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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이들은 유년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 골목길 그 아이들은 유년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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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장군의 기세가 잠시 주춤하던 날, 한 무리의 아이들이 골목길로 뛰쳐나왔다. 오랜만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왁자지껄하니 골목길에 생기가 도는 듯하다.

"아저씨, 여기 언제 불났어요? 불난 거예요? 불낸 거예요?"
"아저씬 몰라, 여기 안 살거든."
"좋겠다."
"뭐가?"
"여기 안 산다면서요?"

잠시 멍해졌다.
여기에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 한 길 건너 서있는 아파트가 아니더라도, 이 골목에 살지 않는 것만으로도 좋은 일이라 생각할 수 있는 것이구나 싶어 마음이 짠하다.

투기꾼 단속... 마을 사람들은 방치됐다

채 피우지 못하고 말라죽어 차라리 오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시든 꽃 채 피우지 못하고 말라죽어 차라리 오랜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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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 화분에서 꽃을 피웠을 국화는 주인의 무심함 때문인지 말라 죽었다.
이 추운 겨울에도 여전히 꼿꼿한 것을 보니 서리가 내리기 전 목이 말라죽었을 터이고, 가을 햇살에 제 몸의 물기를 다 빼앗겼을 터이다.

그렇게 일찍 삶을 마감해서 슬펐니?
그런데, 이 엄동설한에도 여전히 그 모습 잃지 않았네?
피어있던 꽃보다 먼저 진 너희들이 더 오랫동안 곁에 있으니 좋다.

산 것과 죽은 것의 경계가 모호할 때가 있다.
참과 거짓의 경계도 그러하고, 가상과 실재 역시도 그러하다.

송파구 거여동 재개발지구, 이미 오래전에 선정이 됐으면서도, 사람이 살아가기에 적합한 환경이 아님에도, 여전히 재개발은 지지부진하다. 개발론자는 아니지만, 몇몇 투기꾼들을 단속한다고 그 많은 이들을 그런 환경에 살도록 방치하는 것은 국가적인 범죄행위가 아닐까?

발랫줄에 걸린 걸레, 그리고 걸레보다도 더 너덜너덜한 벽
▲ 빨랫줄 발랫줄에 걸린 걸레, 그리고 걸레보다도 더 너덜너덜한 벽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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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랫줄에 걸린 걸레보다도 더 후즐그레한 벽, 이제 저 낡은 벽에 페인트를 칠할 이유도 없다. 여전히 사람이 살고 있음에도 그렇다.

어릴적 이 골목길을 뛰어다닐 때에는 굉장히 넓다 생각했다.
그 골목길이 그 골목길 같아서 친구 집을 기억하려면 아주 오래 드나들어야 한다는 것과 어떤 표식을 정해둬야 한다는 것은 불편했지만, 아이들이 뛰어 놀기에는 그리 나쁘지 않았다.

간혹 유리창너머로 "이놈들!"하는 호통이 들려오기도 했고, 호기심을 유발시키는 소리에 귀를 창문에 대고 키득거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그때는 사람 살만한 곳이라 생각했다.

포스터 속 모델은 웃지만, 현실은 엄연히 다르다

겨울 아침이면 종종거리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 공동화장실 겨울 아침이면 종종거리며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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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도 공동화장실과 공동수도가 있었다.
수도는 어찌어찌 집집마다 들어갔는지 공동수도는 없어진 듯한데, 공동화장실은 여전히 남아있다.

아침이면 종종걸음을 치며 줄을 서서 기다리곤 했다.
그러다보면 이른 아침부터 시비가 붙기도 했다. 먹는 문제만이 아니라 싸는 문제로 말이다. 1970년대 어릴적 이야기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공동화장실이라니 이 빈부의 격차라는 것이 뭘까 싶은 것이다.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곳 아니지만, 포스터 속의 모델은 웃고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 실제와 가상 차마 환하게 웃을 수 있는 곳 아니지만, 포스터 속의 모델은 웃고있다. 그녀의 잘못이 아니다.
ⓒ 김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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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포스터 속 모델이 어떤 삶을 사는지 상관없이 지금 여기보다는 좋은 환경이겠지, 저 모델은 죽어도 이런 곳에서는 살지 못할 거야. 우리와는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지. 그러니까 우리의 스타.

골목길을 돌아 나오는 길, 꼬마녀석 몇몇은 "친구야, 놀자!"며 친구들을 불러댔다.
그 목소리보다 "좋겠다" 그 한마디가 맴돈다. 단지, 그 동네에 살지 않는 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좋겠다"고 한 그 목소리가. 그 아이들은 재개발지구에서 보낸 유년의 시절을 어떻게 기억할까?

아플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럼에도 여전히 그 아픔이 오히려 그들의 삶의 자산이 되길 바랄 뿐이다.


태그:#재개발지구, #거마지구, #공동화장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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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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