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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정부 때도 사찰했다.
2200여 건, 노정부 경찰서 만든 비위감찰 등 자료
민주, "대통령 하야" 주장하곤 노 정부 사찰은 어쩔 건가

연예인도 사찰했다
'BH 하명' 다른 사람 아닌 대통령이 해명해야
박근혜와 청와대, 물타기로 '불법사찰' 본질 흐리지 말라

대선 전초전인 선거판에 '불법 회오리'가 거세게 몰아치고 있다. 4·11 총선 카운트다운이 한자리 수로 접어든
2일, 급기야 '불법 회오리'는 '사찰 후폭풍'과 함께 전국을 강타했다. 청와대발 민간인 불법사찰 파문이 대통령 턱밑까지 차오르자 다급해진 청와대가 주말과 휴일, 연이틀 기자회견과 논평을 통해 '반격'에 나선 때문이다. 침묵으로 일관하더니 궁지에 몰리자 청와대는 사찰 문건 2600여 건 중 대부분이 참여정부 때 작성된 것이라는 기막힌 공세를 주말과 휴일 내내 펼쳤다. 마치 도둑질하다 걸린 사람이 "다른 도둑도 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러느냐"고 호통을 치는 형국이다.

2일자 국내 일간신문들의 1면 머리기사 또는 사설 제목들이 온통 불법사찰 의제들로 가득 메워졌다. 총선정국을 뒤흔들 최대 변수로 부각시켰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법사찰 변수를 바라보는 시각이 두 유형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분명 어느 한쪽은 현실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했거나, 언론의 사명인 진실규명과 환경감시에 소홀했다는 방증이다. 신문들은 '대통령 하야'를 언급했던 민주통합당과 해당 문건을 폭로한 KBS 새노조를 비판하는 쪽과 '사찰'과 '감찰'은 다르다며 청와대의 '물타기'를 지적하는 쪽으로 극명하게 갈렸다.

이 가운데 보수신문들의 1면과 사설을 들여다보면 권력을 감시·비판해야 할 언론의 사명을 찾아볼 수 없다. 권력의 그늘에서 여전히 꼬리를 흔들며 능숙한 아부솜씨를 뽐내는 관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선택은 독자의 몫이지만, 자칫했다간 세뇌당하기 십상인 요즘이다. 지면에 묻어난 이념적 스펙트럼과 행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금방 드러나고 만다.

[서울 언론①] "노무현 정권 사찰부터 철저히 하라?"...물타기 공세

<조선일보> 2일자 사설.
 <조선일보> 2일자 사설.
ⓒ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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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대통령 하야" 주장하곤 노 정부 사찰은 어쩔 건가  -<조선일보> 사설.
사찰은 권력범죄…노정권 의혹도 철저히 규명하라  -<문화일보> 사설.
북한 서울 공격땐 군, 평양 단독타격  -<국민일보> 1면.
"참여정부 때도 사찰했다"..."당시 적법한 활동만 했다"  -<중앙일보> 1면.
400여건, MB정부 총리실 작성문서와 일반공문...2200여건, 노정부 경찰서 만든 비위감찰 등 자료  -<동아일보> 1면.

2일자 서울에서 발행되는 보수신문들이 일제히 짜 맞춘 듯 내놓은 1면 제목과 사설 제목들이다. 무얼 말하려는지 의도가 훤히 엿보인다.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이 휴일인 전날 "참여정부 시절 국무총리실 조사심의관실에서 다수의 민간인, 여야 국회의원 등을 사찰한 사실이 드러났다"고 주장한데 대한 보충설명들이다. 기계적 균형에 맞춘 전형적인 물타기 보도가 주류를 이룬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이 문제를 참여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가 원점부터 논의하자고 우긴다. '민주, "대통령 하야" 주장하곤 노 정부 사찰은 어쩔 건가'란 제목의 사설에서다. 31일  사설로 내보낸 '민간인 사찰 은폐 의혹, '진짜'가 고백할 일만 남았다'에서 한말을 벌써 잊은 듯하다.

"민주당은 3월 30일 사찰 문건이 폭로되자 '검찰이 2600건이 넘는 민간인 사찰 문건을 확보하고도 2건만 수사했다'고 흥분하면서 문건 속 'BH(청와대) 하명'이라는 표현은 이명박 대통령이 사찰에 직접 개입한 증거라면서 이 대통령의 하야까지 주장했다"며 "민주당이 이명박 정부의 사찰 의혹이 대통령 하야까지 필요한 중대 사안이라고 봤다면, 노무현 정부 때 벌어진 똑같은 일에 대해서도 당시 최고 책임자들이 정치를 그만둘 각오를 해야 할 것"이라고 억지를 부렸다. 야당 인사의 이름까지 낱낱이 거론했다. 물타기 전형이다. 카멜레온과 하이에나 저널리즘을 연상시키는 논조다.

이날 <동아일보>도 1면 머리기사에서 "당초 전국언론노동조합 KBS 본부(KBS 새노조)와 민주통합당이 이명박 정부의 민간인 불법사찰과 관련됐다고 주장한 2600여 건의 문서 중에서 80%가량은 현 정부와 무관한 문건인 것으로 나타났다"고 물타기 보도를 했다. 사설에서는 더욱 심했다. '현·전 정권 사찰 실체 다 밝히고 제도 수술하라'란 제목의 사설에서 뜬금없이 "총리실 민간인 사찰 논란은 사건의 당사자 격인 장 전 주무관과 민주당 비례대표 후보 30번인 그의 변호인, 그리고 민주당이 주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 큰 자가당착 수렁에 빠진 것은 그 다음이다. "민주당은 연대한 통합진보당 이정희 공동대표의 여론조사 조작과 주체사상파인 경기동부연합의 실체가 드러난 데 따른 부정적 여론을 덮고 수세 국면을 공세로 전환할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라며 민주당과 야권연대를 싸잡아 공격했다. 이틀 전 사설 '민간인 불법 사찰, 청와대는 침묵만 할 건가'에서 호통 치던 논조와는 전혀 딴판이다. 역시 하이에나 저널리즘을 보여줬다.

이밖에 <중앙일보>도 이날 1면에 "참여정부 때도 다수의 사찰이 있었다"는 최금락 청와대 홍보수석의 말을 무게 있게 보도한데 이어 <문화일보>는 사설에서 "노무현 정부의 의혹도 철저히 규명하라"고 적반하장격의 주장을 펼쳤다. 이날 <국민일보>는 단독보도임을 전제하면서 1면에 '북한 서울 공격땐…군, 평양 단독 타격'이란 큼지막한 제목을 뜬금없이 머리기사로 올렸다.

[서울 언론②] "박근혜·청와대, 물타기로 본질 흐리지 말라"

<경향신문> 2일자 1면.
 <경향신문> 2일자 1면.
ⓒ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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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김제동 사찰 지시  -<경향신문> 1면.
'BH 하명' 다른 사람 아닌 대통령이 해명해야  -<경향신문> 사설
연예인도 사찰했다  -<서울신문> 1면.
민간인 사찰 특검에서 말끔히 규명하라  -<서울신문> 사설
'청와대 박근혜 "문건 80%가 전 정부 사찰" 주장 뜯어보니'  -<한겨레신문> 1면.
박근혜와 청와대, 물타기로 '불법사찰' 본질 흐리지 말라  -<한겨레신문> 사설

보수신문들이 전날 청와대 발표를 근거로 물타기에 주력하고 나선 반면, 진보신문들의 시각은 달랐다. <경향신문>, <한겨레신문>, <서울신문> 등은 '소셜테이너' 등 연예인들에 대한 정권 차원의 '압박', '사찰'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고 주장했다.

<경향신문>은 1면 머리기사에서 "청와대 민정수석실이 2009년 9월 김제동씨를 비롯한 이른바 '좌파 연예인'을 내사하도록 경찰에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며 "2009년 9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서울지방경찰청 경제범죄수사대에 한시적인 '연예인 기획사 관련 비리수사 전담팀' 발족. ○○○는 민정수석실 요청으로 수사팀 파견"이라는 내용이 이 문건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전했다.
    
또한 <경향신문>은 기사에서 "2009년 10월 방송인 '김제동'의 방송프로그램 하차와 관련하여 각종 언론을 통해 좌파 연예인 관련 기사가 집중 보도됐다"며 "특정 연예인에 대한 비리 수사가 계속될 경우 좌파 연예인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에 휘말릴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 내용도 밝혔다.

<경향신문>은 또 사설 ''BH 하명' 다른 사람 아닌 대통령이 해명해야'에서 "민간인 사찰은 이 대통령이 입을 다문다고 묻혀질 수 있는 일도 아니고, 그렇다고 묻어둘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다"며 "이 대통령은 즉각 사과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해야 한다. 얼마나 더 국민들의 분노를 키울 셈인가"라고 재차 주문했다.

<서울신문>도 1면과 9면에서 이 같은 소식을 전했다. 신문은 사정당국 고위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김미화, 김제동, 윤도현 등이 조사 대상이었다"면서 "'특정 연예인' 사찰의 윗선에 대한 실체적 진실규명은 또 검찰의 몫이 됐다"고 전했다. <한겨레신문>은 보수신문들의 주장과는 달리 '감찰'과 이명박 정부의 '사찰'을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신문> 2일자 1면.
 <한겨레신문> 2일자 1면.
ⓒ 한겨레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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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신문>은 이날 1면에서 "한겨레가 이번에 공개된 문건 2859건을 분석한 결과, 이 가운데 실제로 2416건은 참여정부 시절인 2006~2007년에 작성된 문건이었다"면서도 "이 문건의 대부분은 경찰청 감찰담당관실 등에서 통상적으로 작성된 '경찰 내부문건'으로, 민간인 불법사찰과는 거리가 멀었다"며 "이명박 정부의 '불법 사찰'을 다룬 나머지 443건의 문건과는 '차원이 다른 셈'"이라고 덧붙였다.

<한겨레신문>은 또 이날 사설 '박근혜와 청와대, 물타기로 '불법사찰' 본질 흐리지 말라'에서 어이가 없었던지 초반부터 "참으로 어이가 없다. 뻔뻔하다. 자성은 없고 변명만 있다"고 운을 뗀 뒤 "본질은 외면하고 말장난만 판을 친다"며 "이번 사건의 본질은 누가 뭐라 해도 이명박 정권 들어 자행된 청와대 하명 불법 민간인 사찰"이라고 못 박았다.

진보신문들의 이 같은 보도에선 청와대의 '장두노미'(藏頭露尾: 쫓기던 타조가 머리를 덤불 속에 처박고서 꼬리는 미처 숨기지 못한 채 쩔쩔매는 모습에서 비롯된 사자성어)와 같은 행태와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의 '엄이도종'(掩耳盜鐘: 귀를 막고 종을 훔친다는 뜻의 사자성어)적 태도를 꼬집은 뜻으로 읽힌다.

[서울 외 언론] "대통령은 국민에게 당장 사과부터 하라"

이날 서울 외 지역에서 발행된 일간신문들도 불법사찰 문제에 많은 관심을 나타냈다. 사설에서 이 문제를 다룬 신문이 눈에 띄게 많았다. 4·11 총선의제로 지면을 다 채워도 모자랄 판에 청와대발 민간인 불법사찰을 사설에서까지 다룬 것은 그만큼 지역 유권자들의 관심이 크다는 것을 반증해 준 대목이다.

<부산일보>는 이날 사설에서 청와대는 본질을 호도하지 말 것을 간곡히 주문했다. '청와대, 민간인 불법사찰 본질 호도해선 안 돼'란 제목에서 묻어났다. 사설은 "국정 최고기관의 상황 인식과 도덕률이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지 우려스럽다"며 "지금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던 청와대가 불법사찰의 직접적 증거가 나오자마자 전 정권을 끌어들인 것은 염치 없는 짓"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사설은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정부가 민주주의와 인권을 유린한 데 대해 당장이라도 국민들에게 사과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지시하는 게 국민 감정에 부합하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고 재차 강조했다. <국제신문>도 이날 사설 '여야 불법사찰 수사 주체부터 빨리 합의해야'에서 입장을 분명히 하며 뼈있는 충고도 함께 했다.

"이번에 밝혀진 불법사찰 보고서는 국민적 재앙이나 다름없다. 정부가 정치인 관료 언론인 기업인 등 전방위로 국민의 뒤를 캐고 다니며 약점을 잡고 윽박지르는 일이 민주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인가. 그러나 이번 사태에 대한 청와대와 여권의 인식은 심각한 수준이다. 청와대는 총선 국면에서의 정치공세로 규정하고 사찰보고서 80%가 노무현 정부에서 이뤄졌다고 밝혔다. 이는 사실 여부를 떠나 안이한 책임 떠넘기기란 인상을 주기에 충분하다."

<무등일보>도 사설에서 납득할 수 없다고 거듭 지적했다. '사찰 사건, 모든 수단 강구해 진실 밝혀야'란 제목의 사설에서 "마음만 먹으면 국민 누구든 권력의 감시·통제 하에 둘 수 있었다는 점에서 참담하다"고 했다. 이어 사설은 "무엇보다 납득되지 않는 건 불과 40여 명 남짓한 공직윤리지원관실만으로 이토록 광범위한 사찰이 가능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대전일보>는 과거 정부에 떠넘기지 말 것을 사설에서 당부했다. ''불법 사찰' 정쟁보다 진실규명이 우선이다'란 제목의 사설에서다. 사설은 "민주주주의 근간을 유린한 무차별적 사찰에 국민의 분노가 들끓고 있지만 아직도 정부는 대충 넘어가려는 인상을 보여주고 있다"며 "현 정부의 불법적 사찰이 핵심인데도 과거정부가 한 일이라며 떠넘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런 뒤 "불법사찰과 관련된 책임자와 관련자가 나서 진상을 밝히고 국민에게 용서를 밝히는 게 도리"라고 사설은 꼬집었다.

<경인일보>도 이날 사설 '여야, 사찰진실 규명에 즉각 합의하라'에서 "이번에 문제가 된 것은 공무원이 아닌 기자, 중소기업인 등 민간인에 대한 광범위한 사찰까지 이뤄졌다는 점이다"며 "야당이 반발하는 것은 바로 이 점 때문"이라고 설명한 뒤 "국민들은 총선의 결과보다도 민간사찰의 진실 규명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고 있다"고 강조했다. 

보수신문들, 신문의 날 맞아 신뢰위한 성찰과 반성부터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한 MB정권의 민간인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서 2일 오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공공운수연맹 소속 사찰 대상 노조 대표자들이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이명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총리실 공직윤리지원관실을 통한 MB정권의 민간인불법사찰 사건과 관련해서 2일 오후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공공운수연맹 소속 사찰 대상 노조 대표자들이 청와대 입구 청운동사무소앞에서 이명박 대통령 하야를 촉구하는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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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신문협회와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한국기자협회는 올해로 56번째를 맞는 신문의 날(4월 7일)을 앞두고 표어로 '펼쳐라 넘겨라 세상과 소통하라'를 선정했다. 디지털 미디어 시대를 맞아 갈수록 신문들의 설 땅이 좁아지고 있는 현실이다.

전례 없이 신문위기를 맞고 있는 요즘, 과연 세상과 소통하려는 진정성을 얼마나 보여주고 있는지 신문은 스스로의 얼굴을 들어다 볼 때다. 특히 신문의 날을 맞아 거대 보수신문들은 소통의 대 전제인 신뢰를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성찰하고 반성할 때다. 신문시장 전체의 신뢰를 위해서.


태그:#불법사찰, #물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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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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