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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리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입구 전시홍보물
 '한국의 단색화전'이 열리는 과천국립현대미술관 입구 전시홍보물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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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관장 정형민)은 5월13일까지 과천본관에서 한국의 단색화(Dansaekhwa)전을 연다. 단색화는 한국인의 미적 심경이 담긴 회화(Korean Monochrome Painting)로, 그 대표작 155점을 모은 대규모 전시다. 이탈리아어 '아르테 포베라(Arte Povera)'의 예에서 보듯 단색화를 한국어로 쓰는 건 영어로 표기하면 그 뜻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 전시의 초빙큐레이터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한일 현대미술의 단면'을 성공적으로 기획한 세계미술평론가협회 부회장 윤진섭 호남대 교수가 맡았다. 그는 단색화를 한국어로 써야 한다고 예전부터 주장해왔는데 이번에 직접 총 기획을 하게 되었다.

단색화, 40년간 유행 타지 않는 그림

정창섭(1927-2011) I '묵고(Meditation_93693 & 93815)' 캔버스에 닥 244×122cm(각각) 1993. 개인소장
 정창섭(1927-2011) I '묵고(Meditation_93693 & 93815)' 캔버스에 닥 244×122cm(각각) 1993. 개인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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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후반기 우리미술을 보면, 한국전쟁의 상처가 다 아물지 않은 1960년대는 실험기와 과도기였고 1970년대에는 이를 기반으로 단색화가 태동한다. 1980년대는 사회변혁적인 민중미술이 나왔고 1990년대는 포스트모더니즘이 유행했고 IMF환란을 거치면서 새천년을 맞았다. 그런 와중에도 40년간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유행을 타지 않는 사조가 바로 단색화다.

윤 교수는 단색은 그냥 단색만 쓴 것이 아니라 현상으로서의 단색화를 말한다. 한 가지 색 같지만 한 가지 색이 아니고 다층색이 뒤섞인 단색이다. 그러니까 흰색이 흰색이 아니고 검은색이 검은색이 아니다. 정창섭의 색은 한 가지 색 같으나 실은 여러 색이 합쳐진 것이다. 그래서인가 그의 작품은 미묘한 명암 속 색채의 울림이 들리는 것 같다.

단색화, 조형의 기본으로 돌아가는 미술

이우환(1936-) I '점으로부터' 캔버스에 안료 117×117cm 1976
 이우환(1936-) I '점으로부터' 캔버스에 안료 117×117cm 19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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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단색화에는 역시 한국식 발상에서 나왔다. 무슨 말인가 하면 우리는 뭔가 새로운 걸 창조할 때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출발한다. 이우환의 작품명에서 알 수 있듯 모든 조형의 기본이 되는 점과 선에서 시작한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할 때 우주만물의 기본인 천지인을 기호화해 자모를 만든 것과 같은 원리다.

기본에 충실한 이우환은 17권의 책을 내면서 동양의 독자적 미술운동인 일본의 '모노하(物派 school of things)'도 주도하고 70년대 한국 단색화를 낳는 데도 큰 몫을 했다.

하여한 이우환은 점과 선으로 깊고 넓은 미적 공간을 확장하고 돌과 철판의 결정적인 만남을 통해서 자연과 문명의 관계를 규정한다. 그리고 화폭에 개입을 최소화하되 공간의 창출은 최대화시켜 무한의 세계를 관객에게 펼쳐 보인다.

한국의 단색화, 모노크롬이나 모노하와 다르다

윤형근(1928-2007) I '검게 탄 암갈색 안료와 울트라마린 블루(Burnt Umber & Ultramarine Blue) 캔버스에 유채 99.5×181cm 1973
 윤형근(1928-2007) I '검게 탄 암갈색 안료와 울트라마린 블루(Burnt Umber & Ultramarine Blue) 캔버스에 유채 99.5×181cm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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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서양의 모노크롬이나 일본의 모노하와 뭐가 다른가.

일본의 '모노하'가 데카르트적 이원론에 근거한 근대를 극복하는 데서 시작되었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붓을 몸처럼 갈고닦는 반복행위와 오래 삭히는 발효의 미학을 통해 물질에서 정신을 추구하고 삶과 우주의 원리를 담아내는 미술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시각중심인 서양미술의 끝에서 나온 미니멀리즘이나 개념미술이 차가운 머리에서 나오는 아이디어를 중시한다면 한국의 단색화는 몸에 나오는 기를 중시한다. 그리고 작업을 신성한 노동처럼 여긴다. 윤형근의 작품을 보면 먹의 농담이 스미고 배어나오는 효과를 주어 화폭에 유쾌한 리듬감과 세련된 추상효과를 낳는다.

반복해서 채우는 것마저 비움이다

정상화(1932-) I '무제07-9-15'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59×194cm 2007.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정상화(1932-) I '무제07-9-15' 캔버스에 아크릴물감 259×194cm 2007.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국립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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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색화의 대표적 작가 중 한 사람인 정상화는 "내 작업의 지향점은 캔버스의 모든 것은 채워져서 비워지는 것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에게 있어 '채운다'는 것은 공간을 '비운다'는 의미도 포함된다. 그래서 그는 작업의 완성보다는 그 과정을 중시한다.

한국의 단색화는 이렇게 반복해서 채우는 것마저 역설적으로 비움의 미학을 낳는다. 다시 말해 서양의 채움을 그저 채움일 뿐이지만 동양의 채움은 그 마저도 비우기 위한 채움이다. 이런 반복성을 통해 더 높은 예술적 경지에 도달하여 정신적 초월도 맛보려 한다.

한국 단색화의 뿌리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윤명로(1936-) I '겸재예찬 M310(부분화)' 린네에 아크릴물감 철분 227×364cm 2000.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윤명로(1936-) I '겸재예찬 M310(부분화)' 린네에 아크릴물감 철분 227×364cm 2000.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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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한국의 단색화의 뿌리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건 아마도 조선시대의 '문인화'나 추사의 '문자향(文字香)' 즉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 넘쳐 그림과 글씨가 된다"는 정신에서 온 것인지 모른다. 손끝의 재주보다는 내면의 깊이로 자연과 인간이 하나 되는 공존과 조화의 예술세계 말이다.

이런 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윤명로의 '겸재예찬'이 아닌가싶다. 그는 겸재의 예술혼을 역동적인 추상화풍에 담아 삼라만상의 현상을 함축적으로 농축시켰다.

단색화, 한국인의 무념무상을 담다

박서보(1931-) I 묘법(Ecriture) 연작 캔버스에 한지에 혼합매체 90×71cm 1987
 박서보(1931-) I 묘법(Ecriture) 연작 캔버스에 한지에 혼합매체 90×71cm 1987
ⓒ 박서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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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엔 우리를 몰아지경에 빠지게 하는 박서보의 작품을 보자. 그는 "나에게 붓은 그리는 도구가 아니라 행위의 도구다"라고 말했는데 이는 몸을 도구로 삼아 이미지에 대해 환상을 버리고 구도자의 자세로 작업을 한다는 뜻이다. 특히 그가 즐겨 쓰는 색은 밖으로 튀는 것이 아니라 안으로 스며드는 것이라 사람들 마음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박서보의 단색화를 보면 서양의 모노크롬 화가인 이브 클랭(Y. Klein 1928-1962)과는 확연히 다르다. 박서보는 역시 노자의 '무위자연'에 가깝다. 그림에서 '무위(無爲)'란 그냥 아무 것도 그리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림에서 작위적으로 꾸미는 걸 버린다는 뜻이다. 그뿐 아니라 박서보는 서양의 개념미술보다 한수 위인 무목적적 무념무상의 경지를 넘나든다.

몸의 촉각성과 자연친화적 생태주의

하종현(1935-) I '접합 2002-41B' 마포 천에 유채 260×194cm 2002
 하종현(1935-) I '접합 2002-41B' 마포 천에 유채 260×194cm 2002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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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윤 교수는 이번 전시의 키워드로 '반복성'과 '촉각성'을 들고 나왔다. 수행으로서의 반복성은 이미 언급됐지만 그러면 촉각성은 뭔가? 그건 몸성, 신체성을 뜻한다. 그의 설명을 들고 보니 단색화의 최고 감상법은 터치 폰처럼 돌출된 작품표면을 만져보는 데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마포 천에 그린 하종현의 작품도 직접 만져보면서 감상하면 어떨까.

하여간 한국의 단색화는 위에서 보듯 한국인의 특이한 손맛과 우연적으로 밀어낸 얼룩과 흔적에서 온화한 촉감이 느껴진다. 그리고 논밭에 골을 내듯 지붕을 엮듯 닥종이를 뚫고, 찢고, 덮기도 한다. 단색화는 또한 닥종이를 많이 쓰기에 자연친화적이고 생태적이다.

한국 단색화의 세계화, 현대화가 시급하다

김환기(1913-1974) I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6-IV-70 #166)' 면천에 유채 232×172cm 1970. 개인소장.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처음 보게 되는 이 작품은 그만큼 한국 단색화에서 그 위상이 높다
 김환기(1913-1974) I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6-IV-70 #166)' 면천에 유채 232×172cm 1970. 개인소장. 전시장에 들어서면 맨 처음 보게 되는 이 작품은 그만큼 한국 단색화에서 그 위상이 높다
ⓒ 김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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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이야기를 마무리해보자. 단색화가 태동한 지 40년 된 이 시점에서 그 고유명까지 선포했으니 이제는 서양인도 납득할 수 있는 독창적 미학과 예술론이 필요하게 되었다.

백남준이 이어 2011년 뉴욕구겐하임에서 회고전을 열어 세계적 작가로 우뚝 선 이우환은 윤 교수와 대담에서 "단색화를 살리려면 그것이 타자와 소통할 수 있는 생명체라는 보편성을 밝혀야 하고, 지역성도 중요하지만 국제적 지평과 세계적 맥락을 제시해야 한다"며 "초지로 돌아가 기존 것에 대한 저항, 자기부정, 회화적 의문을 던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렇다. 이제 우리에게 이런 방향도 제시되었으니 가장 한국적인 미술운동인 단색화에 대한 정체성을 재확립하고 이를 세계화, 현대화해야 하는 역할이 우리에게 과제로 남게 되었다. 그리고 영어로 '단색화'를 쓸 때 첫 자를 T로 쓰기도 하는데 이를 D로 바꿔야 한다.

단색화 전시관련 관객을 위한 강의 및 아카이브 전시실 서비스

 1층 전시장 중앙 홀에 단색화 아카이브 윤형근작품(오른쪽)
 1층 전시장 중앙 홀에 단색화 아카이브 윤형근작품(오른쪽)
ⓒ 김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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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별로 전시를 하고 있으나 색조나 분위기가 비슷한 작품을 비교해 보게 하기 위해서 작가별 전시장 중간중간에 네모난 구멍을 내기도 했다. 전시장 바닥에 그림을 감상하기 가장 좋은 장소를 표시하여 관객의 감상에 친절함을 보였고 사진도 찍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단색화 작품을 보다 체계적으로 감상하기 위해서 1층 전시장 중앙 홀에 단색화 아카이브를 만들었다. 또 거기에서 작가와 이론가들의 인터뷰, 도록, 서적, 잡지, 기사, 드로잉, 공문, 영상자료 등 약 300여 종의 자료도 볼 수 있다. 벽면에는 단색화의 관련된 개념어가 일목요연하게 적혀 있다.

그리고 전시와 함께 다양한 교육문화행사가 열린다. 지난 3월 17일에는 이우환 작가의 강의에 이어 4월 14에는 박서보 작가가 과천본관 대강당에서 강연을 열 예정이다. 또한 3월 31일에는 이강소 작가의 작업실투어와 5월 11일 국제학술심포지엄과 청소년대상으로 한 전시감상도 마련해놓았다.

덧붙이는 글 | [관람료] 3,000원 [순회전시] 전북도립미술관에서 6.8-7.15까지 [강의신청] www.moca.go.kr 월요일 휴간
[초대작가] 곽인식, 권영우, 김기린, 김장섭, 김환기, 박서보, 서승원, 윤명로, 윤형근, 이동엽, 이우환, 정상화, 정창섭, 최명영, 최병소, 하종현, 허황(이상 전기 단색화 작가 17명) 고산금, 김춘수, 김태호, 김택상, 남춘모, 노상균, 문 범, 박기원, 안정숙, 이강소, 이 배, 이인현, 장승택, 천광엽(이상 후기 단색화 작가 14명)



태그:#단색화, #모노하, #모노크롬, #개념미술, #미니멀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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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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