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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 윤서와 유니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 글렌로즈 레데시오 씨. 이 사진을 찍은 남편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 아이들과 함께 산을 오르며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 윤서와 유니를 데리고 산을 오르는 글렌로즈 레데시오 씨. 이 사진을 찍은 남편은 가족들과 함께 여행하기를 좋아한다.
ⓒ 글렌로즈 레데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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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송탄국제교류센터에서 영어회화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필리핀 출신 여성 글렌로즈 레데시오 남(Glenn-Rose S. Redecio-Nam·35) 씨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주민등록증부터 내보이며 한국인이 된 것을 자랑스러워했다. 주민등록증에는 그녀의 원래 이름이 한글로 소리 나는 대로 적혀져 있었다. 좀 독특해 보이는 맨 뒷 글자 '남'은 남편의 성(姓)을 따온 것이었다.

2004년 11월 결혼한 그녀는 남편을 따라 곧바로 평택으로 이주해왔다. 그해 생전 겪어보지 못했던 겨울철 동장군을 만난 그녀는 잔뜩 주눅이 들고 말았다.

"늘 무덥기만 한 열대 기후의 필리핀에서 살다가 한국에서 해외생활을 처음 했어요. 저는 그해 겨울 4개월 내내 두터운 외투를 껴입고 추위를 견뎌야 했습니다. 아마도 송탄에서 처음 맞이했던 2004-5년 겨울이 가장 추웠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그녀는 이렇게 진저리를 치면서도 여덟 번째의 겨울을 보내는 지금은 꽤 적응된 모습이었다. 단지 한국말이 아직도 어려워 제대로 말할 수 없는 것 외에는. 남편과의 의사소통은 여전히 영어로 한다. 그녀의 남편은 나이도 훨씬 많고 인생 경험도 많지만 자신과 아이들을 자상하게 잘 이끌어준다고 자랑했다.

"저는 한국에 처음 와서 남편과 함께 가까운 송탄중앙침례교회에 나갔습니다. 영어예배에 참석했는데 가까운 미군부대에 근무하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만나 영어로 대화할 수 있어서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다음 달부터 수원의 한 대학교의 한국어 강좌에 등록했죠."

글렌로즈 레데시오 남 씨가 영어교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송탄국제교류센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송탄국제교류센터 앞에서 글렌로즈 레데시오 남 씨가 영어교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는 송탄국제교류센터 앞에서 활짝 웃고 있다.
ⓒ 허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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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그때만 해도 한국 정부가 결혼 이민자들에게 기초적인 한글실력이나 한국문화에 대한 시험을 요구하지 않았으나 지금은 사정이 좀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래도 한국에 온 첫해가 자신에게는 가장 황금기였다고 회고했다.

"당시에는 아이가 없었고 남편은 돈이 좀 있었어요. 그래서 한국의 여러 지방을 여행할 수 있었죠. 남편은 낚시와 등산을 좋아했고, 날씨가 좋으면 캠핑을 즐겼어요. 설악산, 비빔밥으로 유명한 전주, 봉평 허브나라, 아름답고 고요한 사찰과 민속촌도 많이 가봤죠."

그 밖에도 그녀는 에버랜드, 변산반도, 강원도, 서울, 전라남도에 자주 간다고 했다.

"최근에는 제주도와 담양, 몽산포를 다녀왔어요. 여행을 통해 한국사람들에게서 많은 감동을 받아요. 옛날 부엌이 있는 한옥에 살면서 한국인들만의 방식으로 만든 음식과 문화를 맛볼 수 있으니까요. 여러 가지 반찬과 함께 나오는 한정식이라는 것이 그렇고, 12가지의 다른 음식을 신선하게 만들어 내놓기도 하는데 얼마나 솜씨가 좋은지 늘 감탄할 뿐입니다."

그녀는 특히 김치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한국에 와서 처음 시집식구들이 김장을 담그는 모습을 보고 그녀는 노트에 자세히 적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계량된 컵을 통해 일정한 양념을 넣는 미국식이 아니라 오로지 여성들이 직감에 의존해 양념을 섞어 김치를 버무리며 맛을 조절하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고 한다.

그녀는 한국에 오기 전 필리핀에서 생물을 전공하고 과학을 가르치는 고교 교사였다. 그녀의 친정어머니도 지금 필리핀에서 수학교사로 활동하는 엘리트 집안이다. 그러나 한국에 온 후 그녀는 전공을 살리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9월부터 송탄국제교류센터에서 매주 월요일 오전 2시간 동안 5~7세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은 자신도 학생이 되어 일본어를 배운다. 앞으로 한글도 더 열심히 배울 계획이다.

"한글은 읽고 쓸 수는 있어도 말하는 것이 쉽지가 않아요. 우리 집에서는 영어가 공용어이지만 다행히 아이들은 아빠와 한국말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아들 윤서(7)와 딸 유니(5)는 영어와 한국어를 함께 쓰고 있다. 그녀는 어린이집에 두 아이들을 보내 한국아이들이 배우는 것을 다 배울 수 있게 한다. 뿐만 아니라 방문교사를 통해 언어와 피아노도 가르칠 정도로 극성스러운 한국 엄마가 다 됐다.

"저는 다문화 가족의 한 사람으로서 정부가 외국인 부인들이나 다양한 국적의 가정들을 한국 시민권자로 받아들이기 위해 공공교육에 더 많은 지원을 했으면 합니다. 예를 들면 세미나를 한다든지, 팸플릿이나 다른 여러 가지 수단을 통해 대중에게 정보를 제공한다든지 하는 것입니다."

그녀는 한국의 많은 지방을 가봤지만 자신이 가족과 함께 살고 있는 제2의 고향은 평택이라고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평택은 땅이 평평하고 넓어서 저로서는 산을 오르내리지 않고 평지를 다닐 수 있어 수월하고 좋아요. 앞으로의 계획은 제가 할 수 있는 한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요. 제가 사는 지역이 저와 제 아이들을 위해 또 지역주민들을 위해 더 나은 공동체가 될 수 있도록 말입니다."

그녀는 평택이 글로벌 도시가 되는 조건 가운데 하나로서 시민들의 영어 소통능력을 은근히 강조하며 자신이 기꺼이 도우미 역할을 하겠다고 강조했다.

덧붙이는 글 | 평택시사신문에도 실었습니다



태그:#글렌로즈, #송탄국제교류센터, #필리핀, #평택, #다문화가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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