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012년 정치의 해를 맞아 2030세대 정치세력화 논의가 뜨겁습니다. 새누리당(옛 한나라당)에서는 일찌감치 26세 이준석 비대위원을 내세워 회춘을 꿈꿨고, 민주통합당은 슈퍼스타K 방식으로 2030세대 국회의원 최고위원을 뽑는 실험을 준비 중입니다. 여기에는 400명 가까운 2030세대들이 지원을 했다더군요.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어 오던 청년 운동이 결국 '정치'로 귀결되고 있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바람직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2012년 정치의 해를 맞아 그 방법으로 '총선 출마'를 택한 것도 당연한 것이겠지요. 2030세대의 정치세력화로 한국 정치가 확 바뀌었으면 하는 생각이 간절합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는 왠지 모를 찝찝함, 혹은 답답함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한동안 이유가 뭘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딱히 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2030세대 정치세력화'라는 것이 아직은 생소하게, 또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내용 없는 껍데기 구호일지도 모른다는 기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실 유사 연령대를 기반으로 한 '세대'라는 용어로 무엇을 설명한다는 것 자체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불가피하게 유사 연령대에서 벌어지는 수많은 현상과 가치, 문화적 특성 중 일부만을 특징화하고 이를 일반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대론은 특정 집단의 현상을 전체 세대의 현상으로 치부해 버리거나, 단지 (생물학적으로) 특정 세대에 속한다는 이유로 근거 없는 대표성을 자임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2030정치세력화도 이런 한계에서 출발할 수밖에 없습니다. "2030세대를 위한 정치를 하겠다"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는 이유가 2030세대 내부의 좁힐 수 없는 차이나 이질감을 은폐할 뿐더러, 서로 간의 '다름'을 전제로 작동하는 정치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특히 문제는 20대입니다. 그나마 다른 세대가 나름의 역사적·문화적 조건 속에서 정치적인 성향을 거칠게나마 형성해 왔다면, 20대에게는 과거와는 전혀 다른 모호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한번 살펴볼까요?

세대론으로 본 한국 정치

우선 각종 선거결과나 여론조사에서 일관되게 '보수적'으로 나타나는 50~60대는 직·간접적으로 한국전쟁을 경험하고 다양한 경로를 통해 반북·반공이데올로기를 내면화한 집단입니다. 물론 그들이 20대였을 당시에도 4·19혁명과 반유신투쟁 등 저항적 투쟁을 경험한 대학생들이 존재했지만, 당시 대학생 수는 지금의 10분의 1도 안 될 정도로 너무 작았습니다. 그나마 저항의 기본적인 감수성도 유교적 정의관에 입각해 있었고, 80년대처럼 체계화된 사상과 이념에 기반한 경우는 흔치 않았습니다. 

50대 이상의 세대에게서 나타는 보수적 경향이 반전되는 것은 40대에 이르러서입니다. 아시다시피 이들은 '혁명의 시대'라고 일컫는 1980년대에 대학을 다닌 486세대가 대표합니다. 보다 조직적인 학생운동이 전개되었고 이념과 사상도 그야말로 홍수처럼 흘러 넘쳤지요.

그런데 이들 세대는 '사회적 엘리트'로서의 성공 기회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당시까지는 대학생 수가 그리 많지 않아서 희소성이 있었지요. 3저 호황(저유가·저달러·저금리)을 비롯한 경제성장의 덕도 적지 않게 봤습니다. 낙수효과를 제대로 누린 셈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등장에도 이들의 공헌이 컸기 때문에 현실정치에서의 승리감도 맛봤습니다.

그러나 486세대의 이런 이중적 경험은 그들에게 약간의 오만도 안겨준 듯합니다. 마치 우리 가카가 '나도 한때는....'을 중얼거리시는 것처럼, 극좌에서 현실 제도정치까지 두루 경험해 봤을 테니 그럴 만도 하지요. 그래서 이들에게는 과정의 순수함보다 정치적 이해득실과 결과를 중시하는 마키아벨리적 현실주의 감각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요.

진보적인 30대, 불안하고 리버럴한 20대

그런가 하면 30대는 비운의 세대입니다. 선거결과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가장 진보적인 세대는 20대가 아니라 30대입니다. 이상하지요? 젊은 세대일수록 진보적인 경향이 나타나는데, 20대보다 30대가 훨씬 진보적입니다. 물론 예전에는 20대가 가장 진보적이었습니다. 왜 그럴까요?

정답은 없습니다. 다만 학생운동의 영향력이 어느 정도 남아 있던 1990년대 대학을 다닌 세대라 세상을 해석하는 진보적 프레임을 어느 정도 갖추고 있었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이들은 486세대와 달리, 사회적으로 성공하면서 대학시절의 입장을 크게 바꿀 만한 기회를 부여 받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1997년의 외환위기와 뒤이은 잔인한 노동유연화를 온몸으로 겪어내야 했습니다. 게다가 90년대 중반, 대학의 신자유주의화 슬로건과 함께 급속히 늘어난 대학과 대학생수는 '대졸자'라는 희소성마저 점차 앗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세대별로 보면 비주류세대라 할 수 있는 인생, 현실 고수보다 급진적 변화를 갈망할 듯도 합니다.

최근 선거결과를 세대별로 구분해 보면 30대가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 최근 선거 세대별 지지율 최근 선거결과를 세대별로 구분해 보면 30대가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다.
ⓒ 손우정

관련사진보기


문제는 20대입니다. 지금도 2030세대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20대와 30대와의 간극은 생각보다 큽니다. 2000년대 중반 즈음 대학을 다닌 이들은 수익창출에만 열을 올리는 기업화된 대학에 다니면서도 이를 해석해줄 프레임을 조직적으로 제공받지 못했습니다.

지금의 20대를 이해할 수 있는 키워드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불안', 다른 하나는 '리버럴(liberal)'한 감수성입니다. 불안은 확정적 실패와 좌절에서 나오는 공포와 달리 막연한 가능성에서 비롯되는 감정상황입니다. 성공을 위해 대학을 가고 학원을 다니며 해외연수를 가는 것이라기보다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으려고, 혹시나 하는 두려움에 항상 불안감을 안고 살고 있습니다.

한편, 20대의 리버럴한 성향은 여러 의식조사에서 확인됩니다. 대학생 보수화 담론이 한참 기승을 부릴 때에도 20대는 국가보안법 등 개인의 사고를 억압하거나 호주제, 혼전 성관계, 성평등, 조직생활에서 개인의 권리 등의 이슈에 대해서는 어떤 세대보다 가장 진보적인 응답을 선택했습니다. 

물론 기성세대보다 젊은 세대가 더 자유주의적 경향을 보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합니다. 하물며 피라미드에도 '요즘 아이들은 싸가지가 없다'는 낙서가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니, 기성의 규율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반권위주의적 경향은 젊은 세대의 특권인지도 모르겠습니다.

20대의 재진보화? 섣부른 판단

불안은 구조의 문제고 리버럴한 성향은 경험의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특성이 20대를 진보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2010년 지방선거와 이를 전후한 재보궐 선거 등에서 보인 20대의 표심을 두고 '20대의 귀환', '20대 재진보화' 담론이 홍수를 이뤘습니다. 그러나, 과연 20대는 재진보화한 것일까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20대의 정당지지율 추이를 살펴봅시다. 20대의 정치적 보수화가 노골화되기 전인 2004년까지만 해도 20대는 항상 진보정당과 개혁정당에게 다른 세대보다 높은 지지를 보내 왔습니다. 그러나 2005년 초부터는 20대에서 보수정당의 지지율이 진보·개혁정당을 추월하기 시작했고 2009년 중순까지 비슷한 추세가 이어집니다.

아시다시피 2009년 5월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20대의 정당지지율이 변화를 보이는 것은 바로 그 시점부터입니다. 그러나 2009년 5월 말 정당지지율 추이는 20대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양강구도가 확립된 시점입니다. 30대는 20대보다 진보·개혁 정당에게 더 높은 지지를 보냈습니다. 반면, 유독 20대에서만은 일정한 지지율을 유지했던 진보정당은 지지율 추락을 맛봅니다. 

2008년부터 4년동안의 20대 정당 지지율이다. 2008~2009년은 리얼미터, 2010년은 한길리서치, 2012년은 KSOI의 조사결과다. 20대에서는 2009년 5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의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 20대 정당지지율 추이(2008~2011) 2008년부터 4년동안의 20대 정당 지지율이다. 2008~2009년은 리얼미터, 2010년은 한길리서치, 2012년은 KSOI의 조사결과다. 20대에서는 2009년 5월, 노무현 전대통령의 서거 이후 민주당과 한나라당 간의 양강구도가 형성됐다.
ⓒ 손우정

관련사진보기


이런 결과를 종합해 보면 20대는 세대가 공유하는 특정 프레임으로 정치를 해석하기보다, 사회 전체의 흐름에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변화의 진폭은 어느 세대보다 넓지만, 이것 역시 시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 뿐 세대 차원의 가치관에서 비롯된 변화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20대의 보수화 경향이 일시적이었듯, 20대의 재진보화 경향 역시 일시적인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젊은 세대라고 항상 기성 세대보다 진보적인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경제가 어려워지면 사람들이 진보적으로 변할 것이라는 가정만큼이나 아무런 근거가 없습니다. 20대를 둘러싼 불안의 문화와 리버럴한 성향은 개인 간의 무한경쟁구도와 성공신화를 정당화하는 신자유주의적 감수성에 부응할 수도 있고 공공성과 연대성, 주권의 실현 등 진보적 가치에 조응할 수도 있는 가변적인 것입니다. 기존의 정치세력과 어떤 관계를 맺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집합적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20대가 진보적 가치관을 수용하고 있다고 보기 힘든 또 하나의 사례를 봅시다. 지난해 반값등록금 운동이 이슈화에 성공하고 서울시립대에서 실제로 반값등록금이 실현된 후 2012년 대학총학생회선거에서 운동권 학생회가 압도적으로 당선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운동권 학생회의 경향적 하락 추이를 확인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전통적인 운동권 총학생회와 반운동권 총학생회의 당선율은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기존의 정치기준으로 분류되지 않는 총학생회의 당선율은 높아지고 있다.(출처: 다음 학생운동 카페)
▲ 대학총학생회선거결과(2004~2012) 전통적인 운동권 총학생회와 반운동권 총학생회의 당선율은 경향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반면, 기존의 정치기준으로 분류되지 않는 총학생회의 당선율은 높아지고 있다.(출처: 다음 학생운동 카페)
ⓒ 손우정

관련사진보기


반값등록금운동에 헌신적이었던 이들에게는 아쉬운 결과지만, 반값등록금운동 자체가 진보적 정체성과 자연스레 부합하는 것은 아닙니다. 정치적 영향력, 즉 세력화는 자기집단의 이해관계에 근거하면서도 이를 넘어설 때 발휘됩니다. 최근 활약했던 대학생운동은 여전히 조합주의적 이해, 즉 대학생집단의 경제적 이익에만 초점이 맞추어져 있던 것일 뿐, 그것을 뛰어넘어 진보적 정체성을 확립하는 수준으로까지 나아가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체제수준의 대안과 기성정치의 변화 방향 내놔야

이런 이야기를 이토록 지루하게 늘어놓고 있는 이유는, 청년 정치인을 꿈꾸는 이들이 단지 20대, 30대 의원이 되는 것 이상의 것을 고민해 봐야 한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2030세대를 위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는 것을 넘어서는 고민 말입니다. 그런 맞춤형 공약은 굳이 청년이 아니더라도 정책전문가들이 뚝딱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이미 쏟아지고 있기도 합니다.

2030세대의 정치세력화를 위해서는 특정한 2030세대의 가치를 형성해 내는 것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최근 벌어지는 정치세력화 논의들은 2030세대의 집합적 가치는 여전히 모호하게 남겨놓은 채, 2030세대가 국회의원이 되기만 하면 세력화가 되는 것처럼 치부하고 있지는 않은지 우려됩니다.

20대를 둘러싼 불안의 문화와 리버럴한 감수성은 불안을 해소할 체제수준의 비전을 만들고 이 비전을 합의하고 실현할 민주적 방식, 즉 기존 정치문화의 변화 방향이 구체화되어야 합니다. 먼저, 등록금을 내리겠다거나 청년실업을 해소하겠다거나 하는 '이견 없는 정책'은 불안을 해소할 확정적 미래상을 보여주기에는 부족합니다. 등록금 인하가 아니라 대안적인 대학체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일자리 창출이 아니라 새로운 고용체제와 메커니즘을 제시해야 합니다.

2월 7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청년단체들이 모여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책 논쟁을 진행한다. 장소는 성미산 마을 극장.
▲ 2030세대 정치세력화를 위한 2월 토론회 2월 7일부터 28일까지 매주 화요일 저녁 7시에 청년단체들이 모여 정치세력화를 위한 정책 논쟁을 진행한다. 장소는 성미산 마을 극장.
ⓒ 손우정

관련사진보기


논의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교육단체에서는 대학체제 개편 논의가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각론이 아니라 종합적인 구상으로 불안의 근거를 해소하려는 노력입니다. 고용문제 또한 아직 하나의 고용체제로 수렴되고 있지 못하지만, 여러 아이디어가 나오고 있습니다. 2013년 고용체제 논의를 통해 새로운 모델이 제시될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또한 분명히 인식해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2030세대 정치세력화는 단지 2030세대의 문제를 대변하거나 요구를 실현하는 것만이 아니라 기성 정치를 어떻게 2030세대의 가치로 변화시켜 낼 것인가의 문제도 포함한다는 점입니다. 20대의 리버럴한 감수성에 부합하는 방식으로 기존 정치문화를 혁신해 내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세대론으로 보자면 새누리당의 리더십은 50~60대 리더십이며, 민주통합당의 리더십은 50대 리더십과 40대 리더십이 각축하고 있는 형국입니다. 통합진보당은 30대 리더십을 대표했지만, 통합 이후 40대 리더십으로 이동 중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2030세대의 정치세력화는 2030세대의 집합적 비전과 정체성을 수립하고 실현하는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기성세대의 리더십을 어떻게 20대 리더십과 접목시킬 것이냐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20대의 리버럴한 성향이 전통적인 진보적 가치와 접합을 이뤄서 새로운 정치문화를 선도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기존의 정치문화를 어떻게 혁신할 지에 대한 청년세대의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가 아니라 고립된 가치와 담론에 머무른 2030세대 보호전략일 뿐입니다. 

2030세대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언론에서 2030세대의 행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상품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품성이 있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론이나 기성정치세력이 원하는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 더욱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가는 경우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자칫 2030세대의 세력화가 아니라 기성권력의 세력확대에 이용되는 2030세대가 될 수도 있게 되는 것입니다.

청년세력화를 실현하는 청년정치인을 꿈꾼다면, 최소한 20대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부터 합의하는 작업에 착수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청년답게 모이고, 떠들고, 논쟁해야 합니다. 공론의 장이 필요합니다. 청년 국회의원이 등장하는 것은 정치세력화의 끝이 아니라 출발, 그것도 아주 작은 출발에 지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다음의 질문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이 세력화하겠다는 2030세대가 추구하는 가치는 무엇입니까?"

대답을 듣고 싶습니다. 건투를 빕니다.


태그:#청년정치세력화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차이보다는 공통점을 발견하는 생활속 진보를 꿈꾸는 소시민입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