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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딸들이 일본여행을 떠났다. 애비는 비행기도 한 번 못 타보고 하늘에 떠다니는 비행기를 보며 "나는 저 비행기를 언제나 타보나?" 꿈결에 고개를 젖히고 비행기 뱃가죽만 바라보는 신세건만 딸들은 시도 때도 없이 일본이고 중국이고 열심히 다닌다. 고마운 일이다.

어찌 고마운가 하면 첫째는 애비 주머니 털어서 다니는 여행이 아니요, 둘째는 시키지도 않는 여행을 스스로 알아서 다니기 때문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여행을 사치라 여기지 않는다. 생각을 키우고 꿈을 키우는 데는 여행만큼 좋은 게 없다 여기는 까닭이다. 시장통에서 호떡장사를 해도 밖으로 여행을 많이 다녀본 사람은 스케일이 다르다.

비록 사진이지만 비행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입니다.
▲ . 비록 사진이지만 비행기를 이렇게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입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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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가 없어 비싼음식은 못 사먹는가 봅니다. 돈 많은 아비를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에 피식하고 자조섞인 웃음이 나옵니다.
▲ . 여유가 없어 비싼음식은 못 사먹는가 봅니다. 돈 많은 아비를 만났더라면 하는 생각에 피식하고 자조섞인 웃음이 나옵니다.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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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라 좁은 반도를 못 벗어난 본 사람은 그만큼 생각도 좁을 수밖에 없다. 아침은 집에서 점심은 후쿠오카에서,  그리고는 능청맞게 오늘 회사일이 바빴다고 피곤하다며 일찍 쓰러져 자도 믿을 수밖에 없는 시대가 아닌가. 내가 사랑하는 면목시장에서 호떡을 구워 일본의 나고야까지 따끈따끈한 그대로 택배로 보낼 상상을 하고 실행에 옮기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많이 다녀보고 그쪽의 문화를 접해보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두 딸에게 은근히 여행을 부추기기도 하는데,

딸이 사진설명을 안 해줘서 모릅니다. 그냥 일본이라는 것밖에는.
▲ . 딸이 사진설명을 안 해줘서 모릅니다. 그냥 일본이라는 것밖에는.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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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여행도 열심히 다니고 나름대로 끈끈한 삶을 이어가는 두 딸이 은근히 얄미운 까닭은 무엇인가? 어떤 자식이 부모의 마음에 흡족할까? 자식이 부모인 나를 뛰어넘을 때야말로 자식 키우는 가장 큰 보람이지 싶다. 그렇다고 두 딸이 나보다 못하다는 말이 아니라 하는 짓이 애비인 나를 꼭 닮아서 얄미운 것이다.

딸들이 바다 건너 남의 나라로 여행을 간다는데 모른 척 할 수가 없어서 없는 살림에 아내에게 30만원 만 보태주라고 일렀다.  내말로 30만 원이니 아내의 성격에 더 주었으면 더 주었지 덜 주지는 않았을 터, 작은 딸이 아침에 사진관엘 왔다.

생글생글 웃으며 하는 말이 아빠는 딸이 여행 가는데 모르는 척 할 거냐면서 손을 내민다. 아침에 나오면서 아내에게 한 말을 깜박 잊고 30만 원을 줘서 보냈다. 순간 아차 싶어서 뛰어나가 불러대니 뒤도 안 돌아보고 손을 흔들흔들하며 유유히 버스에 올라타는 게 아닌가. 할 말을 잃고 그 자리에 멍하니 서서 꽁무니에 시커먼 연기를 내뿜으며 떠난 버스를 바라다본들 때는 늦었으리. 어쩌면 이리도 하는 짓이 저의 애비 어렸을 때와 똑같은지 이래서 씨는 못 속이나보다. 쩟쩟.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저의 큰 딸입니다. 제 눈에는 예쁨니다만...
▲ 큰 딸의 일본여행 호리호리한 아가씨가 저의 큰 딸입니다. 제 눈에는 예쁨니다만...
ⓒ 조상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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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딸에게 사기라면 좀 뭣하지만 뭔가 당했다는 생각에 분이 안 풀려 식식거리고 있는데 잠시 후 큰 딸에게서 문자가 왔다. 아버지 생일 선물은 공항 면세점에서 전기면도기로 할 테니 기대하시라는 문자였다. 문자를 받고서야 마음이 풀리기는 했는데 내가 생각해도 그 애비에 그 딸이다.

내 생일이 음력 12월 24일인데 증조할아버지의 기일과 맞물려 변변한 생일상 한번 제대로 못 받아보고 지내는 처지라 양력으로 별로 즐기지도 않는 미역국 한 그릇으로 때우고 마는 처지다. 그래도 큰 딸이 애비 생일이라고 기억을 하고 있다가 면도기라도 선물을 해준다니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겠다.

기왕에 선물해주는 거 아주 근사한 놈으로 선물해주었으면 참 좋겠다. 암튼, 면도기 선물도 좋고 이래도 저래도 좋지만 이 두 녀석 설전에는 온다니까 탈이나 없이 잘 다녀왔으면 좋겠다.


태그:#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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