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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 창영초등학교
▲ 인천에서 최초로 세워진 공립학교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진 인천 최초의 공립학교 창영초등학교
ⓒ 야마다다까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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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연말에 아는 일본출신 어머니가 학부모회장을 맡고 있는 창영초등학교에 '다문화 가정 학생과 학부모 대상의 문화예술교육'을 하고 왔다. 창영초등학교는 인천에서 최초로 세워진 공립학교다. 1907년에 세워졌으니 100년이 넘은 역사를 가졌다.

3·1운동 당시에는 인천에서 만세운동의 발상지가 된 독립운동의 전통이 깊은 곳이기도 하다. 창영초등학교 건물은 일제강점기 전반기 건물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아치형 창틀이 눈에 띈다.

지난연말에는 너무 바빠서 못하고 있었던 그날의 수업의 기록 비디오들을 조금씩 편집하면서, 다시 추억을 떠올렸다.

그날은 오전에 다른 일을 보고 허겁지겁 달려가 급한 마음으로 빨간 벽돌로 된 낡은 현관으로 향했지만 문이 닫혀 있어서 당황했다. 알고 보니 그 옛 건물 뒤에 새로운 학교 건물을 지어서 사용하고 있었다. 옛 학교 건물을 살리느라 불편함을 감수하고 그 뒤에 건물을 다시 세운 모습을 보고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키는 곳이라는 감명을 받았다. 

수업에 참석한 학생들도 자신들이 다니고 있는 이 학교의 역사를 알고 있었고, 학교를 사랑하는 정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일본, 중국, 필리핀 등 외국출신의 부모들과 지역 주민들이 이 지역의 새 주민으로 함께 어울리면서 살아가는 모습도 보기 좋았다.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 테이프로 작품 만들기도 했다.
▲ 창영초등학교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의 작품 학교에서 학생들이 사용하지 않은 공간을 찾아서 테이프로 작품 만들기도 했다.
ⓒ 야마다다까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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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들이 남긴 시간을 보존하려는 '고집'

창영초등학교에서 수업을 마치고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과 문화예술 교육지도를 해 주시는 선생님들과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학교 주변에 있는 문화예술 단체들의 아지트들을 구경했다.

마지막으로 들어간 어떤 헌책방에서 멋있는 다락방 겸 전시실을 구경했다. '스페이스 빔'이라는 공간은 전에 창고로 쓰이던 곳인데 1층과 2층 다락방들을 개조하여 인천의 개항문화 자료들과 사진, 그리고 오래된 책들을 전시하면서 인천과 '배다리'라고 불리는 창영초등학교 주변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그곳에서 친절한 큐레이터 역할을 해주신 분은 민화작가 정성훈 선생님이었다.

동행했던 윤희 선생님은 약속이 있다고 먼저 가버렸고, 나에게도 다른 약속이 있었지만 인천에 아직 살아남아 있는 역사와 문화 구경에 취해 시간을 잊어버리고 이야기를 나누었던 것 같다.

동네 주변, 여기저기에 남은 옛 건물들을 구경하면서, 이 동네 사람들은 조상들과 함께 호흡하며 조상이 남긴 시간들을 보존하고 싶어 하는 강한 '고집'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배다리의 어떤 헌책가게 다락방 전시물에서 옛 인천 모습들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옛 배다리 서민들의 활기 넘친 모습이 담긴 사진 자료 배다리의 어떤 헌책가게 다락방 전시물에서 옛 인천 모습들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 야마다다까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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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 토박이 서민 생활의 중심지 배다리

그 옛날, 중국인들이 인천에 이주해 와서 살았던 동네가 중구의 차이나타운 주변이라면, 여기 동구의 배다리 지역은 인천의 토박이 서민들의 생활 유통 중심지였었다는 것을 옛 사진을 보면서 알 수 있었고 사람들의 활기를 느낄 수가 있었다.

동네를 한 바퀴 돌아나가다가 아직도 남아 있는 옛 건물들 사이에서 예전에 성황을 이루었을 여인숙 동네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지금은 초라하고 궁색해 보이지만 아직도 여인숙들이 운영되고 있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 옛날 상인들이 물건을 팔고 사며 이 여인숙에 머물면서 수많은 사연들이 오고 갔으리라 상상이 되었다.  

나는 이러한 전통 마을 환경을 고집하는 모습들을 어디선가 봤던 기억이 떠올랐다. 일본의 오사카나 도쿄 지역 어느 곳엔가 한국 교포들이 사는 동네 모습들과 연결된다.

나도 한동안 살았던 닛포리역 주변의 한국 식품 상가나 전에 지인을 찾아 갔던 길에서 보았던 오사카의 코리안 타운 옛 모습들이 같은 향기를 풍긴다.

인천시의 자매도시인 요코하마시의 코토부키초라는 노숙자들이 사는 동네는 전면 재개발을 하지 않고 옛 여인숙 건물들을 리모델링해서 외국 관광객들이 저렴하게 숙박할 수 있도록 유스호스텔화해서 성공했다. 인천 배다리 지역도 오래된 건물을 그대로 살리면서 잘 리모델링하면 인천의 새로운 관광 명소가 될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겨울이라서 꽤 추울텐데 일부러 건물을 보존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느꼈다.
▲ 옛 공장을 그대로 이용한 아트 스페이스 겨울이라서 꽤 추울텐데 일부러 건물을 보존하겠다는 주민들의 의지를 느꼈다.
ⓒ 야마다다까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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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의 노고가 역사문화마을 만든다

지역의 역사문화 보존과 발전 방법에 대해서 생각하게 한 계기가 되었던 배다리 지역 방문 며칠 후에 우연히 이런 기사를 찾았다.

"많은 역사 유적에 헌책방 거리도 있는 배다리를 역사문화마을로 만든다. 작약도는 영종도와 다리로 연결한 뒤 예술의 섬으로 가꾼다. 낡은 쪽방촌인 아카사키촌은 주민들이 마을공동체를 이뤄 살 수 있는 방식으로 재생사업을 벌인다. 만석부두와 화수부두를 유통과 관광기능을 두루 갖춘 친수공간으로 바꾼다…"

개발전문가들이 아니라 오랫동안 그 지역에서 함께 살아온 공무원들과 지역주민들이 생각을 모으고 정리해서 더 좋은 작품들을 만들기도 하고 예산도 절약했다고 했다.

이 기사를 읽으면서, 지난 번 헌책방에서 만났던 가게 주인의 이야기나 이혼을 당하면서도 개발에 반대한 주민 이야기 등을 회고하면서, 아마 그런 주민들의 노고(勞苦)의 결실이 이런 방안을 만들어낸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났던 이 지역 이주민 가족들도 앞으로 이 동네에서 아이들 키워가면서 인천의 역사문화마을을 발전시킬 원동력이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기대를 한다.

옛 건물들의 역사와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면서도 현재와 연결된다면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멋스러운 도시가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주민들에 의해 지켜지고는 있지만 그 맥을 잊기 위해 가느다란 숨을 겨우 내쉬고 있는 이곳 배다리가 앞으로도 개발의 광풍에 휩쓸리지 않기를 기원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온라인이프 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인천, #배다리, #이주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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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이주민영화제(MWFF) 프로그래머 참여 2015~ 인천시민명예외교관협회운영위원 2017년~2019년, 이주민방송(MWTV) 운영위원 2021년 ~ 인천서구마을공동체 웃서모 대표 겸임 2023년~ 인천 i-View 객원기자 겸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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