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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러시아인 다섯 명이서 서울 한복판에서 부정선거 규탄을 외치는가? 그냥 하는 것이다."

지난 4일 러시아에서 치러진 하원의원 총선 결과에 부패의혹을 제기하는 러시아 국적 체류인 5명이 24일 오후 4시 한국언론재단 건물 앞에서 부터 인사동에 이르는 거리를 행진하였다. 이는 지난 10일에 이어서 한국에서의 두번째 러시아 부정선거 규탄 가두시위로 같은 일자에 러시아 모스크바에서도 12만 명 규모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조직되었다.

시위대의 슬로건은 '러시아에서의 깨끗한 선거 정착을 위하여'로, 앞서 치러진 총선 결과의 무효처리를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선거 당일 러시아 모스크바 나로드노에 오플체니에 거리에 위치한 투표소 화장실에서 기표된 투표용지 10장과 이를 기표함에 넣으려던 현장이 기자에 의해 발각되면서 과반수에 육박하는 여당 '통합러시아'의 승리에 러시아 민중이 의혹을 제기하기 시작하였고 추후 러시아 국내외 투표소에서 여러 부정선거 정황이 포착됨으로써 대규모 시위로 확산되었다.

영하 6도의 추운 겨울 날씨 속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청년 5명은 "푸틴퇴진", "러시아에서의 깨끗한 선거 정착을 위하여"라는 슬로건을 내세우고 거리를 행진하였다.

서울에서의 러시아 부정선거 규탄시위가 의미하는 바는 무엇이고 그들의 심정은 어떤지 들어보기 위하여 이번 시위의 참가자이자 수년 째 한국에서 체류중인 알렉산드르(남. 30)에게 면담을 요청하였다.

학생, 직장인, 기자 등 다양한 배경의 국내 체류 러시아인들이 한국언론재단 건물 앞에서 3개국어로 쓰여진 피켓을 보이고 있다.
▲ 러시아 부정선거 규탄시위 학생, 직장인, 기자 등 다양한 배경의 국내 체류 러시아인들이 한국언론재단 건물 앞에서 3개국어로 쓰여진 피켓을 보이고 있다.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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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4일 총선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이번 총선에서 불거진 가장 큰 문제는 소규모 도시와 공화국, 심지어 모스크바와 상트 페테르부르크에서 포착된 대규모 투표결과 조작이다. 게다가 선거관리인원들이 (여당지지세력으로부터) 지침서를 전달받은 후 투표집계 결과가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나타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졌다. 

또 통합러시아당의 승리는 여당이 민심을 잃었다는 현실을 전혀 반영하지 않고 있다. 이 승리로 인하여 메드베데프 정부는 오만에 사로잡혔다. 부정선거 의혹 수사를 위한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거나 총선결과를 재검토하거나 혹은 러시아중앙선거위원회 위원장인 추로프 경질을 보류하고 정부는 이번 선거가 매우 공정하게 치러졌다고 공표했다."

- 푸틴과 메드베데프 정권에 대한 생각은 어떠한지?
"초선 대통령으로서 푸틴은 조국을 위해 대단한 성과를 이룩했다. 그리고 이는 전임대통령이었던 옐친의 그것과 비교했을 때 더욱 빛이 났다. 연방 내 분리주의 세력을 잠재우는가 하면 옐친의 비호아래 있었던 부패세력을 척결하는 데도 기여했다. 그러나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민중의 권리를 제한하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수긍할만한 정도의 제한이었다. 곧이어 푸틴정권은 권력의 집중화를 추진하였는데 대통령의 개입 없이는 그 어떠한 정책입안과 집행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주지사를 위임하는 권한은 유권자가 아닌 대통령에게 돌아갔다. 러시아는 사실상 봉건제도에 틀어박혀 있는 국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대통령이 왕을, 자신의 권역에 대한 막강한 권한을 가진 주지사들이 영주를 대신한다고 보면 된다. 단, 왕에게 수입의 일부를 바쳐야 하며 그를 절대적으로 받들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중앙정부는 지방의 자본을 흡수하고 주지사들을 내치지 않는 것이다."

- 통합러시아당 출신의 두 대통령이 권좌에 오른 동안 삶에 어떠한 변화가 있었는지?
"개인적인 삶에서 많은 것들이 변했다. 블라디미르 푸틴이 대통령으로 선출되었을 때 내 나이는 19살이었고 학부생활이 한창인 때였다. 그가 국정을 한창 운영하던 때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혼인하여 러시아를 떠났다. 물론 친인척들의 삶은 경제적으로 한층 나아졌지만 국가의 여러 주요지표들이나 사회현상들이 위험한 침체의 징후를 보였다. 특히 자연과학 분야와 의학분야에의 투자위축을 예로 들 수 있다. 열 배로 폭등한 유가와 그 외 여러 천연자원들의 가격 상승을 고려할 때 러시아의 전반적인 삶의 질 상승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와 동시에 러시아 정부는 권력독점의 영상을 띠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유수 이동통신사 '비라인'의 대표 드미트리 지민니의 발언에 잘 나타나있다. 그는 2000년대 초반 해외로 빠져나간 러시아의 젊은 두뇌들을 되찾아 오기 위한 취지로 '디나스티야'라는 재단을 설립하였다. 재단은 젊은 학도들에게 거액의 지원금을 쥐어줬지만 러시아 국내에 상당기간 체류할 것을 요구조건 중 하나로 들었다. 나도 대학원 과정을 지원받았다.

그러던 2004년, 자신의 재단을 통해 학생들에게 지원금을 지급하면서 지민니는 "계속해서 이 과업을 진행할 것이지만 더 이상 당신들을 러시아에 붙잡아 둘 윤리적 소명의식을 느끼지 못하겠다"고 밝혔다. 그의 이러한 발언은 물론 호도르코프스키 유코스 사장에 대한 정권의 탄압과 전반적인 권위주의적 사회풍토에서 나온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인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혹한의 날씨 속에서도 행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미소짓는 참가자들 한국인들의 정치적 무관심과 혹한의 날씨 속에서도 행진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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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정부세력의 보복이 두려운지?
"친정부 세력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본다. 푸틴의 장기집권은 청년층으로부터 대폭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는데 방해가 되었다. '청년친위대'나 '스탈'과 같은 대규모 정치집단은 대체로 정권 실세들의 자양분밖에 안되고 여타 지방에서 올라온 가난한 청년들에게는 500루블(원화로 18,000원 상당) 정도의 수입을 벌게 해주는 좋은 기회일 뿐이다. 러시아 정부는 아마도 불명예스러운 일들을 꾸미고 행했을지도 모르지만 행정부 내에는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있음에 분명하다."

- 이번 집회의 결과는 어떨는지?
"무엇보다도 러시아 대중이 시위에 참여하고 다른 이들과 공감대를 형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난 10일 서울에서 있었던 첫 러시아 부정선거 규탄행진 이후 러시아 현지에 있는 지인들로부터 수많은 감사 메시지를 받았다. 그때의 기분이란 놀랍고도 기뻤다. 그 외 한국사람들이 러시아의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는 사람들에게 관심과 이해를 구하고자 한다.  몇몇 한국인 동료들과 대화를 나눈 후, 두 나라가 독재주의 정권하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심지어는 크레믈린의 '권좌 맞바꿔치기' 행태에 대해서 냉소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들에게 제가 러시아인이지만 이러한 정치적 상황에 반대입장을 표한다는 걸 보여주고 싶다."

- 어떠한 연유로 한국언론재단 건물 근처에서 집회를 소집하게 되었는지?
"한국 국내법에 따르면 대사관 근처에서 집회를 갖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들었다. 한국언론재단 건물은 서울의 중심지에 위치해 있고 무엇보다도 시위도구들을 준비하기 편한 로비가 있어서 (집회하기) 이상적인 장소다."

맵시있는 필체로 적힌 한국어 문구에 많은 행인들이 관심을 가졌다.
▲ '우리는 변화를 원한다' 맵시있는 필체로 적힌 한국어 문구에 많은 행인들이 관심을 가졌다.
ⓒ 신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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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 정치적 상황이 시위대가 원하는 대로 흘러간다면 미래의 러시아는 어떤 모습일까?
"첫째로 혁명적이거나 급진적인 변화가 러시아 사회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아시다시피 러시아는 손꼽히는 대규모 유혈혁명을 거쳤다. 두 번 다시 반복해서는 안될 일이다. 러시아 정부는 민중이 현 정책에 대해 몹시 불만족스러우며 변혁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해야만 한다. 정상적인 선진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양한 정당이 존재하고 삼권분립이 성립된다. 그러나 엘리트 계층이 이성을 잃는 경우, 빠른 속도로 권력에서 소외된다.

러시아에는 그런 모습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가두시위는 푸틴정권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며, 이러한 결과는 푸틴이 초래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선되어야 할 것은 러시아에 진정한 재야세력이 탄생하는 것이며 행정부에 신선한 피가 공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전세계적인 민주주의 후퇴기조를 몹시 우려하고 있다. 이런 때일수록 러시아는 거버넌스의 변화 촉구에 대비해야만 할 것이다."


태그:#러시아, #부정선거, #공정선거, #통합러시아, #푸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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