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성적보다 꿈을, 경쟁보다 우정을"이라는 급훈이 자율형사립고의 철학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자율형사립고가 된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성적보다 꿈을, 경쟁보다 우정을"이라는 급훈이 자율형사립고의 철학과 맞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눈물을 머금고 자율형사립고가 된 학교를 떠날 수밖에 없었다.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하루 만에 임용취소된 3명 중 한 명인 이형빈 교사의 반 급훈은 "성적보다 꿈을, 경쟁보다 우정을"이었다. 이런 교사가 자율형사립고와 맞지 않다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그를 아는 사람들은 그를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이 되고자 한 교사'라고 한다. 그는 왜 학교를 떠났고, 학교 복귀는 어떻게 좌절되었을까?

운명을 바꾸어 놓은 자율형사립고, 그리고 눈물의 선택

이형빈은 천상 교사였다. 눈이 오면 교실에서 국어수업을 하는 대신 운동장으로 나가서 함께 눈을 맞으며 시를 읋고, 여고생들이 거리낌 없이 팔짱을 끼는 그런 교사였다. 그런 그가 어느날 다니던 학교를 그만 두었다. 왜 그랬을까?

그가 근무하던 이화여고는 2009년 동창회와 재단의 주도로 자율형사립고 전환을 추진하여 서울 소재 여고 중 유일하게 공정택 교육감에 의해 자율형사립고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이 교사는 동료들과 자율형사립고 전환을 반대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였다.

그는 자신의 교육철학과는 너무도 다른 자율형사립고에서 직업인으로 월급 받으면서 살아야 하나 하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중 발생한 강남 백화점 VIP룸 설명회 사건은 그가 더 이상 학교에 머무르기가 힘들겠다는 생각을 굳히는 계기가 되었다.

자율형사립고 전환이 확정된 후 학교는 여기저기에 현수막을 내걸고 학생 유치를 위해 학교설명회를 열었다. 그런데 그 장소가 강남의 한 백화점 VIP룸이었다. 그리고 학교 측 인사의 한마디.

"학부모들이 많이 오지는 않았지만 액기스만 왔더라."

이 한마디가 그의 뇌리를 꽝하고 내리쳤다. 자율형사립고가 '특별히' 유치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바로 강남 최고급 백화점 VIP룸을 드나드는 귀족들의 자녀들이라는 사실이 확인된 순간 그는 그 학교에서 더 버티기가 힘들었다.

게다가 새로 짜인 교육과정에서 국·영·수가 천정부지로 늘어나고 음·미·체는 줄어드는 것이 현실화되고, 정규 수업이 8교시까지 늘어났다. 그가 최악이라고 우려하던 상황이 하나하나 현실화되었다.

서울의 거의 모든 사립학교들은 하나의 학교법인 내에 여러 학교들이 존재한다.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된 중앙고·세화고·우신고·숭문고 등 거의 모든 학교들이 같은 재단 내에 중학교가 있거나 다른 일반고가 존재한다.

그래서 자율형사립고 근무가 자신의 교육철학에 맞지 않은 교사들은 모두 중학교 또는 다른 일반계 학교로 전보를 갔다.

그런데, 이형빈 교사는 갈 곳이 없었다. 이화여고를 운영하는 이화학원에는 중학교가 없으며, 또 다른 고등학교인 이화외국어고등학교도 특수목적고로 철학이 맞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결국 이 교사는 자신의 교육자적 양심, 교육철학을 지키는 길을 택하고 아이들과 눈물의 이별을 해야 했다.

자율형사립고 첫해인 2010년 3월 새학기를 앞두고 학교를 그만 둔 이 교사는 당분간은 대학원, 유학 등 공부를 더 해볼까 하는 고민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2010년 6.2 교육감 선거가 다가왔고 곽노현 후보의 자율형사립고 등 MB교육정책 심판 공약에 끌려 조그마한 힘이라도 보태자는 의미로 곽노현 캠프에 합류했다.

곽노현 교육감 당선 이후 당선자의 부탁으로 결국 비서실에 남기로 결심하였고, 1년 반 동안 혁신학교와 사립학교 비리 척결 등에 매진하였다. 그러다가 비서실보다는 학교가 자신의 자리라는 것을 잊지 않고 돌아가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학교 복귀는 하루만에 이주호 장관에 의해 가로막혔다.

학교체제 변화에 따른 교원신분 해결은 국가의 의무이자 관례

자율형사립고는 MB의 대선공약으로 입법화된 학교다. 2009년 MB정부는 대통령령인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여 자율형사립고를 밀어붙였다. MB의 교육분야 공약을 입안하고, 인수위 교육사회문화분과 간사였던 초대 교육문화수석 이주호가 선봉에 섰다.

우리 헌법이 규정한 학교제도법정주의에 의해 새로운 학교를 만들기 위해서는 국회에서 법률을 고쳐야 한다는 주장에도, 등록금 3배에 이르는 귀족학교의 설립으로 교육 양극화가 가속화 될 것이라는 우려에도, 명문대 보내기 입시위주 교육으로 학교서열화를 부추길 것이라는 반대에도 자율형사립고는 설립되었다.

새로운 학교 체제가 생기거나 기존 학교 형태가 변경되면 그에 따른 변화가 생기기 마련이다. 외고가 처음 생길 때도 그랬고, 전문계고(이전의 실업고)도 그랬다. 이렇게 새로운 학교 형태가 생기거나 학교 체제가 변화할 때는 그에 따른 교사 신분 보호 장치를 마련한다.

전문계고가 일반고로 전환하거나 일반고가 특목고로 전환할 때, 또는 그 반대 방향으로 학교 체제가 변화할 때 교사의 신분 변화에 대한 대비책을 국가가 마련한다. 먼저, 국가기관에서 재연수를 통해 과목을 바꾸는 것이 첫 번째 방법이다. 자율형사립고는 해당하지 않는다.

두 번째가 같은 재단 내에서 전보를 통하여 해결하는 방법이다. 대부분 사학법인들은 학교를 하나만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두 세 개, 많게는 10개 이상을 운영하므로 법인 내의 다른 학교로 보내서 신분 불안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런데 그가 근무하던 이화학원에는 중학교나 일반고가 없다. 그래서 재단 내 전보를 통해서 신분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체제가 변화하여 교사 신분상의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여러 장치를 마련한다. 재연수에 의한 과목 변경, 재단내 전보, 마지막으로 공립학교 특채가 그 방법이다. 작년 2011년 충북의 미덕외고가 바로 그 사례다. 그런데 자율형사립고 전환에 있어서는 이런 제도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학교체제가 변화하여 교사 신분상의 문제가 생기면 국가가 여러 장치를 마련한다. 재연수에 의한 과목 변경, 재단내 전보, 마지막으로 공립학교 특채가 그 방법이다. 작년 2011년 충북의 미덕외고가 바로 그 사례다. 그런데 자율형사립고 전환에 있어서는 이런 제도 장치가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 김춘진 의원실

관련사진보기


첫 번째와 두 번째 방법으로 해결이 되지 않을 경우에 마지막으로 남은 해결 방법이 국가가 직접 나서는 방법인데, 이것이 바로 특별채용이다.

가장 최근에는 2011년 충북의 미덕학원에서 운영하던 미덕외고가 일반고로 전환하면서 그 학교에 근무하던 교사 13명이 한꺼번에 공립학교로 특별채용된 적이 있다. 이런 사례는 서울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경우다.

그런데, 자율형사립고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당시 서울교육청은 어떤 대비도 없었다. 제도 미비로 인한 불가피한 피해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대해 곽노현 교육감은 "학교 체제 변경에 대한 제도적 불비로 발생한 문제로, 법적으로 당연히 두어야 하는 경과조치를 두지 않았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이형빈 교사를 특별채용했다. 언론에서는 곽노현 교육감의 측근에 대한 불법적 특혜 인사라고, 사직을 한 교사를 특별채용하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이런 전례는 전임 교육감 시절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공립학교를 사직하고 사립학교의 교장으로 갔다가 이사회 교체로 교장에서 해직되었던 교사 3명을 특별채용한 사례가 2001년 9월에 있었다. 유학을 위하여 근무하던 사립학교를 사직하고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와서 교육부총리 비서실에서 근무하던 심아무개 교사도 부총리의 추천서를 바탕으로 2004년 3월 공립학교로 특별채용된 선례가 있다.

이 정도 경력의 국어교사 흔치 않습니다

이형빈 교사가 쓴 <국어 지필평가의 새 방향>(좌) 이형빈 교사의 학부모 초청 강연 모습(우).
이형빈 교사는 전국국어교사모임 서울회장을 한 바 있고,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국어교사 직무연수 강사로 여러 차례 출강하는 등 국어 교사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교사다.
 이형빈 교사가 쓴 <국어 지필평가의 새 방향>(좌) 이형빈 교사의 학부모 초청 강연 모습(우). 이형빈 교사는 전국국어교사모임 서울회장을 한 바 있고,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국어교사 직무연수 강사로 여러 차례 출강하는 등 국어 교사로서 전국적으로 알려진 교사다.
ⓒ 김행수

관련사진보기


이형빈 교사는 단일 과목으로는 가장 회원이 많은 서울 전국국어교사모임의 회장이었다. 방학이면 언제나 전국의 국어교사들과 함께 방학 중 국어교사모임 연수를 준비했다.

그는 교육청과 교육부에서 실시하는 국어교사 직무연수 전문강사다. 국어교사들 대상의 연수를 서울뿐 아니라 전국을 다니면서 하는 유명 강사다. 그리고 국어교사들뿐 아니라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강연도 여러 차례 한 바 있다.

그는 또 <국어지필평가의 새방향>(나라말 출판사)이라는 국어교육 관련 책을 쓰기도 했다. 여러 교육 관련 전문지에 단골로 원고가 실리기도 했다. 이 정도면 그는 흔히 말하는 '교수급 국어교사'라 할 만하다.

이런 그가 근무하던 학교가 자율형사립고가 되면서 국어교사를 그만두어야 했다. 이런 이형빈 교사에게 국어교사로서 전문성이 검증되지 않아서 '임용 예정직에 상응하는 3년 이상의 경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하는 교과부의 주장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이형빈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찍은 사진. 그는 눈이 오면 뜰에 나가 시를 읋고,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팔짱을 끼는 그런 교사였다. 사람들은 그를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이 되고자 한 교사라고 했다. 자율형사립고 실패의 상징이 된 그의 복직을 자율형사립고 창시자인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가로막고 있다.
 이형빈 교사가 학교에서 학생들과 찍은 사진. 그는 눈이 오면 뜰에 나가 시를 읋고, 학생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팔짱을 끼는 그런 교사였다. 사람들은 그를 <죽은 시인의 사회>에 나오는 키팅이 되고자 한 교사라고 했다. 자율형사립고 실패의 상징이 된 그의 복직을 자율형사립고 창시자인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가로막고 있다.
ⓒ 이형빈

관련사진보기


키팅이 되고자 했던 교사는 눈물로 학교를 떠난 후 다시 돌아가는 날을 꿈꾸었다. 2년 만의 학교 복귀는 일단 무산되었다. 자율형사립고 실패의 상징이 된 그의 복직을 자율형사립고 창시자인 이주호 장관이 가로막고 나섰다. 그는 과연 학교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태그:#이형빈, #자율형사립고, #이주호, #곽노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한국 교육에 관심이 많고 한국 사회와 민족 문제 등에 대해서도 함께 고민해 보고자 합니다. 글을 읽는 것도 좋아하지만 가끔씩은 세상 사는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를 세상과 나누고 싶어 글도 써 보려고 합니다.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