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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 1300호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
 발해 1300호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
ⓒ 발해 1300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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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가 창조적이려면, 또한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가능한 미래를 예견하려면, 일순간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새로운 가능성들을 강조해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 하워드 진, <미국민중사> 가운데서

2월 5일 일요일 오전 11시, 서울 부암동 윤동주 시인의 언덕에서 발해 1300호 14주기 추모제(관련기사 보기)가 있었다. 1997년 12월 31일 발해항로를 따라 뗏목을 타고 떠나 이듬해 1월 22일 배와 함께 세상을 떠난 고 장철수, 고 이덕영, 고 이용호, 고 임현규를 기리는 자리였다.

야외무대에 이르는 길에는 발해 1300호의 역사를 보여주는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고, 야외무대에서는 헌다와 헌작을 시작으로 추모제가 1시간 여 진행되었다. 서울 성곽둘레길이나 인왕산을 등반하던 시민들이 멈춰서서 함께 하기도 했다. 맨 끝에 음복에는 제사상의 음식을 오가는 이들이 함께 나눠먹으며 팜플렛을 들고 떠났던 분들이 무엇을 했나 살피는 시간도 참 좋았다.

발해 1300호 14주기 추모제
 발해 1300호 14주기 추모제
ⓒ 류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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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추모제는 발해 1300호를 타고 떠났던 분들과 같은 세대분들, 발해 1300호와 연관이 있는 분들이 주로 참석하셨는데, 올해는 10대들도 십수 명이 왔다.

"그동안 발해 1300호, 그런 뗏목이 있었다는 것도 몰랐는데."
"사람들이 이런 일(추모제)을 하고 있는 것도 이번에 처음 알았아요."
"이런 일처럼 곳곳에서 의미 있는 활동들이 많이 있을 거예요. 내가 할 수 있는 일도 찾아야겠다 생각했어요."
"발해 역사가 그렇게 중요한 것이었구나 새롭게 알았어요."
"목숨을 걸 만큼 가치 있는 일이 있다는 그 열정이 부러웠어요."

그런데, 그때 정부든 국민이든 누군가 그들이 가는 길을 조금만 도와줄 수 있었다면 그들이 죽지 않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살아서 그 뜻을 널리 알리고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지 않았을까. 어쩌면 무관심이 그런 결론을 내게 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단체 사진
 단체 사진
ⓒ 발해 1300호 카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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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발해의 역사를 우리에게 되찾아주어 '우리에게도 자랑스러운 역사가 있구나' 할 수 있게 해준 그분들을 기억하고 알려서 그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란다.

하워드 진의 말처럼 일순간 스쳐 지나간 일일지언정 사람들이 저항하고 함께 참여하고 때로는 승리하는 능력을 보여줬던 과거의 숨겨진 일화들을 드러냄으로써 그래서 우리는, 설혹 승리하지 못한 역사일지라도 참여한 역사들이 이룬 일화들을 더듬어야 할 것이다.

결국 발해1300호 같은 이런 노력들이 모이고 모여서 역사를 만드는 걸 거다. 발해 1300호 만이 아니라 여기저기서 조그마한 노력들이 모여 우리를 이루고, 세상을 가꿔 나가는 게 아닐까.

나도 무언가 노력을 하며 살아야겠다.

* 발해 1300호 : 1997년 12월, 발해 건국 1300년을 앞두고 장철수, 임현규, 이영호, 이덕영 네 젊은들이 발해 당시의 방법으로 뗏목을 건조하여 발해 항로 복원에 나선다. 뗏목 이름은 '발해 1300호'. 이들은 옛 발해의 땅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발해 항로를 따라 바람과 해류에만 의지해서 제주도까지 항해를 시작한다. 혹한 속에서도 24일간의 항해는 성공적인 듯하였으나 이듬해 1월 23일 오후 일본 오키섬 앞바다에서 뗏목은 난파되고 만다.

덧붙이는 글 | 류옥하다 기자는 열다섯 살 학생기자입니다.



태그:#발해 1300호, #발해1300호추모제, #발해, #발해항로, #장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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