하고 인화하교 졸업생들이 단체로 자리를 메운 가운데 행사가 시작되었다.

 

정치인들의 축사는 다소 장황하고 길었다. 반면에 인화학교대책위와 홀더 운영위원회 관계자들의 축사는 간결하면서도 숙연했다. 그들은 앞으로도 인화학교 졸업생들에 대한 변함없는 관심과 사랑을 간절하게 호소했다. 그리고 오늘의 주인공인 졸업생들은 서로 가만가만 수화로 대화를 나누면서 상기된 표정이었다. 

 

작가 공지영씨는 축사를 하기에 앞서 열심히 수화로 통역을 하는 청년, 사회를 맡은 여성과 진한 포옹을 나누었다. 그동안 인화학교 아이들을 보살펴온 그들을 향해 '천사'라는 칭찬과 더불어 박수를 보냈다. 공지영씨의 따뜻한 모습과 감동적인 축사로 행사 분위기는 더욱 훈훈해졌다.

 

강운태 광주시장은 카페 홀더의 성공을 확신했다. 비슷한 형태의 장애인 자활사업장이 시청 청사 내에서 운영되고 있는데 그 카페 매출이 연일 100만 원을 육박하고 있는 점이 그 좋은 예라고 했다. 강운태 시장의 바람대로 카페 홀더 본점이 튼튼하게 기반을 잡아 2호, 3호점이 속속 들어선다면 좋겠다.  

 

"오늘은 저희 성의니까, 커피 무료로 드세요"

 

행사장에는 유난히 휠체어와 의료 보조기구를 착용한 사람들이 많았다. 청각장애인들인 인화학교 졸업생들이 주인공인 행사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나는 멋모르고 행사장 분위기가 조용하고 차분하다고 좋아했다. 그런데 주변에서 서로 수화로 대화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특별히 행사장이 조용했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손과 몸짓으로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그들의 표정은 다들 흥분되어 있었다. 카페 홀더가 잘 운영되어 비슷한 처지의 장애인들을 위한 벤치 마킹의 훌륭한 사업이 될 수 있기를 그들을 보면서 나도 진심으로 기원해본다. 경력 수년 차의 바리스타가 이미 합류했고 사회복지사가 상주하며 그들을 돕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도 이미 소정의 바리스타 과정을 이수해 놓은 상태이다. 실지 카페를 운영할 예닐곱 명의 장애인들이 나란히 무대 앞에 등장하자 청중은 뜨거운 박수로 그들을 격려했다.

 

장소를 선뜻 제공해준 광주도시철도공사 측에서는 오늘도 직원들이 직접 나와 행사준비를 챙기는 등 부산했다. 무상이나 다름없는 조건으로 영업장소를 임대해준 도시철도공사 측의 배려가 없었다면 카페 개업은 이렇게 빨리 진척을 보기 힘들었을 것이다.

 

광주도시철도공사 이호준 사장의 인사말은 짧지만 특히 감명 깊었다. 그는 여느 정치인들처럼 주변을 정돈하고 사람들을 대기하게 하는 등 요란한 방법으로 등장하지 않았다. 조용히 나타나서 짧지만 진심어린 축하의 말을 남기고 시종일관 겸손한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 이호준 사장의 축사에는 장애안들을 향한 강한 애정이 진하게 묻어났다. 이후로도 간간히 행사의 원활한 진행을 위하여 조용히 애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광주도시철도공사가 카페 홀더에게 장소를 제공하는 데는 저런 오너의 마음과 자세가 크게 작용했음을 짐작케 했다.

  

인화학교 졸업생들의 악기 연주와 약식 공연을 끝으로 공식적인 행사는 마무리되고 이어서 조촐한 뒤풀이가 이어졌다. 마련한 음식을 함께 먹으며 여기저기서 부지런히 수화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펼쳐졌다. 그리고 로비에는 양쪽으로 긴 줄이 두 개 형성되었다. 한 쪽은 공지영씨에게 작가 사인을 받기 위한 팬들 줄이고 한 쪽은 카페 홀더에서 처음으로 선보이는 커피 맛을 보기 위한 줄이었다. 양쪽 줄 모두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었다.

 

오늘 행사에서 나는 오랫동안 보지 못한 반가운 지인들 몇 명을 만날 수 있었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각자 지자체의원, 카페 홀더 사업에 많은 지원을 보냈던 모 사회단체의 장, 장애인 단체 간사 등의 다양한 명함을 서로 내밀었다. 우리는 반가운 인사를 나눈 뒤 함께  커피 줄 끄트머리로 가서 섰다. 개업 기념으로 무료로 제공하는 아메리카노 맛을 보기 위함이었다.

 

"기념인데 카페 홀더 식구들 커피 맛은 봐야 하지 않겠어요?"

"우리 돈 내고 마셔야 하는 거 아닐까? 장사 집에 개업 첫날부터 민폐를 끼치는 꼴이잖아. 이렇게 긴 줄을 공짜로 막 퍼주고 언제 돈 벌어 2호점, 3호점 내겠어. 그러니 우리 돈 내고 마십시다."

 

그러자 우리 대열 옆에 서 있던 젊은 청년이 끼어들었다.

 

"아닙니다. 우리들 성의니까 오늘은 그냥 드십시오. 우리에게도 베풀 기회를 주셔야죠. 어차피 많은 분들의 도움 덕분에 오늘 여기까지 왔잖아요. 베푸는 행위도 돌고 도는 겁니다."

 

발음이 확실하지 않지만 강한 어조의 그 청년 역시 인화학교 졸업생 중 한 명인 모양이었다. 우린 그의 마음을 받아 들여 편하게 커피를 얻어마시기로 했다. 이윽고 긴 줄이 줄어들고 우리 차례가 되었다. 능숙한 솜씨의 바리스타는 언어 표현이 가능한데 옆에서 열심히 커피를 조제하는 앳된 얼굴의 여성은 청각장애인인 모양이었다. 바리스타는 커피를 가는 사이사이 사람들을 향해 간단한 수화를 시연하느라 바빴다. 우리도 급하게 그 바리스타의 지도하에 간단한 수화 한마디를 습득했다.

 

"자, 이렇게 해보세요. 이게 '고맙다'는 뜻인데요, 이 친구가 커피를 건네면 이렇게 하시면서 받아가세요.

 

바리스타 아가씨가 대열을 향해 양 손바닥을 이용한 시범을 보이면 커피를 받아가는 사람들은 커피를 건네주는 이에게 방금 배운대로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야! 우리가 방금 수화로 대화를 나눈 거지?"

 

지자체의원은 방금 자신이 펼친 수화가 못내 대견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따끈한 아메리카노 한 잔씩을 받아 들고 함께 웃었다.

 

"우리 옛날에 만나면 늘 술만 퍼마셨지 이렇게 분위기 있게 커피 마시면서 만나는 것이 아마 처음인 것 같다. 그렇죠?"

"그러게 말이죠. 공짜라 그런지 커피 맛도 죽이는데요. 감사합니다. 허허."   

 

우리는 커피 잔을 든 채 아까 배운 수화를 서로에게 되풀이하면서 애들처럼 웃었다. 왼손을 바닥에 대고 왼손 손등 위에 오른손을 직각이 되게 교차하는 수신호는 의외로 간단했다. '고맙다'는 말은 이렇게 말로나 수화로나 너무 간단하고 재미있었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간단한 '고맙다'는 인사 한마디에 평소 너무 인색했던 것은 아닌지, 카페 홀더 개업식장에서 드는 생각이었다.


태그:#카페 홀더, #공지영, #인화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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