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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쉽게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은밀한 이야기' 하나쯤 가슴에 담고 있을 겁니다. 부부사이에도 차마 말 하지 못한 이야기, 직장상사는 죽었다 깨어나도 모를 부하직원의 말못할 이야기, 그때 일을 생각하면 '피식' 웃음부터 나오는 나만의 이야기 등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 그 '은밀함'을 과감히 밝힌 이들이 있습니다. 그동안 '은밀'했지만, 이제 더는 '은밀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까요. [편집자말]
"사람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회사를 이야기하고, 또 은밀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순간 우리 이야기는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로 묻히고 맙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은밀함을 즐기고 이용할 뿐이죠." - 기사의 본문중에서
▲ 망설이지 마세요 "사람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회사를 이야기하고, 또 은밀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순간 우리 이야기는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로 묻히고 맙니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 은밀함을 즐기고 이용할 뿐이죠." - 기사의 본문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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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인터넷에서 올해의 최저임금 시급이 4580원이라는 걸 보았습니다. 경비업무를 하는 20대 김씨는 자신의 월급 체계가 궁금했는데, 올해 특별히 월급이 오르지는 않았습니다. 인터넷을 뒤적여봐도 너무 어렵기만 해서 무료상담을 해준다는 곳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이것저것 자세하게 물어오는데 왠지 자세히 얘기하면 안 될 것만 같습니다. 전화를 끊고 3일을 고민합니다. 모아둔 월급 명세서를 팩스로 보내주면 계산을 해봐주겠다는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대체 왜 쉽지 않은 걸까요?

길에서 노동법 유인물을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면 생각보다 전화가 많이 옵니다. 전화하자마자 버럭 화를 내는 사업주분도 계십니다만, 유인물을 받아서 잘 접어두었다가 읽어보았다는 사람들이나, 이런 문제는 처음 알았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절로 뿌듯한 한편 슬프기도 합니다. 일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인 사회인데, 자신을 지켜주는 내용이 주르륵 적혀있는 근로기준법조차 생소해 하는 상황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슬픈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따르릉,

나 : 네, 여보세요?
무명씨 : 아, 저기… 유인물 읽어보고 전화했는데요, 제가 퇴직금을 덜 받은 것 같아요.

나 : 예, 그러세요. 그러면 회사의 기본적인 정보부터 좀 여쭤볼게요. 혹시 어떤 회사인지 좀 알 수 있을까요?
무명씨 : 아 저기, 그건 말 안 하면 안 될까요?

나 : 아, 예 그러면 몇 분 정도 일하는 회사인가요?
무명씨 : 예, 한 30명 정도 일하는 회사예요.

나 : 어떤 일을 하는 회사인가요?
무명씨 : 아, 그건 말 안 하면 안될까요?

나: …

도대체 왜 정체를 안 밝히시나요

이렇듯 회사에 대해 말하기를 꺼려하는 전화가 생각보다 많습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못 받았다는 퇴직금 300만 원이 문제가 아니라 각종 수당과 사용하지 못한 휴가 등을 계산하면 얼추 천 만 원이 넘을 것 같습니다. 자료를 들고 찾아오시는 게 어떠냐는 질문에 이 분 주춤하십니다. 결국 희한하게 제가 꼭 오셔야 한다고 사정 사정하게 되었고, 결국 그 분이 임금 명세서를 들고 찾아오셨습니다. 계산해 본 결과 받아야 할 돈이 1500만 원 가량 되었죠.

방금 위의 사연을 보고 혹시 뭐 저런 경우가 다 있나 생각하셨나요? 생각보다 일상다반사라고 말씀드리면 갸우뚱하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1500만 원이 나왔는지까지는 이 글의 주제가 아닌 만큼 설명드리지 않겠습니다만, 임금명세서를 의심해 보라는 말은 해두고 싶네요.

나누어주는 유인물에 따라, 혹은 인터넷에 올리는 노동법 주제에 따라 상담 내용이 따라오지만, 많은 분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는 것을 꺼려합니다. 그래서 가끔 대체 왜 정체를 숨기는 거냐고 따져 묻기도 하면, 도청 되는 거 아니냐는 80년대 상상력을 가지신 분들도 있고, 기록이 남으면 불익을 받게 될까봐 라는 분들도 있습니다. 심지어 어떤 분은 뚝 끊어버리기도 하니 세상 참 어렵습니다. 바쁘신 국정원이 제 전화와 컴퓨터를 들여다 본다는 상상력은 어디서 온 걸까요?

어느날 노동법 교육을 하러 노동조합에 갔습니다. 만들어진 지는 오래 되었지만 노동법 교육을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는 곳입니다. 마지막 질문을 하는 시간, 장난기 넘치는 표정을 한 젊은 청년이 손을 번쩍 들고, "왜 저는 이 사실을 지금껏 몰랐나요?" 합니다. 이 분은 저에게 대답을 기대했을까요? 저는 왜 당신들은 이런 중요한 내용을 회사와 멀리 떨어진 곳에서 그것도 비공개로 노동조합 교육을 통해서 알았는지 물어보았고, 생각하지도 않은 긴 토론을 했습니다. 교육을 가장 열심히 듣고 있던 최고참 어르신이 한마디로 토론을 정리합니다.

"노동법 알면 빨갱이니까 그렇지!"

그야말로 "헐"입니다.

그거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겁니다... 당당히 요구하세요

"지방의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한 알바생은 야간근무인데 시급 3,500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가서 최저임금 위반 신고하거나 체불임금 진정하면 된다고 했더니 안 한답니다." - 기사 본문중에서
 "지방의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한 알바생은 야간근무인데 시급 3,500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가서 최저임금 위반 신고하거나 체불임금 진정하면 된다고 했더니 안 한답니다." - 기사 본문중에서
ⓒ 김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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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이주노동자들 상담이나 교육은 편합니다. 법에 나와 있으니 당연히 받아야 하는데 왜 안 주냐는 인식이 확실합니다. 교육은 얼마나 열심히 새겨듣는지, 이틀 연속 조선족을 대상으로 했던 강의 때는 수강자가 친구의 친구까지 데려와 수업을 듣더군요. 전화번호를 받아가는 것도 잊지 않았죠. 상담을 하는 내내, 내가 이런 것도 몰랐다며 눈시울을 붉히면서도 회사랑 원만하게 해결할 방법부터 묻는 한국 사람과는 사뭇 다릅니다.

지방의 편의점에서 일한다는 한 알바생은 야간근무인데 시급 3500원입니다.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가서 최저임금 위반 신고하거나 체불임금 진정하면 된다고 했더니 안 한답니다. 동네도 작고 어른들도 다 아는데 어떻게 그러느냐고 합니다. 대신에 사장님이 사람이 좋으니까 그냥 다니겠답니다.

문제가 있다고 대놓고 말하면 '문제아'로 찍혀버리는 모양입니다. 열불이 났던지 그 알바생은 결국 그냥 알바를 그만둡니다. 

노동법을 처음 공부할 때부터 왜 대체 중고등학교에서는 노동법을 안 가르치는지 궁금했습니다. 이리저리 둘러보아도 월급쟁이 가족, 친척, 친구… 죄다 노동법이 인생에서 중요한 사람들인데 말입니다. 사람들이 은밀하게 자신의 회사를 이야기하고, 또 은밀하게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순간 우리 이야기는 사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개인의 이야기로 묻히고 맙니다.

당신의 이야기, 이젠 당당하게 해보면 어떨까요?

덧붙이는 글 | 박혜영 기자는 노동건강연대 활동가입니다.



태그:#노동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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