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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서울시청 앞 한 유명 삼계탕집. 넓은 홀 안에는 손님이라고는 기자 한 명뿐이었다. 삼계탕을 시켜서 '무한리필'을 자랑하는 공짜 인삼주를 겉들여 나 홀로 식도락을 맛나게 즐기고 있는데 계속해서 들려오는 말이 있었다.

 

"허! 세상 오래 살다보니 대통령께서 선물을 다 보내주셨네!"

"뭔가 맛이 달라도 다르겠지요!"

 

이게 뭔소리인가? 입으로는 삼계탕을 계속해서 떠 넘기면서 귀를 쫑긋 세워 들어보니 이 집에 오늘 청와대에서 설 명절 선물을 보내왔다는 거다. 호기심 때문에 뭐 그냥 지나칠 수는 없는 일. 식사를 마친 후 주인아주머니에게 양해를 구하고는 문제의 선물박스를 열어보았다.

 

떡국 세트였다. 참기름, 참깨 그리고 다섯 팩의 떡국용 자른 가래떡이 유리로 만든 밀폐용기에 진공포장 상태로 담겨 있었다. 떡국용 자른 가래떡의 종류는 다섯 가지. 제품 뒤의 설명서를 들여다 보니 흑미로 만든 까만색이 돋보이는 가래떡, 색이 약간 누런 현미로 만든 가래떡 그리고 일반적으로 보는 흰쌀로 만든 가래떡이었다.

 

대통령이 보낸 설 선물 '떡국용 가래떡'. 뭐 설이라고 높은 곳에서 보낸 선물이니 뭐라고 할 것까지야 없다지만, 고개가 갸우뚱거려지는 것은 몇 가지가 있었다.

 

많고 많은 설 선물 중에 굳이 '떡국용 가래떡'을 고른 것은 무슨 사연일까? 김윤옥 여사의 '한식사랑'이 남달라서일까? 또 예전 노무현 대통령이나 김대중 대통령의 경우 팔도의 상징성을 담아서 선물을 골라 담았다는데 굳이 전북과 경기 그리고 경북산만 골라서 담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그냥 아무런 생각 없이 담았다?

 

실제 참기름은 제조원이 경북 안동, 참깨는 경기 양평, 흰쌀 가래떡은 전북 완주, 그리고 현미와 흑미 가래떡은 경기 안양이라고 표기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가장 이상했던 것은 처음에는 대통령의 선물의 가치를 알아주는 듯하자 반색을 하던 주인아주머니가 기사로 써볼까 한다고 말한 후에는 자신들 가게의 상호는 절대로 쓰지 말라며 손사레를 쳤다는 점이다. 그것도 가게 밖으로 쫒아나오면서까지 말이다. 기사에 상호는 쓰지 않겠다고 안심시킬 수밖에.

 

회사로 돌아와 '청와대 설 선물'을 검색해 보니 이런 글이 청와대 블로그에 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설을 맞아 사회각계 주요인사와 사회적 배려계층 등 약 7000여 명에게 설 선물을 보낼 예정입니다. 설 선물은 전직 대통령, 5부 요인, 국회의원, 장차관, 종교계, 언론계, 여성계, 교육계, 과학기술계, 문화예술계, 노동계, 농어민단체, 시민단체 등 사회 각계 각층 주요인사를 비롯 소년소녀가장, 독거노인, 환경미화원, 자원봉사자, 의사상자, 국가유공자, 독도의용수비대, 순직소방․경찰, 서해교전 천안함 및 연평도 포격 희생자 유가족 등 사회적으로 따뜻한 관심과 배려가 필요한 분들에게 14일부터 순차적으로 보내집니다. 2012년도 설 선물은 장애인 생산품에 대한 홍보 및 판로에 도움을 주고자 사회적 기업에서 생산한 떡국과 참기름 등의 제품으로 구성했습니다."

 

그렇다면 수십 년 전통을 자랑하는 그 유명한 삼계탕집 주인아주머니는 이 가운데 어디에 해당되었기에 '가카'로부터 설 선물을 받을 수 있었을까? 선물의 명분과 보내지는 계층을 청와대가 알리는 대로만 새겨 듣는다면 가문의 자랑이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왜 그 가게 주인은 몇 번씩이나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는지 다시 한번 궁금해질 수 밖에 없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신문고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이명박, #김윤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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