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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됐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시 질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의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2008년 7월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시행됐다. 이명박 정부는 당시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시행 시 질병을 앓고 있는 어르신들의 삶의 질 개선과 일자리 창출에 도움이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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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거 알아요? 노인요양원은 노인 죽으라고 보내는 곳이에요... 현대판 고려장이 거짓말이 아니에요."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지난달 29일 서울시 응암동 새절역 부근에서 만난 윤아무개(50·여)씨. 기자와 만나자마자 마시는 물부터 찾았다. 기관지가 상해서 자꾸 목이 메인다고 했다. 윤씨는 "노인들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잘라낼 때 먼지가 많이 나온다"고 말했다. 이 때문이다.

그는 시설요양보호사다. 일터는 주로 노인요양원이다. 요양원은 최근 몇 년새 전국 곳곳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지난 2008년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만들어진 이후부터다. 이곳에서 일하는 보호사들은 대체로 중·고령 여성노동자들이다.

윤씨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24시간을 격일로 일하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바로 나왔다"고 말했다. 모자를 푹 눌러쓴 그의 눈엔 피곤함이 가득 차 있었다. 윤씨는 지난 2008년 요양보호사 자격을 땄다. 현재는 S노인요양원에서 5개월째 일하고 있다. 그는 조만간 일을 그만둘 생각이다. 다음은 그의 이야기다.

"아침 9시부터 꼬박 24시간 일하고 나왔어요" 

"그제 아침 9시부터 오늘 아침 9시까지 꼬박 24시간을 일하고 나왔어요. 쉬는 시간도 없어요. 그나마 점심과 저녁식사 1시간씩 쉬는 시간이 있는데, 돌봐야 할 노인들이 워낙 많아서..."

윤씨는 "10분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잠도 거의 못 자고 일한다"고 토로했다. 곧장 노인요양원을 '노인 죽으라고 보내는 곳'이라고 했다. 현대판 고려장이라는 말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것이다.

윤씨가 일하는 S노인요양원에는 25명의 노인이 있다. 그러나 이들을 돌보는 보호사는 단 6명뿐이다. 총 1, 2층으로 나뉘어 있는데 한 층에서 3명씩 24시간 맞교대를 하다보니 실제 보호사 한 명당 노인 8명을 돌보는 꼴이다. 그는 "맡은 노인이 많다 보니, 거동이 가능한 노인에게도 웬만하면 누워있으라고 한다"고 말했다.

현행 '노인요양장기보험'의 보호사 배치의무를 보면, 요양시설의 경우 보호사 1명당 노인 2.5명을 돌보도록 돼 있다. 다시 그의 고백이다.

"솔직히 어린아이 2~3명 돌보는 것도 힘든데, 노인 8명을 맡다보니 정말 바쁘죠. 노인 한 분씩 잡고 20분 이상 밥 먹일 시간도 없어요. 오죽하면 정신없는(치매 등) 노인 분들의 경우 밥이랑 반찬을 믹서기에 갈아서 5분 안에 먹일 정도니... 이건 정말 할 짓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죠."

윤아무개씨가 직접 보내온 밥과 반찬을 갈은 음식이다. 음식 자체의 질도 현저히 낮다고 한다.
 윤아무개씨가 직접 보내온 밥과 반찬을 갈은 음식이다. 음식 자체의 질도 현저히 낮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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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이랑, 반찬이랑 믹서로 갈아서 먹이기도"

그뿐만 아니다. 그는 "시설 내에서 대소변이 묻은 기저귀를 재활용 하기도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결국 독한 성분이 피부로 스며들어 노인 중에 욕창이 안 걸린 분이 없다"고도 했다.

게다가 그가 일하던 요양원은 지난겨울에 중앙 난방 대신 전기 난로를 썼다. 노인들과 보호사들 입장에선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또 싸구려 전기장판 사용하다 보니, 일부 오래 누워있던 노인은 화상을 입기도 했다.

노인들만 고통 받는 것은 아니다. 윤씨와 같은 '돌봄 노동자'들도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그는 "하루에 10여 명 노인들을 목욕시키고, 휠체어에 태우는 일을 반복하다 보면 몸이 남아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임금 역시 많지 않다. 24시간 격일로 한 달 내내 일해서 받는 돈이 120만 원이다. 평일 초과근무수당, 휴일과 야간수당까지 다 포함 돼 있다. 그는 "이런 것까지 다 계산하면 실제 월급은 90만 원이 채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의 말이 계속됐다.

"더구나 고무장갑, 마스크 같은 기본 운영 장비도 내 돈으로 샀어요. 시설 센터장이 마련해 놔야 하는데... 근무 조건은 최악인데 해야 할 일은 요양보호 이외에 밥, 청소, 세탁 등 안 하는 게 없어요. 이건 뭐, 보호사가 아니라 파출부예요. 파출부..."

"24시간 격일 근무, 보호사가 아니라 파출부"

요양보호사협회에서 지난해 은평구 돌봄노동자를 대상으로 심층설문조사를 한 결과, 이런 수모는 윤씨만 느끼는 것이 아니었다. 요양보호사 A(58)씨는 "요양보호사는 어르신 보호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었다"면서 "하지만 요양보호시설 안의 방, 복도, 화장실 등 모든 곳의 청소도 해야 한다"고 전했다.

또 다른 요양보호사 B씨도 "요즘은 아르바이트도 시급 5000원이 넘는데, (보호사 시급이)4320원이라는 사실에 너무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일은 애기 낳는 것처럼 뼈마디 갈라지며 하는 일"이라며 "오히려 애 낳는 것보다 더 힘든 근육을 파손시키면서 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요양보호일은 부모 자식 간에도 못할 일"이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노인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도입된 요양보험제도가 실제로는 제대로 거의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시행초기 제도적으로 허점이 많다 보니, 노인이나 요양보호사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는 지적이다.

현정희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부위원장은 "지난 2008년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가 실시됐지만, 요양보호사의 구성이나 임금, 노동시간 등이 제대로 명시돼 있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는 "3년이 지나도록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았고, 결국 현장 곳곳에서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허점 투성이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 노인과 보호사 모두 '피해자'

작년 보건복지자원연구원과 전국요양보호사협회가 전국 65개 요양기관, 424명의 요양보호사를 대상으로 지난 2010년 벌인 실태조사 결과는 이를 잘 보여준다. 보호사 10명 중 8명 이상이 휴식시간에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고 답했다. 이들이 식사를 하는 곳도 절반이상 '병실'이라고 답했고, 식사공간 자체가 없다고 답한 보호사도 32%에 달했다.

보호사 대부분이 제대로 된 휴식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법적으로 정해진 각종 시간 외 수당이나 야간수당을 받지 못하는 보호사들도 대부분이었다.

특히 요양원쪽에서 정부 지원금을 더 받아내기 위해 편법적으로 보호사들을 배치해 운영하고 있다. 예를 들어 원장을 포함해, 가족이나 조리사까지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놓고, 마치 노인들을 직접 돌보는 것처럼 신고를 한다는 것이다.

요양보호사 C씨는 "요양원쪽에선 실제로 일하는 보호사를 적게 뽑아놓고, 서류상으로는 훨씬 많은 보호사들이 일하는 것처럼 해놓고 있다"면서 "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지원금을 받아 남기려는 수법"이라고 지적했다.

석명옥 전국요양보호사협회장은 "보호사들이 대체로 저소득층의 중·고령층의 여성 노동자라는 점 때문에 (요양원쪽에서) 시설 운영을 막무가내식으로 하는 곳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인요양제도는 나의 부모님이나 미래의 나 자신도 이용할 수 밖에 없는 제도"라며 "요양보호사의 정당한 임금과 노동조건 개선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노총 등에선 8일 여성의 날을 맞아 '돌봄노동자' 퍼포먼스 등 행사를 진행했다. 또 향후 4월 국회의원 선거와 대선에서 요양보호사 처우 개선을 요구할 방침이다.

덧붙이는 글 | 김혜승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태그:#시설요양보호사, #돌봄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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