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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 한강이 있다면 경남 진주에는 남강이 있습니다. 남강은 진주 사람들에게 어머니 품같은 안식처입니다. 지난해 겨울보다 올 겨울은 따뜻하고, 일전에 구입한 '만보기' 때문이라도 걸어 10분 거리인 남강 둔치에 이틀에 한 번은 갑니다. 갈 때마다 '대한민국 어느 지역 사람보다 복 받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복을 주는 남강이니 어떻게 자주 가지 않겠습니까?

 

큰 아이는 공부한다며 도서관에 가 버리고 아내와 둘째, 막둥이와 함께 남강둔치로 갔습니다. 며칠 동안은 자전거 도로를 걸었는데, 오늘은 운동기구를 타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옆에서 비둘기가 무엇인가 열심히 먹고 있었습니다. 옛날 부산 용두산 공원에는 비둘기가 많았던 기억입니다. 모이를 사서 던져주곤 했는데, 남강둔치에는 모이를 파는 사람도 없고, 줄 사람도 없었습니다.

 

비둘기가 먹은 것은 죠리퐁? 짱구?

 

 

"아빠 비둘기 보세요. 뭔가 먹고 있어요!"

"벌레를 잡아 먹나? 이 겨울에 벌레가 있을 리 없고. 모이를 줄 사람은 없는데?"

"아빠 내가 한 번 가볼게요."

"먹게 그냥 둬. 겨울에는 모이가 없어. 오늘은 누가 준 것 같다. 가까이 가면 다른 곳으로 날아가 버릴 꺼야."

 

하지만 막둥이는 비둘기 쪽으로 달려갔습니다. 방해꾼 때문에 비둘기들은 성찬을 남겨두고 도망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비둘기들이 뭘 그리도 열심히 쪼아 먹었을지 궁금하기도 했습니다.

 

"아빠 '죠리퐁'인 것 같아요?"

"죠리퐁?"

"누가 죠리퐁을 태워버렸는데 비둘기들이 먹었어요."

"죠리퐁이 아니고 짱구아닌가? 아빠도 잘 모르겠다."

"여보, 이게 뭘 것 같아요?"

"나도 모르겠어요."

 

과자는 맞는데 죠리퐁인지, 짱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비둘기들은 타버린 과자를 모이인줄 알고 맛있게 쪼아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과연 비둘기는 과자 맛을 알았을까요? 원래 비둘기는 콩과 옥수수 같은 곡식을 아주 좋아합니다. 과자 모습이 비슷해 무조건 먹었던 같습니다. 타 버려 맛은 없었겠지만 분명 배는 불렀을 것입니다.

 

"쓰레기 버리면 환경오염 되잖아요"

 

비둘기를 뒤로하고 발걸음을 옮기는데 눈에 거슬리는 뭔가가 들어왔습니다. 소주병과 비닐봉투, 신문지가 나뒹굴고 있었습니다. 누가 갔다 버렸을까요? 둔치에서 술을 마시는 것도 볼썽사나운 일이지만, 자기가 먹은 것은 집에 가져가야 하는 것 아닐까요. 옆에는 쓰레기를 담는 포대가 있던데…. 30초만 투자하면 자연도 보호하고, 다른 사람 눈살 찌푸리는 일도 없었을 텐데 말입니다.

 

"너희들 쓰레기 보니 눈에 거슬리지? 함부로 버리면 다른 사람들 눈도 거슬리지만 무엇보다 강이 오염된다. 알겠어?"

"우리는 쓰레기 함부로 안 버려요. 함부로 버리면 환경오염 되잖아요."

"당연하지. 버리는 사람은 '나 혼자 버리는데'라고 하겠지만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100명이 나중에 줍는 사람이 얼마나 힘들겠니. 쓰레기 버리는 사람은 자연도 파괴하고 다른 사람에게 피해도 준다는 것이 마음에 새겨야 한단다. 알겠지? 남이 버린 쓰레기 주워 쓰레기 함에 넣는 것도 잊지 말고."

 

갈대냐 억새냐

 

저는 시골에 살았지만 나무 이름, 풀 이름을 잘 모릅니다. 갈대와 억새도 정말 헷갈립니다. 나이를 헛 먹었나 봅니다.

 

"여보, 나는 아직도 억새인지 갈대인지 모르겠어요."

"나도 잘 몰라요. 근데, 당신은 시골에서 살았다면서 어떻게 아직도 갈대와 억새를 구별 못해요?"

"당신은 시골에 살지 않았어요?"

"아마 갈대인 것 같아요. 억새는 조금 길지 않나? 나는 아무리 봐도 며칠 지나면 헷갈려. 나중에 틀려도 어쩔 수 없어 일단 우리는 '갈대'라고 정했으니 그렇게들 아세요."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습니다. 솔직히 보고 또 봐도 시간이 지나면 잊기 마련입니다. 아마 한 달 후 다시 둔치에서 갈대를 보면 억새인지 갈대인지 헷갈릴 것입니다. 갈대로 단정하면서 박일남 선생님의 <갈대의 순정>을 한 곡조 불렀습니다.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아랴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의 순정

사랑엔 약한 것이 사나이 마음

울지를 말어라 아아아아아 갈대의 순정

 

물론 억새를 갈대로 착각하고 불렀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나이 우는 마음을 그 누가 알겠습니까? 과연 아내는 알까요? 사나이 남편이 우는 마음을. 아내 앞에서 몇 번 운 적이 있습니다. 노무현 대통령 서거 때가 그랬습니다. 한 번은 군 생활에 겪었던 고통을 이야기하다가 얼마나 슬피 울기도 했습니다. 아마 아내는 알지 못하겠지요.

 

남강은 낙동강 지류입니다. 낙동강이라고 하니 이명박 대통령 위대한 업적(?)인 4대강이 생각납니다. 4대강 보들이 '두 동강' 날 수 있다는 기사를 며칠 전 보면서 얼마나 분통이 터지는지. 남강은 그나마 아직 살아있습니다. 남강 가운데는 아주 작은 섬(?)이 있습니다. 그곳에는 나무가 있습니다. 물에 비친 나무가 오염되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소주병을 버린 양심불량도 있었지만 제게 남강은 안식처입니다. 걸어 10분밖에 안 되는 곳에 어머니 품같은 안식처가 있습니다. 그 주변에 사는 우리 가족은 '복 받은 가족'입니다. 더 이상 강을 죽이는 '삽질'이 없다면, 몇 세대가 흘러도 아니 지구가 존재하는 그날까지 남강은 모든 이들에게 안식처가 될 것입니다.


태그:#남강둔치, #비둘기, #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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